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화 슈퍼스타 이수혁 (2)
“대동맥 박리는 물론 중요한 질환입니다. 하지만 내과적인 질환인가요? 내과적인 처치만으로 치료할 수 있나요?”
수혁의 말에 다들 말을 잃었다.
묵묵부답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다들 그저 수혁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의 말이 맞았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들었으니까.
“왜 말이 없죠?”
하지만 수혁이 이렇게 말하자 또 고민이 되었다.
'응? 아닌가?'
치료.... 가능한가?
말이 없냐고 묻는 게 꼭 뭔가를 추궁하는 것 같지 않다.
이루 말로 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중압감이 이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중압감을 해소하려면 뭐라도 답을 해야 하는데, 학생 때보다도 더 권위주의적인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온 레지던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분위기는 점차 무거워져만 가고 있었다.
“타입에 따라 다릅니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대머리 안대훈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우하윤이었다.
자세히 보면 안대훈이 팔꿈치로 우하윤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강의가 보다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나서라는 것이었다.
“어떤 타입이죠?"
수혁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태화에서 쿵짝 맞춰서 다 해 먹는단 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수혁의 생각과는 달리 일개 레지던트가 어느 병원인지까지 알려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알려지려면 안대훈 정도는 되어야 했는데, 아는 사람은 알 터였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타입 1. 2처럼 상행 대동맥을 침범한 경우라면 반드시 외과적 치료를 시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타입 3처럼 상행 대동맥을 침범하지 않은 경우라면 ... 추적 관찰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상행 대동맥의 침범 여부를 관찰해야죠. 내과 의사라면,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느새 화면은 넘어가 있었다.
세 개의 타입이 떠 있었는데, 지금 중요한 것은 내과적 처치인가 아닌가' 이기에 타입 3과 1. 2만 나누어서 보고 있었다.
"방금 들었던 것처럼 상행 대동맥에 침범이 있는 경우라면 ..….. 굉장히 위험합니다. 심장에서 피가 바로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혈관이 터져 나갈 수 있죠. 그럼 급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응급 수술을 해야 합니다.”
1. 2에는 붉은 화면이 입혀졌다.
수술을 하건 죽건 둘 중에 하나만 바랄 수 있는 질환이라서 그랬다.
허나 타입 3은 조금 달랐다.
“이 경우에도 수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수혁은 그렇게 물어놓고선 기다리지 않고 그냥 말했다. 딱히 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상황이라서 그랬다.
"원인이 해결되지 않을 때, 즉 고혈압이 지속되고 있을 때……. 이때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럼 이 케이스에서는 어떨까요?"
다들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고혈압에 대한 치료를 하고 있던 케이스였으니까.
그런데도 박리가 일어났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고혈압이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최근 연구에 의해 스마트 워치 등으로 혈압 재는 법이 개발되고 있죠. 하지만 임상적으로 써먹기에는 제한되는 것이 사실이고 또.….
이 환자 같은 경우에는 스마트 워치 이용자는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기존 혈압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원래 다니던 병원에
문의를 해 보니 너무 오래된 병원이라 아주 잘 관리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오래된 병원.
그중에는 아직도 수기 차트를 쓰는 곳들이 있었다.
그럼 아예 기록이 잘 남질 않아서 제대로 된 진료가 어려웠다.
물론 전자 의무 차트를 쓴다고 해서 다 잘되는 것도 아니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경우엔 의사가 매너리즘에 빠저 버리면, 관리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의심의 몫은 제 것이 되었죠. 온전히 제 것.”
수혁은 그런 병원이 아쉬웠다.
물론 대한민국이 너무 빨리 발전하다 보니, 여러 면에서 편차가 심하다는 건 인정하고 있었다.
이현종도 그러지 않았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수혁은 천재인 자신이 짊어지기로 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이 환자에 대한 고혈압 약입니다. 보면 약이 약하진 않습니다. 본태성 고혈압일 경우 해결이 안 되면 그게 더 이상합니다.
무엇보다 환자의 BMI를 보십시오. 20.2 입니다(20 미만일 경우 저체중), 체중을 더 빼라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그렇다면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요."
본태성 고혈압이란 말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 쉽게 말하면 원인 모를 고혈압이다 뭐 이런 소리라고 보면 되었다.
즉, 나이가 들면서 또는 체중이 늘어서 생기는 고혈압이 이쪽에 속했다.
그 외에 다른 고혈압도 있나 싶겠지만, 젊은 나이에 의학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은 대부분 일차성 고혈압이었다.
"일차성 고혈압입니다!”
다행히 태화 말고 다른 자리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한둘이 아니라 꽤 여럿이 외쳤다.
다행이지 않나. 그래도 대한민국 내과계의 교육이 개판은 아니라는 뜻이니,
'내가 힌트를 진짜 막 퍼먹이고 있긴 하지만 말이지,'
[이래도 모르면 사실… 죽어야죠.]
'그렇지.'
수혁은 그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일차성 고혈압입니다. 그렇다면 이 환자에 대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
“유념해야 할 것은 아직 대동맥 박리의 타입도 모른다는 거죠. 일단 사진을 찍읍시다. 엑스레이부터요.”
사진이 떴다. 흉부 엑스레이 사진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아 가슴 사진이네' 싶을 만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과 전공의 아닌가.
1년 차야 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를 수 있을 때니까 넘어간다손 치더라도, 그 위는 모르면 안 될 사람들이었다.
