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27화 (827/1,303)

827화  전공의 연수강좌 (2)

"아 씨…….. 이수혁 교수님 불렀으면 이렇게 되는 것도 거 뻔히 알았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애초에 전국에 있는 내과 전공의 다 부르면 거의 2천 명 아니야? 코엑스로 빌리던가.…."

“그러니까. 학회비는 다 받아 처먹고..…..."

“누구냐? 오늘 주최한 사람, 당직하는 애들 못 오고 너무 지방인 애들 못 오고 했는데도 이렇네.”

우창윤은 가는 곳마다 욕을 먹고 있었다. 수군대는 꼴을 보니 진짜 걸리면 죽을 거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복도까지 인산인해였다.

“교수님들은 다 들어가신 거예요?"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발표를 잘 끝마치는 것.

“아….. 아직 이수혁 교수님 못 오셨습니다."

"응? 아니 왜.”

특히 이 사달을 일으킨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수혁, 그가 키맨이었다.

근데 안 왔댄다. 우창윤은 식은땀을 줄줄 흘려 가며 물었다.

“아, 병원 회진 돌고 오느라고...…. 곧 오신다고는 했는데, 이거 .…."

우창윤은 책임자, 즉 주니어 교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그저 검은 머리들 뿐이었다. 빈 공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밖은 어떻지?”

“다르지 않습니다. 일단 주차가…… 지금 병원 측에서도 항의 천화가 오고 난리예요.”

고터 마리아 병원.

병원 자체도 빅 5로 묶여 불릴 만큼 잘나가는 곳이지만, 주말이면 학회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한 데다가 주차장도 일부러 꽤 널널하게 지어 놔서 그랬다.

듣기론 강당 대여료로도 꽤 쏠쏠히 번다고 했다.

주차에 식사까지 싹 다 병원 내에서 해결하게 하니 당연했다. 하지만 사이드로 하는 일이다 보니 규모가 아주 거대하지는 못했다.

“전화가 ……… 왜? 어차피 주차는 학교 주차장 밖에 못 쓰게 해 놨는데.”

“입구가 하나잖아요. 그나마 토요일이라 내원객들이 적다고는 하는데... 근데도 민원이 폭주한대요. 다시는 내과학회에 대관 인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으름장이라. 뭐 설마하니 진짜 안 하겠나 싶었다. 내과 학회가 여기 물주 중 하나이지 않다.

주니어 스텝이아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으니 후달리겠지만. 우창윤 정도 노회한 사람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협박이었다. 그보다 급한 건…….

“아, 존나 빡치네. 주말에 공부하러 왔더니 자리도 없어?"

“어떤 새끼야, 이거."

지금 눈앞에 있는 전공의들이었다.

얘네가 지금이야 새파랗게 어린 것들이지만, 몇 년만 지나면 어엿한 전문의가 될 몸들 아닌가.

개원을 하거나 페이닥터로 나서게 되면 회비로 도움을 줄 것이고, 대학에 남게 되면 실무진이 될 터였다.

어떤 식으로든 간에 이들의 지지를 받아야 나중에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일단 여기 남은 방 싹 빌린다고 해."

“네? 아니……. 앞으로도 안 빌려준다고 하는데…….….”

“그럼 그냥 들어가 있으라고 하고, 장비팀한테 실시간 송출하라고 해."

“네? 그게…"

“아, 그냥 하라면 해, 이런 경우가 뭐 없었는 줄 알아?”

사실 없었다. 우창윤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손에 땀이 줄줄 났다.

하지만 병원 경력이 길어질수록 남는 건 뻔뻔함 아니라던가.

천성부터가 뻔뻔함을 타고난 우창윤에게 이 정도 능청스러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지금 대행사도 우리랑 하루 이틀 하는 사람들 아니니까, 기술적인 어려움도 없을 거야. 미리 쓰고 나중에 돈 주면 되지 뭐."

“어……. 네.”

“나는 이수혁 교수 찾아서 올 테니까 여기 기다리고 있어, 아니, 시킨 일 잘하고 있어."

