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39화 (839/1,303)

839화. 효도 (3)

김효열은 이비인후과 의사다.

이비인후과는 안과와 더불어 대표적인 감각을 보는 과다.

아니 사실 눈에 밀려서 그렇지, 이비인후과야말로 청각, 후각, 미각이라는 오감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과다.

'음……….'

때문에 다른 과와는 고민하는 지점이 좀 남다를 때가 있었다.

생각보다 감각이라고 하는 게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그러했다.

'후각은 좀 덜하지 않나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막상 감기가 되었건, 비염이 되었건 간에 이유로 후각이 없어져 본 사람은 알 터였다.

와 이거 없어지니까 진짜 불편하구나.

더 골때리는 건 감각이 없어지는 것보다 더 불편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감각 이상이었다.

"어, 조영상 교수."

김효열 교수는 집에서 쉬고 있을 조영상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안한 마음 따위는 없었다.

왜?

김효열이 더 위니까.

그것도 상당히.

이과 교수, 즉 귀를 보는 교수인 조영상 교수는 이 인간이 왜 전화했나 싶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공손한 어투로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너네 메니에르(내이에 발생하는 질환)에서 이명이나 어지럼증이 너무 심하면 수술로 기능을 아예 없애 버리기도 하지?"

김효열 교수는 안부를 묻는 대신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창밖을 돌아보니 이수혁을 비롯한 교수 넷이 서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건 뒤에 서 있는 안대훈이었지만.

하여간 대머리까지 해서 도합 다섯 명의 눈총을 받고 있다 보니 마음이 급했다.

"어...... 네. 이명은 근데 청각을 없애도 머리에서 남는 경우가 있어서요. 보통은 어지럼증 때문에 수술을 하죠.”

“아, 그렇구나. 음. 아이 시발.”

“네?”

급하다 보니까 그로서는 드물게 욕이 나왔다.

아니, 사실 사회생활을 어지간히 한 사람이라면 혼자서도 욕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나.

심지어 지금은 통화 중임에도 욕이 튀어나왔다.

김효열이 지위가 낮은 사람이었다면 조영상도 시원하게 욕으로 응수했을 텐데.

하필 김효열은 같은 과에 10년도 넘게 차이가 나는 시니어였다.

“아, 미안. 그...... 이명이 청각 소실되고 나서도 남는 기전이 환통하고 비슷한 거지?"

“비슷하다기보다는...... 감각의 차이일 뿐이고 거의 같죠. 요새는 다행히 그런 류의 환자들에게 치료를 진행하기는 합니다.

다만, 환통은 오히려 시각적인 자극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는 데 반해 이명은 그게 좀 어렵습니다."

"그래?"

“대신 이명에는 인공와우라는 기적의 치료가 있죠.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는 하지만……

어차피 그것까지 고려하실 정도로 심한 분은 뭘 희생해도 이명만 없으면 살겠단 분들이 대부분이라서요."

"흐음."

"그런데 왜 그러세요?"

조영상은 이 양반이 뭐 지인이 아픈가 싶었다.

새삼스러울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원래 병원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전화를 많이 받게 되지 않던가.

자신에게는 별거 아닌 지식이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되기도 한다는 걸, 의사가 아니더라도 전문가라면 다들 한 번쯤 느껴 본 적이 있을 터였다.

“아니, 지금 후각 신경에 슈바노마가 생긴 환자가 있어서 보고 있는데."

"네? 응급도 아닌데 지금 병원이세요? 지인이신가?"

"지인은 아니고...... 은인이야.”

"은인이요?"

은인?

현대 사회에 은인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있던가?

그런 건 낭만 넘치던 시절에나 쓰던 말 아닌가?

"어, 그런 게 있어. 이현종 교수님이랑 연관된 일이야.”

"아아. 바로 이해했습니다."

고민하던 조영상은 이현종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인간이라면 무슨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효열은 쓸데없는 질문이 사라졌음에 안심하면서 급히 물었다.

보아하니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게 뭔가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놈들 같으면 나가서 '원래 진료라는 게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저 새끼들 중 일부는 진짜 번개처럼 진료를 보지 않나.

그 실력으로 이비인후과 환자들도 몇 도와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닥치고 진료나 봐야 했다.

"나야 사실 성형이랑 비강 내 종양을 잘 보는 거지… 후각 자체는 아니란 말이야. 알지? 무슨 말 하는지.”

“알죠. 비과도 무궁무진한 영역이죠."

“어, 그렇지. 근데 이현종 교수님이 그런 걸 이해해 주진 않을 거 아냐.”

“그렇죠. 이해 안 하실 분이죠. 이비인후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과 아니냐고 대놓고…….”

조영상은 울분을 감추고 중얼거렸다.

이현종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내과도 아닌데 이비인후과에 왜 분과가 필요하냐는 망발을 지껄였을 때의 일이었다.

신현태가 다급히 입을 쳐 막았지만 들을 사람은 다 들었다.

“하여간 자네는 근데 감각에 대해 스페셜리스트잖아. 귀 중에서도 이명을 주로 보고. 얼마 전에 뭐 만들어서 GE에 팔지 않았어?"

“아……. 네, 뭐. 그렇죠.”

“지금 부탁받은 환자가 후각 이상을 보여, 슈바노마가 있으면서......"

“후각 이상이라는 게…… 후각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시군요?"

하여간 조영상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김효열의 말대로 완전 전문 영역이라서 그랬다.

이쪽으로만 따지자면 병원 전체에 그만 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

이수혁이라는 괴물이 손 걷어붙이고 달려든다면야 또 모를 일이 되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가 최고였다.

