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화 이게 학생 강의? (4)
우오오오오오오.
강의실의 분위기를 굳이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안에 앉아 있던 모두의 가슴에 불이 붙고 있었다.
너희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다!
의대생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말은, 당연하게도 수도 없이 들어 봤던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수혁인 데다가, 너희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을 지금까지 촘촘히 깔아 온 강의 뒤에 놓다 보니 분위기가 묘했다.
‘나도 의대 갈 걸 그랬나.’
심지어 비서는 물론이거니와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구경 왔던 다른 단과대 학생들까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적용해야 할 지식은…… 당연히 감염내과에 대한 지식입니다.”
수혁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아주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화면엔 어느새 커다란 감염내과학 교과서와 여러 논문들이 떠 있었다.
“감염병은 꽤 오랫동안 무시받아 온 질환입니다. 특히 한탄 바이러스나 쓰쓰가무시를 제외하면 치명적인 풍토병이랄 게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메인스트림에서 제외되어 왔죠. 심지어 대한민국은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위생 지수가 상당히 높은 곳이다 보니 전염병 등에 대한 위험이 현저히 낮은 곳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의사로 활동할 때가 되면 감염병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주목받게 될 것입니다.”
감염내과.
지금은 개발 도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과라고 보면 되었다.
아니면 질병관리본부와 같이 감염병을 다루는 기관 또는 NGO 단체나 WHO와 같은 단체에서 주목받는 분과이기도 했고.
하지만 감염내과학회에서는 그들의 운명을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진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관적으로 보다가 돌아서게 되었다.
“20세기 중후반까지의 인간 수명 연장에 대한 기여는 상하수도 시설 및 비누 등의 환경 위생과 더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의사도 인정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항생제와 항암제 그리고 만성 질환에 대한 진단율 및 약의 개발로 인해 21세기 이후로의 수명 연장에 대해서는 의학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볼 수 있죠.”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수명 연장이 대다수의 인간이 제명을 살고 죽을 수 있게 만드는 데 그쳤다면, 현대 의학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 인위적인 연장을 이루어 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비단 수혁만의 생각이 아니라 학회 전반에 걸쳐 점점 자리 잡고 있는 이론이었다.
아직은 그로 인한 드라마틱한 수명 연장 효과보다는, 오히려 부작용을 더 자주 접하고 있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간에, 근거는 근거이지 않겠나.
“여기서 감염 질환의 중요성이 크게 증가합니다. 원래 같았으면 죽었을 사람을 강제로 살게 만드는 행위로 인해, 특히 면역 저하자의 수명이 늘어나면서부터 기회감염의 가능성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아…….”
어느 순간 강의는 케이스 관련한 강의에서 의학 전반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와 있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열기는 여전했다.
옆에서 보는 게 아니라 그 강의 안에 갇혀 있어서 그랬다.
화면이 넘어가며 네 기사가 떴다.
“묵시록의 네 기사입니다. 들어 보신 분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흔히 이 네 기사 중 질병과 기근, 그리고 전쟁의 기사가 정복되었다고 말하죠. 각각의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 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의사니까 질병의 기사에만 국한해서 말해 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섣부른 판단입니다.”
정말로 저렇게 믿었던 때도 있었다.
아주 짧기는 했지만.
이제 인류에게 남은 묵시록의 적은 죽음의 기사 하나뿐이라는 말을, 영향력 있는 의사나 정치가들이 했던 때도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요즘 그따위 소리를 했다가는 무식하다는 소리 듣기 딱 좋았다.
“여기 영어 다들 잘하시죠? 글로벌 인재로 키워졌으니 그럴 겁니다. 말 그대로 지구는 하나로 묶여 가고 있어요. 좋은 일이지만……. 언제나 세상일엔 동전처럼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구에 비행기가 수도 없이 떠 있는 도식도와 함께 수혁의 말이 이어졌다.
옆에는 한 가지 도표도 떠 있었다.
“단 하루면 지구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입니다. 문제는 사람만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질환……. 그중에서도 바이러스나 세균도 갈 수 있다는 거죠. 그 때문에 보시면 우리가 팬데믹이라고 분류하는, 광범위한 전염병 사태의 발생이 점점 늘어 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은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에 발맞추어 대응법도 당연히 발전되기는 할 터였다.
우선적으로는 인수 공통 바이러스의 새로운 발호를 막기 위해 야생동물 섭취를 막아야 할 것이었다.
“하여간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고요. 이 환자의 경우엔…… 자가면역질환과 비슷한 코스를 보이는 감염병임을 확인했죠? 자,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환자에게 문진을 해 봐야 합니다. 감염병임을 의심한 상태에서 물어야 할 질문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기에 그렇습니다.”
다시 환자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감염병에 대해선 무엇을 물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별 소용은 없었다.
고민도 뭘 알아야 가치를 갖는 법이니.
하지만 이들이 학생들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아무 가치가 없는 행위는 또 아니었다.
