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36화 (836/1,303)

836화 무슨 병이지? (2)

“냄새라………….”

원장님은 흠 하는 소리를 내곤 부엌을 돌아보았다.

‘언제부터였더라……’

원장도 사모도 바쁜 사람이었다. 막말로 원장은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지 않나.

중학생까지는 심지어 과외 비슷하게 공부도 시켰다.

독립할 때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지식은 줄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지식은 누가 와서 아무리 사기를 치려 해도 가져갈 수 없는 종류의 자산이었다.

'근데도 시간을 내서 아이들에게 줄 간식이라도 만들었지.'

그것만 해도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보육원 애들이라고 해서 사춘기가 안 오는 게 아니어서 그랬다.

게다가 공부가 안 맞는 애들도 있었다.

그런 경우엔 개개인에게 맞춰서 상담을 해 주어야 하는데, 쉬운 일이겠나?

꼴랑 애 하나둘 키우면서도 곡소리 나오는 게 육아인데?

'시간을 안 내면 안 될 거 같아진 게...... 그래, 한 4년쯤 된 거 같은데.'

원장은 과거를 회상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 그렇게 말하니까 모르겠지만. 하여간 4년 전부터는 사모가 만드는 음식이 진짜 좀 그랬어. 근데 자부심이 있잖아.

그래서 뭐라고는 못하고…… 간식은 내가 따로 만들어. 애들이 그 시간 없으면 힘들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도 본인도 아니까 이제. 조리를 많이 안 해도 되는 건강식 위주로 차리긴 하는데…… 건강식은 애초에 맛이 없잖아.

덕분에 우리 애들이 건강하고 날씬하긴 하지만 재료에 비해서는… 모르겠어."

“그렇군요. 4년이라. 그전에도 솔직히 아주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는데요."

“어? 어, 그렇지. 근데 이제는...... 아이고. 이제 오네.”

원장님은 가까이 오는 부대찌개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냄새부터가 요상했다.

뭘 넣은 걸까? 뭔가 뿌렸는데, 이거.

“너 좋아하던 거다. 이거.”

아뇨.

아닙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안 좋아해요.

[그걸 입 밖에 낼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지?'

[그렇다고 이걸 입 안에 넣을 생각인가.]

'그렇지'

[하 시발.]

수혁은 눈앞에 놓인 부대찌개를 보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바루다는 욕을 하고 있었다.

[이걸 먹겠다고?]

‘우리는 한 몸이니까.'

[아……….]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함이었다.

먹어야만 하지 않겠나.

사모님이 이렇게 기대감 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데?

꿀꺽.

해서 수혁은 먹었고, 바루다가 바로 분석에 들어갔다.

[입원시키자, 일단.]

결론은 입원이었다.

'어…………. 그래야겠는데, 이거?'

수혁도 그랬다.

아까 분명히 장 봐 오는 걸 봤는데,

어지간한 밀키트나 가게에서 시키는 것보다 하여간 재료 면에서는 월등했거든.

근데 맛은 이게 뭐란 말인가. 이상한 것을 넘어서 뒤질 것 같은 맛이었다.

"여보 맛있네."

그 와중에 원장님은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 상황에서는 제일 나쁜 게 저 사람 아닌가 싶었다.

"정말? 좋네...... 그래, 냄새도 좋고."

사모는 그 말에 용기를 얻고 후후 웃으며 입에 넣었다.

표정을 잘 봤는데, 이쪽은 무죄였다.

정말로 맛을 모르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문제가 있군'

[그러니까요.]

'어떻게 병원으로 오라고 하지?'

[아프다고 하면 오는 거 아닙니까?]

'아니, 보통은 안 그래. 특히 이렇게 본인이 바쁘고, 별로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그렇다고'

[음.]

바루다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수혁은 고민에 빠졌다.

20년 전부터 있었던 두통이 최근 심해졌고, 4년 전부터는 확실히 악화된 것 같다.

