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17화 (817/1,303)

817화 이건 너무 어렵잖아요 (4)

수혁은 그날 집에 가지 않았다.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집에 가도 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젊은 시절 이현종이 그랬던 것처럼 병원에서 먹고 자고 다 했다.

띠디디디디.

물론 평소라면 연구실에서 잤을 터였다.

거기에 침대도 좋은 거 마련해 두었고, 커튼도 암막으로 달아 놨으니.

그러나 오늘은 센터 내에 있는 당직실에 있었다.

“4호?”

“네. 4호인데요?”

덕분에 병동에서 나누고 있는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4호면…… 오늘 입원한 아이가 있는 병실이네.’

[다른 환자들이 없으니, 어머니가 직접 호출을 한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바로 문을 벌컥 열고 나가진 않았다.

다만 간호사들이 계획을 어그러뜨리지 않는지 주의해서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네……. 모니터하던 내용은 다 좋은데.”

“저기 호실은 애초에 기계 꺼 놨어요.”

“아, 그러라고 하셨댔지? 이유는 말씀 안 해 주고?”

“네. 그리고 저 병실에서 무슨 말을 하건……. 그냥 앞에서는 네 하고 교수님께 노티하겠다고, 그렇게만 말하라 했다고 합니다.”

“흐음.”

다행히 간호사들은 인계 사항을 아주 잘 숙지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모두 베테랑이니까.

이현종이 어찌나 지랄을 해 댔는지, 또 위에서 어찌나 센터의 발전에 대해 호언장담을 해 댔는지, 각 병동의 에이스들이라 불릴 만한 사람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심지어 새로 뽑혀 오는 신규 간호사들 또한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쳐 아주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럼 그래야지. 뭔가 이유가 있나?”

“네, 그렇겠죠?”

“그래. 그럼 내가 갈게.”

“네.”

시니어가 몸을 일으켜, 병실로 향했다.

딱 문 앞에 당도한 시점에 문이 벌커덕 열렸다.

그러곤 초췌한 얼굴의 어머니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우, 깜짝이야.’

대학 병원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면 말 그대로 별의별 일을 다 겪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응급실 출신인 시니어는 더더욱 이상한 경험들이 많아서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어머니의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다른 느낌의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거의 무슨 소아 응급실 같네.’

물론 겉으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어…… 어머님?”

“애가 갑자기 열이 40도예요!”

“아…….”

이번엔 좀 위험했다.

40도라니?

우리가 뻔히 안정적인 거 다 보고 왔는데?

‘체온계가 고장 났나?’

열을 재 보라고 하지 않았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수혁 교수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고 들었다.

“알겠습니다. 봐 드릴게요.”

놀란 와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니어 간호사는 시니어답게 당황하는 대신 수혁이 요청했던 바대로 움직였다.

들어가서 아이 상태부터 보았다.

“으……으아아아앙!”

아이의 나이는 이제 한국 나이로 세 살.

수혁과는 달리 아이 엄마여서 그럴까?

시니어는 대번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늦어도 세 살이면…… 대충 말을 할 수 있긴 해야 할 텐데……?’

그저 울고 있었다.

물론 병원이라서 놀랐거나 아프면 저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세 살이면 뭔가 의미 있는 말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말하는 데 빠른 아이가 아니더라도, 열이 40도까지 올랐으면 아프다고라도 말을 해야 했을 나이인데?

‘일단…… 열부터 재자.’

시니어는 아이 상태를 보고 나서야 왜 수혁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수혁은 뒷단에 뭔가가 있는 걸 의심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상하다 싶은 것보다 더 상위 차원에서.

그 인간이 좀 오버가 심해서 그렇지, 천재는 천재 아닌가.

“음…….”

하여간 그런 생각으로 들고 온 체온계로 열을 재려는데 좀 이상했다.

‘이마가…… 뜨끈해?’

모니터링 기기로 쟀을 땐, 그저 36.3도였다.

보호자는 모르고 있겠지만 현재 체온은 귓불에 달린 옥시메트리로 같이 재고 있으니, 틀릴 리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오류가 난 적이 없었다.

이수혁이 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태화 전자에서 개발한 물건 아닌가.

“38도…… 열이 있네요.”

“그럼 어쩌죠? 왜 이러는 거예요?”

어쩌긴.

필요하다면 약을 써야지.

하지만 왜 이러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설마 여기 오는 사이에 진짜로 열이 나기 시작한 건가 싶기도 했고.

“제가 여쭤보겠습니다. 교수님한테요.”

“네네. 아이구……. 우리…… 우리 애기 이거 어쩌나…….”

하여간에 둘러대고 나니, 아이 엄마는 아이를 보며 넋두리를 해 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 그 자체였다.

아마 모니터링을 따로 하고 있지 않았다면 안쓰럽단 생각만 들었을 터였다.

‘뭐지…….’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안 갈 뿐이었다.

대체 이게 왜…….

그리고 어떻게?

‘36도…….’

해서 어머니를 달래는 척하다가 귀 쪽으로 열을 재 보았다.

그랬더니 정상이 나왔다.

발열은 이럴 수가 없는 법이었다.

위치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어도, 이마와 귀는 대개 비슷한 결괏값을 내야 하니까.

‘설마…… 조작?’

조작이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어렵지도 않은 일 아닌가.

이마에 열 팩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표피 온도는 바뀌니.

“그…… 일단 제가 여쭤볼게요. 마침 교수님이 병원에 계셔서.”

“아…… 아! 감사합니다.”

시니어는 간신히 고개를 돌린 채 이수혁을 팔고 병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곤 티 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빠른 걸음을 걸어 병동으로 향했다.