“네, 교수님.”

해서 우창윤은 까마득한 후배 교수를 수령에 밀어 넣곤 밖으로 나왔다.

“실례합니다.”

"아 어떤 ..... 오, 교수님. 네네, 지나가시죠."

“그래요. 네.”

전공의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남기면서였다. 속으로는 후달렸지만, 일단 그렇게 했다.

'이수혁 교수.…. 왜 전화 안 받지?'

전화를 계속 거는데 답이 없었다.

'설마……. 나 엿먹이려고 받아들인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의심이긴 했다. 세상에 교수가 학회 강의를 빵꾸낸다고?

물론 그런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진짜 자기 아니면 해결이 안 되는 초응급 상황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고, 아니면 본인이 죽었다든지………...

'죽었나?’

죽어? 그 이수혁이?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았다.

젊다 못해 어린놈이?

그것도 내과 의사에 신현태, 이현종이 강제 건강 검진을 해 대고 있는데?

“아, 우창윤 교수님.”

후달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한 열 통 정도 했더니 그제야 이수혁이 전화를 받았다. 열 받을 정도로 평온한 목소리를 하고서였다.

“지, 지금 어디예요?"

"네? 병원인데요?”

"어……. 어디 병원이요. 고터 마리아?"

고터 마리아라고 해라.

고터 마리아라고 해!

제발!

“아, 네.”

“휴, 어디예요. 내가 모시러 갈게.”

로비도 혼란스러웠다.

태화, 칠성, 아선과는 달리 로비가 좀 작게 설계된 병원이라서 그랬다.

거기에 전공의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보니 코앞에 있어도 놓칠 거 같았다.

“아, 저 지금 응급실인데요.”

"응? 응급실? 오다가 사고 났어요?"

지하철 타고 오지!  태화에서 여기 금방인데!

"아뇨, 들어오다가 환자 같은 사람을 봐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뭔 소리를 하는 걸까.  환자면 환자지.  환자 같은 사람은 뭐란 말인가.

'시벌….…. 하여간 천재 새끼들 이거.'

우창윤은 혼란스러움을 애써 뒤로하고, 응급실로 향했다.

일단 가서 데려와야 할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

'그래야 할 거 같아. 아니면 안 올 것 같아.'

다행히 우창윤은 이 병원에 학회 때문에라도 꽤 여러 번 와 봤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응급실로 향할 수 있었다.

응급실 내부는 여느 병원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웠지만 이수혁은 눈에 딱 띄었다.

아니, 옆에 있는 안대훈이 그랬다.

“옳지, 저기 있네.”

우창윤은 사람들을 헤치고 수혁에게 향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입원해서 골수 검사를 해 봐야 한다...... 이 말씀이시죠?"

갔더니 수혁과 마주하고 서 있던 의사가 대뜸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슥 보니 고터 마리아 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였다.

'이 인간…. 설마 또 남의 병원 와서 진료 중인가.'

말도 안 되는 오지랖이라는 생각부터 해야 정상이겠지만,

우창윤이 알기로 이수혁은 전과자 정도도 아니고 거의 그냥 상습범이었다.

“네.”

“그… 환자 증세 중에 체중 감소가 있다는 건.....…. 네, 알겠습니다.”

"그냥 체중 감소가 아니죠. 3개월에 10킬로나 빠졌습니다. 딱히 다이어트를 위한 노력은 없었다고도 진술했고요."

“그…… 그렇죠. 하지만.....…."

체중 감소.

아니, 체중의 변화는 의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소견이었다.

그중에서도 급격한 체중의 감소는 악성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렇게 젊은 남자면서 체격이 있는 사람은 당뇨가 그 원인인 경우도 많았다.

최근 국내에서 젊은 당뇨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도 하고,

당뇨 얘기 하시려고 하죠? 실제로 고혈당이기도 하니까요.”

“어……. 네.”

“네, 확실히 환자 혈당이 높죠. 하지만 혈당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턴 선생님. 그거 줘 봐요."

