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20화 (820/1,303)

820화 계책 (2)

“어……?”

아침에 출근한 이현종은 수혁의 보고를 듣고 말 그대로 두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아이 엄마를 에볼라로 협박해서 가뒀다고?

만약 뮌하우젠이 아니면 어쩌려고?

‘수혁아……. 그러면 다음에 네가 갇혀……. 근데 거기가 병원이 아니야…….’

감방 간다 진짜로.

아우, 감방이라니.

이현종은 온몸을 떨면서 되물었다.

“이게 계획이야? 아니면 어제 그렇게 했다는 거야……?”

동시에 살짝 몸을 뒤로 뺐다.

마치 ‘나는 이 엄청난 일과 별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이현종의 반응을 보면서 어제 같이 있던 간호사들도 살짝 정신을 차렸다.

‘아……. 우리가 미친 짓을 했구나.’

‘시벌…….’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정말 술에 취해도 그렇게까지 몰려가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어제는 그야말로, 전심전력으로 하나가 되어 움직이지 않았나.

‘아…… 아빠…….’

하윤도 살짝 정신이 돌아와서 우창윤을 떠올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빠의 머리를 떠올렸다.

‘나 감방 가면…… 대머리 되겠지?’

지금도 간당간당한데.

여기서 더 스트레스를 주면 아마 반드시 그렇게 될 터였다.

“어제 그렇게 했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잖아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쇠뿔은 빼면 안 돼…….”

하지만 수혁은 너무도 당당했다.

그래서 이현종은 당황했다.

간호사, 우하윤도 당황했다.

“아버님.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쇠뿔은 빼야죠.”

안대훈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수혁을 따를 뿐이었다.

“아니……. 아니야. 얘들아. 아무튼, 이걸……. 이걸 저질렀다 이거지……?”

그 둘을 보면서 이현종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래, 우리 아들이 미친놈이지. 안대훈은 더 미친놈이고?’

이 둘이라면 이런 일보다 더한 일도 저지를 수 있었다.

그걸 알고도 양자로 삼은 것 아닌가.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난이도가 이럴 줄은 몰랐지만.

“네. 아이는 따로 격리해서 저희가 보호 중입니다.”

“보호자한테 아이를 뺏어서 보호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 말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리는지는 아니?

이현종은 차마 그 말을 잇지 못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냥 수혁의 말이 더 빨라서 그랬다.

“그리고 호전 중에 있습니다.”

“이게 아직 확실하지 않…… 응?”

“호전 중에 있어요, 아이.”

“어……? 이제 하루도 안 지났는데?”

동시에 수혁의 말에 휩쓸리기 시작해서 그랬다.

‘호전이 된다고?’

다른 놈도 아니고 수혁이 의학적인 의견을 제시했으면 들어줘야 마땅한 법이었다.

물론 시간이 좀 촉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긴 했지만.

하여간에 수혁 아닌가.

친자식이라고 해도 이보다 더 이쁠 것 같지 않은 아들 아닌가.

해서 이현종은 다시 의자를 앞으로 끌어당긴 채 수혁을 바라보았다.

어디 말할 것이 있으면 다 해 보라는 뜻이었다.

“우선 발열이 없어요. 당연하죠. 이건 완전 거짓된 보고였으니까요. 다만…… 이마에 살짝 화상이 있는데, 1도 화상이라 피부과에서는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이런 미친……. 화상이 있어?”

“네. 이것 또한 정황 증거가 됩니다. 게다가 어두워서 그랬나 살짝 실수가 있었어요. 여기 보이세요?”

수혁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폴드라 그런가, 화면이 넓어서 사진도 잘 보였다.

이현종은 그 덕에 이마에 난 사각형의 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뭐야.”

“팩을 올려놔서 온도를 올린 거예요. 떼고 나서 시간이 지났는데도 41도가 나오려면 꽤 출력이 강한 팩이었겠죠.”

“아……. 이 미친. 이거……. 이것만 해도…….”

