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화 연수 강좌도 좀 해 줘요 (2)
우창윤이 정신이 나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갑자기 외계어를 중얼중얼하다가, 그걸 지적한 레지던트의 어깨를 밀치고 달아났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러려고?”
“그러니까 말이다. 내 앞이라고 우리 애들이 아선을 너무 죽이네, 하하.”
수혁과 이현종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물론 아선은 타도해야 할 대상이기는 했다.
그중에서도 우창윤은 주요 수괴에 해당하는 놈이었다.
무엇보다 토요 진료를 시작한 장본인이지 않나.
언제나 그렇듯, 한국 사회는 치킨 게임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태화에서도 몇몇 과는 토요 진료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우창윤 교수님 너무 미워하지 마요. 욕심 많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학자예요, 학자.”
“그래, 수혁이 말이 맞다. 좀 모자란 새끼긴 한데, 그래도 선은 있어.”
그 때문에 악의 섞인 소문이 돌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들어 보니 우창윤이 정말 이상한 단어를 내뱉고 돌아다닌다던데, 그래서야 어디 교수가 될 수 있었겠나.
“아무튼, 환자 봐야지.”
“그래. 환자 봐야지. 오늘 뭐 의뢰 온 건 없나?”
물론 우창윤 변호에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미쳤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미쳤으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지 않겠나.
뭐가 되었건 우창윤은 젊은 교수였고, 그 혈기인지 뭔지로 아선을 드라이브하고 있었으니.
둘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센터 내에 레지던트들을 불렀다.
아직 3년 차들이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들어가진 않은 상황이어서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네, 저…….”
“어. 1번 선생 말해 봐.”
이제 통합진료센터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도 벌써 반년이 훌쩍 넘은 상황 아닌가.
수혁이야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환자 보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이현종은 나름 내과 과장도 하고 심장내과장도 하고 심혈관 중재시술실 센터장도 하고 원장까지 한 사람이다 보니 머리 돌아가는 게 좀 달랐다.
계속해서 시스템을 매만졌는데, 그 결과 센터 내에 배치된 8개의 전화기 앞에 레지던트들이 주르륵 앉아 각기 번호마다 배정된 병원들로 전화를 걸어 환자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거나 또는 의뢰를 받았다.
“칠성 병원 소아과에서 온 의뢰입니다.”
“오, 칠성 병원.”
이현종은 대번에 기껍단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안 했지만, 수혁 또한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현종의 개가 되어 버린 오성흠이 전심전력을 다 해 케이스를 보내 주고 있었으니.
게다가 칠성은 그들의 입장을 고려해서인지 아무 케이스나 선정해서 보내지도 않았다.
‘병신들이……. 아선이랑 이런 걸로 자존심 싸움한다고 하던데……?’
여기저기 프락치를 심어 둔 이현종이지 않나.
칠성과 아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는데, 둘 다 케이스를 보내고 수혁이나 이현종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로 나름대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예컨대 오늘 칠성에서 보낸 건 너무 쉽다고 하면 아선에서 좋아하고, 아선에서 보낸 게 너무 쉽다고 하면 칠성에서 좋아하는 식이었다.
‘어떻게든 자기들이 해결할 노력을 기울이셔야지, 왜…….’
수혁도 아빠에게 들어 그런 이상한 싸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싸움으로 인해 통합진료센터에는 양질의 케이스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으니까.
요새는 앞으로도 지금만 같았으면 싶었다.
어제도 어려운 케이스를 하나 가득 받지 않았나.
명의 병이 도지다 못해 골수에까지 침범해 버린 수혁과 이현종에게는 천국 그 자체였다.
“전신성 자가염증성 질환(SAID)으로 진단된 4세 여아인데……. 프로토콜에 맞춰 치료하고 있음에도 재발이 일어나, 진단 검증을 위해 의뢰 드린다고 합니다.”
