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6화 학생 강의 (1)
어버버.
김문재는 말 그대로 어버버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시는 거죠?”
오죽하면 김다현이 이렇게 말할까.
김다현은 어지간하면 의료진이라는 직군의 특수성을 존중하고자 애쓰는 사람인데.
“그…… 김문재 교수 말은…….”
이현종은 그런 김다현의 얼굴을 보며, 아까 김문재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불가능한 수준의 마법이었지만 이현종은 할 수 있었다.
그는 천재니까.
게다가 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와……. 아빠 봐라. 거침없네.’
[저건 나이가 만들어 주는 힘일까요?]
‘왜 그렇게 단언하지?’
[수혁의 뻔뻔함과 연기는 타고난 재능인데……. 이렇게 김다현급으로 높은 사람 앞에 서면 좀 얼지 않습니까? 그에 비해 이현종은 아예 변화가 없습니다.]
‘그……. 음. 그런가? 나도 저 나이 되면 저러려나.’
[저거보다 더할 거 같은데요.]
바루다마저 감탄할 정도로 유려하게, 이현종은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콩팥이라는 게 이게, 망가지면 되돌리기가 어려운데요. 그에 비해 지키는 게 아주 어려운 장기는 아니거든요. 간은 간염 바이러스가 많고, 또 우리나라에서 그 비율이 높은 데 반해 신장은 그런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잘못된 습관만 고쳐도 만성 신질환들을 줄일 수 있습니다.”
원체 아는 게 많아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평생 심장만 팠어야 할 사람이 다른 것도 들이파지 않았나.
심지어 평생 그것들만 판 사람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깊이 파기까지 했다.
신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게 안타깝다는 생각에…… 신장 학회에서 수칙을 만든 모양이에요.”
“네,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김다현은 이현종의 말을 들으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마 김문재가 계속 말하고 있었다면, 그러니까 별 의미 없는 문장과 단어의 나열만 이어지고 있었다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터였다.
김다현의 스케줄은 그야말로 분 단위로 돌아가고 있기에 그랬다.
‘뭐……. 어차피 이쪽으로는 우리도 사회 공헌이 필요한 상황이야. 생색을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그렇다고 해서 짬을 낼 수 없냐?
그건 아니었다.
바이오 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이 어디 야바위나 해서 딸 수 있는 직함은 아니었으니.
비록 태화 오너 일가에서 재벌 해체를 부르짖는 이들의 눈치를 본 결과이기도 하지만, 하여간 그룹의 두 번째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자리에 아무나 앉을 수 있겠나.
김다현에게 부여된 권한은 막강한 것이었다.
“네네, 회장님 회의가 조금 길어지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한 10분 정도만……. 네네.”
분위기를 감지한 비서진이 연락을 돌리고, 이현종은 김문재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콩팥을 살리는 8가지 수칙을 학회에서 고심 끝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좋더라고요? 적정 체중 유지하면서 운동하기, 건강한 식사하기, 혈당 관리하기, 혈압 관리하기, 신장 상태에 따라 수분 섭취하기, 금연, 콩팥 기능에 따라 필요한 약만 복용하기, 주기적으로 소변 검사 등으로 기능 확인하기.”
“음……. 대강 들어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거 같은데요.”
“근데 이게 안 돼서 망가지는 사람이 많거든요. 특히 요새 젊은 친구들……. 바디 프로필 유행하지 않습니까?”
이현종의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두의 눈이 한 비서에게로 향했다.
최근 바디 프로필을 찍은 친구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카톡 프로필을 바꿨으니까.
회사에서 쓰는 폰에 상탈 사진을 올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그는 해냈다.
심지어 그룹 회장의 비서임에도 불구하고.
“아……. 그게 좋은 일이 아니에요?”
김다현도 별말 하지 않았더랬다.
어찌 되었건 바이오 그룹이라는 것이 건강을 위한 곳이지 않나.
살을 빼고, 근육을 드러내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참에 김다현부터가 한번 시도를 해 볼까 싶기도 했다.
20대보다는 30대가, 30대보다는 40대 이상이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인상 깊을 테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입을 연 것은 김문재였다.
너무 긴장한 탓에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현종 덕에 시간을 벌지 않았나.
게다가 최근 그가 제일 관심을 두고 있는 바프가 나오자 입이 근질거렸는지 유창한 말투로 앞에 나섰다.
“다르다?”
“네. 아주 젊고 건강한 사람에서는 급격히 살을 빼고, 사진 찍기 전에 수분을 제한하는 것조차 괜찮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반복된다면, 또 그 상황에서 카페인 등을 섭취함으로써 극한의 탈수를 일으킨다면 문제가 되겠죠.”
“아……. 이 친구도 찍기 전날부터 물 안 마셨던데요.”
“네. 화보 촬영하는 모델들이 하던 루틴을 이제 일반인들이 따라 하기 시작해서 그렇게 되고 있는데요……. 확실히 사진이 잘 나오기는 합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건강하지는 않습니다. 위험한 일이에요.”
김문재는 숫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놈의 바디 프로필 찍다가 신장 망가져서 고생하게 된 젊은이들을 대체 몇이나 보았나.
“심지어 단백질 위주의 식이를 하는데……. 이게 지나치면 신장에 무리가 갑니다. 때문에 적정 체중을 유지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이를 무시하고, 지나친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좋지 않아요. 물론…… 물론 너무 살이 찐 것보다는 낫긴 하지만, 반대급부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아깐 몰랐는데……. 말씀 잘하시네요?”
진심을 다한 열변이었다.