“네, 사실 정황상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소변 검사용으로 제출했던 검체도 유전자 검사를 지시했어요. 저는 저기에 엄마 혈액이 섞여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 그래? 그렇군. 역시.”

설명을 듣다 보니 확실히 수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빈틈이 없지 않나.

물론 대개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진단은 이래야만 하는 게 사실이었다.

어설프게 나섰다가 입증이 안 되면, 100% 확실한 케이스도 수사가 종료되고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져서 그랬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의 가해자들은 그 특성상 수사 한번 했다고 불안해하지 않고, 그저 병원을 옮겨서 또 다른 이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가해를 예방하는 효과도 없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만……. 이렇게 치밀한 경우는 또 없을 거 같긴 하네.’

이현종은 마음이 살짝 놓여서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수포. 이거 아마……. 무슨 사마귀 패치? 뭐 이런 걸로 일으킨 거 같아요. 처방했던 약과 처치 시행하니까 바로 가라앉았어요.”

“아……. 그래?”

“네. 발진도 마찬가지예요. 애초에 내인성 원인이 없었기 때문에 처방받은 약을 쓰고 나니 바로 호전을 보이고 있어요.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건 치료가 안 되었기 때문이죠. 아이는 입원해서도…… 먹는 약은 토한다는 핑계로 아이 엄마가 줄 수 있고, 연고는 바로 치워 버릴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지속적인 자극을 주면 치료가 소용이 없죠.”

“그렇군. 어디 호전도가…….”

“여기요.”

수혁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확실히 전후가 완전 달랐다.

말이 안 될 정도로.

당연한 일이긴 했다.

저절로 생긴 상처가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상처인데, 그걸 방치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된 치료를 시작한 참이지 않나.

이게 좋아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이거 뭐, 오래 유지할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네. 하지만 완치가 되려면 며칠 걸릴 겁니다. 그사이에 이걸 어떻게 막기는 해야 할 텐데요.”

“아니야.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진단이 되고 나서도……. 이 방법에 대해……. 특히 네가 격리시켰던 방법에 대해서는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어.”

“음.”

수혁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무슨 공격이 들어온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쪽으로는 머리가 아예 돌지 않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납득이 안 되냐?

그건 아니었다.

‘의외로…… 이런 건 우리 아빠가 잘 알지.’

[네, 이현종은…… 사회성이 없는 척하면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죠. 수혁과는 다릅니다.]

‘무슨 소리야?’

[아닙니다.]

이현종은 이쪽 방면으로 수혁보다 훨씬 낫지 않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 일반적인 아동 학대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꽤 소외되어 있을 거야. 기자가 그러더라고. 생각보다 아주 드문 게 아닌데 아예 사회적인 관심이 떨어져 있다고. 실제로 아동 학대도 그렇잖아? 딱히 뭐…… 제도적으로 뭐가 없으니.”

“그렇죠. 근데 그걸 어떻게?”

“이슈를 만들자. 우리는 그럴 수 있어.”

“어떻게요?”

“김다현 회장님. 칠성에서 진단 못 한 걸 쏜 거니까…… 엄청 좋아할걸.”

이현종은 후후 하고 웃었다.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피비빅 돌아서 그랬다.

‘애도 나아지고…… 태화에서 미리 약 팔고 나면……. 후속 조치도 나 몰라라 하기 어렵지?’

대기업이 괜히 대기업이던가.

태화에서 운영 중인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우수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적은 돈보다는 이미지가 중요한 대기업 특성상 했다 하면 제대로 해야 할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

‘애를 위해서도 이게 좋은 방법이야.’

비난의 여지를 아예 남기지 않기 위해, 또 이미지 개선을 완벽하게 이루기 위해서라도 아이의 미래는 어느 정도 보장될 터였다.

“너는 일단 치료에 전념해.”

“네? 아, 네. 어려운 것도 없는데요. 뭐. 아이 엄마한테 둘러대는 게 어렵죠.”

“그거야 뭐…… 내가 할게. 고집부리는 데는 나이 많은 사람이 더 유리해.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이거든.”

