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화 방송 (3)
이현종은 적군에게 끌려간 겁쟁이 졸개처럼 벌벌 떨면서 이상한 말들, 그러니까 ‘제가 실은 프락치를 심었습니다, 칠성과 아선, 중앙, 경북, 전남 등등 존재하는 거의 모든 대학병원에요’ 뭐 이따위 말을 종알거렸다.
물론 별일은 없었다.
당연했다.
경찰들은 이현종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으니까.
“일단 가시고……. 아마 다시 부를 일은 없을 거 같습니다. 이거 뭐…… 또 부르면…….”
게다가 여론의 압박이 너무나 거셌다.
아닌 게 아니라, 잘못 건드렸다가는 경찰서 자체가 무너질 것 같지 않나.
때문에 일행은 이례적으로 경찰서장의 배웅까지 받을 수 있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심지어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인사까지 받으며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휴…….”
“아니, 너는 제가 다 책임진다고 큰소리를 그렇게 탕탕 쳐 놓고……. 들어가서 발발 떠냐?”
이기자 교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현종을 타박했다.
옆에 있던 변호사가 이현종을 변호하려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그 원래 경찰서에 들어가면…… 이렇게 됩니다.”
“나랑 이수혁 교수는 뭔데요.”
“두 분은 워낙에 그…… 대범한…….”
“아니, 그럼 말을 말던가. 아이구……. 내가 이거랑…….”
“그…… 네네.”
이기자가 계속 구박을 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이현종이 정상화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정신이 후루룩 나갔는지, 차에 탈 때도 거의 뭐 떠밀리듯 해서 탔더랬다.
솔직히 말해서 진짜 좀…… 병신 같은 모습이었다.
‘아빠도 귀여운 모습이 있네.’
[귀엽습니까?]
‘어, 안 그래?’
[그…… 뭐, 그렇다고 하죠.]
적어도 바루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수혁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뭐 특이한 경험 했다고 쳐야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경찰서 오겠냐.’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수혁은 워낙에 긍정적인 사람이니만큼 이것도 그저 경험이라 여기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특이한 경험이니 그리 엇나간 생각도 아니긴 했다.
반면 경찰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사실 별것도 아닌 일로 고소를 남발하는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기에, 아무 죄도 없이 끌려오는 피고소인을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마음속에도 이들 태화 일행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보통 새끼가 아니었다……. 그놈…….’
특히 안대훈을 취조했던 형사는 절대로 오늘 일을 잊지 못할 거 같단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조건 교수님이 옳습니다.
-아니 그러니까요……. 그냥 경위만 말씀하시라니까요? 저희도 그건 알아요.
-근데 감히 경찰서에 불러 수모를 줍니까? 이 불초……. 이 한 몸 불태워…….
-저기 박 형사님. 이 사람 태화 의료원 사람 맞습니까? 저 어쩐지 그 머리가…….
-지랄 말아. 의사 맞아.
그 눈.
광기에 서린 눈.
범죄자 중에서도 여간 독한 놈이 아니고서야 어디 그런 눈을 뜰 수 있다던가.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했다.
솔직히 요새는 조폭들 중에서도 저런 눈은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조폭은 없었을는지도 몰랐다.
형사인 자신조차 영화에서밖에는 못 봤으니까.
‘저 사람들이……. 대체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고소가 들어온 것도 있고,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던 것도 있고 해서 따로 알아보았더랬다.
특히 저 무리의 중심에 서 있는 이수혁이라는 사람을.
그랬더니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저 젊은 나이에 부센터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것도 대단한데, 그걸 오로지 실력만으로 땄다는 평이 있었다.
물론 원장에 센터장에 왈랑왈랑 다 붙어서 키우고 있긴 하지만, 불만 한마디 튀어나오지 못할 만큼의 천재라지 않나.
‘거기에 저런 광전사까지 있다니.’
물론 의사 무리에서 광전사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경찰 조직 내에서도 저만한 신봉자를 거느린 사람은 대개 청장까지는 무난하게 올라갔다.
‘기대가…… 기대가 되네.’
안대훈은 본인이 그런 엄청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저녁 식사 자리에 불려 가는 중이었다.
‘아오, 오줌 마려워…….’
경찰서에 갈 때도 긴장 하나 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긴장이 됐다.
‘김다현 회장님이…… 오신다 이거지.’
오너 일가가 아니면서도 최연소 태화 전자 이사에 올랐고, 그때 보여 준 지휘 능력을 인정받아 태화 바이오 사장으로 영전하고도 모자라 아예 바이오 그룹 전체를 이끄는 회장까지 된,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을 일개 레지던트가 만나게 된다니.
‘이 모든 것은 역시 교주님의 흥복이시다…….’
안대훈은 머리끝까지 벌게진 채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그런 안대훈 뒤에는 2년 차 우하윤이 있었다.
김다현 입장에서야 레지던트 3년 차나 2년 차나 그게 그거겠지만.
레지던트 입장에서 2년 차와 3년 차는 천지 차이 아니겠나.
‘아이구……. 치프도 아닌데 내가 회장님을…….’
아빠는 아선 그룹 사장이라도 만나 본 적이 있을까?
‘아……. 만나 보긴 하셨겠구나.’
기조실장이긴 하니까?
사장 정도는 만나 봤을 터였다.
하지만 김다현급의 인사는?
-야……. 우리 딸 출세했네. 부럽다.
아닐 거 같아서 문자를 보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칼답이 왔다.
세상에 딸을 부러워하는 아빠가 있을까 싶겠지만, 여기 있었다.
우창윤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출세에 진심인 사람이니까.
