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화 이건 너무 어렵잖아요 (3)
독성 검사의 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해져야만 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쉬이 구할 수 없는 독으로 아이를 아프게 했던 케이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그랬다.
예전 같았으면 기껏해야 중금속 선에서 그쳤을, 덕분에 쉽게 해결했을 문제가 더없이 복잡해져만 가고 있었다.
‘Diazoxide(디아족사이드), Alimemazine(알리메마진), Ipecac(이페칵)를 투여했던 사례도 있었지?’
[네. 우선 약에 대한 정보는 둘째치고서라도 대체…… 어디서 그런 약을 구하는 건지 의문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100%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괴롭히려고 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쓸 수 있는지 배웠죠.]
바루다는 어디까지나 기계 아니던가.
물론 아주 기초적인 단계나마 수혁에게서 감정이라는 것을 배워 가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대한 케이스를 공부할 때는 바루다도 분명 분노했더랬다.
아니, 분노라기보단 공포라는 감정을 배웠다고 하는 게 더 맞을 터였다.
그만큼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사람을 괴롭혀 온 기록들이 학계에 보고되어 있었으니.
‘우선 발열부터 잘 보자고.’
[네.]
‘우리는 모니터링으로 원격으로도 측정이 되니까……. 저기 있는 기기에서는 숨기고 보면 될 거 같아.’
[간호부에는 어떻게 말할 생각이에요?]
‘요새는 내가 뭐 한다고 하면 이유를 잘 안 묻더라.’
[아……. 하긴 그렇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잘됐지.’
[그…… 네.]
바루다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누군가가 무엇을 묻는다, 이게 수혁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렇지 않아도 24시간 자랑하지 못해 입이 근질근질한 인간에게 멍석을 깔아 주는 셈 아니던가.
간호사들은 이제 수혁이 입에 시동을 거는 것만 봐도 치가 떨렸다.
물론 배우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그 어떤 곳에서 그 어떤 얘기를 듣는 것보다 수혁과 대화 몇 번 나누는 게 나았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뒤지겠다니까, 진짜.]
바루다가 데이터화한 대로,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아무리 좋은 강의라고 해도 매일매일 들을 수는 없지 않겠나.
하지만 수혁은 매일매일이 아니라 매시간도 강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 결실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자, 저희도 4시간마다 와서 재기는 할 겁니다만 그 외 시간에는 어머님이 기록해 주시면 됩니다.”
“아, 네.”
분명 원격으로, 심지어 발열 같은 건 실시간으로 저장이 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통합진료센터였다.
거들다의 개발자가 이수혁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간호사들이야 매일 거들다를 쓰고 있고 또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 사실을 잘 알다 못해 숙지하고 있었다.
‘음……. 묻지 말자.’
그런 게 있는데 언급을 안 한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이수혁이 하는 일에, 특히 의학적인 일이라면 괜히 하는 일은 없을 테니.
‘표정 보니까 이거…… 한 시간짜리다.’
그러나 간호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바루다가 없어도 수혁의 표정을 해석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랬다.
직접 당해 보면 누구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시길.”
“네.”
“힘내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자랑하고픈 마음 외에 다른 속내는 완전히 감추고, 보호자에게 인사까지 한 후에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병동에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은 채 스테이션에 털썩 앉았다.
‘아……. 물어보길 기다리는 건가?’
같이 갔던 담당 간호사가 눈치를 보며 시니어에게 물었다.
그러자 시니어가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눈 감았잖아. 생각하시는 중이야.’
‘아……. 그렇겠네요. 그래, 그래야지.’
‘응. 쓸데없이 일 벌이지 말자.’
‘네.’
‘밥도 시켜 먹지 말고 내려가서 먹자.’
‘네.’
‘일없이 스테이션 배회하지 말자고. 그러다 자, 다들 모여 봐요. 이러면…….’
‘그런 일 절대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다들 몇 번이고 수혁에게 당해 봐서 그랬다.
‘채혈은 몰라도 채변은 샘플이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지.’
[네, 특히 외래 베이스에서 시행한 검사라면 조작이 훨씬 쉬웠을 겁니다. 아이 나이도 그렇고요.]
‘응. 그렇지. 아마 혈뇨가 육안으로 보였을 정도였다는 것도…… 조작이어서 그랬을 가능성이 제일 커.’
[그럴 겁니다.]
정작 수혁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바루다와 토론을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부터는 문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이럴 땐 그저 바루다와의 대화가 가장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좀 건방져 보일지 몰라도, 적어도 이 둘이 생각할 때 수혁과 바루다는 세계적 석학이었으니.
‘우선 아이가 보이고 있는 증상을…… 다 검토해 보자고.’
[외부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고 상정하고서 말이죠?]
‘어.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나쁜 놈들이 워낙 많았잖아?’
[네, 그리고 의사들은 기록 덕후들이고요.]
기록.
그것은 논문의 형태일 수도 있고 또는 케이스 리포트의 형태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한가지로 공통된 것은 어딘가에 아주 상세하게 기술이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어디선가 기록한 문헌에 의해 도움을 받았듯, 그들 또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그랬다.
당장 수혁만 해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우선 제일 먼저 나타났던 증상……. 홍반성 피부 병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조직 검사상에서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죠. 약을 썼음에도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고요.]
