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28화 (828/1,303)

828화 전공의 연수강좌 (3)

'됐다....….. 역시 예능계의 …… 아니지, 의료계의 블루칩….….'

우창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선 병원 유튜브가 열리고 사상 첫 라이브인 동시에, 가장 흥행하는 영상이 되어 놔서 그랬다.

세상에 인기 유튜버도 아니고 병원 유튜브에 실시간 시청자 수가 천 명을 돌파하고 있다니. 심지어 대다수는 큰 화면으로 영상을 보고 있음에도 이랬다.

자기 아이디로 접속해서 채팅이라도 하려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랬다.

“pH만 봐도 산증인지 염기증인지는 알 수 있죠. 어떻습니까?"

“어….. 산증입니다.”

“네, 산증의 원인에는 뭐가 있죠?”

응급의학과 의사뿐 아니라 영상을 보고 있던 레지던트를 또한 곧장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수혁이 들고 있는 종잇조각이 뭔가. 다름 아닌 동맥혈 가스 분석(ABGA) 결과표였다.

동맥혈이라고 하면 어쩐지 검사를 잘 안 할 것 같지만, 실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엄청 많이 하는 검사였다. 특히 내과에서.

“저거야 쉽지. 호흡, 대사."

당연하게도 거의 모든 레지던트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답했다.

응급의학과 의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호흡, 대사…….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쵸. 그럼, 이 환자를 보면 호흡 쪽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 아뇨, 아닐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대사성 산증을 볼 때 중요한 지표를 확인해 봅시다. Lactic acid.…… 젖산이죠. 보니까. 12.7mmol/L이네요."

"아......"

“상당히 증가해 있습니다.”

수혁은 살짝 발걸음을 떼며 말을 이었다.

그냥 가만히 서서 말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이편이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훨씬 유리한 면이 있었다.

[물 흐르듯 되는구만 ]

'어차피 뭐.…. 어려운 케이스는 아니니까.'

또 수혁은 환자를 보다 잘 살피기 위해 움직인 것도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환자는 꽤 아파 보였다. 급성으로 생긴 변화라기보다는 만성적인 질환의 결과가 예상되는 외양이었다.

이러한 외양에 지나치게 상승해 있는 젖산. 그리고 체중 감소. 수혁은 아까부터 이미 한 가지 질환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 다시 환자로 돌아옵시다."

“아, 네.”

카메라는 이제 수혁의 얼굴이 아니라 손을 잡고 있었다.

우창윤은 카메라 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심취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그 손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환자의 얼굴은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근데 어떤 새끼가 찍는 거냐? 수전증 있나?"

"그런 듯. 아…… 이런 거 기획했으면 오즈모라도 가져오든가.…….….”

“아니, 요새 뭐 많잖아? 뭐 일부러 현장감 주려는 건가?"

“거, 조용히 합시다. 말하는 게 중요하지."

"아, 네. 죄송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앵글 잡는 것 외에도, 카메라가 최대한 안 흔들리게 잡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부들거리는 화면이다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환자는 급격한 체중 감소가 있었죠. 그 때문에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한 정보가 많습니다.

원래 마른 몸이 되면 가죽 아래로 안의 구조가 대강 보이지 않습니까?"

다행한 것은 수혁이 진료를 쭉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된 게 말하는 것마다 흥미롭기 짝이 없어서, 불만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아니, 불만이 있어도 일단 참게 되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소한 화면이 아니라 이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이었으니,

"자……. 여기 경부 임파절이 꽤 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져 보면 거의 4cm 이상의 경부 임파절 매스(덩어리)가 있습니다.

물론 이 정도의 매스는 감기나 기타 다른 감염병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렇게 마른 상황에서는..... 보다 돌출되기 마련이다 보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죠. 하지만.”

수혁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곤 환자의 배를 살짝 뒤집어 갔다.

아직 환자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다 보니 매끄럽게 벗겨지지는 않았다.

허나 급격한 체중 감소 때문인지 뭔지 옷이 좀 헐렁해서, 벗기는 것이 유난히 어렵지도 않았다.

그 덕에 수혁은, 그리고 다른 시청자들은 금세 환자의 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얼핏 봐서는 그냥 엄청 말랐다는 인상만 주었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달랐다.

옷을 까기 전에도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그의 손은 망설임 없이 환자의 비장으로 향했다.

“비장의 종대가 관찰됩니다. 자, 다시 묻죠. 비장은 언제 커집니까.”

"어…. 어떤 출혈이 있거나...….”

"또는?"

“혈액 내에 비정상 혈구가 증가했을 때...…."

“그렇죠. 자, 그럼 종합해 봅시다. 환자는 급격한 체중 감소가 있고 경부에 임파절 종대가 있으며, 동시에 비장 종대가 있습니다. 뭘 의심해야 합니까?"

수혁의 말에 응급의학과 의사는 한 가지 질환을 떠올렸다.

'암......?'

그중에서도 혈액암인가 싶었다. 사실 다른 질환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질환이 더 흔하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심각해서 그랬다.  그렇다고 바로 말하는 건 좀 그랬다.

"음......."

환자 앞에서.  그것도 이렇게 젊은 환자 앞에서 암 얘기를 해?

해서 눈치를 보고 있자니, 수혁이 입을 막았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잠깐. 지금 뭐라고 할지 알 거 같은데....….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머릿속에 한 가지 질환을 떠올렸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의도했으니까요."

강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소름….”

"시벌……."

"야 너두?”

