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40화 (840/1,303)

840화 효도 (4)

“근데 말이야."

이현종이 턱 밑을 긁었다.

김효열을 뻔히 바라보면서였다.

김효열은 그런 이현종을 보면서 긴장했다.

'완벽하지 않았나?'

솔직히 이현종에 비해 처지는 거지, 김효열도 태화 의과 대학을 나와서 멀쩡히 교수 하는 아주 잘난 사람이었다.

심지어 코 성형 학회나 수면 무호흡 학회에서는 한 자리씩 해 보기도 했다.

허나 이현종을 앞에 두고 있다 보니 마른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그 수술, 네가 할 수 있는 거야?”

“네?”

“수술을 네가 할 수 있냐고."

"음."

그러다 딱 수술 얘기가 나오니까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머리 건드리는 수술인데……. 저게 되겠어? 너 이비인후과잖아."

"음. 그렇긴 하죠. 근데 접근은 우리가 해 줘야 할 거 같은데…….”

"조인트 오피가 된다 이거지?"

“네.”

"그럼 신경외과도 오라고 하자.”

“아...... 네. 지금 아마 물멍 카페에 있을 겁니다."

"교수란 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멍하니 물만 보고 있어?"

“나중에 한번 가 보시라니까요. 힐링돼요."

김효열 교수는 혼나면서도 일단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신경외과의 교수 하나도 팀에 합류했다.

이제 사모가 마주하고 있는 의사는 총 일곱이었다.

생전 처음 오게 된 대학 병원에서 의사가 우글거린단 느낌을 받게 될 줄이야.

'이게 자식 덕 본다는 건가.'

사모는 생경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늘 퍼다 주기만 하던 사람이 무언가 받게 되었으니 당연했다.

“조인트 오피로 진행하게 되면……. 어렵지는 않아?"

이현종은 신경외과 교수와 김효열 교수를 앉혀 놓고 물었다.

둘은 뭔가 심문당하는 기분이었지만 김히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은인이라고…………?'

대신 사모를 돌아보았다.

그저 허름한 옷차림의 아주머니였다.

아니, 아주머니라기보단 할머니에 가까워 보였다.

기껏해야 이제 겨우 60이 넘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심지어 얼굴도 까맸다.

그동안 햇볕에 그을릴 일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대체 어떤….?'

"지랄 말고 집중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늦게 온 신경외과 교수가 분위기를 파악 못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해서, 김효열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푹 찔렀다.

물음표가 뜬 그의 얼굴을 보며 김효열이 속삭였다.

‘모르긴 해도 이수혁 교수 엄마 같은 사람인 거 같으니까……. 그냥 닥치고 최선을 다하라고.'

'아……'

그러자 신경외과 교수도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현종 교수의 직접적인 지인이라면 이보단 덜 신경이 쓰일 터였다.

하지만 이수혁의 중대 은인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뭐 하나만 잘해도 못해도, 저 미친놈들이 한데 모여 지랄을 할 테니까.

'아니지……? 이미 지랄하고 있는 거 아닌가? 김선웅 교수님..…이런 기분이셨군요……'

정형외과 김선웅이 돌연 떠올랐다.

술만 마시면 신현태, 이현종, 그리고 조태진 욕을 해 대는데 솔직히 좀 지겨웠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고 보니 김선웅이야 말로 참된 인격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면 되게 순화해서 말했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엽니다."

“눈썹 밑으로?"

“네.”

"흉터 안 남아?”

“남긴 남죠. 근데 눈썹이 있어서 잘 안 보여요. 그렇다고 이마 라인 따라서 들어가면…...아시다시피 너무 멀다고요."

"흐음. 그래, 그다음?"

지금도 봐라.

김효열 교수는 때아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회의실에 서서, 개발새발 손으로 그린 그림을 짚어 가면서.

준비가 너무 개판인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현종이 정말 갑자기 해 보라고 시켰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해서 접근하면……… 이다음부터는 신경외과죠.”

"어, 나와."

"네."

물론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단지 직급이 위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다들 눈이 많이 돌아가 있었다.

'우리 수혁이를 키워 주신 분!'

'내 아들을 키워 준 사람!'

'신의 대모……'

각기 생각은 달라도 품고 있는 감정의 총량의 차이는 별로 없다 보니,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오직 광기뿐이었다.

“이렇게 하면……. 영상에서의 소견이고, 이게 사실 안에 들어가면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크게 뭐가 잘못될 여지는 적습니다.”

"여지가 없어? 아니면 적어."

"그...... 의학이라는 게…….”

“감히 내 앞에서 의학을 논하나?”

"아니, 그게.”

광기에 쫄아서 떠들어 대던 신경외과 교수는 잠시 욱했다.

'교수님도 심혈관 중재 시술할 때 부작용 설명할 거 아닙니까?'

해서 훅 하고 쳐다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죽는다…… 내가 죽어.’

이글거리는 여러 눈을 마주해서 그랬다.

정작 이수혁은 그냥 일반적인 보호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놈들은 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대머리는 너무 무서웠다.

자칫 잘못하면 손에 들고 있는 샤프로 대가리가 찍힐 거 같았다.

“없게 하겠습니다.”

“그래. 대 태화 의료원 교수가 그 정도 자신도 없니.”

“네네."

"그럼 수술은 내일 7시인가?"

“네? 저 내일 연구………… 연구인데요?"

“저도요."

이현종의 말에 김효열과 신경외과 교수 모두 눈을 흩 뜨고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주말이 날아가고 있는 것도 억울한데, 연구 시간까지 날리겠다고?

이건 선을 넘어도 지나치게 넘는 일이었다.

그때 나선 것이 신현태였다.

