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22화 (822/1,303)

822화 계책 (4)

“제 아내는요? 소희는요!”

아이 아버지는 11시가 다 되어서야 병동에 나타났다.

아니, 병동이 아니라 센터에 나타났다.

수혁과 이현종 그리고 이기자를 비롯한 의료진이 대기 중이었다.

안대훈은 솔직히 이제 가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남아 있었다.

‘이런 것도 배워 둬야 해……. 그리고…… 저 아빠도 한패인지 아닌지 확인해야 해.’

안대훈은 기본적으로 좋은 의사라 그랬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사였다.

수혁처럼.

그래서 머리털 빠지게 공부를 했고.

다 빠진 지금도, 마음만큼은 단 한 톨도 마모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하여간 그렇게 대기하고 있으려니 이기자 교수가 앞으로 나섰다.

아침에 보았던 호호 웃는 할머니는 더 이상 없었다.

깐깐하기 그지없는.

평생 자기 커리어를 충실히 쌓아 온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묘한 아우라를 풍기기 마련이었다.

“어…… 네.”

급하게 뛰어 들어오던 젊은 사내는 그 위압감에 눌려 조용히 회의실로 따라 들어왔다.

철커덕.

아이를 담당했던 간호사가 문을 닫았다.

이기자 교수가 의식적으로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는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에 말없이 마른 침만 삼켰다.

‘대체 뭐지……?’

심각한 건가?

다른 곳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병원에서 분위기를 잡으니까 너무 불안했다.

‘설마…… 다 죽어? 그러면 안 되는데?’

특히 소희는.

그러니까 딸은 걱정이 더 컸다.

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끊임없이 병치레를 하고 있지 않나.

들어가는 병원비가 점점 만만치 않아지는 바람에 회사 내 출장 업무란 출장 업무는 죄다 맡고 있었다.

‘여보…….’

그사이 홀로 남은 아내에게는 또 얼마나 미안했던가.

아픈 아이를 홀로 간병하며 지새우던 밤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출장 업무도 쉽지만은 않았지만, 미안한 마음에 힘든 내색 한번 못하고 있었다.

“아버님.”

그렇게 자책과 걱정을 번갈아 가며 하고 있으려니, 이기자가 그를 불렀다.

“아, 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아…… 네.”

“우선, 소희는 지금 건강합니다.”

그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간호사가 소희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안겨서 들어올 줄 았았던 아버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소, 소희야?”

평소에는 하도 아픈 데가 많아서 그런가 잘 걷지도 못하더니, 지금은 숫제 잘만 뛰어 들어왔다.

“어떻게……. 아니, 감염…….”

“사실 감염으로 인해 격리된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자분…… 그러니까 아내분을 격리한 겁니다.”

“네?”

아버지는 달려든 소희를 들어 안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사이 이기자 교수는 말을 이었다.

그냥 말만 하진 않았다.

영상을 틀었다.

놀랍게도 수혁이 계책을 편 당일 영상이 담겨 있었다.

“원래 병동 CCTV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를 고소하셔도 좋습니다만…… 일단 보시고 난 후에 결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기자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이러한 계책을 대담하게도 즉시 계획할 수 있었다는 게 참 대단했다.

직접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참 자신을 닮았단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종이는 아니지……?’

숫기 없어서 고백도 못 하던 놈하고는 다르지 않나?

이기자는 수혁을 자의로 의학과 결혼한, 좀 이상한 애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상을 보면서도 그저 이런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실상은 어떻게든 연애를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다는 비참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기자 교수가 수혁에 대해 뭐라도 들을 루트는 이현종밖에 없어서 심히 왜곡되어 있었다.

“어머님께서 아이가 열이 난다고 보고하기 직전의 일입니다. 보시면…… 이마에 뭔가를 대죠?”

“어……. 이게 잘 보이지는…….”

“그래도 뭔가를 이마에 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죠?”

“네? 아, 네.”

“핫팩으로 예상됩니다.”

“네에? 아니…….”

아이 아버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게 바로 납득이 되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나.

오히려 수혁은 저런 반응이 있어서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어떤 거 같아?’

[전혀 모르는 얼굴입니다. 물론 제 분석이 100% 옳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봐도 그렇게 보이긴 해.’

[일단 지켜보기는 해야겠죠.]

이기자 교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 병원은…… 체온이나 산소 포화도를 원격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 통합진료센터는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이 많은 만큼 필수적으로 보고 있죠. 그 말은 곧, 아이의 체온도 병동 스테이션에서 보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보시면…… 안정적이죠? 밤사이 단 한 번도 열이 난 적이 없습니다.”

“어…….”

“헌데 어머니는 발열이 있다고 보고했고, 당시 간호사가 먼저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약을 주는 대신, 지켜보자고 했죠. 왜냐면 원격으로 보고 있는 체온이 더 정확하기에 그랬습니다. 딱 이마만 열이 있는 것도 이상했고요.”

이기자의 말이 계속될수록 아이 아빠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허나 아이가 안겨 있어 격한 반응을 보이진 못했다.

그사이 이기자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발열이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영상을 보면 또 뭔가를 대고 있죠. 근데 이번엔 좀 시간이 길었습니다. 아마 별다른 조치가 없고 반응도 없으니 초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기자의 얼굴은 그저 ‘침착함’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붉으락푸르락하는 아이 아버지의 얼굴과 정확히 대비되는 느낌을 주었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아과를 선택해 평생 가장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 온 이기자에게 이보다 끔찍한 병이 또 있을까?

