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15화 (815/1,303)

815화 이건 너무 어렵잖아요 (2)

“흐음.”

수혁은 아이와 보호자를 우선 병실에 안내하고는 센터 내에 비치된 회의실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안에는 당연하다는 듯 신현태, 이현종 그리고 안대훈과 다른 레지던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들 그저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입을 연 사람은 이현종뿐이었다.

“기자한테 말해 볼까?”

“아, 아뇨. 아직.”

“응, 그래.”

별로 쓸 데 있는 말은 아니었다.

수혁의 말에 다시금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물론 수혁만은 조용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이후로 2주 간격으로……. 39도 가까이 발열이 있었다고 했지.’

[네. 이건 전신성 자가염증성 질환(SAID)에 또 합당한 소견입니다.]

‘그렇지. 음.’

전신성 자가염증성 질환(SAID).

재발성 염증, 발열, 피부 발진, 관절염, 장막염 및 장기 침범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지 않나.

사실 어거지로 생각해 보면, 혈뇨 또한 장기 침범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신장염으로 인한 것이라 여겨볼 수는 있었다.

그러니, 이 환자에게서 아직 다른 질환을 떠올리는 건 무리란 얘기였다.

‘하지만……. 약이 듣지 않는 건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데…….’

[네. 전신성 자가염증성 질환(SAID)은 아마 아닐 겁니다.]

‘문제는 뭐냐고, 그럼.’

[아직 모르죠.]

문제가 있다면, 다른 질환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가설이 아무리 그럴싸하면 뭐 한단 말인가.

현상이 그걸 부정하는데.

그렇다면 의료진은 반드시 다른 걸 의심해야만 했다.

칠성에서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다만 다른 질환이 뭔지 몰랐을 뿐.

‘공을 여기다 던졌다, 이건데…….’

[어렵네요.]

지금까지는 어려운 환자가 와도 신나기만 했다.

다른 곳에서 의뢰했다는 사실에 그저 기뻐하기만 했다.

그때는 첫날 거의 뭐겠구나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다.

다른 병원들이 다 병신도 아닌데 어찌 매번 보내자마자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제아무리 수혁이나 이현종이 천재라 해도 매번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애초에 예정되어 있던 난관이라는 얘기였다.

‘하여간……. 그러다 궤양성 피부 병변이 발생했다, 이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이것도 사실 특징이라고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거란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수혁의 미간에 주름이 팼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수혁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또 점수도 따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봉봉. 이거 보면 뭐 생각나?>

<아직 잘 모르겠는데……?>

이현종은 수혁의 말도 어기고 이기자 교수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아까 몰래 찍어 둔 사진과 보호자와의 문답까지 해서 싹 보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수혁이나 나머지가 짓고 있는 표정과 그리 다르지 못했다.

말 그대로 여기까지만 해서는 칠성 병원에서 내린 판단이 합당해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데…….’

이현종은 더더욱 인상을 썼다.

칠성 놈들 아닌가.

박국진이 아는 게 없어서 일단 덮어 두고는 있지만.

수혁의 다리를 다치게 한 사고, 그 사고의 주범이 칠성임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정황상 증거가 차고 넘쳐서 그랬다.

그런 나쁜 놈들이 실력이 괜찮아?

물론 소아과는 연관이 없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그래도 인정하기 싫었다.

‘대사성 질환도…… 아니고.’

[네, 검사 싹 긁었던데요?]

‘응. 진짜 자비 없이 긁었더라.’

[걍 다 돌렸는데 음성입니다.]

‘응. 하……. 씨. 그러니까 대사성 질환은 진짜 아니라고 단언해도 돼.’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하여간 수혁은 모두의 침묵 속에서도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일단 칠성에서 진행한 검사 및 진료 그리고 아까 환자 보호자와의 문답을 토대로 바루다와의 문답을 진행했다.

‘자가면역질환도……. 이후 진행한 모든 피부 병변 검사에서 다핵성 과립구 침윤 외에는 관찰된 게 없었지?’

[네. 그 외에 다른 자가면역질환임을 증명할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야.’

[네. 이상한 일입니다.]

다핵성 과립구의 침윤은 확실히 자가면역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었다.

하지만 그냥 염증 소견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며, 자가면역질환이려면 반드시 다른 자가면역질환 지표와 동반이 되어야만 했다.

한데 이 아이는 그렇지가 않았다.

자가면역질환의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모양은 그냥 외상에 가깝지 않나?’

[네, 단순히 방치된 찰과상으로 인한 궤양에서……. 음.]

‘음…….’

칠성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보냈다.

무려 골수 검사까지 했으니까.

저 어린애에게 이걸 동의를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지 않나?

‘그것도 음성이었어.’

[모든 검사가 음성이군요.]

‘흠.’

[음.]

수혁은 왜인지 모르게 아까 보았던 아이 엄마를 떠올리고 있었다.

수척해 보일지언정 단단해 보이던 그 얼굴.

-힘내십쇼……. 괜찮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현종과 신현태의 위로에 미소 짓던 그 얼굴.

그리고 모든 검사에서 음성을 보이는 아이.

동시에 방치된 듯 보이는 찰과상을 앓고 있는 아이.

‘설마…….’

[그렇게 의심할 만한 정황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존재죠.]

상상만으로도 꺼림칙해지는 무엇 아닌가.

