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09화 (809/1,303)

809화 이게 학생 강의? (2)

[휘이이잉.]

바루다가 겨울바람 소리를 냈다.

그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혁이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예과생이다……. 예과생…….’

눈 앞에 있는 애들은 예과 1학년이지 않나.

사실상 건강에 관심 있는 일반인보다도 아는 게 없는, 그런 순수한 아이들이란 얘기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혁을 돌아보면 될 일이었다.

-과외 가야지.

물론 생각 없이 놀고먹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가 없는 환경에 처해 있지는 못했으니.

하지만 의대 공부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해서 수혁은 개구리 올챙이 적을 최대한 떠올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덕분에 정적은 불과 수 초에 불과했다.

‘우리가 뭐 잘못했나?’

‘황달 있으면 간염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도 그 정도는 안다구요, 교수님!’

해서 예과생들은 뭘 잘못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물론 간의 이상을 의심해야겠죠. 하지만 황달을 일으키는 질환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간을 공격하는 질환 자체가 많지 않습니까?”

“아, 네.”

수혁은 일단 황달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 주고 넘어갔다.

당연하게도 PPT 화면도 넘어갔다.

환자의 입안, 목, 흉부 그리고 복부 등의 사진이 차례로 떴다.

사진이 뜰 때마다 수혁의 부연 설명이 쭉 이어졌다.

“목은 건조해 보이지만 염증 소견은 없었습니다.”

‘역시 간염.’

중간중간 거슬리는 추임새가 있었지만, 수혁은 애써 참고 말을 이었다.

“경부에 만져지는 임파선은 거의 없었고, 만져지는 임파선의 크기도 일반적이었습니다.”

‘역시…… 간염.’

아는 질환이 하나라서 그런가.

애들은 곧 죽어도 간염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청진 소견상 잡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부로 넘어와서…… 그냥 보면 별 이상은 없어 보이죠?”

“네.”

“하지만 촉진 소견에는 특이 사항이 있었습니다. 간 쪽은 오히려 별다른 게 없었고, 비장이 비대해져 있었습니다. 비장이 뭐 하는 곳이죠?”

“음.”

본과였다면 이런 질문에는 즉답이 나왔을 터였다.

하지만 예과, 그중에서도 1학년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강의실이다 보니 침묵만 이어지고 있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재밌고 유익하면서 동시에 추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강의를 하려고 온 것이지, 기본 배경이 되는 지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러 온 건 아니었으니.

-아빠는 예과 때도 공부 엄청 했거든? 그런 놈 있으면 잡아 와.

물론 기대를 아예 안 한 건 아니었다.

이현종은 예과생 때도 이미 엄청 뛰어난 무언가를 보였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여긴 없는 것 같았다.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현종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기인이죠.]

‘그건 그래.’

그런 사람이 너무 자주 있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주변에 괴로운 사람들이 마구마구 늘어날 테니.

“비장은 수명이 다한 혈구를 제거하는 곳입니다. 그 외에 비정상적인 혈구도 제거하죠. 이게 커진다는 건, 이러한 일이 체내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을 유념하고…… 넘어갑시다.”

“네.”

“어차피 예과 2학년 학생들도 있는 거 아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네!”

수혁은 그렇게 비장에 대해 간략히 알려 준 후, 좌중을 돌아보았다.

“여기까지가 보통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거나, 응급실을 통해 내원했을 때 1분 안에 시행하는 검사입니다. 시간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리 늦어도 5분을 넘기지 않죠.”

“와…….”

“그리고 동시에 이 검사들을 통해 어느 정도의 추론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게 의사들의 할 일이고, 또 여러분이 나중에 해야 할 일이죠.”

“와…….”

예과생들이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본인들은 1분 안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롤에서 CS 먹는 일밖에 없는데, 누군가는 환자를 여기까지 볼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문의 수준에서는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토록 많은 공부를 대체 왜 하겠나.

다 이렇게 써먹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럼 추론을 해 보죠. 먼저 환자의 증상은 발열입니다. 약을 먹었음에도 조절이 되지 않고, 계속 지속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황달이 있고, 비장의 종대가 관찰됩니다. 잘 보면 환자의 얼굴이 창백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빈혈이 있다는 것이죠.”

“아…….”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아이들이지 않나.

그래서 그런가. 오히려 수혁의 말을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환자의 나이와 기저질환이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확률은 낮아지지만, 여전히 감염 질환의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어디를 공격하건 간에 만성 감염이 되면 황달도 발생할 수 있고, 빈혈도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환자의 성별과 나이를 고려하면 자가면역질환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아…….”

자가면역질환.

아무리 예과생이라고 해도 이건 주워들어 본 적이 있었다.

특히 젊은 여자에서 더 많이 생기는 질환이라는 것도.

“거기에 더해 골수 관련한 암 또는 이상 질환도 생각해야 합니다. 아까 말했든 발열은 암의 초기 증상이기도 하니까요.”

수혁은 단상 위에 놓여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일부러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그 덕에 약간 붕 뜨려 했던 강의실 내의 공기가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모두들 이보다 더 집중할 수는 없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강의실 내에는 묘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자, 그럼……. 우선 이 세 가지 질환을 떠올리면서 검사를 내야겠죠? 우선 병원 가면 뭘 하던가요?”

“피검사요!”

“그래요. 아, 그러고 보니 방금 답한 학생, 얼마 전에 태화 의료원 응급실 왔었죠? 술 너무 먹고 토하다 말로리-와이즈 신드롬 와서.”

“앗.”

수혁의 말에 얘기를 꺼냈던 2학년 학생이 고개를 푹 숙였다.