스테이션에 있을 모니터링 결괏값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36.3……. 전혀 변하지 않았어.’

그러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눈으로 확인하니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 선배 왜 그러세요?”

“아니, 음.”

“열 안 나죠?”

“아니, 재 보니까 나더라. 이마에서는 나. 38도 정도……. 손댔을 때도 뜨끈했고.”

“네? 변화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응.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마가 벌겋기도 했어.”

“벌게요……?”

발열이 있을 때, 피부가 벌게지는 경우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실제로 열이 나는 아이들을 보다 보면, 얼굴이 빨개지는 경우가 더러 있지 않던가.

하지만 38도는 그러기엔 좀 낮은 온도였다.

“응. 뭔가를 가져다 댄 것처럼…….”

“네? 그건 또 무슨…….”

“내가 안에서도 재 봤거든. 귀랑 이마랑 온도가 상이하게 달라.”

“아……?”

스테이션을 지키고 있던 신규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반응이기는 했다.

시니어도 좀처럼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으니까.

‘아……. 이거 속 시원히 알려면…….’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스테이션에 부탁까지 해 둔 이수혁에게 묻는 것.

마음속 깊이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한 시간?

아니, 이건 두 시간짜리임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아이 엄마도 환자……? 시발……. 뭐지?’

기상천외한 케이스가 넘쳐 흐르는 곳이 통합진료센터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나.

“어…….”

“말씀드려야지. 예측대로 들어맞았잖아.”

“이런 말씀은 없으셨는데요?”

“그럼 왜 원격으로 다 모니터링하고 있는 걸 숨기라고 했겠어. 이걸 알고 있었던 거지.”

“아……. 이수혁 교수님이 진짜…….”

“천재는 천재야.”

수혁은 벽 뒤에서 그 말을 다 듣고 있었다.

‘후후후.’

천재는 천재다.

‘진짜 천재야’라는 말보다는 좀 너저분한 문장 같기는 했지만.

알다시피 수혁은 칭찬 들을 때 절대로 꼬아 듣는 법이 없는 인간이었다.

뉘앙스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천재라는 단어가 중요할 뿐이었다.

[맨날 듣는 말인데 그게 그렇게 좋습니까?]

‘천재는 최고야. 언제 들어도 짜릿하지.’

[그…… 그래요. 그게 그렇게 좋다면 뭐.]

‘웬일로 뭐라고 안 하네?’

[신기하게도……. 천재라는 단어를 씨불이니까 머리 회전율이 좋아졌거든요. CPU가 좋아지는데 싫어할 소프트웨어가 있겠습니까?]

‘역시 천재…….’

[딱 그런 얘기는 아니었는데…….]

바루다도 깔끔하게 천재라고 해 준 건 아니었지만 수혁은 여전히 미소 지은 채 문을 열고 나왔다.

“어맛.”

그 바람에 전화를 걸고 있던 시니어가 비명을 질렀다.

정말이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교수가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건 적응할 수 없는 종류의 일에 해당했다.

‘들었나? 나 욕 안 했지?’

게다가 그 시점에 하필 그 교수 얘기를 하고 있었다면 더더욱 그랬다.

“열난대요?”

“아, 네.”

생각해 보니 천재 운운한 거 말고는 뭐 없었다.

물론 말투가 좀 띠껍긴 했는데, 하여간 욕을 한 건 아니지 않나.

게다가 수혁을 보니 껄껄 웃고만 있었다.

그럼 된 것 같았다.

해서 묻는 말에나 답했다.

“그렇군, 역시.”

그런 시니어를 보며, 수혁은 ‘껄껄’ 하고 웃던 얼굴을 의미심장한 미소로 바꾸었다.

의도한 대로 간호사들은 그 미소를 보며 호기심이 치솟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뜻 아니겠나.

“뭐……뭘 의심하시는 거예요?”

“따라오시죠.”

“아…… 네.”

어쩔 수 없었다.

시니어는 자기도 모르게 뭘 의심하냐고 묻곤 수혁의 뒤를 따랐다.

뒤를 돌아보니 신규가 시발시발 입으로, 또 눈으로 욕을 하고 있었지만 뭐 어쩌겠나.

시니어가 가는데 신규도 가야지.

덜커덕.

그렇게 수혁은 간호사들을 이끌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마에 각진 흔적이 있습니다.]

‘그렇군.’

들어서자마자 아이의 이마부터 봤다.

무언가를 이마에 대고 있었던 흔적이 있었다.

아마도 핫팩일 터였다.

“열을 재 볼까요?”

“네……. 어…… 41도…….”

열이 올라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핫팩.’

수혁은 의심하고 있던 바를 확인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기에 그저 침착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뭐야?’

‘뭐지?’

억지로 끌려온 신규조차 이제 궁금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 끝에 두 시간가량의 설명회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입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열이 나네요. 일단은 의심 가는 바가 있으니……. 안심하시고요.”

“네? 약을 안 써도 되나요?”

예상했던 바대로 상황이 굴러가는 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는 그랬다.

예상보다 열이 좀 더 오르긴 했지만, 하여간 41도면 큰일 났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어쩌냐고 할 줄 알았는데 안심하라니?

이건 예상외였다.

“네,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죠.”

“어…….”

“어머님. 걱정되시겠지만, 저 이수혁입니다. 일단은 안심하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교수가 안심하라는데.

일단 있는 수밖에 없었다.

해서 어머니가 그렇게 있는 동안, 수혁은 밖으로 나와 병동에 털썩 앉았다.

아까처럼 눈을 감지는 않았다.

입도 다물지 않았다.

“자, 와 보세요.”

“어……. 네.”

떠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밤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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