수혁은 정말이지 적극적으로 환자를 보고 있었다.

발표를 위해 정장을 입고 온 주제에 응급실을 누비고 있다. 이 말이었다.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안대훈과 우하윤 때문에 지체가 높아 보여서 더 이상해 보였다.

“저기, 이수혁 교수님. 이따 보고 지금은 강의하러 가면 안 됩니까?"

타이밍을 살피고 있던 우창윤이 나섰다.

자기 딸을 살짝 밀치면서였다.

'… 너 왜 그러니.'

애지중지 키웠더니 태화 사람이 될 줄이야.

물론 미래를 생각하면 저기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긴 한데. 너무 반대편에 선 느낌이 나서 배신감이 느껴졌다.

“제 강의 11시 아니에요?"

"그렇죠. 지금 10시 25분이고요. 그러니까 .……."

“걸어가는 데 10분 정도 걸린다 치면 25분이나 남았네요?"

"다. 다른 사람 강의는 안 들어요?"

"전공의 연수강좌 아니에요?"

수혁의 말에 우창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나.

수혁에게 학회도 어지간한 수준의 것이 아니라면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전공의 연수강좌 따위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봐야 했다.

“그, 그렇긴 하죠. 그래도..….."

우창윤은 문자를 확인했다.

- 교수님, 불만 폭주하는데요.....….

어쩌지 싶다가, 악마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곧 쉬는 시간인가?

- 네. 그래서 더 항의가…… 걱정이 됩니다. 10시 반부터 30분은 지옥일 거 같은데요?

- 아선 병원 유튜브 채널 라이브 지금 송출 가능한지 알아봐.

- 네....…? 무슨…… 그게 무슨 소리신지.

-아, 글쎄 알아보라면 알아봐.

일단 영문을 모르는 교수를 닦달해서 답을 얻었다.

- 각 강의실에서 바로 송출 가능하다고 합니다. 근데 유튜브 들어가도 라이브 없는데요?

- 지금 켰어.

- 지금요?

주니어 교수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단 말투였다.

하지만 까라면 까는 문화에 젖어 든 지 오래 아닌가. 해서 일단 연결부터 했다.

- 그리고 공지 띄워. 지금 각 강의실에서 이수혁 교수 진료 실황 중계한다고,

- 네? 환자 동의는 받으셨어요?

- 지금 받고 있어.

- 아니….

- 어차피 얼굴 안 나와. 괜찮아.

우창윤은 휴대폰으로 수혁을 찍고 있었다.

“이게 ABGA(동맥혈 가스 분석) 결과죠?"

“네.”

"pH 7.17 ………. 이 수치가 뭘 의미하죠?”

수혁은 수혁답게 쇼맨십을 보이고 있었다.

[카메라 들이대자마자 목소리 톤 바뀌는 거 실화예요.]

'응, 실화야.'

타고난 연기 실력을 갖춘 관종 아닌가..

심지어 그냥 관심이 아니라 잘난 척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진심을 다할 수 있었다.

"어…… 산성……?"

“그 외에 PaCO₂, 23mmHg HCO₃, 8.4mmol/L.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지표가 하나 더 있어요.”

언제나 그렇듯 수혁의 톤은 안정적이었다. 또 내용은 세세했다.

쉬는 시간을 기회 삼아 불만을 터트리려던 전공의들은 순한 양이 되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감탄했다.

"미친 ..….. 지금 보는 거야?"

“그런 거 같은데. 저기 이 병원 응급실이야."

“지금 가면 직관인가?"

“응급실을 간다고? 어차피 오실 텐데?”

“아, 그렇지. 하긴.....… 환자에게 민폐겠네.”

“어,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마.”

“몸 들썩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몸은 솔직한 주제에.”

“그건 그런데.”

우창윤은 그런 현장 반응을 고대로 수혁에게 읊어 주었다.

실시간 채팅이 달리고 있어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당직 때문에 못 올라온 사람들도 방송에 접속해서 댓글을 달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벌써 연락이 돈 모양이었다.

'좋아.'

수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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