추후에라도, 이러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은 열병처럼 남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테니까.
“감염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감염원입니다. 그 감염원을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은, 환자의 거주지, 직업, 여행지 등을 묻는 것이겠죠. 자, 환자의 집은 분당이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직업은 대학생이고요. 여기까지는 딱히 뭘 의심할 건덕지가 없죠. 하지만 더 물어보니,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친구 둘과 같이…… 중국 사천이라는 곳에요.”
보통 여행력을 물을 땐, 나라만 묻는 경우가 많았다.
한 국가는 대개 한가지 지리와 기후를 가지니까.
하지만 중국이나 미국은 그래서는 안 되었다.
나라가 넓다 보니 지역에 따라 너무도 천차만별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사천입니다. 중국의 서쪽, 삼국지의 촉나라에 해당하는 이 지역엔 풍토병이 아주 많습니다. 그 풍토병 중 현재 환자와 관련이 있는 질환이 무엇일까요?”
사천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 학생들도 있을 터였다.
거기 무슨 풍토병이 있는지야 당연히 다들 몰랐고.
근데 그중에 관련되어 있는 질환?
모르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도 뭘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해서 바로 답을 알려 주었다.
“바로 리슈마니아입니다. 리슈만 편모충이라고도 합니다. 즉 기생충이죠. 사천에서 서식하는 샌드 플라이에 물리게 되면 감염됩니다. 물론 감염이 된다고 해서 다 환자와 같은 증상을 보이게 되는 건 아닙니다. 대개는 경미하게 앓고 넘어갑니다만……. 드물게 이렇게 SLE를 흉내 내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자, 그럼 다시 질문하죠. 우리가 아까 스테로이드를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기생충은 뭐가 되었건 간에 감염병이지 않나.
스테로이드와 같은 본격적인 면역 억제제를 쓰게 되면, 그 순간부터 기생충이 그 사람을 갉아먹기 시작할 터였다.
“이건 중국 상해에 있는 병원에서 보고한 케이스 리포트입니다. 우리 환자와 거의 흡사한 경과를 밟은 환자죠. 차이가 있다면, 리슈마니아를 사후에 진단했다는 점입니다. 환자는 스테로이드를 쓰고 난 직후 증상 호전을 보였으나, 면역 억제제를 1년 이상 사용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감염이 진행되어 사망했습니다. 당시 환자의 나이는 고작해야 24살입니다.”
당연하게도 환자는 죽었다.
중간에라도 ‘어…… 이거 혹시 SLE가 아닌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해당 의료진들은 자신들의 진단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당시 환자에 있어선 독약과도 같았을 면역 억제제를 들이부었다.
왜 그랬을까.
“기생충은 현대 의학에 있어서 굉장히 무시당하는 질환입니다. 약 하나 또는 두 개로 모조리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기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감염자가 극히 드물기도 할 것이고요. 그러나 그것이 의사가 몰라도 된다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 이 환자는 이제 리슈마니아를 의심하게 되었고, 골수 생검에서 리슈마니아 편모충을 확인했습니다. 치료는 간단합니다. 예후도 좋겠죠.”
마지막 화면엔 두 보고서가 나란히 떠 있었다.
제목은 같았다.
SLE를 모방한 내장 리슈마니아증 감염.
차이가 있다면, 부제에 있었다.
전자엔 사후 보고라 쓰여 있었고, 후자엔 성공적인 치료 사례라 쓰여 있었다.
“결국, 이 케이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추론 과정이 필요했고, 또 동시에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이 필요했으며 동시에 의사의 드넓은 배경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케이스가 흔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알려져 있어요.”
수혁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필드에서, 특히 통합진료센터라는 깔때기 같은 센터에서 일하며 많은 케이스를 보게 되면서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 희귀하다는 질환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단지 우리가 지금까지 놓쳐 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이 케이스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을 갖추게 된다면, 생각보다는 자주 이런 케이스를 접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겠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직업은 학생이니 공부하는 게 일이죠. 열심히 하실 생각이 좀 드셨습니까?”
수혁의 말에 당장 답이 들려오진 않았다.
애들이 집중력이 떨어져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압도당해 있었다.
‘아니…… 저기서 어떻게 갑자기 기생충으로…….’
‘저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공부를 대체 얼마나 하시길래…….’
당연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교수도 수혁에게 비하면 한참 모자랄 텐데.
이들은 학생이지 않나.
그저 어디쯤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꿈을 꾸게 되는 이들도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지 않나.
“네!”
“저도 이수혁 교수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해서 시건방진 소리들을 해 대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간다고 해도…… 다 이렇게 되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원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의사보다는 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겠지.’
동시에 수혁은 속으로 더 시건방진 생각을 떠올렸다.
그 덕분일까?
얼굴엔 아주 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충분히 잘난 척을 하고 난 후에 떠올리는, 그런 종류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