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12화 (812/1,303)

812화 연수 강좌도 좀 해 줘요 (1)

“대체 뭘 어쨌길래…… 반응이 이래……?”

강의 평가.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지 않나.

심지어 수혁이 맡은 강의는 정규 강의라기보다는 교양 강의였다.

예과, 그중에서도 1학년이다 보니 애들 견문 넓혀 주자는 식으로 만들어 둔 자리에 낑겨 들어간 강의였다고 보면 되었다.

-이수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내과 의사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더 오시면 안 될까요? 저는 제가 공부 좋아하는 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한데 강의 평가가 너무 격렬했다.

‘아니……. 왜 그리고…… 평가지가 애들 정원보다 많은 건데……?’

듣자니 비서도 놀라서 급히 복사용지를 돌렸다고 했다.

대체 왜 그랬나 했더니만, 평가지 쌓인 게 정원 두 배가 넘었다.

-딱 기다리십쇼. 반수 해서 의대 갑니다.

-난 왜 법대생이 이걸 듣고 의대를 꿈꾸게 되었나…….

예과 2학년들이 와서 들었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미친놈들이야……?’

법대생이 왜 의대를 와.

태화 법대면 어? 우리나라에서 거의 뭐 장원 급제 감 아닌가?

심지어 의대는 최근 들어 조금씩 하향 곡선을 타고 있지 않나.

수가니 뭐니 하는 문제도 있지만, 다 떠나서 바야흐로 제2의 대벤처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공대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 말이었다.

수혁처럼 그냥 의학에 미친 사람이 아니라 애 때문에 최근 트렌드를 읽고 있는 김문재는 그냥 어이가 없었다.

-집에 가서 목욕재계 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제가 왜 의대에 왔는지 알았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신의 뜻……. 수멘…….

그중에 제일 어이 없던 평가는 이거였다.

“왜 종교적으로 푸는 거야, 이걸?”

김문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다가, 이내 다른 강의 평가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사람이다 보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자기 강의 평가였다.

-지겨워요.

-제발 아들 자랑은 좀 그만하셨으면…….

일단 객관식으로 점수 내는 거 말고 주관식으로 써 준 애들 자체가 적었다.

엄청 적은데, 그 와중에 칭찬하는 애는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누가 굳이 칭찬하러 자기 시간을 쓰겠나.

욕이라도 한 사발 하기 위함이라면 몰라도.

가뜩이나 시험공부 하느라 바빠 죽겠는 의대생들에게 주관식 칭찬을 바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강의 평가가 이렇게 박한 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허…….’

근데 그게 아니었네?

강의를 진짜 잘하면 이렇게까지 하네?

다시 보니까 마지막에 강의 평가 쓴 새끼…… 특례 입학자인 데다가 사유가 아버지 선교던데.

선교자 자녀가 개종까지 했네?

그것도 듣도 보도 못한 수혁교로?

부우웅.

그때 김문재의 전화가 울렸다.

황당해하고 있던 참이라 당장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내려다보았는데, 그 덕인지 뭔지는 몰라도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우창윤 교수…….’

아선 병원 기조실장 우창윤.

이 새끼가 왜 감히 대 태화 의료원 내과 과장 김문재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아니, 아니지. 아……. 이현종 교수님 때문에 나까지 이러네.’

김문재는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아, 학술이사님.”

“네네. 그……. 일전에 부탁드렸던 거는 혹시…….”

“아…… 그건. 그보다요. 제가 강의 부탁드렸다고 말했었나요?”

“아, 했었죠. 학생 강의. 근데 예과 교양 강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병원 대 병원이라면야 당연히 라이벌 구도겠지만.

사실상 다 같은 내과 의사 아닌가.

같은 학회 사람들이다, 이 말이었다.

