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43화 (843/1,303)

843화 원장님 (3)

원장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CT와 MRI 찍을 때까지만 해도 와 이런 게 VVIP구나!

그래, 아들이 아니, 원생이 출세하니까 이런 호강도 다 해 보는구나!

뭐 이런 생각만 들었더랬다.

'근데......검진받으면서 이렇게 뛰는 경우가 있나…..'

제아무리 대학 병원이 처음이고, 검진도 처음이라지만.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눈치라는 게 생기지 않나.

게다가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듣는 말도 있었다.

한창 바쁘던 시기, 그러니까 3~40대 때는 연락도 잘 안 되더니 60이 넘어가고부터는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건지 뭔지,

직접 봉사도 오는 친구들이 더러 생기기 시작하면서 단톡방이 활기차졌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또 원장이 관심을 두는 주제가 돈이 아니다 보니 주로 건강에 대한 이슈만 보였다.

'없을 거 같은데...... 특히 병원에서 의사가 뛰면. 그거 안 좋은 일이라던데.'

처음엔 의사가 자기 때문에 뛰길래 이 의사 참의사네 싶었다던 동기.

그 동기는 이제 죽고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일터에서 언제 뛰나.

할 일이 없을 때 뛰진 않는다. 급할 때 뛰지.

의사가 급하다는 건 환자가 위험하다는 뜻이고.

"저……보통 이런 걸 하나요?"

해서 원장은 덜컥 불안해져서 물었다.

간호사는 수혁과 조태진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보통은 안 합니다. 안 하죠.”

우선은 시간을 끌었다..

허나 VVIP들을 응대하면서 단련된 섬신도 만만한 것은 아니라, 어느새 얼굴만큼은 평정을 되찾은지 오래였다.

‘암이라 했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담당 의료진도 아닌 놈이 암이라고 하면……'

잘못하면 X된다는 생각도 한몫하고 있었다.

원래 서비스직이라는 게 참 힘든 법인데, 의료진은 그 정도가 몇 배 더 힘들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쩐지 환자는 아무리 이상한 짓을 해도 약자로 보이기에 그랬다.

실제로 대학병원에서 환자는 약자기도 했고,

무엇보다 단 하나뿐인 생명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근데 VVIP들은 뭐가 있으면 바로바로 검사를 합니다. 이렇게요.”

“뭐가……있는데요?"

“아직은 모릅니다. 그냥 뭐가 있다......이 정도?"

정보를 조금 풀었다고 봐도 될 지경이었다.

이럴 수 있었던 건, 수혁과 조태진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줘서였다.

"뭐가......음."

더 불안해진 원장은 둘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조태진이 즉 나섰다.

“원래 나이 들면 간에 뭐가 잘 생깁니다. 대개는 아무것도 아닌 낭종인 경우가 많아요. 원래 같으면 차근차근 시간 두고 볼 텐데……

이게 또 VVIP시다 보니까요. 상황도 잘 알고......왔다 갔다 하시기 어려울 거 같아서 저희가 바로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아......."

이런 걸 전문용어로 버발 세대이션(Verbal Sedation)이라고 했다.

말로 진정시키는 스킬인데, 교수들 중에서도 혈종 교수가 세계 최강이었다.

그중에서도 조태진은 꽤 능한 편이다 보니 원장의 얼굴이 눈에 띄게 가라앉고 있었다.

“자,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김진실 교수님이 또 이 방면으로는 완전 대가시거든요.”

"아유, 뒷얘기 하시나 했더니 금칠을 하고 계시네. 또, 이하언 교수님 들으시면 어쩌려고."

그러고 있으려니, 김진실 교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자초지종을 다 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김진실도 과가 다르고 아직 주니어급에 머무르고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을 뿐, 굳이 따지면 이수혁계 아닌가.

‘아휴……은인이시라던데……'

속으론 혀를 차도 벌써 수십 번을 차고 온 마당이었다.

CT를 봐서 더 그랬다.

망할.

이렇게까지 진행된 간암은 그녀로서도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들었어.'

사실 영상의학과쯤 되면 사진만 봐도 형편이 보이는 편이었다.

특히 머리 사진을 보면 그랬다.  치아가 개판이었다.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단 뜻인데, 생각보다 이게 생활 수준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다.

'나쁜 놈이 아니어야 할 텐데……'

김진실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넸다.

"환자분, 오른팔 귀에 붙여서 올리시고요. 국소 마취를 하기는 하는데 좀 뻐근하실 수 있어요. 바늘이 들어가는 거라……”

“네, 네."

그러곤 초음파를 들이댔다.

들이대는 순간, 간에 있는 어마어마한 종양이 딱 눈에 들어왔다.

안에 들어와 있던 의료진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눈치를 봤다.

다행히 원장은 전혀 눈치를 못 챈 상황이었다.

사실 김진실 교수가 우측에 앉아 팔까지 올리게 해서 잘 보이지도 않을 터였다.

“자, 그럼 찌릅니다."

김진실 교수는 말과 함께 바늘을 푹 찔렀다.

"음."

피부야 마취가 되어 있다지만, 안은 아니지 않나.

내부 장기는 감각이 없거나 둔해도 그 둔중한 감각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으음."

신음이 흐르는 상황에서 김진실 교수의 바늘이 종양에 닿았다.

워낙 크기가 커서 다른 구조물을 건드리지 않도록만 주의하면 되었다.

“자, 일단 다 됐고요. 간이다 보니까 눌러야 돼요. 안그러면 피 나옵니다.”

그렇게 검사를 끝마친 김진실 교수는 표본을 수혁에게 건넸다.

수혁이 간혹 병리과로 달려가 직접 뭘 본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동시에 당부의 말도 건넸다.

