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08화 (808/1,303)

808화 이게 학생 강의? (1)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교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럼……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네! 교수님 출석부 여기 있습니다.”

“아니, 필요 없습니다.”

“네?”

다 외웠다.

‘아이돌이 된 기분으로 외웠지.’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데이터화한 건데요? 의학 자료를 좀 지우고요.]

바루다는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

딱히 의미 있는 자료는 아니었으니.

하지만 수혁도 이제 머리가 커서 바루다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김예형.”

“어……. 네!”

“김진수.”

“네!”

수혁이 출석부 없이, 그 무엇도 보지 않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강의실 전체가 술렁였다.

‘설마…….’

‘다 외우신 거……?’

처음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분명 수혁은 오늘 여기 처음 왔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맨날 오는 생물학 또는 유기 화학 교수들도 이름까지 알지는 못했다.

대학이라는 곳이 그럴 수밖에 없는 곳이지 않나?

담임도 없고, 뭣도 없는 곳이니.

“이제학.”

“네!”

심지어 수혁은 그저 허공을 보며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보면서 부르고 있었다.

그 말은 단지 이름만이 아니라 얼굴까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미친…….’

‘이게 천재구나.’

‘클라스……. 와…….’

‘내 이름을 교수님이 불러 주시다니. 눈도 마주치면서!’

술렁임은 어느새 경탄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었다.

수혁이 정확히 기대했던 바였고.

또 어느 정도 그렇게 의도했던 바이기도 했다.

[이걸로 이렇게 놀란다고요?]

‘당연하지. 나 다닐 때도 이름, 얼굴 외우시는 분은 없었어. 본과 때도 그랬는데 예과 때야 당연하지.’

더 숭배해라.

그리고 나중에 우리 내과 더 나아가서는 통합진료센터의 초석이 돼라.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학생의 이름을 불렀고, 마침내 강의실 전체를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예과 2학년 친구들도 많이 있네요? 양호승. 과대 아닌가?”

“네? 아, 네!”

아직 한발 남았단 얼굴을 하고서였다.

‘미친……. 2학년도 외우셨어?’

‘야, 없는 애들 다 오라고 해! 이런 거 안 들으면 개손해야!’

과연 임팩트는 있었다.

아직 강의는 시작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강의 평가에 뭐라고 적을지 훤히 보인다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음……. 이건 외우길 잘하긴 했네요.]

‘그렇다니까. 사람 심리는 나한테 맡기라고.’

[이런 식의 조작에는……. 네, 수혁이 왕이긴 하네요.]

수혁은 그렇게 좌중을 휘어잡고는 마우스를 움직여 강의 파일을 열었다.

<현대 의학의 이해>

다소 광오한 제목의 파일이었다.

그러나 강의실은 조용했다.

수혁이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다.

솔직히 이들이 이현종을 알겠나 아니면 김승규를 알겠나.

물론 아는 친구들도 몇 있기야 하겠지만, 떠오르는 스타이면서 동시에 김다현이 의도적으로 각종 미디어를 통해 밀어주고 있는 젊은 의사 이수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언제까지를 고전 의학으로 분류하고 또 어디서부터를 현대 의학으로 분류하는가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다만 현대 의학의 몇 가지 특징을 잡아 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명확하죠.”

수혁은 PPT 화면을 보는 대신 좌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천천히 지팡이를 짚어 가면서였다.

또각.

지팡이와 나무 단상이 만나며 내는 소리가 마치 메트로놈 같았다.

조용하면서도 규칙적이어서, 그 소리가 오히려 수혁의 말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선 현대 의학은 고도로 분화되고 있습니다. 내과만 해도 분과가 늘어나고 있죠. 그 외에 안이비인후과는 안과, 이비인후과로 나뉘었고. 피부비뇨기과 또한 피부과, 비뇨기과로 나뉘었습니다. 이토록 분과가 세분화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음, 김예형 학생?”

“어……. 그…… 예전보다 지식이 너무 쌓여서……요?”

“네. 맞습니다. 이것이 초창기 해리슨. 내과 교과서의 모습입니다. 두께가 지금의 3분지 1밖에 안 되죠? 이마저도 이시기의 해리슨에는 수사적인 표현이 꽤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의학과 문학이 완전히 분리되기 전이라서 그렇습니다. 그에 반해 지금의 소화기내과 교과서는 어떤가요? 내과 전체를 다루는 이 시기의 책보다도 훨씬 두껍습니다. 심지어 수사적인 표현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음에도 그렇죠.”

지식이 쌓인다.

이것은 비단 현대 의학만의 특징이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재해 온 모든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 얘기일 터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본래 하나였던 분야가 두 개로, 또 세 개로 나뉘어 가는 것 또한 모든 학문에 적용할 수 있는 얘기였다.

사실 되돌아가다 보면 의학이 과학 안에, 과학은 전체 학문 안에 들어가 있어, 한꺼번에 배울 수 있던 시절도 분명히 존재하지 않던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에 딱히 분석할 이유조차 없었더랬다.

“자, 그럼 이렇게 나누어져만 가는 흐름은 어떤 문제점을 가져올까요?”

거기에 수혁이 의문을 제기했다.

PPT에 현존하는 모든 분과를 띄운 채였다.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당연하겠지만, 답은 없었다.

궁금증도 지식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니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가 원래는 하나의 의학이라는 점입니다. 각 과의 관점에서 쓰인 이 모든 교과서는 결국, 하나의 인간을 고치기 위한 학문이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습니다. 단편적인 시각을 가지고 인간을 보게 되면, 다른 시야에서 보면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마저 볼 수 없게 됩니다.”