“음.”

맞는 말인가 싶었지만.

아니, 많은 사람을 이현종으로 치환하면 저거보다 맞는 말도 없었다.

이현종이 고집부리면서 발광하는 걸 몇 번인가 보지 않았나.

그 앞에 태화 의료원 원장도 내과 학회장도 모조리 무릎을 꿇었더랬다.

김다현이나 이기원 의원도 형태가 다를 뿐, 하여간 이현종의 뜻대로 어지간하면 맞춰 주고 있었다.

“알겠어요.”

“그래.”

그렇게 이현종이 일에 개입하게 되었다.

이게 병원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신현태와 내과 과장 그리고 소아과 이기자도 끌려 들어왔다.

“형……. 이걸로 방송을 하자고?”

“바로 이 케이스를 가지고 하는 건 아냐. 그냥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대해 우리 소아과 이기자 교수가 가서 말하는 거지.”

“그리고 며칠 뒤에 우리가 진단하고? 너무…….”

“속 보인다고? 그렇게 생각 안 할걸. 우리 생각보다 진짜 많았구나 싶지.”

“허…….”

“일단 우리 김다현 회장님 부하들이 알아서 잘해 주실 거야.”

신현태는 좀 그랬다.

선비라 그런가.

방송을 이용한다는 발상 자체가 불편해서 그랬다.

물론 완전 반대를 하기에는 통합진료센터를 필두로 이득을 너무 많이 보고 있기는 하지만.

하여간 좀 그랬다.

“좋은데요? 진행하시죠. 전담 부서 연결해 드릴게요.”

표현을 좀 정정하자면 신현태만 그랬다.

나머지는 21세기형 인재라서 그런가. 미디어 활용에 있어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해서 당일 바로 이기자 교수는 TV에 나가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관해 얘기할 기회를 얻었다.

“고마워, 여보.”

“여봉봉을 위해서라면…….”

이현종은 팔불출답게 TV 스튜디오까지 따라가 응원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기자는 감개무량한 상황이었다.

‘드디어 내가 이걸 학회 말고 딴 데서 얘기할 기회가 왔구나.’

학회마다 숙원 사업이 있기 마련이었다.

또 모든 의사마다 숙원이 있기 마련이었다.

꼭 하나만 있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치료하지 못한 환자 하나하나마다 의사의 마음에 남기 마련이니까.

그 아쉬움 중 하나가 바로 아동 학대였다.

그중에서도 완전히 간과되고 있는 형태의 학대,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 이기자의 마음엔 늘 부담이었다.

“몇 번인가 방송에서 다룬 적이 있는 질환입니다. 하지만 대개 서프라이즈 쇼와 같은 곳에서 예능의 한 가지로 소비되어 버렸죠. 때문에 우리는 이로 인해 놀랐을지언정 경각심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더욱이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재미로 소모된 적이 있었다.

이런 망할.

이기자가 그걸 보면서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던가.

“아……. 정확히 어떤 걸까요?”

“주로 보호자가 가해자가 됩니다. 다른 아동 학대와 같죠. 차이가 있다면 동기에 있습니다. 이는 남들이 아픈 아이를 돌보는 자신을 동정하기를 바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때문에 처음에는 별거 아닌 증상에서 시작하는데, 문제는 이런 감정도 중독성이 있다는 데 있습니다.”

“중독이요?”

“네, 점점 더 강하고 많은 동정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더 아프게 만듭니다. 어떻게든 정보를 습득해서 의사의 진단을 회피하고 아이를 괴롭힙니다. 물론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누구보다 좋은 부모입니다.”

“아……. 아니, 어떻게 이런…….”

“그러다가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분통 터지는 일은, 아이를 죽인 살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에서 동정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더 무서운 건…… 둘째, 셋째 심지어 입양아까지 더 희생시킬 거란 다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한다는 거죠.”

“아…….”

탄식은 비단 사회자의 입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적어도 그 방송을 보고 있던 모든 시청자는 탄식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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