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화 전문의 시험 (1)
“근데…… 우 교수님. 왜 이수혁 교수를 출제위원으로 하신 거예요?”
우창윤은 자신을 부르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눈앞에는 동종헌 교수가 서 있었다.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이수혁…… 그 인간도 이현종 못지않은 미친놈이잖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당연했다.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 준 모습이 있었으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강의한 내용도 그렇고.
학회마다 다니면서 깨부순 전력도 그렇고.
그냥 이현종의 재림이라고 보면 될 지경이었다.
‘이현종 교수님……. 한 번 부르고 다시는 안 불렀다지…….’
지금도 이현종이라고 하면 ‘천재’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붙지만, 옛날에는 그 정도가 더더욱 심했다.
젊은 시절 이현종은 언더독의 화신이었다.
좁게는 대한민국의 노교수들을 뒤엎었고, 넓게는 전 세계의 콧대 높은 의사들을 뒤엎었다.
당시 국민들이나 정치인들의 관심이 기업이나 스포츠 스타에만 쏠려 있었어서 그렇지, 요즘 같았으면 아마 대대적인 보도에 들어갔을 터였다.
솔직히 수혁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이현종만큼의 위업을 달성하진 못하지 않았나.
그는 현대 의학사의 한 틀을 뒤바꿔 놓은, 일종의 위인이라고 봐도 좋았다.
‘진짜 좋다고 불렀다던데…….’
그러니 학회에서도 그 이현종이 전문의 시험 문제를 내길 바랐었을 터였다.
화제도 되고, 학회에서 성의 있게 일한다는 표시도 되고.
여러모로 좋지 않나.
본래 학회라는 곳이 취지는 다 같이 모여서 공부하자는 것이지만, 막상 모이면 공부보다는 정치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위업을 세우길 원한다, 이 말이었다.
“이현종 교수님처럼 하면 어쩌려고요…….”
동종헌은 과거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우창윤은 후후 웃었다.
이래서 회장이 아니라 이사밖에 못 했지 싶었다.
그는 동종헌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봐요, 동 교수님.”
“네.”
“작년 합격률이 어땠죠?”
“엉망이었죠. 망했지. 우리 이번에도 그 지랄하면 보건복지부에서 날아올 것 같은데요?”
“아닌 게 아니라, 아예 문제 출제하는 곳으로 두 분인가 오신다고 하긴 했어요.”
“그건 알면서 이수혁 교수를 불렀어요?”
동종헌은 우창윤을 노려보았다.
사람이 어깨를 두드려 주면, 보통은 뭔가 훈훈한 얘기가 오가야 정상이지 않나.
근데 더 안 좋은 소리만 해?
미친놈이?
‘너 인마…… 나이도 나보다 어린놈이…….’
일찍 출세해서 이러나?
아선병원 기조실장이라고 뵈는 게 없나?
‘그러고 보니까 이 새끼 이거, 이수혁한테 줄 댄 놈 아닌가?’
이수혁 자체에게 원한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논문을 내기 시작하면서, 해당 논문에 한해서는 인용이 미친 듯이 붙고 있었으니까.
조금이지만 패러다임을 바꾼 논문인데다가, 쓰기도 워낙에 잘 써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질문을 던지는 논문이었으니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어? 거기 학회에서도 이사 맡지 않았어?’
허나 우창윤은?
이 자식은 딱히 뭐 업적이랄 게 없지 않나?
어떻게 줄 잘 서 가지고 아선에서 출세한 거 아닌가?
지금도 저쪽 줄 서 가지고 잘 나갈 생각…….
‘응? 그럼 나도 줄 서는 건데…….’
동종헌 교수가 속으로 어마어마한 생각을 빠르게 이어 나가고 있을 때쯤, 우창윤이 입을 열었다.
“하여간 전체 합격률은 개판이었죠. 근데 태화는 잘 봤어요. 거긴 2명인가 빼고 다 붙었어요. 평소랑 별 차이가 없었어.”
“어…….”
우창윤은 마치 악마가 유혹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워낙에 똘똘한 사람인데다가 특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 동종헌 교수는 ‘어’라는 말만 하면서 끌려갔다.