음식을 다시 먹어 보니 역시나 후각 또는 미각에 심각한 손상이 있어 보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음식을 만들 수 없었다.

아니 만들 수는 있지만, 저렇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남한테 줄 수는 없었다.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일단 음식이 문제인데……'

수혁은 아까 오면서 본 원생들을 떠올렸다.

확실히 애들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 있었다.

시설뿐만 아니라 다달이 들어오는 돈도 늘어난 모양이었다.

분명 다른 직원들도 있었고?

하지만 전반적인 음식 관리는 사모님이 하고 있었다.

"사모님."

하여간에 수혁은 질병이 머리에 꽂혀 버리면 다른 게 안 보이는 사람이었다.

해서 질렀다.

사모는 한창 잘 먹다가 수혁을 돌아보았다.

"응?"

“두통 그거. 한번 저희 병원 와 보시면 안 될까요?"

"응? 얘는 무슨 이런 걸로 대학병원에 간다고. 아니야. 괜찮아."

그러곤 괜찮다고 했다.

허나 수혁은 그사이에 스쳐 지나간 사모의 표정을 읽었다. 아니, 바루다가 읽었다.

[두려움이 있군요.]

'그래. 오래된 증상이니까………. 게다가 두통이고 검색해 보셨을 거야.'

말로는 바쁘다, 별거 아니다 라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다던가.

혹 이게 큰 병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었다.

문제는 사모라는 사람의 캐릭터였다. 그가 택한 인생을 돌이켜 보면 대강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가시밭길이라는 걸 딱 알 수 있지 않나.

그럼에도 걸었다는 건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집쟁이라는 증거도 되었다.

“원장님. 하루 이틀이면 검사 다 돼요. 밥할 사람 없으시면 그건 제가 구해 드릴게요. 그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어요."

고집쟁이 설득해 봤나?

해 봤으면 알 텐데, 이게 진짜 소모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의사 입장에서 병원 안 가겠다는 환자를 꼬시는 건 거의 불가능이었다.

물론, 쉽게 가는 방법이 없는 건 또 아니었다.

또 다른 고집쟁이를 고용하는 것.

여기서는 원장이 그랬다.

“그, 그래?”

“네, 밥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거죠."

"어, 어어어."

일단 남이 한 밥을 먹을 수 있단 사실에, 원장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두통도 별거 아니겠지만, 하여간 한번 CT나 MRI로 보면 안심이 되고요. 이거야 뭐 제가 거기 교수니까 빨리 찍을 수 있어요.

비용도 제가 한번 알아볼게요. 지원받을 방법이 있을 거예요."

게다가 안심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도 적지 않았다.

합리적이지 않나.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시간 좀 내서 검사를 받아 보는 게 나을 터였다.

게다가 원장은 아까 수혁의 얼굴을 면밀히 관찰했던 바 있었다.

'분명히...... 이야기하다가 좀 심각해졌던 지점이 있었어.

음식도...... 그래, 이게 단순히 입맛이 이상하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맛은 아니야.'

지금도 그렇지 않나.

입 안에 맴돌고 있는 이 맛은 이승의 맛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승의 맛일까?

그럴 거 같지도 않았다. 죽은 사람도 다 입맛이 있을 텐데.

거기다 대고 '니들은 이런 거 먹지?' 이러면 화낼 것 같았다.

"그래, 당신 그럼 한번 시간 내서 가자. 우리 수혁이 온 김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니, 별거 아니라니까?"

"별거 아니라는 건 당신 생각이잖아."

"내 몸이니까 내가 제일 잘 알지.”

“아니. 여기 의사 선생님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해?”

싸움이 벌어졌다.

수혁은 잘됐다 싶어서 뒤로 물러났다.

“일단 두 분 얘기 나누시는데……… 저는 한번 가 보시는 걸 강력하게 추천해 드려요.

그리고 사모님, 원장님도 이참에 서울 나들이 가신다고 생각하세요. 저한테 효도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셔도 좋고요."