‘약이야……. 투약을 안 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
[네, 그렇습니다.]
우선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 있을 경우 제일 먼저 의심해야 할 것은 투약 여부였다.
말을 못 하는 아이인 경우, 보호자가 약을 먹였다고 하면 의료진으로서는 확인할 방도가 아예 없지 않나.
연고 또한 바르지 않았다고 보고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행한 것은 조직 검사를 통해 그 모든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오직 의심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유추이기는 했다.
‘다핵성 세포의 침윤은…… 간단한 염증 반응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지. 문제는 처방받았던 약과 연고 모두 그러한 염증 반응을 가라앉히는 기전을 갖고 있다는 거야.’
[약이 안 들은 게 아니라, 약을 안 쓴 거죠.]
‘다시 내원했을 때의 사진을 떠올려 보면……. 단지 거기에 그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커.’
[네. 새로운 병변들이 있었습니다. 의심을 하고 보니…… 진행 정도가 각기 다르군요.]
‘그래. 아무래도 한 번에 저 병변을 다 만들 수는 없었겠지.’
수혁은 아까 보았던 환자 자료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때마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눈꺼풀 아래 이리저리 움직거리는 눈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려갈까?’
‘네.’
간호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하에 있는 직원 식당으로 향했다.
수혁은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저런 병변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은……. 일단 물리적인 상처를 내는 거지.’
[네. 악화를 위해 캡사이신을 사용할 수도 있고요.]
‘캡사이신이야 세계 어디서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이니까……. 가능성이 아주 크겠어.’
[네. 아마 맞을 겁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나타난 증상일 것이고요.]
‘그러고 보니…….’
[네. 거의 모든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서는 발진, 그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악화되는 발진이 첫 증상이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리는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돌고 있었으니.
게다가 실마리를 점차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무언가 악행을 저지르려고 마음먹은 이들의 생각이란 대개 비슷한 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첫 단추가 그렇게 들어맞았다.
‘그다음으로 보인 증상은 혈뇨.’
[혈뇨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잘 하지 않죠. ABO 검사 또한 불가하고요.]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안 하지, 보통은.’
[네. 때문에…….]
두 번째로 발생한 증상은 혈뇨.
그것도 육안으로 보일 만큼 심한 혈뇨였다.
역시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서 흔히 보이는 증상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에게 혈뇨란 붉은 피를 의미했기에 그랬다.
의학적으로는 드문 일인데, 그걸 알 수가 없지 않겠나.
‘아마도 소스는 자기 피였을 거야.’
[네. 엄마 피였겠죠. 양을 그렇게 흘리려면…… 아기 피로는 어렵습니다.]
‘뭐……. 아기 피로 하는 경우도 있지.’
[그렇긴 하죠.]
가해자의 혈액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열거했던 이유 때문에 검출이 안 되어서 그랬다.
‘세 번째로는…… 발열이지. 이거야 뭐.’
[체온계는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죠.]
‘응. 너무 쉽지. 그리고 오늘 밤 아마 그게 확인되지 않을까?’
[일부러 체온을 강조해서 말했으니까요. 그쪽으로 에피소드가 발생할 겁니다.]
발열도 흔한 증상이었다.
이건 조작이 너무 쉬워서, 거의 모든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동반이 된다고 보면 되었다.
대강 넘어가기로 했다.
딱히 추론이 필요 없는 지점이어서 그랬다.
‘이후 발생한 피부 병변이 궤양 및 찰과상이었지?’
[네. 발진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자꾸 뭐가 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나.’
[아마……. 같은 증상이 반복되면 걸릴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이건 의학 논문이 아니라 범죄 심리학 쪽의 논문에 주로 언급되는 내용이었다.
어쩌다 보니, 또 수혁이 워낙에 뭘 빨리 보는 능력이 있다 보니 여기까지 읽게 되었는데, 그 논문에 따르면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피해자를 진료하고 또 주된 동정심을 보이는 의료진을 훨씬 더 신경 쓰는 편이었다.
진정한 사이코패스들이란 얘기인데, 그와는 별개로 바로 그 때문에 다양한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더 진단이 어려워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기는 했다.
칠성에서도 전혀 의심을 하지 못했으니.
‘이 상처는…… 우선 상처가 난 후에 방치된 양상이지.’
[네. 조직 검사상으로도 같은 양상을 보입니다. 그러니 형태의 차이를 일으킨 것은 아마 상처를 만든 기전의 차이일 겁니다.]
‘비빈 거 같아. 사포 같은 걸로.’
[으…….]
하여간 새로 발생했던, 전혀 다른 양상의 피부 병변은 마찰로 인한 것으로 보였다.
캡사이신 같은 걸 쓰지 않았기에 다른 양상을 보였고.
이 또한 약과 연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호전이 되었다.
‘거참…….’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병동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이가 있는 병실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잠시 나갔으니 함께 있는 사람은 오직 엄마뿐이었다.
‘빨리 잡아야…… 애가 편해질 텐데.’
수혁은 왜인지 모르게 엄마가 없어 섭섭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어떤 부모는 차라리 없는 게 낫지.’
마냥 좋은 일은 아니란 생각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