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33화 (833/1,303)

833화 수혁의 주말 (2)

보육원은 서울에 있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타고 달려야만 했다. 이곳이 고터라서 다행이었다.

부우웅.

수혁은 카페에서 나온 후 곧장 차를 타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생각해 보니까………… 나 고속도로 타는 거 처음이네.'

[그렇네요. 뒤지는 거 아닙니까?]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러면서 속도 줄이는 거 보니까 겁은 나나 봅니다.]

'어, 근데 서두르긴 해야 해, 가서 자고 와야 될 수도 있어, 지금 가면.'

[자고 오죠, 뭐.]

'민폐일 텐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정말이지 처음 가는 길이었다.

간혹 수혁에게 전화는 왔다.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내가...… 원장님 자랑이긴 하지.'

보육원은 아무리 눈알을 희미하게 뜨고 봐도 시설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장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화를 안 낸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화는 많은 사람이었다.

'뒤지게 혼났어.'

[기억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꽤 미워했던 거 같은데요?]

'어, 그랬지'

무언가 잘못하면 어김없이 혼났다.

심지어 당시에는 상처로까지 느껴지는 말도 제법 들었다.

- 너! 밖에서 이러면 이러니까 애미 애비 없는 놈은 상종 못 한다는 말 듣게 된다고!

달리 말하면 애미 애비 없는 놈이란 얘기 아닌가?

너무 사실이다 보니 오히려 더 싫었다.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원장님은 정말로 원생들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보니, 나중에 행여 고아인 것이 흠 잡힐까 염려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수혁이 언젠가 한 번 밖에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앞에선 혼냈지만 뒤에선 당사자에게 쪼르르

달려가 돈까지 주면서 싹싹 비는 모습을 보며 알았다.

- 쟤가.....… 정말 좋은 아이입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제가 정말 단단히 혼을 내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무릎 꿇었다.

원생 앞에서는 그렇게 강건해 보이던 무릎이 털썩 꿇리는 모습을 보면서, 수혁은 정말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부모가 없어서 한스러운 생이 아니라, 부모가 없어도 저 사람이 있으니 괜찮은 생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매년 천만 원씩이라도 후원하는 거예요?]

'어? 어어. 뭐….. 난 딱히 달리 돈 쓸 일도 없잖아. 아직 결혼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근데 왜 익명으로 해요?]

'쑥스러워서. 나대는 거 같잖아.'

[나대는 거 좋아하잖아요?]

‘그….. 부정할 수가 없네. 근데 거기서는 좀 그래. 나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얌전한 사람이었다고. 특히 그 사건 이후로는 진짜.'

사건이라 부르고는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막 큰 사건도 아니긴 했다.

그냥 수혁이 주말에 원장님 지도하에 외출을 나갔다가, 시비 건 다른 놈을 한 대 때렸을 뿐이었다.

코피가 왈칵 터지는 바람에 수혁도 놀라긴 했지만.

사실 애들끼리 싸우다 보면 코피 한두 번 터지는 것쯤은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고아새끼라고 할 때는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흠]

'음?'

[점심 안 먹었네요.]

'그러니까. 배가 너무 고픈데."

[가서 걸신들린 듯이 먹을 작정입니까?]

'아니, 그보다 너 거기 밥 맛 없을까 봐 지랄하는 거 아니야?'

[사실 그렇습니다. 기억 속에 있는 거기 밥을 생각해 보니까……… 진짜 좀 그런데요?]

'응, 사실 그건 맞아.'

원장님은 좋은 사람이었다.

먹는 것에 돈을 아낀다? 그런 건 생각도 해 보지 않았을 게 뻔했다.

어떻게 아냐고?

원장님 애들도 거기 같이 살면서 똑같이 먹었거든.

맛이 없었던 건 그냥 원장님하고 사모님이 음식을 너무 못해서 그랬다.