김다현은 기본적으로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마케팅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 아닌가.
애초에 태화라는 그룹 자체가 이사급 이상으로 올라서려면 모든 분야에 얼마간의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냥 사람이 센스가 좋았다.
“네? 아니…… 그냥 제가 늘 하던 말이라서요.”
김문재는 김다현의 물음에 조금 쌔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회장 앞에서 쌔하네요? 라는 말 따위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그냥 무난하게 답했다.
“TV 한번 나가시죠. 가셔서 시원하게 홍보 한번 해 보세요. 저희가 돕죠.”
“네? 그…… TV요?”
“네. 아시죠. 명의 채널 우리가 스폰하는 거. 들어 보니 시의성도 있고 내용도 좋은데요?”
“그…….”
이현종은 답답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김문재가 ‘그…….’ 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않겠나.
‘병신아. TV 나가게 해 준다고 하면 냉큼 할 일이지?’
물론 지도 안 나가고 있기는 했다.
환자 봐야지 어딜 TV에 나가나, 뭐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문재는 얘기가 좀 달랐다.
이놈이 환자를 보면 얼마나 본다고 시간을 아끼나.
들어 보니까 그냥 나가서 이 소리 한번 하는 게 국민 건강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억.”
“한다네요.”
해서 김문재의 옆구리를 꼬집은 채 이현종이 대신 말했다.
김다현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모르지 않았으나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좋아. 다음 공헌팀에서는 저쪽으로 한번 갈까.’
다큐멘터리 각도 나오지 않았나?
바프에 열중하는 젊은이들과 그로 인해 신장이 망가진 사람들, 그리고 이를 우려하는 신장학회와 그들의 캠페인을 돕는 태화.
그림 나왔다.
보기 좋잖아.
내친김에 펀드 만들어서 환자들도 좀 돕고 하면, 이게 바로 사회 공헌이었다.
“그래요. 자세한 일정은 우리 비서진들이 알아서 연락 주도록 하죠. 들으셨죠? 원장님?”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신현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얘기였다.
‘내친김에 이거……. 잘되면 우리도 항생제 관련해서 홍보해야 하는 거 있는데.’
속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의사라면 모름지기 각 과마다, 또 분과마다 숙원 사업이 하나쯤 있기 마련 아니겠나.
감염내과에서는 항생제 남용 및 수퍼 박테리아에 대한 내용 그리고 점점 더 심화되는 세계화에 따른 전염병의 위협 등등.
듣자니 이비인후과같이 규모가 작은 과도 보청기의 안경화와 같은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지 않던가.
‘이렇게 되면……. 음. 괜찮을 거 같기도?’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김다현이 툭 하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 아주 좋은 얘기 잘 들었습니다. 태화 의료원이 연초 목표했던 바를 추가 달성하고 있고……. 그 덕분에 태화의 이미지도 많이 좋아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기대가 큽니다.”
갈 시간이 돼서 그랬다.
서둘러야 할 정도로 시간이 급박하기도 했고.
그러나 김다현은 내내 웃었다.
빈말이 아니라서 그랬다.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지 않나.
앞으로 국제 진료 쪽이 더 커지고 또 원격 진료의 길이 열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미지가 아니라 정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려면 우리 이수혁 교수가 더 커서……. 세계적인 의사가 되어야지.’
그럴 수 있을 만한 이벤트 또한 준비 중이었다.
태화는 이제 글로벌 기업이고 세계 어디든 발을 뻗고 있으니.
“자, 그럼. 다음에 뵙죠.”
하여간 지금은 김다현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다 보여 줄 필요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그녀는 서둘러 원장실을 빠져나갔다.
신현태를 위시한 원장단 또한 뒤따라 나가서 인사를 올렸다.
그렇게 김다현이 사라지고, 신현태가 입을 열었다.
이현종을 바라보면서였다.
“꼭…… 지금 와야 했어?”
복잡미묘한 얼굴이었다.
아까는 화를 내려고 했다.
이 미친놈아 하면서.
근데 김다현의 반응이 좋아서 그러긴 어려워졌다.
“와서 해결됐잖아.”
“원장한테 말해도 되잖아!”
“안 된다고 할 거잖아. 너 6,500 있어?”
“그…….”
“또 뭐 어? 안 그래도 내과가 다 해 먹고 있는 판에 내과 쪽 센터에만 펠로우 주면 몇 명이 난리 칠지 모른다고 할 거지?”
“어…….”
그래도 뭐라고는 해야겠단 마음에 입을 연 건데 의외로 혼나는 쪽은 이쪽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잘못한 거야?’
너무 당당하게 혼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원장이냐? 내가 원장일 땐 인마 찍소리도 못했어, 인마.”
“그게 아니라……. 회의에 없어서 말을 못 한 거 아닌…….”
“시끄러워. 원장이면 좀 마음대로 병원을 쥐고 흔드는 맛이 있어야지.”
“그건 독재…….”
“지랄 말고.”
하여간 신현태가 완전히 말려서 부들대고 있는 동안, 김문재는 수혁에게 접근했다.
‘이 양반이 이제 나한테 화풀이하려고 그러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어떻게 알아?’
[뭔가 눈치가…… 우물쭈물하는 거 같은데.]
피할까 하다가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김문재가 정말로 어려워하면서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까 안 그래도 내가 이수혁 교수를 부르려고 했는데…….”
“네, 어떤 일로요?”
환자 보라고?
제발 그래라.
제발!
어려운 환자!
“학생 강의를 좀 부탁하려고 해요.”
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