“전이가 없으면 간 이식도 가능한 옵션에 있으니까......일단 너무 심려치는 말고."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거참……"

복부 영상의학과 교수니까 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확실히 수혁이 보기에도, 저게 간세포암이라면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망할.

“저 잠시 콜이 와서. 이따가 다시 뵐게요."

"어? 어어. 그래, 바쁘지?”

하여간 수혁은 원장을 보내고 병리검사실로 향했다.

머릿속으로는 아마도 이게 간세포암은 아닐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양이나 이런 건 ...… 간세포암 그 자체지만…..'

[간세포암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저 나이대의 간세포암이라면…… 게다가 국소

침윤이 저 정도면 이미 전이가 있어야 합니다.]

'응. 김진실 교수님이 일부러 딴 데도 좀 훑으시던데......초음파로 봐도 아무것도 없었어?'

[그럼 의심을 품은 채로 한번 보기로 하죠.]

'좋아'

병리검사실에 노크를 하니, 직원이 밖을 내다보았다.

'아.'

그러곤 별말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옆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다가 이전에 들은 걸 떠올렸다.

- 이현종, 이수혁. 문 열어 줄 것,

어차피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어떻게 보면 그냥 자연재해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도 들어와서 뭐 다른 슬라이드 깬다거나 하지는 않고, 그냥 볼 것만 보고 가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경찰이라도 세워 놨을 터였다.

"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현미경 보시죠?"

“네. 검체 염색도 해야 하는데……

“네, 그거 따로 보시고 맡겨 주시면 조치대로 하겠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수혁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끼리릭.

이제 하도 많이 해서 조직으로 슬라이드 만드는 것도 뚝딱이었다.

현미경 조절은 원래도 어지간한 병리과 레지던트보다 잘했으니 순식간에 볼 수 있었다.

“왜 왔대?"

"모르겠어요."

"물어보지도 않았어?"

“네.”

그...... 뭐 그렇지."

뒤에는 교수가 와 있었다.

직원을 나무라려다 말았다.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아서 그랬다.

'돌아가는 꼴이…… 신현태 원장 연임은 너무 당연하지? 그 후로도 ......한동안 내과가 꽉 잡을 것 같은데……’

교수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거의 뭐 그레이트 태화 어게인 수준 아닌가.

3위로 가라앉는 게 거의 확정이었는데, 이제는 1등이었다.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1등.

빅 3 라는 말도 요새는 좀 민망해하지 않던가.

태화가 주도하는 의학 질서라는 말도 더 이상 자화자찬이 아니었다.

"음......."

하여간 보다 보니 화면에 슬라이드 영상이 떴다.

“HCC 아닌가?”

교수가 대번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슬라이드는 전형적이었다.

허나 수혁은 임상 정보를 알고 있지 않나.

'원장님 HBC, CV는 다 음성이었어. 술도 안 먹고......심지어 CT를 봐도 간 경화 소견은 없었어.

HCC(간세포암)이라기엔 ...… 좀 그래.'

[모양은 전형적이지만……]

'원래 진짜 진단은 염색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법이지.'

[그건 근데 우리가 할 수 없는데요?]

'뒤에 있잖아.'

[응? 아, 그렇네.]

수혁은 뒤를 돌아보았다.

교수랑 딱 눈이 마주쳤다.

"음."

“이거 염색 좀 해 볼 수 있을까요?"

"음?"

귀찮았다.

안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병리과 교수도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대학 병원에 남은 이상 보직 욕심 없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뭘..... 어떻게..…?”

해서, 교수는 떨떠름한 마음을 감추고 나섰다.

'근데 이거 염색이 의미가 있나? 간에서 떼온 조직이 이렇게 생기면 간암이지 뭐.'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나 겉으로는 하여간 협조했다.

그것도 아주 전폭적으로.

“Hep Par 1, GPC3 염색 지금 될까요?"

“둘 다 HCC 표지자인데 ..…."

“네.”

“근데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의심하는 게 사실이라면 의미가 있습니다.”

"뭘……의심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드물지만, 원발성 간 신경내분비 종양이 이렇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죠."

"아."

병리과 교수는 이수혁의 말에 탄식했다.

'은인이라고 했지? 이수혁 교수도 사람은 사람이네.'

원발성 간 신경내분비 종양,

그래 그런 게 있기는 했다.  하지만 드물었다.

그리고 이런 표현형을 갖는다는 건 병리과 교수인 그조차 듣지 못했던 사안이었다.

게다가 이 환자, 알파 태아 단백이 아주 높게 검출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지인이라...… 희망을 갖는 건가?'

옛말에 경사는 못 챙겨도 애사는 챙기라는 말이 있지 않다.

교수는 이럴 때 괜히 튕겨서 좋을 게 없단 생각으로 흔쾌히 나섰다.

“그래요, 그럼 염색하죠."

“네. 얼마나 걸릴까요?"

“이런 표지자 염색은 양성임을 확인하는 건 오래 걸려도 완전 음성이면 판단은 오래 안 걸려요. 들러붙질 않으니까."

"아..….”

“일단 여기 있어 봐요."

“네.”

교수는 남는 인원을 다 동원해서 염색에 들어갔다.

그러곤 얼마 안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왜……안 붙지?'

그러다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설마......진짜‥…?'

진짜 원발성 간 신경내분비 종양이라고?

말이 돼?

교수는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수혁은 그저 마주하고 있었다.

"아닌 거 같네요?"

"아……네.."

“그럼……살아남을 가능성이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어….”

“원발성 간 신경내분비 종양표지자도 염색해 주시고, 알려 주세요!”

“어…… 네.”

수혁은 알고 싶었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밖으로 탁 튀어 나갔다.

미소를 숨기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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