학회 자체는 쇠락해 가고 있다곤 해도, 전공의 교육이나 전문의 시험 등과 같은 공식적인 ‘업무’에 한해서는 역시 내과 학회가 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김문재는 감투 욕심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이쪽저쪽 연을 늘어놓은 참이었다.

“아, 네. 강의 평가 오늘 전달받았는데요……. 이게 뭔……. 대체 어떻게 강의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왜요? 욕이라도 쓰여 있어요?”

우창윤은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한번 물어봤다.

혹시 모르니까.

‘이수혁 교수……. 강의력이야 자자하지. 하지만 의사가 아닌 학생들 대상으로 하기엔 너무 어렵지 않나? 케이스 들고 갔다고 하던데.’

자기 딸이 내과에 있지 않나.

우하윤.

심지어 수혁교의 핵심 멤버였다.

그 덕에 이리저리 주워들을 수 있는 게 많았다.

‘뭔……. 내장 리슈마니아증을 들고 갔다던데.’

어디 학회 부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예과에 그걸 들고 가?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봐야 했다.

물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이수혁이니까.

그놈이 예과생일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 보면 난데없이 황당해졌다.

‘존나 답답했겠지…….’

그 대단한 천재가 인턴이 끝날 때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

고아이기에 돈 버느라 그러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건 다 지겹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이요? 거의 숭배예요. 이수혁 교수 나중에 은퇴하고 정계 쪽으로 빠지면 대통령 할 거 같은데요.”

“숭배요?”

“네. 미쳤어요. 타과생들도 와서 이거 보고 의대 온다고……. 근데 걔가 법대예요.”

“거기 태화 대학교 아닙니까?”

“네.”

“미쳤구만.”

태화 법대를 버리고 의대를 가겠다고?

그쪽은 장원 급제 아닌가?

물론 의사도 뭐 충분히 좋은 직업이긴 하지만.

태화 법대 나와서 판검사 하는 거에 비하면……?

“하여간.”

우창윤은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남의 인생까지 신경 쓸 만큼 한가로운 생이 아니지 않나.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아선 병원 병원장.

내과 학회장.

그리고 나중엔…….

“강의력은 애초부터 검증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이번에 학생 강의 수락할 때 별로 뭐 싫어하는 거 같지 않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게 좀 미묘한데요.”

“미묘해……?”

뭔 소리야, 그게.

지금 학회장이 이수혁, 이현종 영입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정작 이용당하고 괴롭힌 당한 나는 뭐 한 게 없지 않나.

그래서 딱 땡겨 쓸라고 하니까 미묘하다니?

“처음엔 분명 엄청 꺼려 했어요. 떼잉이라고 한 거 같기도 하고.”

“이수혁 교수 나이가 몇 살인데 떼잉이라는 말을 해요?”

“저도 뭐 착각인가 하고 있습니다만……. 하여간 영 떨떠름한 반응이었어요. 그렇잖습니까? 원래 학생 강의라는 게 딱히 뭐…….”

“그건 그런데……. 정작 갈 때는 신나서 갔다면서요.”

“그 후에 제가 이제…… 그 강의 요청한 자료를 보여 줬어요.”

“요청? 누가 요청을 해.”

“학생들이요. 막말로 요새 이수혁 교수만큼 핫한 사람이 또 어딨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죠.”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태화 쪽에서 약을 빨았나, 하루가 멀다 하고 이수혁 교수 소식을 내고 있었다.

심지어 혀기후니인지 나발인지 하는 유튜브 채널 또한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처음엔 일부 레지던트들과 환자들만 보던 채널이었는데 이제는 의학과 별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들어와서 댓글을 달고 있었다.

“학생들이 이수혁 교수 강의를 원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눈이 돌아가……. 아니, 이건 말실수고. 하여간 뭐. 네, 그렇게 갑자기 하게 됐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이건 제가 알아서 하죠.”

“네? 아니, 제가 해도 되는데요?”

“아뇨, 충분히 도와주셨어요. 제가 기억하겠습니다.”

