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19화 (819/1,303)

819화 계책 (1)

“네?”

안대훈이 잘못 들었겠거니 하는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교주로 모시는 분이지만 계책이라니?

이게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수혁은 진지했다.

“아이와 엄마를 떼어 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어느새 반말로 돌아와 있기도 했다.

강의가 아닌 계책을 논하는 자리이지 않나.

선생이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의 동료 또는 직장 상사로 돌아왔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양육자와 떨어뜨리고, 호전이 되는지 여부를 봐야 해. 알지? 아동 학대…… 이거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야. 그만큼 함부로 나설 문제가 아니라고.”

“네. 그건…… 그렇습니다.”

안대훈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수혁의 말대로였기에 그랬다.

물론 내과 의사들이니만큼 아동 학대하고는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대개 응급실 또는 소아과 의사들이 이를 의심하게 되니까.

하지만 경험이 없냐?

그건 또 아니었다.

‘그때…… 난리도 아니었지.’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닐 터였다.

세계 어디서건 간에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는 특별한 사이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거기다 대고 ‘당신, 자식 학대하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건 당연히 위험 부담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확실해서 얘기를 했는데도 명예 훼손이니 뭐니 하면서 고소하는 부모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형사 처벌을 받는 와중에도 고소를 취하하지 않아 의료진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았다.

아동 학대를 발견했다면 즉시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자 의무라고 규정되어 있으나, 정작 그렇게 나선 이를 확실하게 보호하진 못해서 그랬다.

‘멱살 잡히고 막……. 아휴.’

응급실 레지던트는 아예 끌려가서 몇 대 맞기까지 했다.

덩치가 괜찮은 사람이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아마 자신의 치부가 만천하에 까발려지게 생겼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 아니었을까.

‘그래도 그 사람 진짜 대단해…….’

나중에 안 일인데, 그 선배는 그때 맞은 상처에 보이는 시곗줄로 인한 손상이 아이에게 난 상처와 유사하다는 점을 검사에게 알렸고, 그게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가 되었다고도 했다.

혹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나?

그렇다면 누군가 맞아야 할 텐데.

안대훈은 수혁을 내보낼 수 없는 인간이지 않나.

그렇다고 하윤을 내보내?

그것도 못 할 짓이었다.

“제가 맞겠습니다.”

“응?”

해서 손을 들고 나섰더니, 수혁이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뭘 맞아?”

“그……. 아동 학대…….”

“저 사람이 애를 때리냐? 그런 게 아니잖아. 이건 훨씬 교묘하다고. 일반적인 아동 학대라는 정서적 기반이 아예 달라.”

“아……. 그…… 그런가요?”

“아동 학대는 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괴롭히면서 만족을 느끼는 류의 인간들이 저지르는 짓이야. 스트레스가 쌓였다, 우울해서 그랬다는 온갖 핑계를 만들어 대지만, 저변에는 절대로 저항할 수 없는 상대를 괴롭히고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쾌락이 있지.”

“미친놈들…….”

수혁은 말하다 말고 뒤에 있던 우하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미친놈들이 맞지 않나.

애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다니.

수혁은 적어도 그런 인간들은 나치를 비난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동류일 테니.

“근데 이 뮌하우젠은 그런 게 아니야. 실제로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경우도 있어. 그럼에도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 아이가 아프고, 그 아픈 아이를 돌보는 자신에 대한 동정을 즐기기 위함이지.”

“미친놈들…….”

이번엔 안대훈이 중얼거렸다.

수혁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쪽도 미친 수준으로 따지면 절대로 밀리지 않으니까.

오히려 더 배배 꼬인 측면이 있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접근이 더 어려웠다.

실제로 진단을 내리지 못한 채 사망에 이르는 비율이 6%가량 된다는 보고도 있을 지경이었다.

‘아마 더 높겠지.’

[네……. 의심도 못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칠성에서조차 의심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보내온 마당 아닌가.

아마 수혁이 아니었다면 이대로 더 시간을 끌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을 터였다.

그러다 환자를 잃었을 수도 있고.

그 죽음으로 인해 평소에 비해 더 많은 동정을 얻어 낸 아이 엄마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재범을 꿈꾸게 될 게 분명했다.

사후 진단이 되는 경우 대부분이 둘째, 셋째가 같은 증상을 맥락 없이 보이는 것을 의료진이 의심하게 되어서이지 않던가.

“그래서 우리도 교묘하게 나서야 해.”

수혁은 악의 기록이나 다름없던 케이스 리포트를 떠올리다가, 진중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계획은 이미 처음부터 다 세워져 있었다.

수혁은 그럴 수 있는 인간이지 않나.

바루다의 도움까지 있었으니, 계획은 거의 완벽하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우선 대훈아, 너는 보호자가 얼굴 아니까 의사 역할이야.”

“아…… 네.”

안대훈은 당연하게도 의심 없이 그의 명을 받들었다.

게다가 의사에게 의사 역할을 맡기는 것이니 별 어려움도 없지 않겠나.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하윤아, 너는 환자야. 머리 풀고 땀인 척 물 좀 묻혀. 그리고 아픈 척해 봐.”

“으, 으으으으.”

“옳지. 엄청 잘하네. 그래, 누워라.”

“네.”

하윤도 최선을 다했다.

우선 가운을 벗고, 윗도리만 간호사들의 사복을 빌려 입은 채 침대에 누웠다.

수혁의 요청대로 머리에 물을 묻히고 끙끙대고 있는 걸 보니 중환자가 따로 없었다.

아픈 사람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아픈 연기 하나는 일품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두 분 중 하나가……. 대훈이랑 같이 지금 저 환자 있는 병실로 침대 끌고 들어가세요. 호들갑 떨면서. 막 큰일 난 것처럼.”