“정확히 무슨 연구하고 있지?"

"네?"

"그......"

“내가 알기로 요새 연구 활동이 뜸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연구 시간이 너무 과하게

주어지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원장인 나로서는 피할 수가 없네.”

"수술하겠습니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현종에 비해 부드러운 사람일 뿐, 수혁을 앞에 두고 있을 때만큼은 또라이가 되지 않던가.

그렇게 수술이 결정되고, 사모는 긴장했다.

“아니……. 갑자기 내일 수술이라고? 이틀만 쉰다고 했는데……?'

수술도 두려웠지만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도 태산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돌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않나.

이미 심적으로는 어미가 된 그녀로서는 물가에 둔 애들 생각에 심히 불안했다.

"사모님, 이거 봐요. 잘 지내고 있대요."

수혁은 비록 부모가 되어 본 적은 없었지만,

사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정작 안에 있을 땐 사무적으로만 대해서 잘 몰랐다가 밖으로 나와 이현종이라는 아빠가 생기고

보니 저 원장과 사모도 속으론 수혁을 아들처럼 여겼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단지 너무 사려 깊은 사람들이다 보니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해서 수혁은 안대훈이 보냈다는 사람들이 보내온 사진과 영상을 보여 주었다.

“아...... 되게 신났네."

"네. 뭐 방학이죠. 놀 텐데."

“공부해야 되는데.”

“하루 이틀은 쉬어도 돼요."

"넌 쉬면서 한 줄 아니?"

"저야 뭐..…. 지민이? 걔도 안 쉬고 있겠죠. 할 놈이 하면 돼요. 공부는. 사모님은 일단 내일 일만 생각하세요."

"어…… 아이구, 근데 이게."

“두통도 없어질 거고...... 냄새가 이상하게 맡아지는 것도 사라질 거예요."

그 후로도 수혁은 얼마간 사모와 있었다.

위로를 위해서였다.

걱정?

그런 건 별로 되지 않았다.

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태화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였다.

게다가 그가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이현종과 신현태가 달달 볶고 있지 않나.

“아니…… 제가 이걸 지금 왜 공부해요……. 저 집에 갈래요."

“저도요. 저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저기 저분은 애가 스물이 넘어!"

둘은 지금도 잡혀서 공부 중이었다.

내일 있을 수술에 대비해서.

황당한 일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이걸 또 봐요? 저 이제 다 외우게 생겼어요.”

"외워야지! 외우지도 않고 수술을 해? 안 되겠어. 더 해."

"시발놈아 말을 왜 그렇게 해!”

“제 말은 문장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우게 생겼다 이거죠…….”

“그 정도는 다 해야 해."

허나 풀려나는 일은 없었다.

'김선웅 교수님...... 이제 술자리에서 뭐라고 안 할게요‥…'

‘이 미친놈들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재활까지 마무리하신 겁니까……'

'그래서 살이 10킬로가 빠지셨구나……'

'그 후에 요요로 20킬로가 찌셨고……'

둘은 그렇게 진짜 문장을 하나하나 다 외우고 나서야 풀려났다.

풀려난 후에도 집으로 가지는 못했다.

그냥 당직실에서 쓰러져 잤다.

7시 첫 수술에 들어가려면, 집에 갔다 올 시간이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수술장에도 들어오겠다고……?'

'벌써 뒤질 거 같다……'

내일이 두려워서 그랬다.

그리고, 그 시간은 금세 찾아왔다.

사모는 긴장한 얼굴로 수술실 입구에 내려가 있었다.

"후......"

강단 있는 사람이지만,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땐 다 소용없는 법이었다.

특히 머리 수술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여보. 힘내. 별거 아니래."

원장의 말에도 용기가 샘솟지는 못했다.

“후…….”

"괜찮을 거예요. 사모님."

수혁도 그리 위안이 되진 못했다.

“걱정하면 안 됩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네?"

“저희가 진짜 최선을 다했고, 또 최선을 다할 거거든요. 그러니까 안심하십시오."

"아…….”

김효열과 신경외과 교수 콤비는 좀 달랐다.

말투가 상당히 이상하기는 한데, 하여간 뭔가 결의가 느껴진달까?

‘아니……. 좀 화가 난 거 같기도 하고?'

설마 내가 걱정하는 모습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걱정하니까 얼이라도 받았다.

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여간, 덕분에 걱정은 사라졌다.

"자, 드가자."

뒤에 있던 이현종의 말과 함께 수술장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도, 머릿속에선 딴생각만 하게 될 정도로 안심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안대훈은 엉뚱한 걸 배웠다.

'의사가 화를 내면 환자는 안심하는군... 좋아.'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안대훈을 지켜보다가, 수혁은 잠시 뒤로 빠졌다.

수술방에 따라 들어가도 시원찮을 마당이었으니 퍽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 김효열과 신경외과 교수는 심심한 배신감마저 느꼈다.

'저 새끼가?'

'어디 가? 사람을 이렇게 피 말려 놓고?'

정작 잘못한 건 이현종, 신현태인데 그랬다.

수혁이라고 해서 두 사람의 눈빛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주 쌍욕을 하는데요?]

‘어…. 이건 뭐 너 없어도 알겠다.'

워낙에 노골적이다 보니 모르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뒤로 빠져 조태진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다구요?"

“아……. 알파태아단백이 너무 높아."

"얼마나요?"

"384ng/mL."

"허......"

알파태아단백은 한 자릿수로 나와도 8보다 높으면 좀 높네 해야 하는, 대표적인 종양표지자 중 하나이지 않나.

그게 384라니.

수혁은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원장님…….'

진짜 문제는 사모가 아니라 원장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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