“야 나두.”

"어떻게 이걸 의도하지."

"모르겠어.”

당연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의도한 대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게 될 만한 소리란 말인가.

허나 강의장 안에서는 실시간으로 벌어진 일이었고, 때문에 소란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하지만 잘 뜯어 봅시다. 감염병이 더 흔하죠. 그리고 감염병도 종류에 따라 이만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질환들이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엔 해외여행이 일반화되어 있죠."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은 없지 않습니까?!

'가보자.'

[오.]

수혁은 바루다의 방해 공작을 가볍게 억누르곤 말을 이었다.

“동시에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도 급격하게 늘고 있죠.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던

감염 질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는 줄어들고 있던 감염병이 늘기도 하고요."

엄밀히 말하면 외국인들과 병을 주고받는 중이라고 보면 되었다.

외국에서 온 이들 중 특히 동아시아권에서 온 이들은 결핵 유병률이 높았다.

과거 대한민국 또한 결핵이 창궐해서 크리스마스실로 돈을 마련해야 할 정도였지 않나. 그 덕에 국내의 결핵 유병률도 올라가고 있었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유구한 회식 문화인 파도타기 때문에 외국인들 또한 간염이나 헬리코박터 등의 감염병에 노출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감염병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의사가 얼마나 많은 의심을

성실하게 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늘 유념해야 합니다.”

수혁은 말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슬금슬금 환자와 멀어지고 있었다.

꽤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있어서 카메라, 즉 휴대폰을 든 우창윤과 응급의학과 의사 또한 수혁을 따라 이동 중이었다.

엉겁결에 홀로 남게 된 환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도 수혁은 그저 지팡이를 짚고 뒤로 간 터라, 오래 서 있기가 힘들었나보다 싶을 뿐이라서 소리쳐 부르진 않았다.

“웃차.”

수혁은 그렇게 어떤 말을 해도 환자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한 거리까지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아주 멀지는 않았다.

응급실이란 곳이 워낙에 시끄러운 곳이라 좀 붙어 있어도 괜찮았다.

“이 환자에서 우리가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바로 젖산입니다. 이렇게 젖산이 튀어 올라가게 만드는 감염병은 드물죠.

더욱이 아까 열거한 여러 상황과 연관이 있는 감염병은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여기까지 봐야 타른 질환…... 그러니까 여러분이 의심했던 것을 떠올려볼 수 있는 겁니다.”

“다른 질환이라면.……."

응급의학과의 말에 수혁이 환자 쪽을 일부러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락틱 애시도시스(Lactic acidosis, 젖산 산증)를 동반하는 비호지킨성 림포마(악성 림프종)."

"어."

그 말에 다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졌다.

아니,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비호지킨성 림포마면 림포마지, 락틱 애시도시스는 뭐란 말인가.

한국말로 하면 젖산 산증인데 번역을 해 봐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간혹 비호지킨성 림포마에서 이 젖산 산증이 첫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아……."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상황이며, 응급하게 봐야 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저기 보면 제가 메모지에 써 놓은 것들이 있을 겁니다.”

“메모지요?"

응급의학과 의사는 대체 어느 틈에 그런 것을 했나 하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뭐? 언제?'

가뜩이나 촬영까지 하느라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보던 우창윤도 마찬가지였다.

“야! 뭐 하냐! 왜 화면 안 잡아 주냐!”

“존나 아마추어라 지금 아마 고개만 돌리고 있을 듯."

“미친놈이, 어디 레지던트냐?”

“몰라. 오늘 주최 어디지?"

“학회잖아. 인턴 불렀을 수도 있어. 원래 학회가 존나 짠돌이잖아.”

“그렇네. 진짜… 아휴. 개새끼들."

그와 동시에 우창윤이 들으면 참으로 억울할 만한 욕설이 마구잡이로 터져 나왔다.

그냥 말로만 떠드는 데 그치지 않고 채팅창으로도 떠들어 대고 있었다. 별 소용은 없었다.

우창윤은 이들 말대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응급의학과 의사가 넋 나간 얼굴로 들고 오는 메모지에 고개를 쳐박고 있었으니까.

"이게 …. 약까지 .…. 다.… 다....… 나와 있네요. 어떻게 ....."

"정확한 항암제는 조직 검사를 해서 염색한 다음에 결정해야 합니다. 거기 쓰여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에요."

“검사에…… 이게……. 이게 언제……….”

“옆에 보면 시간도 적어 놨을 겁니다."

" 10시 …… 15분. 교수님 15분에 여기 들어온 거 아니에요?”

“맞아요. 이미 처방 들어가서, 약도 들어가고 있을 겁니다.”

“허."

제갈량의 비단 주머니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모든 걸 안배할 수 있다고? 이게 사람인가?

'귀신인가?'

응급의학과 의사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우창윤의 폰을 보았다.

귀신은 카메라에 안 잡힐지도 몰라서 그랬다.

잘 생각해 보니까, 반대로 눈에는 안 보이고 카메라에는 보인다는 속설이었지만, 하여간 너무 놀라서 그랬다.

"와......"

놀란 건 우창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폰을 떨어뜨렸다.

덕분에 강의실에서는 수혁의 얼굴도 아니고 그냥 낯선 천장만 보고 있었다.

“미친놈이.”

“지금 대사 엄청 중요했던 거 같은데?"

"아…..… 쳐들어갈까."

“남의 병원 응급실에?"

“우리 병원이었으면 벌써 뒤집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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