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41화 (841/1,303)

841화.  원장님 (1)

"아마......간암이겠죠?"

수혁은 어두운 얼굴로 조태진을 향해 물었다.

조태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직은 모르지. 종양표지자라는 게…… 아주 절대적이지는 않은 거니까."

"음......그래도 수치가 이게…….”

"어, 그래서 너한테도 말해 준 거야."

"원장님께는요?"

"아직 아직 그렇게 말하기에는…… 확실하진 않아서."

사실 조태진도 안 좋은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AFP (간암 세포에서 검출되는 단백질)가 나름 그래도 종양표지자 중에서는 꽤 오래된 녀석 아닌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고 다 괜찮은 놈이란 얘긴 당연히 아니었다.

다만 오래 살아남았다면, 그만큼 오류가 적을 거라는 근거가 되었다.

"그럼 지금은 뭐하고 계셔요?"

“어......어제 급하게 관장하고......오전에도 관장 진행하고 있어. 아마 지금쯤 다른 검사 들어갔을 거 같은데?"

"그럼 일단 가 볼까요?"

"그래. 영상도 찍고 해야 되긴 하니까."

수혁은 수술실 안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태진과 함께 밖으로 향했다.

수술실 복도에서 쑥 하고 사모가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였다.

“안녕하세요. 자, 이제 마취할 건데요…… 숨 크게 쉬고 계시면 됩니다."

수술장 안에서는 곧장 마취가 시작되었다.

원래 같으면 교수들은 위에 있거나 중환자실 회진을 돌고 있고, 인턴이나 레지던트만 있는

상황에서 수술방 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살짝 텀이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집도의만 와 있는 게 아니라 숫제 원장에 이현종까지 들어와 있지 않나.

왜인지는 몰라도 공부하러 나가야 하는 안대훈도 들어와 있었다.

북적대는 분위기 속에서, 마취과 교수는 서둘러 사모의 의식을 꺼트리고 옆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턱.

인투베이션용 플라스틱 관을 받아 목에 꽂았다.

'음. 잘 들어갔지?'

사모는 그리 살집이 있는 편도 아니고, 기도 근처에 별다른 질환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숙달된 마취과 교수에게는 어려움이 있을 수가 없는 구조란 얘기였다.

허나 긴장은 피할 수 없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지 않나.

게다가 이수혁 교수의 은인이라고 들었다.

'안대훈……저 친구 말이면 확실하지.'

몇 번인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 않나.

과가 과이니만큼 업무에서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 그냥 지인이 이수혁 교수에게 고침을 받았더랬다.

다른 병원에서는 원인도 알아내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대단한 은혜였다.

"그거 넣고 뭘 그렇게 뿌듯해 하냐……?”

“형. 저게 다 마취과 고유의 기술이지. 형한테 심장혈관 뭐 해 놓고 뿌듯해한다고 하면 좋아?"

“저 양반은 심장 못 찌를 거 아니야. 근데 인투베이션은 나도 꽤 한다구?”

“그런 얘기가 아니라……아, 정신 나간 노인네가 중얼거리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마취해요."

신현태는 시비 거는 이현종의 입을 틀어막고 뒤로 빠졌다.

사실 둘 다 그냥 닥치고 나가 주는 게 답이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 아빠, 삼촌. 저는 원장님 보러 가니까…… 사모님 좀 잘 부탁해요.

수혁에게 이런 말을 들었으니까.  조카의 부탁이라니.

우리 수혁이가 다 좋은데, 뭔가를 부탁하는 일은 잘 없지 않다.

사실 보육원 임시로 봐 줄 사람 구하는 일에 안대훈을 써먹었다는 데 좀 실망했던 참이었다.

나나 형이나 별로 도움이 못 되는 건가 싶어서 그랬다.

그래도 내가 원장이고 인맥이 장난이 아닌데……

- 그래 내가 최선을 다해서 보마.

그러던 차에 날아온 부탁.

이걸 어찌 대강할 수 있을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같은 말을 이현종도 들었기 때문에, 형의 눈알도 정상은 아니었다.

사실 신현태, 안대훈까지 해서 셋 모두 눈알이 벌게진 채 수술대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긴장한 게…… 대체 얼마 만이지.'

