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화 자책 (1)
'거참……?'
수혁은 회진이 끝나고 병원에 남는 대신 집으로 향했다.
남들에게는 이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수혁에게는 별일이었다.
어지간해서는 병원에서 자니까..
“수혁이 마음이 좋지 않은 거 같죠?”
그렇게 집으로 향하던 수혁의 뒤를 쫓는 이들이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조태진과 그 일당들이었다.
"당연하지, 인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막말로 부모 같은 사람 아니야.”
이현종이 조태진을 타박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너는 수혁이 마음을 잘 모르는구나?"
신현태도 그랬다.
조태진은 억울했다.
'아니……나는 마음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인데?'
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두 또라이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어서 그랬다.
아니, 사실 조태진도 마음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아끼는 사람이 아파하는데 웃음이 나오면 그게 미친놈이지, 달리 미친놈이겠나.
"그나저나…… 혼자 있고 싶지는 않을까요?"
조태진은 늘 그렇듯 조심스레 수혁의 뒤를 따라붙었다.
예전엔 바짝 따라붙었는데, 그러면 들킬 가능성이 크다는 여러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한 차를 건너 두고 따라붙었다.
CIA나 FBI에서도 숙달된 요원들만 할 수 있는 마술이었는데, 수혁에 대한 애정이 이를 가능케 했다.
"나도 그건 걱정인데…. 괜히 애 혼자 마음 추스를 시간 뺏는 건 아닌가……?"
조대진의 말에 신현태가 거들었다.
품에 같이 마실 와인을 두 병이나 들고 있는 주제에 그랬다.
“그러니까요. 집에 가는 것도 그렇고.”
“음...... 그냥 오늘은 이대로 두고 우리끼리 밥 먹고 끝낼까?”
조태진과 신현태가 대화를 이어 나가는 사이, 이현종은 놀랍게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의아함을 느끼진 못했다.
지금은 모두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랬다.
어느새 조태진은 슬슬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사실 집으로 가는 게 분명하다면 바로 따라붙을 이유도 없긴 했다.
어딘지 다 알고, 심지어 같이 탄 안대훈은 비번도 아니까.
"그럴까요...... 음. 수혁이......"
"그래, 우리끼리 환자에 대해 상의를…… 어, 형?"
느려지던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이현종이 손을 들었다.
뒷자리에 쥐죽은 듯이 있어서 자나 싶었던 참이라 둘 다 좀 놀랐다.
“야, 니들은 진짜 수혁이를 모르는구나.”
이현종은 갓길에 차를 세운 채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둘,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밖을 내다보고 있기만 한 안대훈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목소리가 워낙에 단호해서 누구도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심장 의사가 심장에 대해 얘기하듯, 이현종은 수혁에 대해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걔가 여태 혼자 살아온 애야. 너도 보육원에 가 봐서 알겠지만…… 전에는 시설이 더 개판이고 더 열악했어.
원장이고 사모고 지들 삶 깎아서 키워 내는 곳인데 오죽하겠냐고.”
이현종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께를 두드렸다.
"쟤는 그냥 고통을 나누는 법을 모르는 거야.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곤,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그럴싸한 말을 꺼냈다.
의학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숨 쉬듯 그럴싸한 말을 꺼내지만, 사람 관계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한 인간이지 않나.
때문에 신현태는 특히 더 충격받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아마 자기 감정이 지금 어떤지도 모를걸? 아빠 같은 사람이 아프다는데,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의사인 자기가 늦게 가서 진단이 늦었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그럼 슬퍼해야 하는데, 쟤 아까 울었냐? 안 울었지. 헷갈리는 거야."
"아......"
“아빠인 내가 지금 위로를 안 해 주면 언제 해 주냐. 넌 삼촌이라고 하고, 넌 형이라면서 그런 주제에 그렇게 수혁이를 몰라?"
"아......"
이제 조태진도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하긴, 수혁은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이 아니지 않나.
제아무리 열심히 키워 냈다 해도 부모가 아닌 이가 부모가 되어 줄 수는 없는 법이었고, 그로 인한 결핍 또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사람에게는 단단한 가정 내에서만 배울 수 있는 감정이 있으니까.
"뭐 해? 밟아!"
"아, 네. 원장님."
조태진은 그런 이현종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원장 타령을 하면서 액셀을 밟았다.
"어어!"
“이 미친놈이. 밟으랬다고 이렇게 속도를 내?”
하필 전기차로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가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연기관 차들이 아무리 제로백이 몇 초네 해 봐야 뭔 소용이 있겠다.
전기차는 모터로 가는데.
밟는 순간 그냥 최대 속력이었다.
“죄송합니다. 어우, 박을 뻔했네.”
"나까지 어떻게 되면 새꺄, 수혁이 이제 못살아 인마!"
"그건..…."
“아빠 같은 사람도 저런데 아빠는 어떻겠어!"
“네네.”
조태진은 죽을 죄인이 된 채 수혁이 거주하는 오피스텔에 도달했다.
- 네?
경비실을 통해서 연락을 하니 수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꽤 놀란 목소리여서 조태진은 덜컥 불안해졌다.
"어쩌죠?"
“어쩌긴 인마. 들어간다고 해."
"어, 네. 원장님이 하신 거예요?"
"나 아니고 형이야. 원장이라고 하지 마. 헷갈려."
“네네."
해서 한바탕 차 안에서 소란을 피운 후에야 답했다.
"어, 수혁아, 우리 그……놀러.. 읍 아니, 그 어, 그래, 위로......위로하러 왔어."
