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화 이게 학생 강의? (3)
한편 예과 과 사무실 비서는 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여기…… 예과 아닌가?’
보통 과 사무실 비서는 계약직을 돌리는 편이지만.
태화는 업무 효율성을 위해 본과, 예과 돌아가면서 비서직을 맡도록 정직원을 뽑아 두었더랬다.
덕분에 이 비서도 짬이 꽤 있어서 예과 경험도 있고 본과 경험도 있었다.
‘근데 이런 문제를…… 내?’
본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문제였다.
누가 이런 짓을 하기는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현종이었다.
‘부자가 아주 쌍으로…….’
잠시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긴 했다.
‘내가 예과 다 합치면 그래도 거의 한 6년은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집중하는 건 처음 보네.’
의대 공부가 힘들다는 건 모두가 아는 주지의 사실이었다.
실제로 전교 1등 하던 친구들이 유급하고, 종래에는 퇴학 처리 당하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예과는 예외였다.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좀 바뀌어서 예전처럼 진짜 개판 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급도 가뭄에 콩 나듯 있는 곳인 데다가 배우는 내용도 임상과는 동떨어진, 말 그대로 준비하는 과목들이다 보니 학습 태도가 엉망이었다.
심지어 다들 죽도록 공부만 하다가 와서 그런가. 보상받는다는 기분이 있어서 그런가. 진짜 얘들이 전교 1등이었다고? 싶은 애들도 있었다.
‘하긴……. 나도 이게 좀…… 재밌긴 한데.’
한데 지금은 어떤가.
다들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도 그러고 있었다.
‘이게…… 이것이 강의력인가.’
사람을 홀리는 강의력.
사실 수혁의 장기는 이보다 수준이 좀 높은 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예과생이나 문외한이라 해도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가운데, 수혁이 입을 열었다.
그가 의도한 바대로 모두의 가슴이 서늘해져 있었다.
“스테로이드. 우리가 아주 흔하게 쓰는 이 약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약입니다. 우리의 면역력을 강제로 억제하는 약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SLE에서는 이 약에 더해 다른 면역 억제제를 쓰기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면역이 억제됩니다.”
당연한 답을 누군가 했다.
수혁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말을 이었다.
“네, 면역이 억제됩니다. 사실 자가면역질환이 맞다면, 이건 그리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치료의 과정이니까요. 나머지 부작용은 감수해야 할 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틀렸다면 그땐 어떻게 될까요?”
“어…….”
사람이 살다 보면 틀릴 수도 있지.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런 생각, 다들 한 번쯤 해 봤을 터였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는, 그중에서도 의사는 그래선 안 됐다.
“감염병이었다면 어찌 될까요? 이 환자는 순식간에 그 감염의 원인, 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그것에게 잡아먹힐 겁니다. 의사의 결정은 그런 겁니다. 환자의 삶이 좌지우지됩니다. 그중에서도 스테로이드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살 수 있던 환자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
죽인다.
환자를.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되었는데.
이 말은 오히려 예과생들에게 더 서늘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의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각자 마음에 품고 있던 뜻만은 더 순수하기에 그랬다.
적어도 그들의 꿈에 사람을 죽이는 의사는 설 자리가 없었다.
“자,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이 환자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치료를 합니까?”
그래서 그럴까.
답이 없었다.
아니, 숨소리조차 없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테로이드를 쓰려면 다른 가능성을 모두. 모두 소거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섣불리 약을 쓰기 전에 뒤로 돌아가 재차 검증을 해 봐야 합니다. 이 환자의 병이 정말 SLE가 맞는지.”
“아…….”
“의사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심지어 진단을 내리고 치료하는 와중에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래야 오진이었을 경우라도 돌아설 수 있죠. 그렇다면 진단을 내리기 전이라면 어째야 합니까. 정말로 의심을 쉬지 말아야 합니다. 교과서적인 증상을 보이고 있음에도 그러할진대, 이렇게 애매하다면 더더욱 그렇죠.”
“아.”
그렇구나.
의심해야만 하는구나.
예과생들에게는 사실 너무 먼 얘기이기는 했다.
교과서를 거의 신처럼 믿는 애들 아닌가.
‘이게 하나의 울림이 되기는 할 거야.’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뭐.’
[오늘 내과 의사를 꿈꾸게 된 애들이 한둘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수혁이 나타나서 너희가 믿는 신은 틀렸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수혁을 선망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고 있었다.
“자, 다시 환자를 봅시다. 우리는 이 환자의 증상과 자가면역 항체의 양성 소견을 보고 SLE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SLE의 진단 기준은 그렇지가 않죠. SLICC에서 2012년에 개정한 진단 기준에 따르면 17개의 진단 기준 중 최소한 4개에서 양성 소견을 보여야 하고, 11개의 임상 기준 중 반드시 하나 이상, 동시에 6개의 면역학적 기준 중에서도 하나를 포함해야 합니다. 우선 이 과정을 거쳐 봅시다.”
진단 기준.
모두가 이것에 의해 진단하는 줄 알겠지만.
임상 필드에서는 모두 적용하기가 사실 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아까와 같이 거의 전형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그랬다.
거의.
이 함정에 얼마나 많은 의사가 걸려 넘어졌고, 그로 인해 환자를 잃었나.
하여간 수혁은 그 생각을 하면서 화면을 넘겼다.
