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18화 (818/1,303)

818화 이건 너무 어렵잖아요 (5)

“와……. 진짜네요? 이 시간에…….”

“이수혁 교주님의 신묘한 계책이 있을 거라 얘기했지 않느냐.”

“그……. 이제 곧 남들도 있을 거거든요?”

“걱정 마라. 어련히 알아서 할 테니.”

“네…….”

하윤은 안대훈에게 이끌려 센터 앞에 당도해 있었다.

오늘 뭔가 신비한 일이 있을 거라고 하면서 부디 집에 가지 말고 당직실에 있으라고 하더니 진짜 센터에 수혁이 앉아 있었다.

근엄한 얼굴로, 간호사들을 앞에 두고서.

‘아니……. 아니야. 저 얼굴은 근엄한 얼굴이 아니야…….’

딱 봐도 이제 슬슬 입 털기 직전인 것으로 보였다.

저럴 때의 수혁은 늘 한결같지 않던가?

언제나 물어본 것에 비해 과하게 많은 양의 정보를 말해 주곤 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제 제발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움이 안 되냐? 그건 또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무슨 소리를 들었든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양질의 강의였다.

위잉.

하여튼, 안대훈은 늦으면 죽는단 심정으로 센터 안에 들어섰다.

그러자 수혁이 놀란 눈으로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바루다를 탑재하게 된 후로, 또 바루다를 충분히 딥러닝 시킨 이후로는 좀체 당황할 일이 적은 수혁 아닌가.

특히 병원 안에서만큼은 대부분의 일이 예상대로 흘러간다고 보면 되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이현종, 안대훈에 한해서는 예외긴 했다.

이 둘은 아마 바루다가 아니라 바루다 할애비가 나와도 예측이 불가능할 테니.

만약 예측 가능한 인공지능이 나왔다?

바로 부숴 버려야 했다.

스카이넷일 테니까.

“교수님. 하하. 잠이 안 와서 산책 중이었습니다.”

어……. 그래.

너는 산책을 병원 안에서 다니니?

녹음기랑 카메라랑 노트북까지 다 들고?

“그래……. 여기는 웬일이야?”

그런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수혁아, 대훈이는 이제 가족이다. 이미지는 우리가 지켜 주자.

이현종의 말 때문이었다.

안대훈의 이미지가 우리가 지켜 준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인지는 의문이었지만.

하여간 수혁은 이 자리에 간호사들이 있다는 걸 상기하고 있었다.

“산책하다 보니까 교수님이 보여서요. 용안이라도……. 아니, 무슨 말씀 하시나 궁금해서 왔습니다.”

그래, 저런 거.

용안이니 뭐니 하는 거.

저번에는 수혁이 길 가다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더니 호들갑을 떨면서 매화틀을 대령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 후로 수혁은 안대훈 앞에서 화장실의 ‘ㅎ’도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한데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하나 더 있었다.

“하윤아……?”

너도…… 한패니?

수혁의 눈빛을 읽었을까?

하윤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저는 이수혁 교수님이 계신다고 해서 이제 막 온 겁니다. 당직실에 있었어요. 새벽에 막 산책하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 그래. 그래…….”

그건 다행이구나.

하지만 안대훈이 새벽에 너한테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네가 이상하다는 증거란다.

[수혁……. 눈알 이상한 데로 돌아갑니다. 정신 챙기십시오.]

‘아. 그래. 아우, 이놈들 이거. 쉽지가 않네.’

[저도 인정합니다. 이건 엄살이 아니네.]

바루다는 수혁이 본 시계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새벽 3시.

인간이 가장 피로감을 느낀다는 그 시간이지 않나.

이놈들이 어디 한가한 놈들도 아닌데 이 시간에 깨어 있어?

다 또라이였다.

‘오히려 잘된 일이지.’

하지만 수혁도 만만찮은 또라이였다.

