805화 이제 뽑아야지? (3)
김문재는 생각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일까.
‘얼마 전에…… 회의했잖아? 그때 왔잖아, 이 양반?’
우리 센터장님.
이현종.
우리 부센터장님.
이수혁.
이 둘을 빼놓고 내과 회의를 한다?
진짜 죽을 각오라도 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럴 수가 없는 법이었다.
“저기…… 그. 저희 펠로우 말입니다.”
“어. 뭐 자네 거 준다고? 신장내과 줄 거야?”
“아니, 아뇨. 제 거도 아니고 그런 게…….”
“그럼 뭐.”
이현종은 당당했다.
정말이지 당당하기 그지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와……. 이렇게 뻔뻔한가?’
물론 이현종이나 수혁이 보기에 그런 것이지 김문재가 볼 때는 그냥 뻔뻔한 것이었다.
“이미 다 확정을…… 1학기에 지어 놨고. 지금은…… 추계는 그냥 그거 실행하는 단계 아닙니까? 센터장님도 그거 다 하기로 해 놓고 지금…….”
“생각이 바뀌었어.”
“아니……. 생각이…… 바뀌어도…….”
“그럼 떨어진 애 인생 자네가 책임져 줄 거야? 내가 봤을 때 둘 다 우수하다고. 우리 센터 오면 어? 잘될 놈들이야. 근데 떨어져서 어디 딴 데 펠로우 밟다가 인생 조지면 책임질 거야?”
“인생을…… 인생을 왜 조져요…….”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의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인정해 줄 수 있었다.
솔직히 김문재는 대학 병원 내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그중에서도 태화 의료원에 있는 사람이다 보니 바깥세상과는 단절되어 지내는 편이긴 했다.
높디높은 방파제가 지켜 주는 안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나.
물론 이 안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환자를 봐야 하고 또 논문도 써야 하고, 레지던트도 키우고, 펠로우도 키우고 별짓 다 해야 하긴 하지만.
하여간에 세상의 변화에 의해 본인이 지니고 있는 지위가 흔들리는 걸 체감하기는 어렵단 얘기였다.
‘그래도 친구들 보면…… 후배들 보면…… 확실히 옛날 같지는 않아.’
그의 선배들 때만 해도 의사는 개원하면 오래 지나지 않아 개원한 병원 있는 건물을 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다 그의 대로 내려오니 상가 한 칸 사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후배들은 그보다 좀 못했고.
제자들은…….
제자들은 실제로 망해서 나자빠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른 직종에 비하면, 그래도 의사 면허증과 전문의 자격증이라는 방파제가 있다 보니 조져지는 경우가 훨씬 드물었다.
“뭐. 지금 무슨 생각해.”
“아뇨, 아닙니다.”
당연히 이런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나.
상대가 이현종이니.
이 인간은 뭔가 꽂히면 반드시 해결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아마 그래서 지랄 맞은 분과인 심장내과를 선택한 것일 터였다.
거긴 악으로 깡으로 뭔가 하다 보면 환자가 사니까.
“하여간, 이거 하나만 답해.”
“네?”
“‘네?’ 아니라, ‘네.’라고 해.”
“네.”
이현종은 김문재를 내려다보았다.
이 새끼, 솔직히 그렇게 맘에 드는 놈은 아니었다.
일단 수혁이랑 대립한 적도 있고, 그 대립한 이유도 별로지 않았나.
이렇게 과장씩이나 시켜 주면서 살려 준 것은 다 김다현 회장 때문이었다.
아예 병원 갈라서게 만들 게 아니라면 어찌 되었건 회유책을 써야 한다는 조언을 신현태가 들어서 그랬다.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그렇다고 말이 좋게좋게 나가진 않았다.
“내과 과장 선에서 해결 가능해, 못 해.”
“못 합니다. 이건. 이거…… 내과 티오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누구 하나가 손해 봐야 한다는 건데……. 그럼 다른 분과에 피해가 갑니다.”
“신장내과 온다는 놈이 있어?”
“아니, 있죠! 우리나라에 투석해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자랑이냐? 의사면 인마, 투석 안 해도 되게 만들 생각을 해야지?”
