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7화 학생 강의 (2)
“학생…… 강의요?”
김문재는 되물어 오는 수혁을 보면서 아, 이런 게 떨떠름한 표정이구나 싶은 걸 느꼈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몸이건만.
이런 건 처음이었다.
“그……. 네. 학생 강의.”
“음……. 학생 강의라…….”
아니, 이 인간 교수 아닌가?
김문재는 혹시 아닌가 싶어서 수혁의 명찰을 살폈다.
역시나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이라는 화려한 직함 밑에, 교수 이수혁이라고 쓰여 있었다.
“전임 받으셨죠?”
그래도 또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요새 임상 루트가 진짜 많지 않나.
이수혁도 임상인가 싶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0였다.
임상 루트가 많아지고 있는 게 어디 임상 교수를 생각해서란 말인가.
그저 병원 입장에서 더욱 싼 값에 우수한 인력을 부리려고 하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직함이라고 보면 되었다.
전임과는 달리 사학 연금도 아니고, 정년도 60세에 월급도 더 적은 루트.
무엇보다 자르는 것이 전임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쉬웠다.
‘이현종, 신현태가 실세가 아니었으면 또 몰라……. 아니지, 아니지. 이수혁 교수 같은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임상으로 태화에 남아.’
아선이랑 칠성에서 백지 수표라도 들고 오지 않았겠나?
아니, 어쩌면 외국에서 왔을 수도 있었다.
“전임이죠.”
과연 수혁은 전임이었다.
“그……. 전임이 학교 발령이라는 것도 알죠? 임상은 병원 발령이고?”
“아……. 그랬나?”
근데 전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와……. 이 양반 이거. 교수 쉽게 따 가지고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요새 애들이 교수 되려고 어? 얼마나 노력을 하는데.
미친 듯이 노력하면서 또 기다리기는 얼마를 기다려야 하나.
괜히 교수 자리는 하늘이 내린다는 얘기가 있는 게 아니었다.
김문재 때만 해도 쉽지 않았지만, 요즘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총장 면접……. 안 봤어요?”
“총장……? 아, 그때. 식당에서 본 분이 총장 같은데.”
“……?”
김문재가 수혁과 이현종 등에게 굴복한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반강제적으로 꿇었지만, 이제는 마음도 꺾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수혁은 진짜 천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앙금이 아예 없나?
그건 또 아니라서, 전임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총장 면접을 물은 참이었다.
한데 식당 얘기가 나와?
‘이 양반…… 설마……?’
면접을 안 봤나?
이런 생각으로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이현종은 실로 오랜만에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아니……. 총장 면접 안 봤어요?”
“면접을 뭐 하러 보나. 얘 교수 안 시키면 누구 시키려고.”
“아니……. 그래도 총장이……. 우리가 아무리 이사장이 있는 학교라지만 이게.”
“지랄 마. 총장도 수혁이가 쓴 논문 보고 울었어, 인마.”
“그…….”
“뭐, 새꺄. 이제 와서 시비 걸려고? 식당에서 본 게 면접이지, 인마.”
방금 면접은 뭐 하러 보냐고 한 게 댁 아닙니까?
김문재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퍼뜩 정신을 차렸다.
본인이 잡은 줄이 어디서 내려온 것인지 깨달았기에 그랬다.
“아유, 뭐. 시비라뇨. 아무튼, 그. 네, 이수혁 교수. 그……. 학교 발령 난 교수는 원래 학생 강의에 대해 의무가 있습니다.”
해서 시비를 거는 대신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갔다.
‘의무라…….’
[학생이라…….]
‘잘할까……?’
[그럴 리가요. 레지던트들도 삽질하는데요.]
‘그러니까……. 그렇다고 안 할 방법도 없는 거지?’
[없죠. 의무라잖아요.]
수혁은 마뜩잖다는 얼굴이었으나 하여간에 귀를 기울이기는 했다.
김문재는 그 틈을 타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엄청 원해요.”
“네?”
“학생들이 원한다고요. 1학기 학생 강의 평가 후기에서 강의하지도 않은 이수혁 교수 얘기가 엄청 나왔어요.”