아무래도 둘만 데리고 잘난 척하는 것보다는 넷 데리고 잘난 척하는 게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그 즉시 따라붙었다.

“하여간 왔으면 앉어. 마침 할 얘기가 있었어.”

“네, 교수님.”

우하윤이나 안대훈이나 수혁이 그럴 것이란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그저 앞에 앉았다.

“그래. 음.”

수혁이 목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자. 이번에 온 아이 케이스예요. 사진은 아이 엄마가 찍은 거고. 로컬 병원에서 보다가 호전을 보이지 않아서 칠성 병원 소아과로 전원되었고……. 거기서도 해결되지 않아서 우리 센터로 왔어요.”

학회에서 하는 강의와는 달리 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렇다 해도 교수가 하는 얘기가 편안하면 좀 이상한 건데, 적어도 지금 모여 있는 넷은 마음이 막 불편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시간을 가져서 그랬다.

“제일 중요한 것은 과거력이죠. 잘 보면 홍반성 발진이 있었고, 조절되지 않는 발열이 따라오고, 혈뇨가 발생했고. 이후에 또 다른 양상의 피부병이 발생했어요. 잠시 기간을 두고 손발의 수포성 병변이 발생하고……. 얼굴과 입술의 혈관 부종도 발생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제 전원이 결정된 거예요.”

수혁은 제일 먼저 타임라인을 잡아 주었다.

하나하나 죽 시간에 맞춰서, 일말의 고민도 없이 화이트 보드에 쭉쭉 써 내려갔다.

수혁은 그중 또 다른 양상의 피부 발진이 발생한 시점에 체크를 하고 입을 열었다.

“여기서 칠성 병원에서는 SAID, 전신 자가염증성 질환을 진단하고 해당 질환에 맞춰 약을 처방했습니다.”

“어……. 진단 기준이 아주 잘 맞지는 않지 않습니까?”

질문을 던진 건 역시나 안대훈이었다.

수혁은 그의 날카로움에 내심 감탄하며 답했다.

“네, 그렇죠. 하지만 끼워 맞춰 보면 진단이 불가한 것은 아니에요. 물론 몇 가지 얼렁뚱땅 넘어간 부분도 있지만……. 주치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환자에게 새로운 증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 어떨지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죠.”

“아…….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저 때는 어떤 식이 되었건 자가면역질환을 의심해야 할 상황이긴 했고요.”

“그렇지요. 그래서 약을 쓴 겁니다. 하지만 여기 보이듯 그 후로도 쭉 새로운 증상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혁의 말에 간호사들부터가 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의학의 범위란 것이 너무 광범위한 데다가 통합진료센터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아무리 경험이 많은 간호사라 해도 모든 걸 경험해 볼 순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략적인 경향성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이지 드물었다.

어떤 한 가지 증상이 약을 사용함에도 반복되고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약을 쓰고 있는데 새로운 증상이, 그것도 서로 딱히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증상이 계속 생겨?

“네, 이상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다시 찬찬히, 케이스를 처음부터 리뷰해 보았습니다. 우선 홍반성 병변부터요. 조직 검사 결과를 보면 염증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외에 별다른 이상 소견은 없어요. 혈액 검사에서 다른 자가면역 지표가 나왔다면 확실히 자가면역질환을 의심해 볼 만한 소견이지만…….”

수혁은 아이의 나이에 동그라미를 쳤다.

소아도 아니고 유아였다.

너무 어리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하기엔 어리죠. 발병할 수는 있지만……. 보통 이런 경우에 그 정도가 훨씬 심합니다. 게다가 이 환자의 혈액 검사 소견은 깨끗합니다. 대사 질환도 없고, 그 외에 뭐 이상한 게 하나도 없어요. 자, 이 점을 기억하고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네.”

넷은 뭔가에 홀린 듯 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강의를 참 잘하는 인간이지 않나.

시간이 새벽 3시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케이스 관련한 강의라면 더더욱 그랬다.