앞에서 그토록 아이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엄마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바루다가 말한 것처럼 의사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존재였다.

또 이게 얼토당토않은 의심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뮌하우젠 증후군은…….’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을 아프게 하는 질환이죠.]

‘그리고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관심을 끌기 위해 남을…… 주로는 아이를 아프게 하는 질환이죠.]

수혁은 바루다의 말과 함께 병동을 돌아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저 여상한 병동으로 보였던 곳이 뭔가 어두워 보였다.

‘말은 하지 말자.’

[아, 네.]

어두운 의심이었다.

이현종이나 신현태 또는 안대훈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다른 레지던트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의심은 언제고 틀릴 가능성이 있지 않나.

레지던트들에게 그런 의심을 품게 하는 건 교수로서 할 짓이 아닌 거 같았다.

“일단…… 더 보죠.”

해서 수혁은 우선 회의실에서의 모임을 해산시켰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의견이 있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수혁조차 난관에 부딪힌 케이스이니만큼, 그 누구도 이에 대해 토를 달거나 하진 못했다.

어차피 아까 전체 회진도 돌았겠다, 레지던트들은 옳다구나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남은 것은 신현태, 이현종 그리고 안대훈이었다.

그들은 수혁의 표정에서 고민의 흔적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수혁아. 무슨 생각한 거야?”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신현태였다.

초콜릿을 내밀면서여서, 효과는 확실했다.

수혁은 그 초콜릿을 입에 넣음과 함께 올라가는 당에 의해 겨우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애들한테 할 얘기는 아니라서요.”

“음. 우리한테는 할 수 있는 얘기구나.”

“네. 아빠, 삼촌. 그리고 대훈이는…… 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으흑……. 불초…….”

“너 나갈래?”

“아뇨. 아닙니다.”

안대훈이 자세를 바로 하고 나서, 수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아시죠?”

“아.”

“음.”

“으음.”

예상대로 이 셋은 다 알고 있었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 뭔지를.

또한 수혁이 왜 그걸 떠올렸는지도 바로 알겠단 얼굴들이었다.

“검사 소견이 다 맞지 않아서 그런 거지?”

“네. 그리고…….”

“대화 때 엄마 반응?”

“네. 느끼셨어요?”

“아니, 아까는 그냥……. 원래 애기 엄마들은 아기 아픈 거 공감해 주면 좋아하니까. 근데 이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흠.”

이현종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신현태 또한 그랬다.

이현종보다는 더 격한 반응이었다.

이현종은 다 커서 이수혁이라는 아들을 입양함으로써 아빠가 된 사람이지만, 신현태는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걸 보아 온 아빠이지 않나.

‘자기 애를 고통에 빠뜨림으로써……. 관심을 획득하고 그로 인한 만족을 느낀다…….’

아동 학대가 있다는 건 명약관화한 현상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보게 되지 않던가.

신현태는 감염 쪽이라 그나마 적은 편이라지만 그래도 아주 외면하고 살 수는 없었다.

정말이지 끔찍한 케이스가 굉장히 많았더랬다.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악랄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지금 이 회의실에서 논의하고 있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일 터였다.

남들에게는 아이를 누구보다 걱정하는 헌신적인 엄마로 보이지만, 실제 아이에게는 악마 그 자체인 엄마란 얘기였으니.

“확실히 이건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될 거 같습니다.”

두 아빠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동안 커튼까지 쳐 버린 안대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수혁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래서 이렇게만 있을 때 말한 것이기도 하고.

문제가 있다면 과연 어떤 식으로 진료를 해야 하는가였다.

“우선…… 뮌하우젠이라고 확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니,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성 검사부터 해 보죠. 중금속이나 이런 것들요.”

“그렇다고 하기엔 아이 엄마는 너무 건강해 보이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걸 단정 짓고 시작하는 건 좀 가혹해 보여서요.”

“그거야……. 하긴, 그렇지.”

다행히 수혁은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대한 케이스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기 애를 아프게 만들었던 이들이 너무 많지 않던가.

그러나 그중엔 억울했던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던 케이스도 있었단 얘기였다.

“그럼 제가 대충 티 안 내고 한번 검사해 보겠습니다.”

“응. 그러자.”

수혁은 그 생각을 간직한 채, 병동으로 다시 향했다.

하지만 의심을 품고 있어서 그런가. 아이 엄마의 행동이 다 새롭게 보였다.

우선 들어가기 전까지는 핸드폰만 보고 있다가, 수혁이 들어오니까 갑자기 우리 아이 어쩌냐고 하면서 눈물짓는 행위가 그랬다.

‘연기…….’

[우선은 맞장구쳐 주시죠. 의심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그래. 이건 진료의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지.’

[네. 연기는 잘하지 않습니까? 옳지. 잘하네. 역시.]

수혁은 마음 아프다는 표정으로 아이 엄마를 위로한 후, 검사가 진행될 것임을 설명했다.

옆에는 어느새 퇴근하고 온 아이 아빠도 있었는데, 둘 중 누구라도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긴장을 늦추진 않았다.

‘이거 하면서……. 주 양육자가 누군지 확인해야 하는데.’

[네. 그 사람을 아이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 실제 아이 증상 호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공범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둘 중 하나만 떼어 놓으면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 전에 어떤 수단으로 아이를 계속 아프게 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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