“으음.”
다들 알고 있겠지만, 수혁은 자기 자랑의 화신이지 않나.
그 저변에는 당연히 관심종자와 같은 일면이 숨어 있었다.
“더 자세히 말해 보실래요?”
“응?”
관심이 안 갈 리가 있겠나.
학생들이 원한다는데.
수혁도 학생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말해 보시라고요.”
그야말로 입이 귀에 걸린 채 김문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래?’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김문재는 아니, 태화 사람들은 이현종 덕분에 천재는 또라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 지 오래다 보니 그냥 그런갑다 하고 넘어갔다.
“그러니까……. 학생들. 뭐 예과, 본과 할 거 없이 이수혁 교수 강의를 엄청 원해요. 그나마 본3, 본4는 피케이라도 도니까 아쉬움이 덜한 거 같은데 그 밑은 난리예요. 특히 신입생. 얘네는 뭐…… 아주 환장해요.”
“환장을?”
“네.”
“저한테……?”
“네.”
“후후.”
“?”
“더 얘기해 보시죠.”
수혁은 이제 턱을 괴고, 김문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사랑에 빠진 연인을 대하는 듯해서 김문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무섭단 생각이 들어서였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할 말은 하고 있었다.
여기서 끝맺지 않으면 어쩐지 또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아서였다.
또 김문재가 괜히 과장직을 맡고 있겠는가.
하여간에 교수 짬밥이 있는 사람이었다.
맺고 끊음이 확실했다.
“그, 1학년 애들은……. 아예 학부모들한테도 전화가 왔어요. 이수혁 교수님 때문에 온 사람들도 있다고.”
“허어……. 내가 그 정도인가.”
“네?”
“아니, 더 해 봐요.”
“아무튼, 그래서 지금 강의 시간을 편성했는데……. 솔직히 예과는 좀 그렇잖아요. 아는 것도 없는 애들이고. 과목도 마땅한 게 없고. 해서 본1이나 본2 정도에 하나만 골라서 강의를 의뢰……. 아니,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요.”
물론 맺고 끊음이 제아무리 확실하다고 해도 또라이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다 보니 예상했던 반응하고도 완전히 달랐다.
‘조금만 하라고 하면 보통 다 좋아하지 않나?’
아까는 전임이니 뭐니 하면서 몰아붙이긴 했지만.
사실 모든 의대 교수들이 학생 강의를 꺼린다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던가.
다른 단과대 교수들과는 달리 학생 강의보다는 아무래도 병원 업무가 주된 일인 데다가, 그 주된 일만 해도 너무 바빠서 그랬다.
그 와중에 학생 강의를 들이미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솔직히 말해서 있기가 어려웠다.
곁다리 업무란 얘기였다.
“원하는 애들이 있다면 다 이루어 주는 게 옳지 않을까요?”
“네? 본3, 본4를 제외한다고 해도 학년이 네 개나 되는데.”
“시간이야 만들면 되죠. 강의실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야 그렇긴 한데……. 업무가.”
김문재의 말을 끊은 건 이현종이었다.
“지랄 말고. 우리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 그렇게 하면 솔직히 자네도 편하잖아?”
“그야……. 응? 그렇긴 하네요?”
듣고 보니까 잘된 일이었다.
“강의안 제대로 짜 보라고. 아예 신설해. 통합진료센터에 대해서.”
“네에……?”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까 잘된 일이 아니었다.
“과장이 하는 일이 뭐야. 이런 거 조율하는 거 아니야? 나도 지원 사격해 줄 테니까 해 보라고.”
“어…….”
“똑딱똑딱.”
“어…….”
“뭐 하고 서 있어? 빨리 가서 강의안 만들어 와. 매 학기 하게. 우리 수혁이가 이렇게 좋아하는 게 어? 어디 흔한 일인 줄 알아?”
“어……?”
분명 잡일을 맡기러 왔는데 잡일이 되레 나한테 떨어졌다?
김문재는 당황한 얼굴로, 그러나 잡일을 하러 과장실로 향했다.
그 뒤를 수혁이 따랐다.