그 와중에 놀러 왔다는 말을 하려다 입을 틀어 막히고 목까지 졸렸다.
체격이 좋은 편이었지만 광기에 휩싸인 노인네 둘을 이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 수혁아."
하여간 일행은 곧 수혁이 있는 방 안에 도달했다.
수혁은 츄리닝을 입고 술잔에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인데......'
신현태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수혁이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혼자 찾아 마시는 사람도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인마. 저렇게 혼자 둬서 되겠어?'
이현종은 쭈뼛대는 신현태와 조태진을 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안대훈을 대동하고서였다.
"수혁아. 마음 아프지?"
그러곤 마음을 푹 하고 찔렀다.
"어..…. 네.”
사실 수혁은 이게 마음이 아픈 건가 싶은 참이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책감도 들고?"
"아……네. 그게 더 큰 거 같아요.”
사실 마음에 저울이 있어 무게를 잰다면 역시나 죄책감 쪽으로 훅 기울 것 같았다.
확실히 수혁은 좀 더 일찍, 레지던트 때가 아니더라도 교수가 되고 바로 찾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에 사로잡혀 있었다.
"네 잘못이 아니라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그 사이, 나머지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현종은 능숙하게 찬장에서 와인잔을 꺼내 술을 따른 후, 말을 이었다.
“다만 내 얘기를 할게. 나도…… 부모가 있단다.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야."
그가 말을 꺼내자 신현태는 차마 이현종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현종이 이제 63세고 석좌 교수가 아니라면 곧 정년이니, 나이가 적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부모가 돌아가시는 게 드문 일이 될 나이는 아니란 얘기였다.
허나 이현종은 꽤 일찍 혼자가 되었다.
‘아, 그래서 혼자인 사람 마음을 잘 아나……?’
워낙에 힘든 티를 안 내는 사람이다 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신현태조차 이현종의 아픔은 잘 알아채지 못했더랬다.
그나마 이기자 교수에게 차였을 땐 바로 옆에 있어서 공감이 됐지만.
부모라는 존재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지 않나.
신현태로서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더 일에 미쳐 있었거든, 심장이라는 게 너무 매력적이고, 또 내가 그 매력적인 장기에 대해 잘 알고 잘하니까.
연구를 하고 논문을 내면...... 과장이 아니라 전 세계가 떠들썩해지니까…… 집에 가지를 않았어. 그냥 병원에서 살았어."
과장은 아니었다.
교수들 중에는 원래부터 워커홀릭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이현종은 발군이었다.
그냥 미쳐 살았다.
“집이 먼 것도 아니었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는데, 그래도 안 갔어. 시간이 아까워서. 또……
부모님이 그냥 오래 살 것 같더라고? 설마하니 지금 내 나이 즈음에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
신현태는 잊을 수 없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신현태도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할 때였다.
이제 막 주니어 스텝이 되었을 때니 당연했다.
논문과 진료, 그리고 과 내의 잡일 등등 모든 일들이 몰릴 시기니까.
- 왜애애앵
그날은 응급실에 환자가 있어 내려갔더랬다.
급한 환자는 아닌데, 그냥 외래에서 보던 환자여서 가서 봤다.
보고 있는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 아까 연락 드렸던……!
구급대원이 들어오면서 외쳤다.
그러자 응급실 레지던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처치실로 이끌었다.
돌이켜 보면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기억은 색이 바래기는커녕 여전히 선명하기만 했다.
- 어.....?
신현태는 자기 환자를 보느라 그쪽은 그저 힐끔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1초나 되었을까?
헌데, 살짝만 봤는데도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끔찍한 기분이.
- 저거...... 저분……
이현종의 아버지.
이현종과 똑 닮은 얼굴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그 위에는 인턴이 올라타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벼락같은 소리를 치면서 달려가 보니, DOA였다.
죽어서 왔다는 얘기였다.
이현종도 같은 기억을 더듬고 있었는지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현태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받지 못했지. 난 그때도 환자를 보고 있었거든. 근데 센터로 전화가 와서 날 찾는 거야. 바빠 죽겠는데……”
바쁘다는 말은 현대인에게 있어 일종의 업과 같은 말 아니던가.
핑계가 아니라 진짜로 그냥 바쁜 사람이 태반이었다.
허나 그 탓에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후회가 남았다.
"그래서 화내면서 받았는데, 현태가 울더라. 말을 안 하고 울어. 근데 이상하게……… 가슴이 붕
뜨다가 훅 가라앉는 기분이...... 그때 그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이현종은 목이 타는지 술을 한 모금 머금었다.
평소라면 소믈리에 못지않게 예민한 혀로 맛을 평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쓰기만 했다.
기분 탓일 터였다.
"말도 듣지 못했는데, 아빠 얼굴이 떠오르더라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뛰고 있더라."
마침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그 분위기는......
신현태는 울고 있고, 응급실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고.
그들을 헤치고 도착한 곳에 누운 아버지는 이미 차가웠다.
사인은 심장마비.
이현종이 제일 자신 있어 하던 관상동맥 질환으로,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수혁아. 그냥 시간이 지난다고 괜찮아지지는 않을 거야. 내가 겪어 보니까, 지나서 괜찮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이현종은 잔 속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건 붉은 와인이 아니라, 건강하던 시절의 아버지였다.
돌아가시기 수개월 전의 얼굴이었다.
그때도 바쁘단 핑계로 스쳐 지나가듯 보고 말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얘기라도 하면 나아져. 수혁아, 그냥 아무 얘기라도 좋으니까 해.
그럼 좀 나아져, 혼자서 견딜 필요 없어. 너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