"역시 대동맥 박리 ...….”
“네, 종격동 확장이 아주 두드러져 보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동시에 환자 체형과 생김새를 관찰했습니다.”
수혁도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들이 이걸 안다는 사실에서 딱히 감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냥 사진을 넘겼다. 그러자 환자 사진이 떴다.
170cm 가량에 60킬로 정도 되는, 적당함과 마름 사이 어딘가에 있는 체형의 소유자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뭘까요."
"체격?"
“그건 BMI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분위기를 타서 외쳤다가 깨갱했다.
그러고 나서는 '음' 외에 다른 말이 튀어나오지 못했다.
물론 태화 애를, 그중에서도 안대훈이나 우하윤은 답을 알고 있었다.
수혁이 말은 지렇게 하지만 사실 저 자리에 안대훈은 같이 있었기에 그랬다.
우하윤은 엘리트 신도이니만큼, 모든 내용을 전달받았고,
하지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박리의 주요 원인이 고혈압인 건 맞죠. 하지만 환자의 나이를 보십시오. 너무 어리죠. 말판 증후군을 의심해야 합니다.”
“아…..… 말판…!”
"반드시 의심해야 해요. 말판은 반드시 의심해야 합니다. 이건 놓치면 안 됩니다.”
"아......"
“근데 아니죠? 어떻게 봐도 말판은 아닙니다.”
말판 증후군을 제대로 진단하려면 유전자 검사가 필요했다.
하지만 말판은 전형적인 외형을 갖는 질환이지 않다.
길게 쭉 뻗은 목과 팔다리, 그리고 큰 키에 작은 머리. 모델이 떠오를 텐데, 실제로 어느 직군보다 말판 유병률이 높은 직군이 모델이었다.
사진 속의 남자는 그냥 평범한 체형일 뿐 어떻게 봐도 모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역시 일차성 고혈압이 더더욱 강력하게 의심이 되는 상황이죠. 이걸 뒷단에 두고……..
환자에게 보다 급한 증상인 흉통과 방사통.….…. 즉 대동맥 박리로 돌아와 봅시다. 박리가 있다는 건 명확한 일이죠?
이제 타입을 구분해야 합니다. 수술이 필요한 타입이면 이런 고민은 제쳐 두고 수술부터 해야 하니까요."
수혁은 이렇게 말하면서 CT 사진을 띄웠다.
아니, 영상을 띄웠다고 하는 게 맞을 터였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CT가 돌아갔다.
그 덕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환자의 흉부부터 골반까지 쫙 볼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어...”
한번 돌아가서는 딱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어리둥절했다.
CT의 달인들도 아닌데 어찌 돌아가는 것만 보고 단박에 알아본단 말인가.
"모르겠구나. 음."
수혁은 중대장은 너희들에게 실망했다는 얼굴로 다시금 영상을 돌려주었다.
우웅.
일부러 돌아가는 소리를 넣어 놔서 그런지, 긴장감이 더했다.
"아…. 저기 쇄골하 동맥 나가는 부위 아래에서 벌어진다.”
“네, 방금…… 누구죠?"
“네, 저 아선 병원 박선주입니다.”
“아, 우리 예비 펠로우시구나.”
“네, 군대 갔다가 반드시 가겠습니다!”
두 번째에는 그래도 답하는 이들이 있었다.
박선주가 그랬다. 아선의 에이스. 우창윤 교수가 차기 주자로 뽑아 둔 아이.
'저 개새끼 저거.'
내분비내과 하라고 어제도 불리다 앉혀 놓고 얘기했는데 여기서 대놓고 충성 선언을 해?
사람 하나 뺏기는 걸 넘어서, 이선이 태화보다 못하다는 선언같이 들리지 않나.
문제는 다른 전공의들이 그런 박선주를 그저 부럽다는 눈으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댄다는 둥의 반응은 없었다.
원래 전공의들은 누가 의사 아니랄까 봐 젊은 꼰대가 수두룩한 집단 아니던가.
헌데 이렇다는 건, 정말로 부럽다는 얘기였다.
“근데 그것만 있나요?”
수혁은 맞다고 해 놓고, 질문을 던졌다.
'뭐가 더 있구나.'
'시박……. 뭐지?'
'뭘까.'
'뭐야?'
다들 웅성대기 시작했다. 지금 점수를 딴 박선주를 질시하던 애들부터 그랬다.
'아쉽구만…'
그 와중에 안대훈은 무릎을 꽉 쥐었다.
'선배……. 선배는 저거 다 알잖아요.'
'몰라? 나 그때 CT만 보고 맞췄어.'
'그래서 칭찬받았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남들 앞에서 받지 못했잖아. 이수혁 교수님의 옥음을 다른 놈들도 다...….'
'아…...'
우하윤은 이 인간이 왜 이러나 하고 걱정을 하다가, 자세한 연유를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미친사람이라니까.'
하여간 또라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 사이 영상은 두어 번 더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보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이 보이질 않았다.
특히 대동맥에 집중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본 것 외에 다른 걸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긴 그거밖에 없으니까.
“이 외에 다른 소견은……. 대동맥 박리가 아니라, 일차성 고혈압과 연관된 소견입니다."
보다 못한 수혁이 입을 열었고, 그제야 전공의들의 눈알이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몇 눈알이 수혁이 말했던 부위에 박히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박힌 건 박선주의 눈알이었다.
"어.… 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