후후 웃으면서였다.
너무 무서웠지만, 뭐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 * *
붕.
그렇게 수혁은 예과부터 본과까지 모든 학년에 대해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수혁은 예과 강의실이 있는 본교로 향하는 길이었다.
본과부터는 병원에 붙어 있지만 예과는 그렇지 않은 까닭이었다.
[운전은 진짜 못 하네요.]
‘너도 새꺄, 다리 다쳐 봐.’
[제 알 바는 아니죠. 다만 천천히 가세요. 머리라도 다쳤다가 이 몸도 상하면 큰일이니.]
‘이거보다 천천히 가면 경찰이 잡으러 올걸.’
수혁은 천천히 강의실로 향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강의안을 점검했다.
[근데 예과 1학년이 이런 것도 알 수 있나요?]
‘응? 모르겠지. 그러니까 가르치러 가는 거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예과 1학년은 얼마 전까지 고3이었던 애들 아닌가요?]
‘재수, 삼수, 사수생도 많아.’
[그런 얘기가 아닌데.]
‘하여간 재밌는 강의가 될 거야.’
애들이 원한다지 않나.
실제로 강의 평가 글을 보니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김문재가 대강 말한 것이었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선망?
경배?
이런 말을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아주 불길한 인간이 하나 있지만.
안대훈하고는 그 결이 좀 달랐다.
‘내가 진짜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잖아.’
[그게 저는 좀 걱정인데.]
‘언제는 모든 강의에 최선을 다하라고 해 놓고서?’
[그……. 때와 시기를 적절히 보기는 해야 할 텐데요.]
20대 초반의 그 순수함이 느껴지는 찬사라니.
수혁은 그날 이후로 완전히 뽕에 취해 버렸다.
덜컥.
수혁은 웃는 얼굴로 차를 강의실이 있는 건물 앞에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
가을도 이제 끝물이다 보니 단풍보다는 흩날리는 낙엽이 더 많았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아……. 수혁도 학생이었죠.]
‘그래, 여긴 뭐 변한 게 없네.’
강의를 하러 오는 건 처음이지만, 분명 수혁도 한때 이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지 않나.
별생각 없이,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새 강의실 문턱이 보였다.
‘와……. 오셨다.’
‘미쳤네. 난 이제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 정도야?’
‘넌 새꺄……. 이수혁 교수님이 우리나라 의학의 미래라는 것도 모르냐?’
‘아니……. TV에서야 그렇게 말하는데……. 난 외과 지망이라.’
‘무엄한 놈.’
그런 수혁을 보기 위해 예과 1학년 모두가 강의실 안에 꽉꽉 들어차 있었다.
아니, 예과 1학년뿐만 아니라 2학년 그리고 타과생들도 들어와 있어서 강의실은 말 그대로 터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와……. 진짜 이런 게 스타 교수구나.’
예과 과 사무실 비서는 그런 강의실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신현태인가 뭔가 하는 양반이 전화를 걸어 강의실 큰 데로 잡아 놓으라고 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나.
지금도 뒤에 서 있는 사람이 하나 가득인데.
만약 보통 전공과목 하던 데로 잡았으면 지금쯤 창가에 학생들이 좀비들처럼…….
‘시벌 깜짝이야.’
아니, 지금도 다닥다닥 붙어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안에 든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이 사람들은 수혁이 누군지 잘 몰랐다.
“뭐야? 연예인이라도 왔어?”
“저 사람은 그럼 매니저인가?”
“다리 불편한 매니저를 써?”
“아……. 교수…… 교수 아니야?”
“교수? 강의를 들으러 이렇게 왔다고?”
“뭔 강의길래……?”
기대와 호기심 등등.
각각의 감정은 그대로 바루다에 의해 분석되어 수혁에게 전달되었다.
[이렇다는데요?]
‘좋구만.’
[이러고만 있을 거예요?]
‘아니, 이제 시작해야지.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 주마.’
수혁은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만약 수혁을 아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 미소를 보며 소름이 돋았을 터였다.
수혁에게 가르쳐 준다는 말은 다름 아닌 조져 준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