원장에게 잔뜩 힘을 실어 주고 나서였다.

불공정 대결을 설계한 셈인데, 알 바 아니었다.

[수혁이야말로 권모술수에 능하군요.]

'사람 살리기 위한 건데 그럼 이렇게 해야지'

[뭐...... 명분은 있죠. 사실.]

'그러니까. 난 잘못한게 없어.'

[음.]

바루다가 좀 찜찜해하긴 했지만.

하여간 결과는 좋았다.

대신 일할 사람?

구하는 것도 일사천리였다.

“대훈아,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한 사람이 필요한데."

"교주님 .......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시다니요. 광영...... 광영입니다.”

“아니, 난 미안한데. 이런 말을 해 볼 사람이 너밖에 없어, 삼촌이 사업하신다면서."

"이런 과업을 어찌 삼촌 나부랭이에게 맡기겠나이까. 이 짐은 제가 맡겠나이다."

“말투가 어째 점점…………”

“걱정은 붙들어 놓으십시오! 제가 안대훈입니다."

"하아."

한숨은 나왔지만.

믿음은 갔다.

이놈은 지가 휴가를 내서라도 땜빵을 매울 놈이니까.

심지어 잡기에도 엄청나게 능한 놈 아닌가.

듣자 하니 음식도 잘한다 들었다.

'일단됐고.'

[됐어요? 전화 한 통 하고?]

'안 될 거 같냐?"

[아뇨, 될 거 같습니다. 근데 이게 갑질 아닌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그게 그런 식으로……. 요새 이러다가 신고당하면 난리 나요.]

'신고할 거 같아?'

[아뇨.]

대훈이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한 사이, 수혁은 그저 고민을 이어 나갔다.

'하여간…………. 두통을 유발하면서 후각을 날렸고, 저렇게 진행이 느린 병'

약간 어이없이 얼렁뚱땅 넘어가 버린 느낌이었지만.

바루다도 진료에 있어서는 거의 미친놈 아닌가.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놀아날 수밖에 없었다.

[비강 내 종괴는 없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코를 봤다고 하니까요.]

'아니, 그것도 확신은 하기 어려워. 왜냐면……… 후각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을 테니까.'

[아.]

'일단 가서 후각이 어떻게 된 건지 보고……… 검사를 해 봐야겠지. 다만 네 말대로 비강 내 종괴일 가능성이 적긴 할 거야.

20년이야 20년. 그 기간이면 아무리 성장이 느린 종괴라고 해도 내시경으로 보이지 않겠어?'

[20년 전에는 그냥 입맛 이상한 사람이었다가 4년 전부터 비로소 진짜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음. 그것도 그렇긴 하네.'

둘은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의견을 나누면서 안내받은 침대로 향했다.

보아하니 애들 수가 늘어나면 받으려고 미리 만들어 놓은 시설 같았다.

아래에 책상이 있고, 위에 침대가 있는 구조의 침대 네 개가 한방에 들어가 있었다.

'태화에서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이거.'

건물도 그런데 시설물들도 하나하나가 다 좋은 물건들이었다.

일단 2층 침대로 향하는데도 삐걱대는 소리가 없었다.

전에는 잘 때 뒤척이기만 해도 삐걱댔는데.

'이번에 돌아가면 정식으로 감사 표시 해야겠다.'

바루다를 탑재하고 막 잘 나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가 잘나서 열심히 해서, 아니면 바루다 덕이라고만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참 운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 운이.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안대훈, 우하윤 그리고 김다현까지.

가까이 지내게 된 사람 중에 악인이 있던가.

아니, 악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좋은 사람들뿐이었다.

원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과소평가하고 있던 것이었다.

'참...... 나도 잊고 있던 곳을 나도 모르게 챙겨 줄 줄이야.'

수혁은 모처럼 따뜻한 마음을 안고 잠에 들었다.

아래쪽에서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지만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내일이 되면 잘되어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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