“아, 네네. 그럼…….”

눈이 돌아갔다.

말실수라고 했지만 그게 아닐 거라는 걸 우창윤은 알고 있었다.

“야, 우리 2년 차 애들 다 어딨어.”

“뿔뿔이…… 뿔뿔이 흩어져 있죠.”

우창윤의 말에 1년 차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공손한 얼굴로 대꾸했다.

대낮에 대학 병원 2년 차들이 모여 있을 일이 어딨단 말인가.

“아, 그렇지. 알았어. 그럼 단체 문자 좀 보내자.”

“아……. 네.”

하여간 우창윤은 단체 문자로 이수혁 교수의 연수 강좌 강의를 원하는지 물었다.

답은 알고 있었다.

‘당연히 원하겠지…….’

아직도 눈만 감으면 선명하게 떠올랐다.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레지던트들을 끌고 다니던 수혁의 모습이.

강의가 끝났을 때 위대하신 영도자를 맞이하는 것처럼 격렬히 박수를 치던 레지던트들이.

‘난 왜 그렇게 못 하지.’

우창윤은 잠시 회의감에 젖은 채 서 있다가,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 답문을 확인했다.

<너무 원합니다.>

<제발.>

<오신다고요? 그분이?>

<수멘수멘수멘.>

그 결과, 아선에도 제정신이 아닌 애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캡처하고는 수혁에게 보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네, 우창윤 교수님. 어쩐 일이세요?”

“감히 대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에게 아선의 개가 전화를 걸어?”

센터에 있는지 이현종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살짝 멘탈이 흔들렸지만, 우창윤은 견뎌 냈다.

이현종을 하루 이틀 겪은 게 아니라 그랬다.

“네네. 제가 아직 학술이사라서요. 승계받아서.”

“아, 네. 들었어요.”

“네. 그…… 전공의 연수 강좌에서 이수혁 교수님 강의를 한번 하면 어떻겠나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말입니다.”

“떼잉…….”

“네?”

“아뇨, 말씀하세요.”

하지만 이수혁의 떼잉은 좀 강력해서, 우창윤도 잠시 심기일전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뭔가 푸드득 떨어져서 보니 머리카락이었다.

‘신이여…….’

왜 이들 부자는 자꾸 제 머리칼을 탐하나이까.

“그……. 전공의들 설문 조사를 해 봤는데. 지금 문자 갔을 겁니다.”

“문자요?”

“네. 반응이 아주 격렬합니다.”

“음……. 아, 보이네요. 어……. 허허허.”

하지만 우창윤은 풍성한 평교수가 되기보다는 대머리 원장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야욕을 위해서라면 머리칼쯤이야 뭐.

다행히 반응을 보이니 이수혁이 껄껄 웃었다.

“어떻습니까? 귀한 시간 내주시면……. 우리 전국의 전공의들이 참……. 많이 감사해할 거 같은데요.”

“뭐……. 할 수 없죠. 국민의 뜻이…… 아니, 전공의들의 뜻이 그렇다면 마지못해 따르겠습니다.”

‘마지못해’라는 말을 하면서 이렇게 톤이 올라갈 수가 있는 건가? 싶었지만.

말을 이렇게 하는데 뭐 어쩌겠나.

“네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네, 뭐. 억지로 시간 내보겠습니다.”

“네네. 그 범위는…….”

“제가 알잘딱깔센 해 보겠습니다.”

“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강의 가서 애들한테 배웠습니다.”

“아……. 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참……. 보기 좋네요.”

“이런 모습이 애들한테 어필하는 거 같기도 하죠?”

“네?”

“아니, 아닙니다.”

우창윤은 수혁과의 대화를 끝내고, 뒤를 돌아보았다.

레지던트가 서 있었다.

흠.

나도 좀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딱잘센깔?”

“네?”

“아니, 아닐세.”

“뭐라고…….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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