마취과 교수는 삼엄한 감시 속에서 마취를 끝내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김효열을 바라보았다.

‘하……시발.’

김효열은 속으로 욕을 주워 넘겼다.

일단 수술 자체가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코의 천장을 건드려야 하는 수술이지 않나.

코의 입장에서만 보면 천장이지만, 세상일이란 늘 상대의 말도 들어 봐야 하는 법.

머리 입장에서는 바닥이었다.

'원래 공사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게 바닥 공사라던데.'

그냥 바닥도 아니고 두개골 바닥이지 않나.

신중해야 했다.

질환이라는 게 다 심각한 것이긴 했지만.

코 성형이나 비중격 만곡 같은 것에 비하면 이건…… 아예 다른 종류의 수술이라고 봐야 했다.

"후우."

“긴장했네. 저러면 안 되는데."

“라마즈 호흡이라도 해 볼래요?"

“아니, 그냥 좀 조용히 해 주실래요? 이게 제 징크스라.”

“징크스는 안 좋은 뜻 아닌가……? 그러게 내가 이거 동 교수 불러오자고......"

“아, 형은 좀 가만히 있어. 동 교수님은 지금 퇴임하셨는데 어디 가서 불러와."

진짜 다 죽여 버리고 싶다.

김효열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동 교수님을 떠올렸다.

갑자기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 왔다.

\무서워서 그랬다.

'거의 맞아 가며 배웠지.'

그나마 퇴임하고 나가셔서 이제 좀 살 거 같은데.

하필 지금 여기서 그분 얘기를 할 줄이야.

응?

실력 알지. 최고지.

근데 나도 어엿한 그분 수제자라고.

"내시경"

김효열은 분을 삭이고 손을 내밀어 내시경을 받았다.

그러곤 코 안에 집어넣고 비강 안쪽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수술 전에 이미 다 한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마취하고 보는 거랑 그냥 보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는 예민한 곳이니까.

"음…… 여기가 내려앉았네. 그래서 침습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매스 이팩트인 거 같네."

김효열 교수는 비강 안쪽을, 특히 천장 쪽을 보며 말했다.

뒤에는 보조를 맡은 펠로우가 서 있었다.

그리 즐거워 보이진 않았다. 원래 보조는 레지던트 잡이니까.

'VIP가 무섭긴 하다.'

그렇다고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지도 못했다.

여기 죄다 너무 높은 사람들만 있어서 그랬다.

“일단 위로도 길 터야겠네. 네가 아래쪽 잡아서 보고 있어. 밑 쪽이 무너지거나 뇌척수액 새어 나오면 말해 주고."

"아......네."

게다가 수술 난이도 자체도 미쳐 날뛰는 수준이었다.

코를 통해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은, 말만 들으면 어려워 보일지 몰라도 이미 어느 정도

정립된 내용인 데 반해,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된 족보조차 없는 수술이었다.

누군가가 해 본 적 있는 수술이긴 하지만 정론은 없다. 이 말이었다.

"칼"

김효열 교수는 펠로우의 불안한 얼굴은 무시한 채 칼을 받아다 사모의 눈썹 아래로 절개선을 넣었다.

지이익.

붉은 피가 아래로 방울져 흘러내렸다.

“피난다. 피.."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면봉으로 닦아 내면 될 정도?

허나 이비인후과처럼 마이너한 과에서는 호들갑을 떨 만한 일이었다.

뒤에 있던 신경외과 교수가 살짝 비웃는 것 같아서 신경 쓰였지만, 펠로우는 같은 이비인후과다 보니 충분히 서둘러 대처했다.

“네네.”

"혈압이 높나?"

“좀 낮춰 주실래요?"

그리고 좀 오버했다.

"그냥 하지, 뭘 피 그거......검사할 때 뽑는 피가 지금 나온 거에 몇십 배는 되겠네."

“아, 형. 좀 조용히 해. 저기는 이비인후과잖아."

“이비인후과가 뭐."

“사람 죽는 거 모르는 과니까……피 보면 무섭지, 안 무서워?"

"아. 아아. 그렇네. 그래, 내 말 신경 쓰지 말고."

“그래. 저기가 괜히 마이너가 아니라니까?"

해서 이현종이 나무랐고, 신현태가 말렸다.