모두 초집중한 상황에서 수혁은 발열을 읊었다.

“이건 약을 써도 반복되었던 발열 에피소드입니다. 검사를 해 봐도 역시 혈액 검사는 깨끗합니다. 해열제도 듣지 않는 발열이 있는 상황에서 혈액 검사는 깨끗하다, 좀 이상하죠. 심지어 이 시점에서 칠성 병원은 골수 검사까지 진행했는데, 그럼에도 이상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골수 검사란 말에 듣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특히 아까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들었던 안대훈은 얼굴이 숫제 시커메졌다.

안대훈이 왜 그토록 수혁을 존경하고 따르던가.

환자를 살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안대훈은 환자를 살리는 사람을 존경하는가.

수혁이나 이현종처럼 케이스에 대한 치열한 연구와 고민이 재미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종교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안대훈은 오히려 더 순수하게 환자 그 자체를 보고 있었다.

‘미친…….’

그런 안대훈에게 누군가 아이를 일부러 아프게 한다는 건 참기 힘든 일이었다.

일종의 모욕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구는 사람 살리려고 밤잠 설쳐 가며 고생하는데 누구는…… 이런 짓을 벌인다고?

‘이런 개…….’

수혁은 당장이라도 병실을 향해 달려들 것 같은 안대훈을 말리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혈뇨로 왔죠. 혈액 검사는 깨끗했고, 소변 검사는 명백한 혈뇨를 보였습니다.”

혈액 검사에선 단 한 번도 이상 소견을 보인 적이 없었다.

아니, 다른 검사에서도 이상 소견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오직 소변만 이상 소견을 보였다.

의심하지 않고 보면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겠지만, 한 번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하면 이것보다 이상한 것도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피부 병변이 발생했죠. 이전과는 명백하게 다른 양상이죠. 이전과 공통점이 있다면 오직 하나……. 치료에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자 호전됐습니다.”

수혁은 그리 말하면서 컴퓨터 화면을 바꿔 띄웠다.

사진이 떴다.

아이의 손발에 발생한 수포는 확실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후에 손발에 발생한 수포 또한 전혀 새로운 증상인데……. 이 역시 치료에 호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자 이 증상도 호전이 되었습니다.”

“음…….”

이쯤 되자 간호사들도 뭔가 이상하단 얼굴이 되었다.

하윤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싶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건 진짜 이상한 양상이었으니까.

“칠성에서는 치료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전혀 호전이 없자……. 이제는 다른 진단일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실마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센터에 왔죠. 이제부터 제 생각을 말씀드리죠.”

그 때문에 수혁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발 생각이 뭔지 말해라, 이런 얼굴이었다.

“혈액 검사와 소변 검사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음…….”

“혈액 검사는 간호사가 직접 뽑지만, 소변 검사는 환자가 채취하죠. 이 경우에는 보호자가 채취하는 것이고요.”

“어…….”

“또 골수 검사나 기타 다른 검사들과 체온과의 차이점이 뭔지 아십니까?”

“어…….”

“체온은 보호자가 재죠.”

“아…….”

“외래 치료와 입원 치료의 차이점은 뭔지 아십니까?”

“어…….”

“외래 치료는 보호자가 받은 약을 직접 써야죠. 입원 치료는 우리가 쓰고요.”

“아……?”

수혁은 안대훈을 제외한 인원이 모두 잉 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채였다.

“오늘 발열 에피소드에서…… 우리가 측정한 객관적인 체온과 보호자가 보고한 체온의 차이 또한 같은 이유 때문일 겁니다. 저는 어머니에 의한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의심하고 있어요.”

“아……!”

그제야 나머지가 모두 충격받은 얼굴로 병실 쪽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머니를 잠시 떼어 놔야 더 강력한 입증이 가능할 겁니다. 마침 대훈이랑 하윤이가 왔으니……. 잘됐습니다. 작전을 개시해 보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