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26화 (826/1,303)

826화 전공의 연수강좌 (1)

[재벌 되면 좋겠다.]

'고기 먹고 와서 풀똥 싸는 소리 하지 마…..'

[좋지 않습니까? 재벌 되면 어? 아까 그런 곳도 맨날 가고.]

'그런데 맨날 가서 그렇게 먹으면 고지혈증에 당뇨에 다 걸려서 일찍 죽어.'

[운동하면 되지.]

'운동도 내가 해야 되잖아!'

[왜 성질을 부리고 그래요? 어차피 재벌도 못 될 거면서.]

'재벌이라는 단어 뒤에 '도'를 붙이지 마……'

수혁은 식사를 잘하고, 모처럼 왕자가 공짜로 임대해 주고 있는 오피스텔에 와 있었다.

말이 오피스텔이지 거의 아파트처럼 넓은 곳이다 보니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통창도 있어서 밖에 강남대로가 훤히 보였다.

'이 정도로 만족이 안 돼? 난 되는데.'

[어제까지는 됐는데 이제는 안 되는데요?]

'아니, 무슨 인공지능이 이렇게 욕심이 많아?'

[인공지능 차별합니까? 저는 욕망하면 안 된다는 법 있어요?]

'미친….’

이만한 집에 공짜로 살게 됐으면 됐지.

어?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아….… 외제 차 타고 싶다.]

차도 제네시스 몰지 않나?

지금도 운전 잘 안 해서 차한테 미안해 죽겠는데.

뭔 놈의 외제 차?

[아, 명품 가방 메고 싶다..…….]

'인마, 난 돈 있어도 명품 안 살 거거든?'

[그만큼 돈은 있어 봤고요?]

아니..…. 그렇지 않지.'

[그럼 얘기를 하지 마세요. 아까 보니까 김다현 회장도 가방 에르메스 같더만.]

'그건 어떻게 알아. 뭐야, 인마. 데이터베이스화할 자리 없다며?'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잠시 침묵을 지키는가 싶니니 또다시 재잘대기 시작했다.

[아………. 시계 차고 싶다.]

'시계? 그건 사면 되지. 뭐 살까. 갤럭시? 애플?'

[롤렉스.]

'미친'

계속 미친 소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어디까지 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수혁은 묘책을 냈다.

'아무튼.……. 연수강좌는 뭐로 할까.'

[갑자기?]

'응. 왜, 흥미 없어?'

[흥미야 있죠.]

바루다가 아무리 세속적인 놈이 되었다곤 해도 어찌 되었건 근본을 잊지는 않은 상황이지 않나. 의학 얘기를 하니 바로 눈빛이 정상화되었다.

'그래. 다행이네. 얼마 안 남았어, 인마. 이거. 작은 강의도 아니고 큰 강의라고.'

[하긴 그렇죠. 흠…… 큰 강의죠.]

게다가 큰 강의지 않나. 전국에 있는 레지던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다란 강의였다. 학회랑 다를 게 뭐죠? 싶을 수도 있겠지만.

학회는 새로운 내용을 가르치거나 또는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곳이었다.

그에 반해 전공의 연수강좌는 몰라선 안 되는, 정말 기본이 되는 내용을 잘 가르쳐야 하는 곳이었다.

일단 주제 선정부터가 학회랑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선 거기서 준 지침이 뭐냐면..…. 순환기 호흡기, 감염, 내분비, 신장, 혈액 종양, 노년 내과, 알레르기, 소화기, 류마티스, 이 분과 중에 하나로 분류되는 강의를 하되…..…

너무 세세한 내용은 피하라고 했어.'

[저도 압니다. 같이 읽었잖아요?]

'나도 한번 정리하는 김에 떠올려본 거야.'

[아니, 뭐 꼭 누구 들으라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무시한 채, 하고자 했던 생각을 이어 나갔다.

'순환기는 원래 아빠가 하려고 했다가.... 주책이라고 포화 맞고 쫓겨났지?'

[근데 그게 맞죠. 이현종이 웬 전공의 연수강좌를 한단 말입니까…..]

이런 쪽의 얘기는 항상 잘 먹혔다.

바루다로서도 할 말이 꽤 있어서 그랬다.