말로리-와이즈 신드롬이란, 대개 술 먹다 갑자기 팍 토하면서 발생한 압력으로 식도가 찢어지는 것을 말하기에 그랬다.

동시에 주변에서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때 같이 있던 친구들인 듯했다.

아마 저들은 죽을 때까지 적어도 말로리-와이즈 신드롬이 어떻게 발생하고 또 어떤 절차로 치료받는지 잊지 못할 터였다.

“그런 질환으로 병원에 더 오지는 않아야겠지만……. 그래도 뭐, 의사가 될 사람이 환자 입장이 되어 병원을 경험하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합니다.”

수혁은 그런 생각으로 껄껄 웃다가, 이내 혈액검사 소견을 띄웠다.

이상 소견은 붉은색으로 떠 있고, 정상은 검은색으로 떠 있는 전형적인 병원 차트였다.

“보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전부 감소해 있습니다. 이걸 우리는 범혈구 감소증이라고 합니다. 이건 어떤 질환의 소견이죠?”

“배, 백혈병!”

“그…… 네, 뭐. 백혈병에서도 그럴 수 있죠. 그리고?”

“음.”

“아.”

수혁은 애써 과거를 떠올렸다.

덕분에 자기도 예과 땐 범혈구라고 하면 백혈병이나 떠올렸다는 걸 상기할 수 있었다.

“그래요. 그렇죠. 네. 음. 그 외에 아까 말했던 자가면역질환도 가능하고요. 사실 감염병에서도 패혈증이 진행되었거나 또는 만성으로 넘어간 경우에는 극히 드물게 가능한 소견입니다. 이것만으로는 뭘 감별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할 때 이것저것 돌리는 거예요. 다 보면…….”

밑으로 죽 다른 결과들이 떴다.

“중간에 보면 간 수치가 떴죠? 이건 황달이 있으니 했다기보다는 기본이라 나간 겁니다. 하지만 제일 밑에 있는 검사들은 사실 루틴으로 긁는 검사는 아닙니다. 이게 혹시 뭔지 아시겠어요?”

“ab…… 항체?”

“네, 어떤?”

“그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의 면역 체계가 우리 몸을 공격하는 병입니다. 그 말은 곧 우리의 몸을 항원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항체를 형성해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자, 그럼 이게 뭘까요?”

“아……. 우리 몸을 공격하는 항체입니다!”

예과생들이라 그런가, 아니면 수혁이 워낙에 젊은 교수라고 그런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애들 반응이 꽤 괜찮은 편이었다.

본과였다면 어땠을까.

‘절간에서 혼자 목탁 두드리는 기분이었을 텐데…….’

함부로 답하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

애들이 삶에 치여서 지쳐 있기도 하거니와, 강의실 분위기도 기본적으로 무거웠으니.

“그래요. 이게 올라가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 환자의 질환이 자가면역질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

수혁은 그 말을 하면서 화면을 넘겼다.

그러자 이상 소견이라고 표시되어 있던 검사 결과가 한곳에, 보기 좋게 모였다.

“다시 보면 이 환자는 범혈구 감소증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빈혈만 떼어 놓고 보면, 망상적혈구가 증가해 있고, LDH, 빌리루빈 등이 증가해 있죠. 이는 용혈성 빈혈, 즉 적혈구가 무언가에 의해 자꾸 깨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달 또한 이로 인한 결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아…….”

“동시에 ANA 양성 및 항 dsDNA이 있습니다. 예과생 수준에서 이를 이용한 추론은 어렵겠지만, 내과에 들어오시면 가능하게 될 텐데……. 하여간, 이걸 종합해서 보면 우선적으로 SLE, 즉 Systemic Lupus Erythematosus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전신 홍반성 루프스죠.”

“아……!”

그래, 루프스는 들어 봤을 터였다.

하여간에 젊은 여자에게 호발하는 자가면역질환의 거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이거 딱 그걸로 잡았으면……. 환자 죽었을 거야.’

[네, 호기에는 호전되다가, 죽었을 테죠.]

실제로 여기까지 오면 예과생 아니라 전문의들도 십중팔구는 아니, 99%는 SLE를 진단했을 터였다.

거의 모든 지표가 SLE를 가리키고 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거의’라는 단어가 그의 마음을 괴롭혀서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검사를 했고, 진단을 했습니다. 다음은 뭐죠?”

“치료입니다!”

“루프스의 치료는 뭘까요?”

“어……. 스테로이드!”

예과생들의 입에서조차 자신 있는 답이 튀어나왔다.

자가면역질환에서 스테로이드를 쓴다는 건 족보 중에서도 왕족이었으니까.

꽤 친숙한 이름이라 그 말이었다.

그 때문일까?

우리는 종종 스테로이드라는 약이 얼마나 무서운 약인지 잊는 듯했다.

‘안대훈이가 그날 뒤지게 혼났지?’

[네. 울었어요, 그놈.]

안대훈마저도 그랬다.

그러니 예과생들이 이러고 있는 건 절대로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중에라도 그러지 않도록 가르쳐야 할 일이지.

“네, 우리가 SLE를 확진한다면 스테로이드가 치료제가 됩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스테로이드를 이 환자에게 바로 쓸 수 있을까요?”

수혁이 일부러 표정을 굳히기도 했거니와 어째 이게 답이 아닌 거 같은 뉘앙스를 뿜뿜 하고 있지 않나.

해서 방금 신나서 떠들어 대던 이들을 포함해 다른 모든 이들 또한 입을 꾹 다물었다.

수혁은 그런 강의실을 돌아보면서, 잠시 기다렸다.

답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이 쌔함을 느끼길 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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