“응. 아니야. 냄새를 이상하게 맡아."

"그 정도가‥………?"

“말이 안 될 정도야. 그냥 반대로 맡는 것도 아니고...... 아까 한번 이수혁 교수님이 들고 온,

환자가 만드셨다는 음식 먹어 봤는데...... 이건 안 돼. 이런 건 만들면 안 되는 음식이야."

“아...... 그럼 그런 감각은 사실 소거하는 게 더 낫긴 할 겁니다."

한 사람의 감각을 소거하는 행위.

이게 의사에게 기꺼운 일일 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귀는 두 쪽이 있는 데 반해 후각 신경은 하나였다.

아니, 콧구멍은 두 개지만 붙어 있어서 하나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조영상 교수는 소거를 주장했다.

“그러고 나서도......이상 냄새가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

거기에 대해서 토를 달 생각은 없었다.

다만 걱정은, 이명처럼 환후가 남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조영상 교수는 김효열 교수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없다고 단언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뇌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 너무 많으니까요. 다만

가능성이 이명처럼 높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지. 사실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명은 림빅(Limbic)이라는 감정 중추를 지나기도 하고…… 사실 소리가 날 때 한해서 이명을

듣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소리가 없을 때 들리죠."

"아....."

“그에 반해, 지금 이 환자는 있는 냄새를 이상하게 맡는 거죠. 제 생각에는 소리를 듣는 기전과

냄새를 맡는 기전 사이에 차이 때문인 거 같은데요."

“기전……. 아, 소리는 전동인가?"

“네. 진동이 뭐……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분자가 들어와서 자극이 되는 냄새와는 좀

다르죠. 훨씬 헷갈릴 여지가 많아요. 청각은."

김효열 교수는 조영상 교수와 통화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말로 감각의 스페셜리스트가 할 만한 말이지 싶다고나 할까?

“게다가 후각은 여러 데이터를 봐도 환후에 대한 케이스는 없었던 거 같은데요? 만약 그 후각이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면 아예 제거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게다가 슈바노마라면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뭐, 네.”

"좋아. 좋아. 그래, 주말 잘 보내고. 내일 보자고."

“네, 교수님.”

김효열 교수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뭐야. 검사 결과 해석하는 데 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려."

"전문의 자격증 가라로 딴 거 아냐?"

"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효열이 너 뭐 집에 우환 있냐? 통화는 갑자기 왜 해?"

그 즉시 신현태, 이현종, 이수혁, 조태진이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 냈다.

아니, 질문을 한 건 이수혁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의문문을 가장한 비난이었다.

‘그래, 이 하이에나 같은 놈들.’

약한 모습 보이면 그저 똥구멍부터 물어뜯어서 잡아먹을 생각이나 하고,

김효열 교수는 평소라면 공포스러웠을 이 광경에도 후후 웃을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엔 완벽한 치료 플랜이 있지.'

이 정도의 치료 플랜은 심지어 수혁이라 해도 생각해 내기 어려울 정도의 플랜이었다.

적어도 김효열은 그렇게 생각했다.

"후각 검사 해 봤어요? 이게 해석이 얼마나 어려운데. 하여간,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그 결론 그거 기다리다가 목 빠지겠네. 빨리 털어놔 봐."

“우선 환자분은 지금 후각 신경에서 기원한 슈바노마에 의해......  이상 후각을 보이고 있어요.

쉽게 말하면, 냄새를 이상하게 맡아요.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예 슈바노마를 다 제거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후각이 소실될 겁니다."

덕분에 김효열 교수는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듣고 있던 교수들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종양이 있으니 제거를 해야 하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후각이라는 감각 하나가 소실된다면 어찌되는 걸까?

“저기, 근데.”

뒤에 있던 안대훈이 나섰다.

“어, 그래."

"제가 알기로 감각이 소실되면 머리에서 그 감각을 보상하기 위한 작용의 일환으로…..

환통이나 이명 등의 증상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놈은 감각에 대해 사유해 본 적이 있구나'

왜 그랬을까.

한낱 내과 놈이.

솔직히 감각이라고는 통증밖에 관심 없는 놈들 아니던가.

이비인후과 교수 입장에서는 그런 내과가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 와중에 이런 질문을 하다니..

통합진료센터라서 그런가.

"어...... 그렇죠. 근데 감각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아까의 김효열이었다면 당황했을 터였다.

질문만 날카로운 게 아니라, 질문 뒤에 이어지는 나머지 교수들의 눈빛 때문에도 그렇게 됐을 터였다.

이 인간들이 주말에 할 일 없이 여기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각 과의 대가들 아닌가.

어찌 보면 하이에나가 아니라 사자 무리일 수도 있었다.

“환시는 약물에 의해 머리가 망가졌을 때 나타나죠? 눈이 먼 다음에 나타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건 왜 그럴까요."

"아......."

지금은 김효열도 여포였다.

“시각적 자극은 아주 강렬하거든. 애매하지가 않아요. 미각도 그렇고, 후각도 사실 그래요.

시각보다도 더 확실한 자극으로 촉발되는 게 후각 아닙니까? 어떤 물질의 입자 때문에 냄새를 맡는 거잖아요?"

"오.....…..”

“때문에, 이건 소실된다고 해서 환후와 같은 이상 감각이 발생할 여지가 거의 없어요. 그러니 수술해서 제거만 하면 됩니다."

"오......"

그의 논리는 듣고 있던 모두를 감복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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