'말리는 시누이가 제일 밉다더니….

김효열은 진짜 이거 끝나면 김선웅 교수랑 술이라도 한잔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절개를 더 진행했다.

곧 이마뼈가 나왔다.

하지만 그대로 뚫는 대신 CT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으로 이마굴이 있어. 눌려 가지고……농이 차 있으니까…... 주의해야 해'

농.

다른 말로 하면 고름.

이런 건 잘못 다루면 큰일이었다.

코 수술만 할 때는 그래도 괜찮은데, 지금은 머리를 건드려야 하는 상황이지 않나.

잘못해서 이마굴로 고름이 들어가면 진짜 재앙이었다.

'나 아니면 이런 거 하겠냐……?'

신경외과고 나발이고, 이마굴에 대한 컨셉이 명확하지 않으면 크게 일 한번 나기 마련이었다.

괜히 머리까지의 길을 열어 주는 걸 이비인후과가 맡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기기기긱.

김효열 교수는 다이렉트로 머리뼈를 뚫었다.

“아니, 수술이 뭐 저렇게 무식해……?”

“그래도 교수인데 무식하다니."

“머리뼈 부수는데……? 이마뼈가 제일 단단한 곳 아니야?"

"그렇긴 한데. 어? 벌써 뚫렸다."

“요새 기계 좋네. 미쳤네.”

내친김에 이현종 머리도 뚫을까?

김효열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일단 내시경을 받았다.

“이마굴 나왔다. 자…… 안에 보면…… 이게 지금 확 눌려 가지고 축농증이 생겼지.

제대로 제거 안 하고 뚫으면 난리 난다?”

"아, 네네."

펠로우에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이현종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 어어. 아니, 그냥 그대로 둬."

하필 전화도 받고 있었다.

일부러 저러나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김선웅 교수님......오늘 꼭 갑니다……'

김효열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석션으로 염증을 싹 제거하고, 베타딘 섞은 물로 이리게이션(세척)까지 했다.

“내비게이션 줘봐."

“네.”

깨끗하게 만들고 나서도, 바로 뒷벽을 까지는 않았다.

이 뒤는 이게 뇌 아닌가.

맨날 뇌 보는 사람들도 두려워하는 장기인데, 이비인후과에게는 어떨까.

"저게 뭐야?"

“CT를 지도처럼 해 가지고 지금 내가 어디 있는 건지 아는 거래. 저거 엄청 비싸."

“아니…… 해부학을 완전 통달해야지. 뭐하러 저런 거까지 해?"

“내시경이라 어렵다. 그게."

“노력이……부족한 건 아닐까?"

“목소리가 너무 큰 건 아닐까?"

김효열은 잠시 내비게이션을 치울까 생각하다가, 이내 참았다.

아무리 주절거리고 있더라도 뇌에 대한 두려움은 지울 수 없어서였다.

그 시각, 수혁은 병실 앞에 서 있었다.

"수술은 잘되고 있겠죠?"

병원이 워낙 큰 데다가 수혁이 다리까지 불편해 시간이 걸린 까닭이었다.

"잘되고 있겠지. 다들 베테랑이고, 또 두 분도 들어가 계시니까."

“두 분 때문에 안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하하. 그렇게 지각없는 분들도 아닌데 ......설마 방해하겠냐."

"하긴. 그것도 그래요."

수혁은 두 방해꾼을 떠올리다가, 이내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초췌한 얼굴의 원장이 서 있었다.

"뒤지겠다. 수혁아."

"아...…관장 힘드시죠."

"어...... 원래 이렇게 힘드니?"

"뭐...... 네. 처음이시면 더 그렇죠, 아무래도."

“배가 여기가 아픈 게……이상해."

"응? 윗배요?"

"어, 여기."

처음엔 그냥 똥 많이 싸서 힘든가 했더니, 배를 만지는데 위치가 간 쪽이었다.

우측 상복부다. 이 말이었다.

"음.”

"으음."

수혁은 조태진과 눈을 마주친 후, 원장에게로 다가갔다.

‘탈수가 되면……좀 더 예민해지지.'

[만약 통증을 유발할 정도의 간암이라면……]

'너무 늦었나, 내가.'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늦었을 가능성이 크긴 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