'어떻게 고기를 넣어 만드는데……. 맛이 그러냐고……'

[감각에 대한 회상은 데이터화를 해도 역치가 높아서 잘 안 돌아가긴 하는데………. 하여간 당시

기억을 보면 진짜 의문이 들긴 드네요. 고기는 맹물에 넣고 삶아도 먹을 만한데.]

'몰라……. 그래도 영양은 충분했던 거 같아.'

[네, 재료를 보면 그렇다고 판단이 됩니다.]

고기에 신선한 야채, 생선, 계란 등. 그걸 넣고 볶았는데 왜 그런 맛이 났을까.

수혁도 요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그냥 해 본 적 있다 수준에 그치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오피스텔에서 가끔 뭔가 해먹을 때면, 적어도 그때보다는 나았단 생각에 의문만 강해졌다.

‘혹…… 뭔가 미각에 이상이 있으신 건 아닐까? 재료보다는 조미료의 문제 같긴 하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소떡소떡]

'응?'

[소떡소떡부터 입에 물리고 토의합시다. 예의가 없네.]

'아......'

수혁은 여전히 의학적인 토의를 하려고 한다면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벌써 회진도 돌았고. 응급실 가서 환자도 봤고,

강의도 하고, 심지어 한 시간 동안 팬 미팅도 했다.

거기에 더해 빈속에 커피까지 부어 가면서 책 얘기도 했다.

최조은 대표라는 사람이 어찌나 열정적이던지, 얘기가 길어져서 빵 한 조각 입에 넣지 못하고 또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원장님 얘긴데, 인마'

[내 원장은 아니잖아요.]

'정 없는 놈'

[기계가 정 있으면 스카이넷이지.]

'틀딱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수혁이 틀딱임. 아무튼 그럼.]

허나 보육원장이나 사모님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였다.

수혁이 아무리 바루다 때문에, 아니면 타고나길 옅은 공감력을 타고났다고 해도.

감사함을 아예 잊고 살아가는 비인간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그랬다.

[와……. JMT…..]

그래 봐야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이상 그걸 이길 수는 없어서, 일단 제일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서 소떡소떡을 밀어 넣었다.

바루다는 소시지와 떡의 조화가 이루어 내는 맛에 감탄하고 있었다.

뭘 먹어도 제대로 먹는 놈답게 아무 소스도 없이 먹었다가, 케첩만 뿌려서 먹었다가, 머스터드만 뿌려서 먹었다가,

둘이 섞어서 먹었다가를 차례로 이어 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실제 행하는 것은 수혁이었기 때문에, 맛이야 수혁도 보고 있었다.

다만 바루다처럼 온전히 집중하고 있지는 못했는데,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고민 때문이었다.

'소떡소떡.…. 말 그대로 소시지라는 가공육과 쌀떡을 번갈아 끼워 만든 음식이지.'

이게 뭐 요리 실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 싶을 만큼 간단한 조합의 음식이었다.

그러나 맛있었다.

케첩을 뿌리면?

더 맛있었다.

머스터드도 그렇고, 뭐 이런저런 소스를 더해도 그냥 맛있었다.

‘야, 저것도 먹어 봐.’

[네? 갑자기요?]

'먹기 싫어?'

[아니, 아니지. 먹어야지. 휴게소 오징어는 또 진리 아닙니까.]

바루다는 식충이처럼 그저 처먹고 있었다.

수혁이 협조적으로 나오니 신나서 더더욱 그랬다.

맥반석에 구운 오징어에 알감자 구이에, 그것도 모자라 아예 안에 들어가서 돈가스도 먹었다.

[개꿀]

바루다는 행복해했고.

'흐음.'

수혁은 마치 미식가라도 된 것처럼 휴게소 음식을 한입 한입 입에 넣을 때마다 고뇌했다.

'맛있어.'

[사망 선고라도 할 것처럼 심각한 얼굴 해 가지고 기껏 하는 말이 맛있어? 뭐 연기하는 거예요?

이상하게 여기 이수혁 스타일의 이성은 없는 거 같은데.]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보며 꼴값도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바루다는 포기한 지 오래지만, 수혁은 왜 남의 연애를 네가 포기하냐고 버럭 화를 내며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어서 그랬다.

