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21화 (821/1,303)

821화 계책 (3)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갑자기 인터넷 커뮤니티에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달궈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런 말도 있다더라.

그런 일도 있었다더라.

실제로 있었다면 끔찍했겠더라.

정도의 설왕설래가 간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정도로 뭐가 되려나……?’

[전혀 모르겠습니다.]

수혁이라고 해서 진짜 의학만 미친 듯이 들이파는 사람은 아니었다.

간간이 들어가서 인기 글 정도만 훑어보는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정도는 있었다.

그것도 안 하면 의학 외적인 일로 웃을 일이 너무 없다는 것이 수혁의 논리였고, 바루다 또한 수혁의 말에 납득해서 확보하게 된 시간이었다.

‘인기 글에는 올라가질 못한 거 같은데?’

[재미가 없으니까요.]

‘이런 글이 재미가 있을 수 있나……?’

[재미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뭔…….’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말았을 터였다.

당연했다.

이놈은 깡통이니까.

하지만 바루다의 딥 러닝은 대단한 것이었다.

종종 ‘이놈도 이제 진짜 사람이랑 다를 바 없는 거 같은데’ 할 때가 있을 지경이었다.

수혁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못했지만, 바루다만이 유일하게 인간의 모든 감각을 공유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암튼, 털어 봐.’

[네, 제 깡통 이론을 말해 보죠.]

하여간, 이제는 수혁도 바루다의 이런 면을 어느 정도 존중하게 된 지 오래였다.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나을 때도 있지 않던가.

해서 수혁은 바루다에게 물었고, 잠시 기다렸다.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일도 없었다.

바루다가 지랄을 해 대서 일어나긴 했는데, 인이 박여서 그런가 예정된 공부도 후다닥 끝냈고 환자 중 제일 까다로운 환자는 이미 호전세로 돌아서 버린 상황이었다.

그나마 보호자가 문제인데, 그 양반이야 지금 갇혀 있으니 딱히 가 볼 이유도 없었다.

[철저히 수혁의 감정에 기반을 둔 분석이긴 합니다. 피차 시간 남아 떠드는 거니까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어요.]

‘어, 나 지금 널널한 기분이야. 이러다 잘 것 같으니까 빨리할래?’

[네. 제가 예전보다는 수혁을 좀 풀어주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 옛날 드라마도 좀 봤죠?]

‘어……. 예전에 유행했던 지우학이랑 오징어 게임 찾아봤지. 일주일에 한 화씩……. 풀어주고 있어서 정말 뒤지게 고맙다…….’

수혁이 잠시 억울한 얼굴이 되어 창밖을 돌아보는 사이, 바루다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와 있는 드라마를 일주일에 하나씩 보게 하고 있다는 것은 바루다가 생각하기에도 못 할 짓이어서 그랬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수혁이 웃은 빈도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 즐거워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무서워하고, 긴장했던 빈도가 훨씬 높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봤죠. 지우학에서는 화가 나기도 했고요. 이것을 토대로 분석해 보면…… 결국, 재미란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 그럴싸해.’

[즉, 이 이슈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분노하거나 안타까워하게 된다면, 당연히 이것도 일종의 재미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이걸 재미있는 이슈라고 하는 건 마음이 불편하지만…….’

이거야 깡통이니까 그렇다 치면 될 일 아닌가.

게다가 재미 외에 다른 적당한 단어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당장 떠오르진 않았다.

의학에 매몰되어 있다시피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수혁은 이런 이슈도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단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 수혁아. 어떻게 됐어.”

이제 슬슬 여유롭던 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서 그랬다.

더 이상 재미라는 추상적인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엔 시간이 없었다.

당장만 해도, 해야 할 일은 이현종의 출근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 가기 시작했다.

“아……. 아이는 이제 뭐. 같이 보실래요?”

“그래, 그게 좋겠다. 야, 니들도 다 와라.”

“네!”

이제 그냥 여기 눌러앉기로 했는지, 안대훈도 출근을 이쪽으로 했다.

수혁이 알기론 슬슬 시험 보러 들어가야 할 타이밍인데.

이 새끼 이거 어쩌려고 이러나 싶었다.

물론 뭐라 하지는 않았다.

‘걱정해 준 것에 성은이 망극하다고 하면서 울겠지……?’

[분석하는 게 불가한 인간이긴 하지만……. 이건 예상이라기보다는 회상이죠. 100% 확신합니다. 이따 분위기 봐서 최대한 가볍게…… 언제 공부하러 갈 거냐고 하시죠.]

‘아예 화를 내야겠다. 너 이러다 떨어지면 간신히 따온 군펠로우 TO 날아가는데 책임질 거냐고.’

[좋은 방법입니다.]

안대훈을 너무 잘 알아서 그랬다.

수혁은 이런 생각을 뒤로하고 병실로 향했다.

아이 엄마는 병동 끝에 위치한 1인실에 격리되어 있지만, 아이는 센터가 아닌 소아과 병동에 가 있었다.

에볼라고 나발이고 다 구라 아니던가.

보호자와 격리된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아이의 안정감이었다.

병원에서 안정감 운운하는 것이 좀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병원에서 제일 나은 곳이 있다면 소아과여서 그랬다.

“아이구……. 이쁘네, 소희. 밥도 잘 먹고. 오구구.”

갔더니 이기자 교수가 병동 앞에 나와 있었다.

‘?’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저 의문이었다.

저 칼같이 무서운 양반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오구구. 소희 그랬어요? 소고기 좋아해요?”

그냥 병동에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소름 끼치는 하이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를 안은 채 스스로 밥을 먹이고 있었다.