하여간 레지던트는 희희낙락하는 이현종과 이수혁을 보며 아까 들어왔던 의뢰를 읊었다.
말이 아까지, 실은 거의 방금이라 대사를 딱히 외울 필요도 없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전신성 자가염증성 질환이라는 진단명이었다.
‘뭔데 이게…….’
자가면역질환이라면 참 많이 들어 본 단어일 텐데.
글씨 몇 개 바뀌었다고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는 단어가 되고야 말았다.
소아과 질환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 두 천재 새끼들 아니, 교수들도 몰라야 할 텐데.
“전신성 자가염증성 질환(SAID)……. 그거 진단 내리기 어려운 건데. 우리 기자가 그거 때문에 골머리 썩는 걸 봤지.”
“네, 쉽지 않은 질환이죠. 근데 지금 말이……. 그게 아닌 거 같다는 거죠?”
“어.”
“감이 딱 오는데.”
“그러니까 말이다.”
“부르죠. 바로 오시라고 해 줘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단명을 받아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는 군침이 돈다는 듯 혀를 내밀기까지 했다.
실제로 군침이 돌아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입술이 말라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간 겪어 온 바를 떠올려 보면, 이건 100%였다.
“아, 네.”
“그럼 2번.”
그렇게 2번부터 6번까지 노티가 쭉 이어졌다.
어차피 의뢰가 들어온 환자는 다 받아 주기 때문에 형식적인 노티이긴 했다.
둘에게는 별거 아닌 케이스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뭐가 되었건 의뢰를 한 입장에서는 모르니까 한 거 아니겠나.
그대로 남겨 뒀다가 그리 어렵지도 않은 케이스였는데 잘못되는 걸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수혁과 이현종 둘의 생각이었다.
“그럼 총 10명인가.”
“와……. 오늘도 병실 넘치네요?”
문제는 그런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이래 병실이 단 한 번도 여유 있어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센터 내 병실 중 2인실을 3인실로 개조해서 어찌어찌 버티고는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곧 다른 병동 병실도 침범해야 하게 생겼다.
태화 의료원이 사정이 좀 어려운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 태화 의료원은 압도적인 국내 1등이었다.
슬금슬금 뒤로 밀리고 있다가 통합진료센터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서 쭉 치고 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두 자리 정도야 뭐. 김문재만 갈아도 나오지.”
“하긴, 그건 그래요.”
물론 이 둘은 아직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이현종은 세상 대부분의 일은 지랄발광하면 해결된다는 주의였고, 수혁은 그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이었다.
김문재 앞에서 드러누웠는데 안 된다?
그럼 신현태가 이현종 누운 모습을 보게 될 터였다.
두두두.
그때 누군가 센터 안으로 들어왔다.
“이……. 이……!”
신현태였다.
“오, 웬일?”
“오, 웬일? 웬일? 오늘도 열 명 넘게 불렀다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설마……. 여기?”
눈을 세모나게 뜬 신현태를 앞에 두고, 이현종은 주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의 등짝을 날렸다.
이현종은 잠시 반응을 하지 못했다.
“?”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눈을 끔뻑일 따름이었다.
“내가 원장이고 여기 태화 의료원인데 보고받는 게 당연하지!”
“어……? 여기 내 센터…….”
“그 센터가 내 밑에 있는 센터라고!”
“어……?”
“열 명씩 전원을 받으려면 병실 확인하라고! 어제 보고받기로 병실 5개밖에 없다고 했잖아!”
“아……. 맞네. 우리 병실이 5개밖에 없네.”
“이런 미친…….”
신현태는 태평해 보이는 이현종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따라온 기조실장 김원규도 한숨을 쉬었다.
병실 부족은 심각한 문제이지 않나.
이 때문에 입원 지연되어서 사람이라도 죽으면 진짜 큰일이었다.
특히 응급실이나 외래 통해서 온 환자가 아니라 전원 온 환자라면 더 그랬다.