노력이라는 게 좀 그래서 그렇지.

지금처럼 우수에 찬 눈으로 분위기를 잡는달까?

대화를 시작하면서 그랬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냥 무턱대고 휴게소 식당에서 이러고 있으면 그게 궁상이지 어떻게 우수란 말인가.

'지랄 마. 그런 게 아니라…...'

생각해 보니 휴게소 음식만큼 보편적인 재료로, 또 보편적인 조리법으로 만드는 음식도 없지 않나.

다시 말해, 이건 어디서건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는 얘기였다.

회처럼 신선한 재료가 들어갈 필요도 없고, 이현종이 좋아하는 파인 다이닝처럼 고급 식자재나 어려운 조리법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헌데 맛있었다.

맛있다.

이게 문제였다.

'분명 보육원 음식은…… 재료가 좋았어. 사모님도 요리에 열정이 있었고. 근데… 흠......맛이 없었어. 아니, 맛이 없다기보다……’

[괴랄했지요?]

‘그래, 괴랄했어. 무례한 표현이지만 딱히 그거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어.'

괴랄한 맛.

그 말은 곧 요리를 못한다는 것보단 이상하게 한다는 뜻이었다.

일부러 그럴 리는 없었다. 자기도 먹고 애들도 먹으니까. 애들이 난리 치는데도 바뀌지 않았다.

나쁜 사람도 아니고, 이상한 사람도 아닌데 그랬다. 예전에는 이상한 사람인가, 입맛이 이상한 사람인가 했었다.

하지만 수혁은 이제 의사가 된 몸이지 않나. 그것도 세계 최고의 의사를 향해 달린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수준의 의사였다.

"혹시 병이 있던 건 아닐까?"

[방금 소리 내서 말했는데.]

'아?'

[병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여간 관심은 가는군요.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수혁의 말에 바루다도 급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병.

질환이라는 말은 바루다에게 엄청 강력한 작용을 하기에 그랬다.

'어떤 병일 가능성이 있을까?'

[사실 미각은...... 굉장히 강력한 감각입니다.]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는 감각이긴 해.'

시각은 오히려 오인되는 경우가 더 잦았다.

청각도 그렇고. 환각이나 환청. 이게 다 시각과 청각의 오인 아니겠나?

감각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었다.

'보는 거나 듣는 거나 직접적으로 해가 되는 경우는 적으니까…. 역치도 굉장히 높지.'

가령 우리가 끔찍한 광경을 본다고 하자.

그 광경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그날 잠을 못 잘 수는 있겠지만. 죽을 가능성은 적었다.

때문에 우리는 종종 돈을 주고 끔찍한 광경이 나오는 영상을 보기도 한다.

청각도 아주 큰 소리라면 청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거 때문에 죽나? 아니었다.

허나 미각은?

이건 실수로 뭐 하나 잘못 먹었다가는 그대로 죽음이었다.

특히 원시시대처럼 무언가 정제된 음식이 아니라 그냥 먹어야 하는 시대라면 더더욱 그랬을 터였다.

[네. 때문에 미각에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은 굉장히 적습니다. 기껏해야 떠오르는 내과적

질환은…… 쇼그렌(건조증후군)과 같은 자가 면역 질환인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건 쓴맛이 더 강해지는 느낌 아닌가?'

[그렇죠. 구강 건조를 일으켜서…… 염증이 생기면 쓰니까. 또는 침이 적어지면 맛을 느끼는능력이 제한되고...... 가장 중요한 미각인 쓴맛만 남게 되겠죠.]

쓴맛.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자연 상태에서 쓴 음식은 대개 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해서, 미각을 대부분 상실하게 되더라도 마지막까지 남는 건 쓴맛이었다.

[일단 빨리 가죠?]

'오케이'

보지 않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억이라고 해 봐야 수년 전의 기억이니까.

해서 수혁은 액셀을 힘차게 밟아 보육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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