심정만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아니라 이기자야말로 분노를 터뜨려야 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기자는 그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때 이수혁 교수가 회진을 돌았고, 당시 아이의 이마에서 이런 상흔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온전히 보이게 찍은 사진이었다.

이마에는 사각형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

“이것이 저희가 핫팩을 의심하는 정황 증거 중 하나입니다.”

“아니…….”

“센터장 재량으로, 현재 병동에 감염병 환자가 있다고 아이 엄마를 속인 후 격리했습니다. 아이 엄마가 인위적으로 아이를 아프게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기에 그렇게 조치한 겁니다.”

이기자 교수는 말하다 말고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아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참 갸륵했다.

물론 김다현이 여기가 위험할 만한 여지를 터럭만큼이라도 남기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도 허용하지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이현종은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노라고 이미 공언한 바 있었다.

“그렇다고 이걸 거짓말을…….”

“아이를 보세요, 아버님.”

“음.”

“아프다던 팔다리의 상처나 손발의 수포를 보세요. 어떤가요?”

“으음.”

아이 아버지는 여전히 아내를 믿고 있었다.

믿고 싶었다.

허나 아이의 모습이 이를 부정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이는 건강해 보였다.

아픈 아이 같지 않았다.

영상 통화조차 길게 이어 나가지 못했을만큼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는, 엄마를 한시도 못 쉬게 만들던 아이는 이제 없었다.

“아이 엄마와 격리시킨 결과입니다. 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아이는 치료를 받은 적이 없어요.”

“네? 병원을 그렇게…….”

“모든 투약을 아이 엄마가 관리했죠. 하필 예방 주사를 맞았던 자리에 염증이 발생해서 주사도 최소화하고 있었고요. 외래 베이스 치료라면 뭐 더더욱, 어머니가 백 퍼센트 관리했겠죠.”

“아…….”

“그리고 검사 결과를 보세요. 혈액 검사는 다 정상입니다. 근데 소변 검사는 아니죠. 보통 이렇게 나오려면 몸이 망가져야 합니다. 그럼 혈액 검사도 이상해야 할 텐데…… 정상이죠. 이유가 무엇일 것 같나요?”

“저는…… 전혀…….”

아이 아버지가 고개를 젓자, 이기자는 검체의 차이를 설명했다.

납득하는 얼굴이었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도 또한 섞여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 아버지에게 아니,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아이 엄마는 그야말로 헌신적인 엄마 그 자체였을 테니까.

아이 때문에 날밤 지새우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날이 가면 갈수록 초췌해져만 가는 모습에 모두가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네. 모든 정황이 이를 가리키고 있죠. 이제 남은 건 증거뿐입니다. 핫팩을 찾아낼 겁니다. 지금 병실로 가서요.”

“아…… 그……. 이거…….”

“힘드시면 여기 아이랑 있어도 좋습니다.”

이기자의 말에 아이 아빠는 잠시 소희를 돌아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이기자가 해 준 말을 종합해 보면 대관절 무슨 말이 되는가.

아내가 괴물이라는 얘기밖에 더 된단 말인가.

이걸 남의 말로만 전해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끔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가겠……습니다.”

“네, 그럼 가시죠.”

“지금요?”

“네.”

“그…… 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기자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켜 병실로 향했다.

나머지 의료진, 그러니까 수혁과 이현종 그리고 안대훈 등이 그 뒤를 따랐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초조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여전히 그 병동에 에볼라 환자가 있었다고 생각 중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피도 안 뽑아 가고 있긴 하지만.

하여간 태화 의료원이라는 병원이 하는 말이다 보니 신빙성은 차고 넘쳤다.

“들어가겠습니다.”

“아, 네.”

그렇게 들어선 인영을 본 아이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감염병이라지 않았나.

때문에, 지난 이틀간 들락거리던 이들 모두 방호복을 입고 있었더랬다.

“어…….”

“에볼라는 아닙니다. 안심하세요.”

“아……. 우리 아이는요? 소희는 어떻게 됐어요?”

“소희는 괜찮습니다. 다 나았어요.”

“네? 다 나아요? 저희 애가 그럴 리가 없는데요?”

당황하는 어머니에 비해 이기자는 차분했다.

그저 아이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치료에 잘 반응해서 지금 잘 놀고 있습니다.”

“네? 어떤…… 어떤 치료요? 아, 아주 특별한 치료가 있는 모양이죠? 칠성에서는 도저히 치료를 못 했는데요. 제가 지금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제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이제는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아뇨. 특별한 치료는 아니었습니다. 제일 처음 소희를 보았던 병원에서 처방했던 것과 같은 연고와 약으로 치료했습니다. 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극적인 호전을 보였습니다. 소변 검사도 다 괜찮아졌고요.”

“아, 아. 정말 감사…… 어, 뭐 하시는……?”

“역시 핫팩이 있네요.”

“네? 제가 손발이 차서 그래요. 수족냉증이라.”

“수족냉증이라 실내 온도 26도인 병원에 입원하는데도 팩이 필요하다는 겁니까?”

“네? 아, 네.”

“그래요. 지금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겠죠.”

이기자는 끝까지 담담했다.

비록 분노에 의해 얼굴이 부들부들 떨려 올지라도 지금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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