거기선 멀쩡히 입원해서 치료받다가 온 사람이니까.
‘나한테 짬…… 때리겠지……?’
하지만 원장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하냐?
그건 또 아니었다.
여기저기 전화해서 아쉬운 소리 해야 하는데, 신현태가 그걸 하겠나.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아마 이것도 이현종 문제가 아니었다면 오지도 않았을 터였다.
“김원규 교수님.”
“네.”
당연하게도 김원규가 뒤집어썼다.
“미안한데, 부탁 좀 합시다. 여기 아마 벌써 중등도 정리 다 해 놨을 거예요. 어려운 케이스는 센터로 아닌 케이스는 밖으로…….”
“네, 뭐.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요.”
그냥 뒤집어쓰는 건 좀 억울해서 말에 가시를 섞어 봤다.
“그럼 잘하겠네.”
“아, 네.”
아무 소용 없었다.
신현태가 이현종과 수혁 때문에 워낙에 멘탈이 강화된 탓이었다.
이 정도 가시는 뼈째로 씹어서 꼴딱 넘겨 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환자 보러 가?”
신현태는 그사이에 소화라도 시켰나 개운한 얼굴이 되더니 갑자기 한가로이 말을 던졌다.
이쯤 되면 천하의 이현종이라 해도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어……. 칠성은 가까우니까 금방 오긴 할 거야. 근데 왜. 너 여기 화내러 온 거 아니냐?”
“형한테는 화내러 온 건데, 수혁이랑은 놀러 온 건데?”
“놀아? 병원에서?”
“같이 환자 보자 이거지. 수혁아, 가는 길에 카페인에 좀 적셔 볼까? 칠성 소아과에서 오는 거면 어려운 케이스일 거 같은데.”
“잠깐. 소아과인 건 어떻게 알았어.”
“그게 중요해? 커피 마시는 게 중요하지. 내가 오는 길에 벌써 카페에 개인적으로 구한 원두 맡겨 놔서 지금쯤 내리고 있을 거야.”
이현종이야 원장 시절도 야인처럼 보냈지만.
신현태는 여기저기 발을 뻗어 인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런저런 사업하는 이들도 있어 기깔나는 선물들이 들어왔는데, 그중 수혁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건 의외로 몇 되지 않았다.
‘먹을 거…….’
식충인가 싶을 정도로 먹을 거에만 유효한 반응을 하지 않던가.
상대가 수혁이 아니었다면 진짜 한심하다 싶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쩌겠나 수혁인데.
“같이 먹을 초콜릿도 가져왔어. 생초콜릿인데, 이건 증정용이래. 카페인에 당 조합. 어떠니.”
확실히 신현태가 날린 원투는 대단했다.
정확히 말하면 수혁이 아니라 바루다에게.
[수혀어어어어어어억!]
‘아니……. 너도 이제 좋은 거 어지간히 먹지 않았어?’
[지랄 마십쇼. 병원에만 있는데 먹기는 뭘 먹어.]
‘아니, 파인 다이닝을 매일 처먹을 수는 없잖아. 달에 한 번은 먹는데…….’
[하여간에 갑시다. 먹고 응급실. 콜?]
‘뭐……. 나쁠 건 없지.’
물론 수혁에게도 어필이 되긴 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수혁의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어린 시절 가장 한이 되었던 것은 역시나 먹을 것에 있었다.
‘뭐……. 얼마나 포한이 됐으면 그렇겠어.’
사려 깊은 신현태는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런 수혁을 더 이해하고 있었다.
“네, 가죠.”
“그래. 가자. 내가 아까 한번 혼자 내려 봤는데. 알지? 삼촌 손 똥손인 거? 근데도 맛있더라. 원두가 깡패야.”
“오…….”
“게다가 초콜릿은……. 알지? 삼촌 단 거 싫어하는 거? 근데도 맛있더라. 재료가 깡패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