“아니, 그렇게 말하면…….”
김문재가 이현종이 보기에는 별로인 의사였지만.
개과천선을 했으리만큼 엉망은 아니지 않나.
또 나름 환자에 대한 애정은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때문에 신장내과학회 배은희 교수와 함께 콩팥을 살리는 생활 습관 8가지를 알리고자 캠페인도 하고 있었다.
뭐, 홍보 수단이랄 것이 마땅치 않아서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노력하고 있다고요!”
“근데 왜 나는 몰라.”
“어…….”
“같은 병원 의사도 모르는데 뭔 노력을 하고 있어!”
“어…….”
“에이. 이럴 때가 아니야. 자네도 와.”
“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항변을 했는데, 어쩐지 이현종의 손에 이끌려 과장실을 빠져나온 다음이었다.
중간에 비서가 미안하다고 눈짓을 보낸 것 같기는 한데 정신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어…… 어디를…….”
“그런 게 있으면 홍보 땅땅 해 달라고 해야지!”
“아니, 근데 그거 때문에 오신 게…….”
“어, 겸사겸사. 우리 일이 우선이야.”
“무슨.”
이게 무슨 일인가.
김문재는 잠시 이게 꿈인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나.
해서 뺨을 때렸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미쳤어?”
“아니, 미쳐 버릴 것 같아서.”
“뭔 소리야?”
“그런 게 있습니다……. 근데 지금 어디…….”
“원장실.”
“네?”
그저 속절없이 원장실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 상대가 이현종이다 보니 처음에는 그냥 그런갑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어어어어어어어!”
“왜 발작해?”
덕분에 김문재는 이현종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달렸다.
물론 진짜로 달리지는 못했다.
“너, 넌 뭐야!”
“안대훈입니다.”
안대훈이 몸으로 막아서 그랬다.
그렇게 잠시 실랑이가 벌어진 사이 이현종이 다시 김문재의 손을 잡았다.
“아, 안 돼!”
“뭐가 안 돼.”
“오늘 김다현 회장님 오시는 날이라고요! 그래서 원장단…… 중에서도 핵심만 지금 원장실에!”
“어, 그러니까 가자고.”
“아아아아아아니!”
“과장 선에서는 안 된다며.”
“너무 많이 뛰어넘잖아요!”
그래, 내과 과장이면 솔직히 낮은 자리는 아니긴 했다.
형식적인 자리긴 해도, 하여간 밑으로 교수도 100명이 넘고 레지던트도 100명이 넘지 않나.
말하자면 의사를 수백 명 거느리는 자리란 얘기였다.
높게 쳐주면 이사급이지 않을까?
대우는 부장급이지만.
부장.
그 위로 이사들 줄줄이 있고 그 위에 사장들 있고 그 위에 있는 회장.
그게 김다현이었다.
“얘 기절한 거야?”
“아뇨, 시늉만.”
“기절하고 싶다!”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김문재는 눈을 까뒤집었다.
별 소용은 없었다.
수혁 때문이었다.
명의라서 그런가. 한눈에 쇼라는 걸 알아보았다.
“새끼. 왜 이래? 과장도 관두고 싶나.”
“아…….”
“가자고. 가서 너네 그 뭐? 하는 거 있다며? 그거 홍보도 좀 도와달라고 해.”
“회장님한테요?”
“그런 것도 안 하면서 뭘 하겠다고.”
“아.”
그래서 다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끌려갔다.
이현종과 안대훈.
이 둘의 우악스러운 손에 의해.
‘시발놈들. 시발놈들…….’
속으로 욕을 아무리 주워 넘겨도 화가 풀리질 않았다.
덜커덕.
화가 너무 치밀어 올라서였는데.
신기하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화는 사라졌다.
대신 두려움과 공포감이 자리했다.
“딸꾹.”
“가지가지 하네, 진짜.”
이현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우웁?”
수혁은 말없이 호주머니에 있던 설압자로 김문재의 혀뿌리를 눌렀다.
“이렇게 하면 정상화돼요. 대개는.”