-통합진료센터에 매달려서라도 남아. 내가 봤을 때 앞으로 20년은 거기가 태화를 이끌 거야.
물론 아빠기도 해서, 딸을 위한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는 않았다.
‘그렇게 말 안 하셔도 남을 생각이거든요.’
하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답장했다.
-ㅇㅇ
그러곤 안으로 들어섰다.
“와…….”
놀라지 않으려고 했는데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름 없는 집이라더니…….’
재벌 총수를 비롯한 계열사 사장단은 아무래도 아무 데서나 회동을 하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무슨 입맛이 법당에 올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구설수가 문제였다.
당장 연예인들만 해도, 아무도 없는 시간에 오는 게 아니면 대관을 할 수밖에 없다던가.
특히 사치 비슷한 것이라도 한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미움을 살 수밖에 없는 집단인 재벌들은 이런 식의 식당을 애용하고 있었다.
[수혁, 이런 데는 얼마나 있어야 만들 수 있을까요?]
비단 하윤만 놀라고 있는 건 아니었다.
세태와 야합한 지 오래요, 세속적인 인공지능임을 표방하는 바루다야말로 눈이 제일 많이 돌아갔다.
‘꿈 깨라…….’
오히려 수혁이 그를 말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돈 걱정 없이 살고 있지만, 그게 어디 충분히 벌어서 그렇다던가.
돈이란 건 욕심을 부리자면 끝도 없이 필요하게 되는 법이었다.
수혁이 능한 건 그 욕심을 애초에 차단하는 것이었다.
워낙 없이 살았던 과거가 이를 가능케 했다.
[왜요?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면 이런 건 할 수 있어야지.]
‘아니…… 못 할 거 같은데. 딱 봐도 인마, 이 식당 이거 건물만 수십억은 되겠다.’
[그거 못 버나?]
‘인마. 내 돈 싹싹 긁어야 1억 좀 넘을 텐데.’
[왜 이렇게 돈을 못 법니까?]
‘와……. 나 교수거든? 연봉 높거든?’
[그럼 왜 못 사.]
‘이건 봉급쟁이가 살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야!’
수혁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인공지능 바루다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지른 후, 자리에 앉았다.
얼굴만 보면 이런 데 많이 와 본 사람 같았다.
실상은?
‘이렇게 앉으면 되나?’
-빅토리아 시대 인풋을 이용한 조언입니다. 꽤 품격 있어 보일 겁니다.
바루다와 연계한 사기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늦었습니다.”
좀 기다리고 있자니, 김다현이 사장단과 함께 도착했다.
예전보다 더 단호해진 말투를 갖고서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이제는 딱 봐도 회장님 같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소개 좀 해 주시죠, 센터장님.”
“아, 아아. 네. 여기 이 아리따운 분은 제 아내 되는 분으로 이기자 교수…… 억. 왜 때려?”
“하하하하하.”
경찰 앞에서는 설설 기더니.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높고 무서워야 할 김다현 앞에서는 농을 해 댔다.
“여기는 뭐 아들 이수혁. 아시죠?”
“알죠. 제 생명의 은인인데요.”
김다현의 이 말이 단지 빈말이 아님을 알아서 그랬다.
그 덕에 실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마음의 거리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우리 제자 1호, 안대훈 선생입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안대훈 선생. 듣던 대로…….”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김다현은 안대훈을 앞에 두고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 듣던 대로…….’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전해 들은 말은 많았다.
이수혁의 광신도, 광전자, 또라이, 천재, 의학을 위해 머리를 희생한 위인 등등.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과연 그럴 만하다 싶었다.
“듣던 대로…….”
그러나 들었던 별칭 중 어느 것 하나도 실례되지 않는 말이 없어서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인재죠?”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이현종이 거들었다.
딱히 바르게 거든 것 같진 않았으나, 하여간 김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되었건 들었던 말보다는 이게 나아서 그랬다.
게다가 안대훈을 보아하니 딱히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대부님.”
심지어 기뻐하는 듯 보였다.
‘그보다…… 대부? 여기 뭐 가족 기업이야?’
김다현은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됐다는 생각으로 우하윤을 돌아보았다.
“휴.”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안대훈에 비하면 아니, 비한다는 말이 미안할 정도의 외양이어서 그랬다.
“아마 내후년에 합류하게 될…… 우하윤 선생입니다. 아버지가 아선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화에 뼈를 묻겠다고 했습니다.”
“충심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말은 좀 이상하긴 했는데.
그래도 김다현은 웃을 수 있었다.
“그래요, 감사해요. 자, 그럼 드십시다. 여기 쉐프가 태화 호텔 현역이에요. 이렇게 우리가 따로 먹을 때만 오셔서 활약해 주시는데…… 재료비 제약이 없다 보니까 먹을 만하실 겁니다.”
그러곤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식사는 과연 훌륭했다.
재료비 제약이 없다는 말이 쉐프나 고객에게 있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려 주는 맛과 플레이팅이랄까?
“우선 센터에 관한 얘기를 드리죠.”
물론 인원이 인원인 만큼 생각 없이 먹게만 두진 않았다.
김다현 대신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실무진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역시도 직함은 사장이었다.
태화 생명의 사장.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서……. 지금 짓고 있는 외래 동에 확장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산은 일단 무한정입니다.”
“오…….”
“거기에 국제진료센터를 구비할 거고, 원격 진료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근데 그게 됩니까?”
“법제화 근거를 태화 법무팀이 만들어 두었습니다. 얘기 잘 통하는 의원들과 논의 중에 있습니다.”
“아하.”
“그거야 뭐 저희가 할 일이니……. 교수님들께서는 그냥 지금처럼만 지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