그 화면엔 SLE에 대한 진단 기준이 죽 떴다.
‘적어도 니들이 살면서 SLE를 놓치는 일은 없게 해 주마.’
내과 의사가 되면, SLE는 기본으로 봐야 하는 질환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건 당연했다.
하지만 환자가 어디 알아서 내과를 가던가?
증상에 따라 전혀 다른 과를 가는 경우도 있고, 그 과에서 판단을 잘못한 탓에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다.
수혁만 해도 그렇게 해서 치료 시기를 놓쳐 버린 환자를 벌써 몇이나 보았다.
“우선 증상부터 보죠. 이 사진은 많이 봤을 거예요. 양쪽 뺨에 생기는 나비 모양의 발진(Malar rash). 이 환자? 없죠. 두 번째로, 원반형 발진(Discoid rash), 없고. 비반흔성 탈모(Nonscarring alopecia)…… 없고. 구강 궤양(Oral ulcers) 없었죠? 다음으로는 두 군데 이상의 관절에서 부종, 삼출물이 있는 활액막염 또는 두 군데 이상 관절의 뻣뻣함과 최소 30분 지속되는 아침 강직이 있는 관절염. 없죠. 엑스레이에서 봤지만, 전형적인 흉막염(Pleurisy) 또는 심낭염(Pericarditis)도 없어요. 다른 이유가 없이 발생한 발작, 정신병증, 다발성 단일신경염도 없죠.”
임상 증상부터 하나하나 짚어 주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증상 중에는 맞아떨어지는 게 없었다.
“다만 용혈성 빈혈, 백혈구 감소증, 혈소판 감소증은 모두 있었습니다. 이렇게 임상 증상에서 3가지를 확인했습니다. 면역학적인 원인은 사실 여러분들 수준에서 보기는 어려우니, 아까 확인했던 것으로 넘어가죠. 즉 이렇게만 보면 어? 역시 맞나? 싶습니다만……. 이 진단 기준은 기존에 있던 진단 기준에서 초기에 놓치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기준이라는 걸 유념해야 합니다.”
진단 기준.
이렇게만 들으면 퍽 절대적으로 들릴 터였다.
이 기준에 들면 반드시 맞고, 아니면 반드시 아닐 거 같은.
하지만 이 기준도 결국,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임을 알아야 했다.
“때문에 전형적인 증상들……. 아까 앞에서 열거했던 8가지 증상이 없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불안하죠. 더욱이 이 환자는 CRP. 즉 급성 감염일 때 올라가는 지표가 올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요? SLE의 진단 기준이 이것 하나일까요?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허투루 해 놓지는 않았겠죠. 생검. 신장에 대한 검사를 해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기준에도 허점이 있음을 의사는 늘 의심해야 했다.
안대훈은 여기까지 왔지만, 기준에 대한 의심은 하지 못했고 섣불리 진단얼 내려 버리는 우를 범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일이었다.
이현종이 나중에 와서 아까 그게 그렇게 혼낼 일이었냐고 했을 정도로.
-대훈이는 더 가야죠. 걘 우리 센터 에이스가 될 몸인데.
거기서 수혁은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방 안에서 대훈이가 울고 있다는 걸 알면서 그랬다.
[그 후로 대훈이가 진짜 미친 듯이…… 미친 듯이 공부하던데요?]
‘잘된 일이지.’
안대훈은 마냥 혼내기만 해서는 절대 잘할 수 없는 놈이라는 걸 이미 다 파악한 지 오래 아니던가.
해서 좀 건드려 봤다.
수혁은 그때 일을 떠올리면서, 그러니까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와……. 이럴 때 웃으니까 개멋있네.’
‘그러니까……. 미쳤네.’
PPT 화면이 넘어갔다.
병리 사진이었다.
이걸 예과생들이 알아볼 수 있을까?
본과생들도 태반은 그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보면…… 적어도 SLE로 인한 신염 소견은 전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곧 SLE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뭘 의심해야 할까요?”
“아…….”
“자가면역질환은 아닙니다. 헌데 범혈구 감소증과 함께 자가면역 항체가 검출되었죠. 동시에 아까 말했던 CRP가 올라가 있습니다. 감염에서 올라간다고 했죠?”
“아……. 감염?”
“네, 감염을 의심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떤 감염을 의심해야 하나, 이것입니다.”
“아…….”
감염.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의 질환군으로 묶어 말하지만.
감염원만 해도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 곰팡이 등등 다양하지 않나.
그 말은 곧 이거 감염 질환인 거 아냐? 이 생각만으로 즐거워하기엔 너무 광범위한 질환군이라는 얘기였다.
“이제부터는 의사가 원래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많았냐의 싸움입니다. 여러분, 예과생들이라 더 그렇겠지만……. 공부하기 싫을 겁니다. 예, 압니다. 저도 그랬어요.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 겁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 두셔야 합니다.”
수혁은 진중한 얼굴이 되어 단상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 때문에 강의실 내에 있던 이들은 전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냥 강의 보조하러 들어왔던 비서까지도 그랬다.
“우리의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그 지식을 충분히 쌓지 않았다면, 환자를 살릴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여러분, 공부할 때 더 진심으로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지식은 누군가의 생명과 연관이 있어요.”
답은 없었다.
그저 멍하니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알 수 있었다.
바루다도.
[이거이거……. 너무 지나치게 불을 붙이는 기분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