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31화 (831/1,303)

831화  슈퍼스타 이수혁 (3)

"부신의 소견이 어떻죠?"

“좌측 부신에 3cm가 넘어 보이는 종양이 있습니다! 만약 부신피질 선종이라면.……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좋아요.”

“저 진짜 꼭 가고 싶습니다!”

박선주,

'선주야..... '

우창윤은 또다시 충성 선언을 하는 박선주를 보며 울먹였다.

‘강의를 잘하긴 해…… 근데 솔직히 저거…… 내분비내과에 와도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이거든……?'

다른 강의 중에 저러고 있으면 덜 억울할 거 같았다.

가령 뭐, 감염이라든지 하는 그런 과?

그런데는 칠성은 아예 비교도 안 되고, 솔직히 아선도 처졌다.

하지만 내분비는 어떠한가.

태화에 남아 있던 암 덩이 같은 놈 때문에라도, 태화의 내분비내과는 세 병원 중 최하위였다.

아니, 어쩌면 빅 5로 범위를 넓혀도 제일 아래에 있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저기 내분비보다는 우리가 잘하지 않겠냐? 이수혁 교수가 천재라도 말이야. 내분비 질환은...... 음.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막 가서 화도 내고 하고 싶은데.

'시벌..... 그럴 수가 없네.'

몇 번인가 수혁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 않나. 그것도 대놓고 도움을 받아서 아는 사람은 그 사실을 다 알았다.

해서, 우창윤은 속으로 삭이면서 동시에 욕만 내뱉었다. 그 사이 박선주는 착실하게 얼굴도장을 찍었다.

단지 수혁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다른 데 가면 좀 이상해지는 느낌이 될 것 같을 지경이랄까.

하여간 아선에서 완전히 떠난 박선주를, 우창윤은 둥지 떠난 아기 새 보듯 보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환자의 대동맥 박리가 타입 3임을 확인했고, 환자의 부신에 종양이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럼 뭘 해야 할까요?"

"약을 올립..….”

"올려요?"

“아닌 거 같습니다!"

누군가 외치다가, 수혁이 도끼눈을 뜨자 고개를 숙였다. 옆에 놈이 대신 아니라고 외쳐 줘야 했을 정도로 서슬 퍼런 눈이었다.

[수혁. 그렇게까지 봐야 해요?]

'어. 너무 화가 나는데?'

[사실 저도 너무 화가 납니다. 저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방구'

[인정.]

이유가 있었다.

세상에, 약을 올린다고 하다니. 종양이 있다고 바로 약을 올려?

아까 박선주가 한 말은 개똥으로 들었나?

설마 그런 건가?

"조직 검사가 됐나요?”

“아닙니다."

"그럼 조직 검사를 지금 해야 할까요?"

"음......"

수혁의 말에 다들 망설였다.

뭔가 종양이 있으면 조직 검사를 해야 하는 건 맞았다. 하지만 말투가 좀……

뉘앙스라는 게 있지 않나. 여기서 네 하면 혼날 거 같고 그랬다.

다들 레지던트들이다 보니 사람 눈치 보는 거 하나는 또 스페셜리스트 아닌가. 정확히 짚었다 이 말이었다.

“환자는 지금 대동맥 박리죠. 수술의 필요성 여부와 별개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케이스를 보건 정말 눈앞에 환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보셔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실력도 늡니다."

수혁은 그리 말을 하면서 조직 검사 장면을 보여 주었다.

당연히 이 환자에게 시행한 장면은 아니고, 예시였다.

"보시면, 일단 바늘로 찌르죠? 통증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통증이 있으면 우리 몸은 기본적으로 혈압이 올라요.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단순히 흰 가운을 입은 의사를 검사실에서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혈압은 오릅니다."

예시로 든 영상에서도 환자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딱 봐도 근육의 톤 역시 증가해 있었다. 순간 혈압이 얼마나 될까?

웨이트 트레이닝 때 혈압이 180을 넘나든다는 실험 결과가 있으니, 저 때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었다.

가뜩이나 대동맥 박리가 있는데 저걸 찌른다? 그건 검사가 아니라 살해였다.

“그러니 조직 검사는 옵션에서 제외해야 하겠죠. 대신 간접적으로 저 종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죠. 혈액 검사입니다.

부신의 종양이니까...... 종류 선정도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대동맥 박리까지 일으킬 정도로 혈압이 튄다면, 무엇일까.

무엇을 의심해야 할까. 부신에서 기원했다면 사실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알도스테론종을 의심해야죠. 혈중 레닌(단백질 분해 효소)과 알도스테론(부신 피질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수치를 검사해 보면 간단하게 확인 가능합니다.

보면…… 레닌은 0.47ng/mL/hr로 정상보다 낮게 나왔고(정상 범위 1~2.5), 알도스테론은 무려 467pg/mL가 나왔습니다.

누워서 쟀을 때 정상 수 범위가 대충 30에서 160 사이라는 걸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죠.”

이해가 안 가면 외워야 했다.

외우기만 한 지식도 환자를 살리는 데는 차이가 없지 않겠나?

적어도 내과 의사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수혁은 큼지막한 글씨가 떠 있는 화면을 보여 준 후, 말을 이었다.

“자, 이제 수치를 확인했고....... 현재 혈압도 확인했으니, 이제야말로 약을 조절해야 할 타이밍입니다."

수혁은 아까 말했던 전공의를 다시금 노려본 후 화면을 띄웠다.

“일단 대동맥 박리가 안정될 때까지는 타이트하게 잡아야겠죠. 당연히 알도스테론 수용체 차단제를 매일 50mg 사용하고,

거기에 더해 칼슘 통로 차단체, 베타 수용체 차단제, 안지오텐신 II 수용체 차단제를 투여하면서 봤습니다.