“그 말은 이수혁 교수가 가르치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겁니다. 실제로 강의 들어 보면 아시잖아요. 강의를 너무 잘해. 좀 톡식해서 그렇지…… 그렇게 가르치면 애들 다 수재 될걸요?”
“그건…… 그렇긴 하죠. 음.”
“근데 그 이수혁 교수가 문제를 내면 어떻게 되죠?”
“네? 뭐가 어떻게 돼요?”
“문제를 낸 교수는 시험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어요. 그게 원칙이고 법입니다.”
“아.”
그리고 결국에는 입을 쩍 하고 벌렸다.
진짜 책략가가 여기 있었다.
우창윤.
이놈은 그냥 야바위 같은 거 해서 기조실장이 된 줄 알았더니.
삼국지의 이유 정도는 되는 놈인 듯했다.
헌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학회에도 유익한 면이 있어요. 잘 가르치는 사람이 내는 문제는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습니까?”
“네? 족보 타야 되는데? 우리 그렇게 공지하지 않았어요?”
“이수혁 교수가 말을 들을 것 같습니까? 게다가 아까 제가 보건복지부 사람들 온다고 했잖아요. 그 앞에서 교수란 놈들이 모여서 족보 얘기하고 있으면 뭐가 됩니까.”
“아…….”
동종헌 교수는 이제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우창윤인지 아니면 책략의 화신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어? 족보 얘기하면서, 의사 그냥 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좀. 족보가 책으로 열 권도 넘는데…….”
“보통은 그렇게 생각 안 하죠. 그리고 솔직히, 10년 지난 족보는 다 버려야 해요. 아니야, 이젠 5년이지. 트렌드가 미친 듯이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아닌가? 교수님 파트는 안 그래요?”
그 화신은 은근히 분과 공격까지 하고 있었다.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이미 말려든 이상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니, 저희도 엄청 바뀌죠.”
“그렇다니까요. 어차피 문제 절반은 새로 내야 됩니다. 작년처럼 미친듯이 하자는 건 아니에요. 작년에는…… 그 미친놈들 지금 뭐 하고 있지? 감방 보내야 되는 거 아닌가.”
“뭐 그냥 진료 보고 있죠. 감방은 무슨……”
“그놈들 때문에 작년에 국방부랑 보복부랑 군의관, 공보의 티오 두고 멱살잡이 한 거 몰라요?”
“그건 알죠.”
“하여간 여러 유익한 점이 있다, 이 말입니다. 이수혁 교수는…… 상징성만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천재란 말이에요. 저도 한때는 그게 인정이 안 돼서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인정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우창윤은 이수혁을 떠올렸다.
그냥 보면 평범한 젊은 의사일 뿐이었다.
아니, 지팡이를 짚고 있어서 그게 좀 특이해 보이려나.
아무튼, 그런 인간이 입만 열면 언제나 놀라움을 주었다.
대학 병원 교수로 살아오면서 정말 여러 천재를 마주했고, 본인 스스로도 비교 대상이 드문 천재라고 여기고 살았던 나르시시스트였던 우창윤이 자가 치료가 되었을 지경이었다.
“음…… 그럼 오늘 오시는 건가요?”
하여간 우창윤의 말을 듣던 동종헌 교수는 이제 이수혁이 없는 데서도 존대를 쓰고 있었다.
사실 그 또한 이수혁의 대단함을 직간접적으로 느껴 왔던 이었기에, 우창윤이 일깨워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그랬다.
“네. 오늘 와야죠. 보통 회진 돌고 올 테니까…… 그리 늦지 않게 오긴 할 겁니다.”
“네. 그럼 준비해야겠네.”
둘이 그렇게 손님맞이 준비에 나선 사이, 수혁은 우창윤의 말처럼 병원에 있었다.
이미 통합진료센터에 입원한 다른 환자는 다 본 후였다.
그러나 수혁은 옷을 갈아입는 대신, 가운을 그대로 걸친 채 중환자실로 향하고 있었다.
사모를 보기 위함이었다.