“딸꾹?”
“안 됐네?”
“어억.”
그럼에도 딸꾹질이 이어지자, 수혁은 쇄골 밑 부분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안대훈이 곧장 거기를 눌렀다.
김문재는 의문 가득한 눈으로 욕했다.
‘너…… 넌 레지던트 아니냐?’
이 새끼가 이거 돌았나?
내가 이 새끼야, 내과 과장인데.
시니어 중에서도 높은 사람인데!
“어?”
“됐네.”
신기하게 딸꾹질이 멈췄다.
더럽게 아프더니 갑자기 이렇게 됐다.
“원래 그래요. 들어가시죠. 회장님 앞에서 딸꾹질하면 좀 그렇잖아요.”
“그래, 김 과장. 빨리 내 아들에게 고맙다고 해.”
“어……. 고마워요.”
김문재는 얼떨결에 고맙다고 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애초에 내가 여길 왜 오냐고.’
과장은 급이 안 되니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원장단에 안 그대로 내과가 많으니 특히 내과 과장은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더랬다.
김문재로서는 감히 어길 수 없는 지시였다.
그런데 어겼다.
“어…….”
이미 문은 열렸고, 이현종이 들어갔다.
이수혁도.
그 사이에 껴 있던 김문재야 자연히 이미 안에 있었다.
슬쩍 살펴보니 김다현 회장에 바이오 계열사 사장 몇이 보였다.
신문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허미 시벌.’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뒤질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아우.
“안녕하세요, 회장님.”
“아……. 이수혁 교수님. 안 그래도 이따가 한번 얼굴 보려고 했는데. 웬일이죠?”
아니, 뒤졌다.
이러고 있는데 이수혁이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넸다.
[괜찮아요. 좋아하고 있습니다.]
바루다의 조언 덕이었다.
“지금 나누시고 계신 말씀 끝나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뇨. 마침 거의 다 끝났고…… 통합진료센터 얘기 중이었습니다. 면접이 아주 화제가 돼서 그걸 언론에 한번 알려 볼까 했죠.”
“아.”
이유가 있던 모양이었다.
하긴, 병원 면접을 이렇게까지 치르는 경우가 있던가?
면접자도 면접관도 더럽게 바쁜 데다가, 사실 면접자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성의를 보여야 하는 분과가 없어진 지 오래인데?
“바로 그거 때문에 온 건데요, 회장님.”
이현종이 말을 받았다.
평소와는 달리 퍽 예의를 갖춘 모습이었다.
물론 회의 중간에 들어왔다는 것부터가 무례였지만.
이현종임을 떠올려 보면 뭐…… 그 정도는 상수 아니겠나.
“아, 이현종 교수님. 네. 말씀하시죠.”
김다현은 이현종을 십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그를 보좌하는 이들은 이현종의 무례를 지적하기 위해 몸을 들썩였지만 말렸을 정도로.
‘의사들 중에서도 특이한 사람이지.’
물론 김다현이 유독 이해심이 유별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능력을 우선할 뿐이었다.
자신을 무시하면 그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서 저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살짝 선 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정말로 얼마든지 용납이 가능했다.
“저희 면접 결과 최종 심의에 든 친구들이 있는데……. 누구 하나 떨어뜨리기 아쉬울 정도로 뛰어난 친구들입니다.”
“잘된 일이군요?”
“들어온다면 도움이 될뿐더러, 저희가 가르칠 수 있는 역량도 된다고 자부합니다.”
“그럼 뽑아야죠.”
“헌데 이미 정해진 티오가 있어서…….”
“아, 하하하하하. 연봉 얼마죠?”
“펠로우 연봉은 세전으로 6,500 정도 됩니다.”
“승인하죠. 그 정도야 뭐.”
게다가 요구하는 게 꼴랑 연 6,500?
태화 바이오 과장이 움직이는 돈만 연에 10억이 넘는데, 회장에게 이 정도는 껌이었다.
이현종은 감사하다고 한 후, 김문재를 밀었다.
“네? 저는 왜.”
“너도 말할 거 있다며.”
“네?”
여기 오기를 바라지 않았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