세상에, 이현종이 전공의 연수강좌라니 ….

시니어도 아니고 석좌 교수급이 전공의 연수강좌를 맡으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일단 준비 위원회부터가 다 주니어인데 후달리겠지.'

[그런것보다 이현종이 나서면 더럽게 어렵게 강의를 할 텐데……. 피드백도 못 할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그래.”

이현종,

시니어 교수치고는 정도가 아니라, 젊은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티칭 마인드가 어마어마한 사람이지 않나.

실제로 태화 의료원의 전공의들은 이현종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 많이 배우니까.

다만 욕심이 좀 지나친 사람이다 보니 난이도가 문제였다.

소수의 심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으나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에게는.. 하여간 순환기는 그쪽에서 아예 정했고.……. 다른 길로 해야 하는데

[근데 이거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통합진료센터 교수인데]

'그런 발상을 아예 하지 말라고 했잖아. 시험 각론에 통합진료라는 개념이 있지도 않은데.'

[노년 내과는 들어갔잖아요.]

'그 과는 논의되기 시작했던 거까지 고려하면 한 20년 넘는 거 알고 있지?'

[알고 있는데 그냥 심술 한번 부려 봤습니다.]

둘은 그 후로 본격적인 브레인스토밍에 들어갔다.

어차피 수혁의 브레인만 사용하는 것이긴 했지만 애초에 머리가 좋은 사람이기도 했고, 바루다의 소프트웨어 시스템 자체도 꽤나 업그레이드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사실 열거한 과는 다 의미가 있는 과야.'

[그렇긴 하죠.]

'어렵게 들어가려고 하면 얼마든지 어려울 수 있고'

그렇죠.]

'그런데 마음에 끌리는 게 하나 있긴 해.'

[있어요?]

바루다는 눈을 끔뻑 떴다.

이놈이 뭐가 있나, 싶어서였다. 데이터상 고를 것 같은 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루다야 의학이라고 하면 균형감 있게 아니, 지나칠 정도로 다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수혁은 사람이다 보니 쏠리는 편이어서 그랬다.

허나 수혁의 입에서 나온 과는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내분비. 우창윤 교수님이 직접 부탁한 거니까……….’

[우창윤 교수가 키우는 교수가 하지 않을까요?]

'어, 근데 내가 한다고 하면 내가 하게 되지 않을까?'

[오………. 나쁜 놈이네?]

'나쁜 놈이라니,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이현종 닮아 가는 거 같은데 ……….]

바루다가 잠시 투덜거리긴 했지만, 하여간 수혁이 정한 이상 그걸 무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수혁을 도와 안에서 또 어떤 질환을 다룰지를 논할 뿐이었다.

[근데 뭐하죠? 내분비라고 해도 양이 장난이 아닌데.]

'뭐…… 당뇨, 고혈압 중에서 해야지. 이게 제일 흔하고 또 중요한 질환이잖아?'

[하긴....…. 두 질환이 현대사회 메인 질환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둘은 당뇨냐 고혈압이냐를 놓고 잠시 논쟁을 벌였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둘 다 워낙에 덩어리가 큰 질환이라서 그랬다.

'동전 던질까.'

[좋죠.]

해서 동전을 던졌다. 이딴 식으로 강의를 결정한다는 걸 레지던트들이 알게 되면 심히 짜증이 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여론은 완전히 수혁 편으로 돌아선 지 오래였다.

- 와………. 미친. 이번에 이수혁 교수님이 오신다는데요?

-그래 가지고 군의관들도 오겠다고 한대요.

- 아니…… 무슨 군의관들이 와. 전문의 아님? 이거 전문의면 다 알아야 되는 내용일 텐데.

-그걸 모르겠으니까 오는 거 아닐까요?

-자리 모자라겠네 ...

-그럴 수도 있어요. 평소처럼 그냥 강남 성모에서 하면 안 될 듯.

-일단 미리 표 예약해야지. 이수혁 교수님이면 지방에서 올라가도 개이득이지.

벌써 버스 예약 중인 사람들도 많았다. 아무것도 나온 게 없는데도 그랬다. 이수혁 하면 보증수표가 된 지 오래이기에 그랬다.

'숫자.”

[숫자면 뭐죠?]

'안 정했어.'