“아…….”

그러나 당연한 말을 하는데, 반응이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특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전국에서 제일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지 않나.

비단 의대생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이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적을 텐데, 그중에서도 태화였다.

확실히 무어라 정의할 수는 없어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분과가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 의학의 모든 분야가 발전해 나가는 것을 다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렇게 분과적인 지식을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종합해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의 중요성은 앞으로 점점 더 올라가겠죠. 저는 그 점에 대해 오늘 여러분께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자, 그럼.”

수혁의 움직임에 따라 PPT가 돌아갔다.

드디어 본격적인 케이스 강의의 시작이었다.

“이 환자의 나이는 23세입니다. 주된 호소 증상은 18일간 지속되던 발열입니다. 환자는 대학생이고 집이 태화 의료원 근처에 있어 동네 병원 딱 한 군데만을 거쳐 제게 의뢰되었습니다.”

수혁은 말을 이어 나가며 학생들을 살폈다.

‘잘 따라오는군.’

[지금까지는 한국말만 할 수 있으면 따라와야 하는 수준 아니었을까요?]

‘아빠가 걱정하니까 그렇지.’

[이현종이 걱정하는 부분은 여기가 아니긴 할 텐데…….]

처음엔 그렇게 같이 신나 하더니.

수혁이 준비한 케이스를 보곤, 이현종이 이렇게 말해서 그랬다.

-수혁아, 제정신이냐?

솔직히 충격이었다.

수혁에게 이현종은 사탕 아빠보다 더한 존재여서 그랬다.

정말이지 뭘 해도 오냐오냐하는, 어린 시절부터 키웠다면 아마도 수혁을 천하에 다시 없을 망종으로 만들었을 법한 아빠이지 않나.

근데 제정신이냐고?

해서, 이 케이스에 문제가 있나 싶어 다시 살피고 또 살폈으나, 이미 학생에게 더 깊은 인상을 심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버린 수혁은 자기 검증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그대로 들고 왔다.

들고 오긴 했는데 불안해서 살피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발열과 18일이라는 기간이겠죠. 또 대학생이라는 신분도 어느 정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의심하겠습니까?”

하여간 괜찮은 것 같아서 질문은 던졌다.

반응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벌써요?’

‘이걸요?’

‘저희 예과생…….’

의대생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의학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하면 대가리를 세차게 흔들어야 하는 애들이기도 했다.

예과니까.

말 그대로 본과를 준비하는 시기이지 않나.

물론 트렌드에 맞춰서 예전 같았으면 본과에서나 배웠을 내용을 예과에서도 배우기 시작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과는 예과였다.

‘음.’

수혁은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답 듣기를 단념했다.

‘이렇게 상황에 맞춰 강의를 수정할 수 있는 천재, 그것이 나다.’

[지랄 마십쇼……. 애초에 이게…….]

대신 말을 이어 나갔다.

“발열의 가장 흔한 원인은 감염이죠.”

“아.”

지금 아 할 때가 아닌데.

수혁은 입술을 씰룩이며 또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냥 감염이라 하기엔 18일이라는 기간이 걸립니다. 만약 대한민국이 아니었거나, 의료 취약 계층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18일 동안 방치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환자는 아까 뭐랬죠?”

“대학생입니다!”

“네. 물론 대학생이, 20대에서 병원 이용률이 그 위의 세대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명확한 증상이 없는 만성 질환에서 그런 것이지, 발열에서는 그렇지 않겠죠. 당장 열이 열흘이 넘게 나는데 병원에 안 가 볼 사람은 여기에도 별로 없을 겁니다.”

“네!”

그래도 대답이 씩씩한 것은 다행이었다.

수혁은 사소한 것에 대해 만족하기로 했다.

“이 환자도 통합진료센터에 의뢰되기 전에 병원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약을 받았습니다. 당시 의사가 판단한 임프레션은 인후염이었습니다.”

“아, 인후염!”

그거에 그렇게 좋아하면 안 되지.

그게 맞았으면 열이 계속 났겠니…….

수혁은 이런 생각을 애써 뒤로하고, 그러나 완전히 불편한 심기를 감추는 데는 실패해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말했다.

“인후염은 아니었겠죠. 약을 먹었음에도 열이 지속되었으니까요. 애초에 인후염이라는 병이, 정상 면역자에게서 18일 동안 열을 일으키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일 테니까요.”

“아.”

“자, 이 환자에게 사용했던 약은 엔세이드(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와 속 보호제였습니다.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의심해 볼 수 있을까요?”

“음.”

아이들은 딱히 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네.’

[네, 뭐…… 아예 답하기를 포기해서 그런가. 오히려 케이스를 따라오는 애들은 학회보다 많아 보입니다.]

뭐가 되었건 평가보다는 가르침이 위주가 되는 시간이 아니겠나.

“약물에 의한 부작용, 림포마를 비롯한 암, 그리고 자가 면역 질환 등을 의심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열거한 질환들 모두 꽤 오랜 기간 열을 낼 수 있는 질환입니다. 물론 여전히 감염병에 대한 가능성도 비교적 큰 확률로 남아 있습니다. 자, 이제 이 환자가 왔습니다.”

수혁은 PPT를 넘겼다.

그러자 환자의 눈 사진이 떴다.

“어떤가요?”

“황달! 아, 이거 간염이죠!”

말 그대로 흰자위가 노래져 있었다.

그걸 어떤 예과생이 잡아 내곤 신이 나서 외쳤다.

수혁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황달이라고 다 간염이겠니…….’

확실히 분위기가 아까보다는 싸늘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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