“어떤 큰일…… 말인가요?”

간호사들은 대훈이나 하윤처럼 수혁과 끈끈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 눈앞에 있다는 생각을 하자,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해서 둘은 단호한 눈을 한 채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염병……. 일단 에볼라라고 구라 칠 거예요. 하윤이는 들어가면 그 즉시 발작적인 기침을 해.”

“네.”

“그렇게 난리를 치고 있으면 나랑 나머지 한 분이 이 방호복을 입고 들어갈 겁니다. 에볼라라고 하고 모두 격리할 겁니다. 그리고 아이 상태를 보죠. 호전이 되면, 가장 강력한 정황 증거가 될 겁니다.”

“아…….”

에볼라.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치명률을 지녔다는 바이러스이지 않나.

비록 지나치게 높은 치명률 탓에 오히려 번지지는 못해 딱히 인류 전체적으로 큰 피해를 준 적은 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유명한 바이러스이긴 했다.

‘만약 서울에 에볼라 환자가…… 이렇게 뜬금없이 생긴다? 어떻게 될까?’

[재앙이죠. 엄청 죽어 나갈 겁니다. 검사해 볼 생각이나 하겠어요?]

‘하긴……. 2차 감염부터 완전히 통제되는 바이러스가 여기서 갑자기 나오면…….’

[사실상 말이 안 되는 계책입니다.]

‘하지만 통할 거야. 상대는 의사가 아니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보호자도 들어 본 적이 있을 터였다.

아니, 보호자라는 단어보다는 가해자가 더 알맞을까?

하여간, 들어 봤다면 반드시 걸려들 터였다.

어차피 정신없이 움직이게 만들 거니까.

“자, 그럼……. 아이 엄마는 비어 있는 병실 중 음압 병실로 이동시키죠. 아이는 따로 격리해야 된다고 하고요.”

“네.”

“그럼…… 고.”

수혁의 말에 안대훈과 시니어 간호사가 하윤이 누워 있는 침대를 끌고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발열은?”

“41도입니다!”

“혈액 검사는 어떻게 됐어요?”

“아직…… 아직 결과 안 떴습니다! 아 CBC는 떴는데, 범혈구 결핍이 보입니다!”

“이런 젠장!”

둘 다 급한 상황이라면 더없이 익숙해서 그런가. 딱히 합을 맞춰 본 것도 아닌데 손발이 척척 맞았다.

41도면 사실 의식이 없어야 되는데, 그런 게 뭐 중요하겠나.

일단 뒤지게 급한가 보다 하는 인상만 주면 그만이었다.

벌커덕.

문이 열리고, 안으로 셋이 들이닥쳤다.

“쿨럭, 쿨럭, 쿨럭!”

그와 동시에 우하윤의 열연이 시작되었다.

신들린 듯한 기침을 안대훈이 받았다.

“기침? 언제부터 이랬지?”

“올 떄부터…….”

“근데 피 냄새가 나는데?”

“아……. 그렇네요!”

개도 아니고.

어떻게 눈에 보이는 객혈도 아닌데 피 냄새를 맡겠나.

하지만 안대훈은 대머리라 어떻게 봐도 연륜 있는 전문의로만 보일 뿐이었다.

특히 아이 엄마가 보기엔 더더욱 그랬다.

낮에도 수혁의 심복으로 보이지 않았나.

“이거 혹시…….”

“아닐 겁니다. 에이, 설마요.”

거기에 더해 시니어 간호사 또한 목소리부터 숙련된 간호사 그 자체였다.

감정이 절제된 그러면서도 단호해 보이는.

그런 사람 둘이 설레발을 떨기 시작했다.

“저기…… 무슨…….”

덜컥 불안해졌다.

기침을 하고 있으니, 저게 혹시 옮는 것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벌커덕.

그때 수혁이 다른 간호사와 병실로 들어왔다.

방호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걸친 채였다.

“안대훈 선생!”

수혁은 발군의 연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냥 부르는데, 복잡한 감정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네?”

“환자 에볼라야.”

“네?!”

“미안하지만…… 다 따로 격리 조치를 해야겠네. 다 죽을 수 있어. 그리고…….”

수혁은 안대훈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아이 엄마 앞에 섰다.

플라스틱판에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송구스럽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의 표정을 짓고서였다.

‘가장 약한 아이를 이용하는 놈들치고……. 마음이 강한 놈은 없지.’

[케이스 리포트에도 그렇게 쓰여 있었죠.]

‘난 그게 진실일 거라고 확신해.’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수혁을 눈 앞에 둔 아이 엄마는 더없이 불안해 보였다.

아이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긴 자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아이를 단지 동정심 유발하는 수단으로 써 온 사람에게 아이가 보이겠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약간의 씁쓸함을 느꼈다.

어떤 식이건 나쁜 부모를 보면, 자기를 버린 친부모가 떠올라서였다.

‘어차피 내 아빠는…… 이현종이야.’

다행한 것은 이제 방패막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심리적이건 물리적이건, 이현종은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어머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확진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격리 조치에 따라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아, 네.”

아이 엄마는 아예 아이에 관해 묻지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해서 수혁이 짚어 주어야만 했다.

“아이는 따로 격리하겠습니다.”

“아……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엄마는 경황이 없는지 그저 밖으로 도망쳤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병실까지 들어가는 동안, 단 한 번도 뒤도 안 돌아보았다.

“2주라고 전하고. 그사이 우리는 아이의 모든 증상이 사라지는지 보자고.”

수혁은 역시나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돌아보았다.

지금 이 아이가 보이고 있는 증상은 발진, 손발의 수포, 발열 그리고 혈뇨였다.

2주가 아니라 며칠만 지나도 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걸 수혁은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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