띡.
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서자 조태진과 신현태가 와 있었다.
이현종은 심장 쪽으로 급한 환자가 갑자기 와서 그쪽에 가 있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수술한 김효열과 신경외과 교수도 와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무슨 태화 창립자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었다.
하여간 다섯은 그대로 환자에게 가는 대신 서로 대화부터 나눴다.
“벌써 의식은 회복했어요. 아까 위닝(인공호흡기 제거)했는데…… 전혀 문제는 없습니다.”
신현태가 와 있었기 때문에, 신경외과 교수는 말하는 데 있어 각별히 주의하고 있었다.
과장인 최낙필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 신현태, 이현종이지 않나.
게다가 수혁에게도 부채의식이 있다 보니 더더욱 절절맸다.
“좋네. 그럼 완전히 깨 계시나?”
“네. 애초에 레미펜타닐로 재워 놨어서…… 반감기가 짧지 않습니까.”
“좋아. CT는?”
신현태는 본인의 지위, 그러니까 원장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지지고 볶다 보면 더 잘하게 되는 게 교수라는 걸 알아서 그랬다.
물론 너무 심해서 두려움을 갖게 만들면 안 될 일이었기에 적당히 줄을 당기고 있었다.
“아, 뭐…… 부종은 약간 있는데 그렇게 심하진 않습니다. 일단 의식 수준이 제일 중요한데 완전히 멀쩡하세요.”
“좋네. 좋아. 그럼 이엔티 쪽은?”
“아…… 저희는 아직 솜을 안 뽑아서요.”
“그럼 왜 왔어?”
“네? 수술했는데 와야죠.”
“아, 그렇지. 그래. 잘하네. 그럼 뭐…… 아직 알 수 있는 건 없는 건가?”
“그렇죠.”
“오케이. 가자.”
그렇게 쪼고 쪼아서 취합한 정보를 가지고 사모에게 갔다.
사모는 시끄럽고 밝은 중환자실에 지친 얼굴로, 30도가량 위로 올려진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일행을 발견하고 나서야 웃었다.
“어, 수혁아.”
하루 사이에 목이 쉬어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튜브에 성대가 꾹 눌린 채 24시간가량 지났으니.
이게 회복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터였다.
“네, 사모님. 아프진 않으세요?”
수혁은 현 상태가 어떻다거나 앞으로는 뭘 할 거라는 등의 소리를 늘어놓진 않았다.
수술을 받게 된 이상 손을 떠났다고 여겨야 해서 그랬다.
게다가 이제 막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환자에게 그런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적절한 처사도 아니었다.
“아, 응. 이상하게 하나도 안 아프네. 수술이 진짜 잘됐나 봐.”
“네, 최선을 다했습니다.”
“약 들어가서 안 아픈 거 아니야?”
“약도 들어가긴 하는데요, 그래도…… 원장님. 저희 수술 잘합니다.”
물론 적절한 대사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모인 사람들이 좀 또라이라 그런가, 이상한 얘기도 나왔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사모가 웃었으니.
“근데 우리 그이는?”
“아.”
의사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 약속한 대로 수혁이 앞으로 나섰다.
“검진받고…… 오늘 잠깐 보육원 갔다가 오신대요.”
“나 참…… 그렇게 걱정이 되나. 마누라 수술받았는데 거길 간대?”
“네. 아시잖아요. 원장님 유별난 거.”
“그건 그래. 유별나지.”
암?
이따위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애써 수술한 부위가 혈압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두개골 바닥 뼈 수술이라는 게 만만한 건 아니지 않나.
뇌척수액이라도 줄줄 새면 재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해질 수 있었다.
머리를 건드린다는 건 시대를 막론하고 위험한 일이었으니.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도 잘됐고…… 오늘 오후까지만 보다가 일반 병실로 가실 거예요.”
“어, 고마워. 수혁아.”
“네.”
수혁은 고맙단 인사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제 다 같이 모이지 않았다면 눈물이라도 흘렸을 것 같았다.
훅 하고 밀려오던 죄책감을, 이현종이 밀어내 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