다행히 수축기 혈압은 약을 이렇게 쓰면서 110 이하로 유지되었습니다."

알도스테론종이 있는 상황에서 혈압 110 이하를 유지한다.

다분히 실무적인 내용이지만, 이것도 그리 쉬운 건 아니었다.

누구보다 뒤에 서 있던 우창윤이 제일 잘 알았다.

'쟤네 내분비내과 수준이 올라온 건가……?'

서효석인지 개나발인지 하는 놈이 있을 땐 진짜 개판이었는데?

그러고 있으려니 수혁이 역시나 궁금증을 해결시켜 주었다.

“태화 내분비내과 매니지에 따른 결과입니다. 아, 참고로 저희 태화 내분비내과는…... 센터 재정비를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났습니다.

우선 제일 위에 경북대병원 출신의 김강한 교수님이 계시고, 부센터장님으로는 엠디엔더슨에 계시던 닥터 요한슨께서 오셔서 세팅을 도와주셨습니다.”

우창윤이 원했던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개새끼가 아주 살뜰하게 병원 홍보를 하네.'

우창윤은 이게 그냥 전공의 연수강좌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만약 방송이라도 나가고 있었으면 어땠을까. 소름이 쑥 돋았다.

'이현종 교수님이랑 이수혁 교수가...... 그나마 방송에 관심이 없는 게 다행이야.'

환자 보는 데 미쳐 버려서 얼마나 잘됐다.

만약 다른 교수들처럼 저기 어디야 티비에 나가는 거 좋아하고 그랬으면 진짜 무서운 존재가 되었을 터였다.

이현종은 모르겠지만, 이수혁은 화면빨을 잘 받지 않나.

지금도 이렇게 멀리서 보면 잘생긴 거 같았다.

가까이서 보면 그저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하여간 6개월 정도 경과 관찰을 하면서 혈압 조절을 완벽하게 한 후에 환자의 부신 선종에 대해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바로 어제네요.

사진을 보시면...... 이건 이제 태화 외과팀에서 시행한 건데, 잘하시더라고요."

수혁은 계속해서 발표를 이어 나갔다.

영상이 살짝 떴는데, 수술 장면이었다.

요새는 대형 센터에서는 특별한 이유 없어도 녹화를 다 하는 편인데, 이건 가뜩이나 발표가 있다보니 더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소리를 들으니 더 일 수 있었다.

- 야, 이거 이수혁 교수님 요청이니까 잘 찍어.

- 원장님 아들이요?

- 너 뭐 과거에서 왔어? 부센터장님이잖아. 그리고 원장님 조카라고 해야지. 아들이라고 하면 인마…… 혼나.

- 아아. 맞네. 네네.

그렇게 떠들면서도, 외과 교수는 부신 위에 자라있던 3cm가 넘는 종양을 떼어냈다.

다 떼고 나서 길이 재는 걸 보니, 4.5 x 4.3 x 4.0 의 아주 거대한 덩어리였다. 무게도 무려 50g이었다.

"아무래도 당시 영상에서 본 것보다는 더 커져 있죠. 6개월간 자랐으니, 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간 병리 조직 검사 결과 다행핵을 가진 채로 조밀하게 배열된, 잘 분화된 세포 소견이 보입니다. 부신피질 선종의 아주 전형적인 소견이죠."

수혁은 그렇게 말하곤 PPT를 넘겼다.

거기엔 또다시 '원발성 알도스테론혈증'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 질환은 말 그대로 알도스테론이 과잉분비되어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완치는 방금 보신 것처럼 수술로 이루어지는데,

불안정한 상태 즉 이 케이스처럼 대동맥 박리가 있는 상황에서는 좀 더 기다렸다가 안정된 후에 수술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수혁의 말은 조곤조곤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 케이스를 고른 이유가 있었기에 그랬다.

“사실 이차성 고혈압 중 경도의 고혈압을 보이는 질환이자 합병증이 드문 것으로 보고되어, 의사들에게 어느 정도 무시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보고를 보면 진단이 안 되었을 뿐, 실제 악성 고혈압부터 지주막하 출혈, 신부전, 심근경색증 그리고 대동맥 박리 등의 주요원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진단을 놓쳐서, 환자가 이런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사망해 버리는 바람에 그간 경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유병률이 늘어나는 질환들도 있다.

물론 그중에는 별 의미 없는 질환들도 많았다.

굳이 알 필요 없는데 알게 돼서 기분만 나빠지는 질환들,

허나 알도스테론혈증은 그렇지 않았다.

이건 미리 알면 알게 될수록 그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영상 기술의 발달과 조기 검진의 확대로 진단이 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의사들이 특히 미래에 전문의가 되어 가장 열정적으로 일할 이곳에 있는 의사들이

오늘 이 질환을 머릿속에 새기게 되면 뭔가 달라질 거란 기대가 있었다.

'제발 좀 그래라.’

[그러니까요. 일부러 엄청 쉬운 거 골라온 거라구?]

바루다는 사실 그렇게 큰 기대는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는 게 맞았다.

바루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수혁의 영달 아니, 수혁이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이니까.

‘방금 좀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은데?'

[오해입니다.]

'영달……………?'

[다 뜻이 통하는 말이죠.]

그러다 수혁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님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현종 덕에 알게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혼자서 이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제일 좋은 건 역시나 전체적인 수준이 쭉쭉 올라가는 것인데, 오늘 그 일에 살짝 공헌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러한 질환이 이거 하나뿐인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른 과 의사들은 몰라도 돼요. 하지만 내과 의사는 달라야 합니다.

대학병원의 기둥이고, 또 더 커다란 기둥이 될 우리 내과 의사는 모든 질환을 각기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끊임없이 의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강의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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