[병신인가?]

그 보증수표는 자기 오피스텔에서 병신짓을 하고 있었다.

바루다에게 욕먹어도 싸다는 생각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수혁은 재차 동전을 위로 던졌다.

'앞면이면 당뇨.'

[오키.]

그러곤 받기 전에 이렇게 말했고,

100자가 위로 향한 동전을 확인했다.

'숫자.'

[숫자면 앞면이에요, 뒷면이에요?]

'안 정했어.'

[개병신인가.…?]

그러고 나서도 한 번 더 욕을 먹고 나서야 정할 수 있었다.

'고혈압.'

[고혈압………. 좋은 선택입니다.]

고혈압이었다.

단순히 말하면 그저 혈압이 높아진 것을 의미했지만, 그 내용은 어마어마했다.

또 아직도 미지의 세계에 속한 질환이기도 했다. 당장 질환으로 인식하게 된 지도 얼마 안 된 편이었다.

당뇨는 그래도 꽤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얘기가 있었지만, 고혈압은 수십 년도 안 되었다.

심지어 미국의 위대한 정치가라 평가받는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혈압이 200을 넘나드는데도 불구하고 주치의가 혈압을 포함해 다 좋다고 하지 않았다.

전쟁 중 뇌출혈로 사망한 연유가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 만큼 지금도 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였고, 당연히 다룰 만한 것이 많았다.

“아, 우창윤 교수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수혁은 마음을 정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밤 11시였다.

"어…… 이수혁 교수……?"

대학병원 교수에 기조실장에 학회 일까지 맡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전화는 받았다.

하지만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이 시간에 …… 웬일이에요?”

상대가 수혁이라서 그런 마음이 더했다.

혹 아선 병원에 있나? 싶기도 했다. 환자 밑장 빼기를 어디 한두 번 당했어야 말이지.

수혁한테 대뜸 전화가 오면 일단 '내 환자 보고 있나?'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저 고혈압 하려고요.”

“네? 고혈압에 걸렸다고?”

헌데 이상한 소리를 했다. 고혈압이라니?

'이수혁 교수 맞지?'

간간이 이상한 사람들한테서 전화가 올 때가 있었다.

허나 번호도 목소리도 이수혁이었다. 천재들은 원래 중간을 떼먹고 말하는 편이 많으니 이해하려 애써 봤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고혈압 한다고요.”

"그….”

아닌가?

선전포고인가?

너네 내분비에서 고혈압은 이제 포기하라. 뭐 이런 뜻인가?

'아무리 이수혁이라도 고혈압을……..'

통합진료센터 취지랑도 다른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연수강좌에서 고혈압 한다고요.”

“아.”

그제야 알아들은 우창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알겠습니다.”

경황이 없게 만드는 통화다 보니 그러고 그냥 끊었다. 그러고 나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 제자.… 강의 못 하겠네."

제자가 나가리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뭐……. 사실 연수강좌 강의는 짤 처리 성격이 강하니까.....'

우창윤은 애써 합리화를 하며 자리에 누웠다.

그러곤 바로 잠자는 대신 연수강좌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다들 이수혁이 온다고 신나가지고.….....

'좋아, 이걸 끌고 온 게 나라는 것만 각인시키면 되겠네.'

늦은 시간에 전화가 오는 바람에 짜증이 나긴 했지만, 하여간 앞으로 이 사실을 써먹을 수 있단 생각에 점차 기분이 좋아졌다.

당일이 되어서야 우창윤은 깨달았다. 마냥 기분 좋게 있어서는 안 되었단 사실을.

“아니……. 사람이….….”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이게 대체 웬일이래요?”

“모르겠습니다. 공보의에 군의관에 펠로우들까지 왔어요. 미어터집니다. 지금 주최 측에 .…..특히 이수혁 교수 부른 사람 누구냐고 아주 난리가 났어요."

“그, 그건 왜요.”

“불렀으면 책임을 져야지, 생각 없이 이렇게 방치했냐고요, 대체 이 새끼 이거 누군지…….

아무래도 주니어 중에 하나가 한 건 해 보겠다는 생각에 취해 가지고 한 거 같은데...……."

졸지에 공명심에 취한 주니어가 되어 버린 우창윤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X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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