가운에 이거저거 다 흘려서 묻히고 있음에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한 30년만 일찍 용기 냈으면 아이도 낳았을 텐데.”

그걸 보면서 이현종은 너무 늦은 후회를 내뱉었다.

‘30년이면 아버지……. 보통 그런 후회는 잘 안 하거든요……?’

1, 2년 아니, 10년만 됐어도 뭐 그럴 수 있다 싶을 텐데.

30년은 좀…….

“여봉봉.”

하여간, 이현종은 훈훈한 분위기에 취해서 병원이라는 사실을 잊었는지 둘만 있을 때 부르던 호칭을 썼다.

“아빠 여기 병원…….”

“왜 여봉봉.”

“아.”

평소였다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터였다.

이기자는 진짜 무서운 사람이니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거라는 말까지 있지 않던가.

대개의 남자 교수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빨 빠진 호랑이가 가는 데 반해, 이기자는 여전히 괄괄하기 짝이 없었다.

헌데 여봉봉?

“?”

옆을 돌아보니 안대훈조차 심란한 얼굴이었다.

이 새끼한테 이런 표정 지을 자격이 있나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이 새끼가 남을 놀라게나 해 봤지.

이렇게 놀랄 일이 있었겠나.

특히 병원에서 이런 종류의 당혹감은 아마 평생 처음일 터였다.

“일단 존나 가만히 있자. 신혼부부한테 껴드는 거 아니야.”

“네? 아니, 그게.”

“일단 있자고.”

“어…… 네.”

수혁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안대훈은 입술을 연신 달싹이고 있었다.

바루다를 이용해 독순술을 펼쳤더니, 내용은 이러했다.

-나이도 나이인데……. 애초에 저 애는 자기 애가 아니지 않나……?

무엄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듣고 보니 수혁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가만히 있었다.

딱히 뭐라도 말할 분위기가 아니기도 했다.

“여기 물집 잡혔던 곳 나은 거 봐요. 안 아프니까 웃네.”

“그러네……. 이렇게 보니까 당신 좀 닮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런가? 당신 닮은 구석도 있는데?”

“어디. 아, 여기.”

배는…… 다 거기서 거기 아닙니까.

“색도 그렇고 딱 당신이네.”

“그러니까.”

동양인이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게다가 배는 나이가 들어도 별로 모양이 안 변하는 곳이고요.

특히 아빠는…… 아빠 배는 통통해서, 굳이 따지자면 애기 배랑 닮기는 했는데…….

-수혁, 진료 안 합니까?

‘어, 못 하겠는데 지금은?’

둘의 애정행각인지 아니면 정신 나간 행각인지 모를 행각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혁조차 끼어들지 못했다.

“여기 피부도 좋아졌고…….”

“발열은 있었어?”

“없었어.”

“진짜 다 나았네.”

“병원 기록 보면 터무니없다고 여겨질 만큼 빨라.”

“확실히…… 뮌하우젠이었구나. 이런 미친…….”

다행인 것은 저 미친 두 사람도 결국엔 의사라는 점이었다.

그것도 태화 의료원을 감히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의사.

둘은 순식간에 아이의 상세를 살피곤 정리해서 수혁을 돌아보았다.

“아들.”

“네.”

이현종이 아니라 이기자가 말했다.

수혁은 이현종의 양아들로 입적했고, 얼마 전 이 둘도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으니 아들이라는 호칭이 틀린 건 아니었다.

들을 때마다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입원 당시에 보고했던 증상들…… 치료 시작하고 이틀 만에 거의 호전을 보이고 있어. 아직 좀 남아 있는 자리는 있는데……. 이 정도면 뭐, 금방이지.”

“네. 확실히…… 그렇네요.”

“문제는 어머니인데……. 일단 아버지랑 먼저 얘기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어딨다고 했지?”

하여간 이기자의 말은 새겨 둘 만했다.

안 그래도 아동 학대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에 대해서는 이 중 제일 경험이 많지 않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가장 유리할지 제일 잘 알았다.

-엄마 말 들어라.

수혁은 이현종에게 들은 말이 있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출장이요. 출장이 되게 잦은 직업인 거 같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의심을 안 하는 거야.”

아동 학대도 그렇지만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은 주 양육자의 손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거의 100%라고 보면 되었다.

특히 그 행위로 인해 기대하는 이득을 공감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공범도 드물었다.

해서, 이기자 교수는 우선 아버지부터 보기로 결심했다.

“네? 아…… 제 아내는……. 네? 격리 중이요? 어, 어어. 알겠습니다. 지금 회사에 말하고 가겠습니다. 근데 그래도 밤이나 되어야 도착할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제가 지금 상해에 있어서…….”

외국에 있던 아버지는 부리나케 돌아온다고 했다.

아이 엄마가 미상의 감염병에 걸려 격리되었고 아이도 혼자 있다고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낸다고도 했지만, 이기자가 감염병이라 나이 든 사람은 특히 위험하다고 해서 더 서둘렀다.

“잘하네, 우리 여봉.”

이현종이 칭찬하고, 이기자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소희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는 그런 이기자를 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랫동안 학대당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미소였다.

너무 늦지 않은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방치되었더라면, 아마 아이는 지금보다 더 악화되었을 테니.

“자, 그럼 우리는 기다리자고.”

“네.”

“김다현 회장 사람들이 이걸 잘 포장해서 그림 하나 만들어 줄 거야.”

“어떤 그림이 될까요?”

“나도 모르지.”

“그…….”

“뭐.”

“아뇨. 아니에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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