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3화 외과 장준혁 (3)
수혁은 아이를 향해 숫제 달렸다.
왜냐면 마취과 의사가 마취 확인을 하고는, 곧 데려갈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래봐야 중간에 수혁이 막아선다면 별 소용 없겠지만.
민폐였다.
지금도 수술실로 들어가는 입구 쪽은 붐비고 있었다.
왜 수술실에 대한 민원이 끊이질 않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기.”
하여간 수혁은 침대를 잡았다.
“뭔…… 아.”
마취과를 보내고, 환자를 끌고 들어가려던 외과 레지던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표정 변화가 꽤 인상적이었다.
확 화를 내려다, 미소로 화하는.
거의 무슨 메소드 연기자 같았다.
수혁과 장준혁 교수 둘을 봤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 환자 진단명. 선생님이 내렸어요?”
“아…… 그.”
장준혁이야 외과 교수 아닌가.
보통 손에 자부심 있는 외과 교수들이 다들 그러하듯 성격이 더러울 터였다.
천재 스타일은 일반인을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 영역이 내과 쪽이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외과 쪽은 살짝 폭력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넌 왜 이게 안 돼?
가르고 들어가서 떼라고!
말은 쉬운데 그게 어디 말처럼 되냔 말이지.
“그…….”
“혼내려는 거 아니고, 물어보는 거예요.”
“아, 네. 그.”
레지던트는 갑자기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수혁이 마음 놓으라고 어깨를 두드렸음에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인데놀(고혈압 약)이라도 먹일까?’
[그거 4년 된 약 아닙니까?]
‘아.’
처음 강의 발표할 때 처방받아 먹고 남긴 약을 떠올리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그…… 네. 제가 응급실에서 인턴 노티받아서 진단하긴 했습니다. 최종 진단은 펠로우 선생님이 하셨고요.”
“아, 펠로우 선생님.”
다행한 일은 이곳이 태화라는 점이었다.
단지 임상 의사를 키워 내는 데만 목적을 두지 않고, 교수를 꿈꾸게 만드는 곳이지 않나.
발표가 끊이질 않다 보니 모두가 압박감에 익숙했다.
해서 레지던트는 장준혁이라는 산을 넘고 입을 열 수 있었다.
“CT나 초음파를 확인했나요?”
수혁은 그런 레지던트를 향해 물었다.
보아하니, 응급실 통해서 올라온 환자 같아서 하는 말이었다.
아니, 예약 수술일 수가 없었다.
충수돌기염이라는 게 ‘아 이때쯤 아플 거 같은데’ 이러고 붓지는 않으니까.
그냥 붓고 난 후에야 발견하고 응급실로 오는 질환이었다.
“아…… 네, 초음파는 봤습니다.”
“소견이 어땠어요?”
“음. 제가 본 건…… 아니라…….”
“1년 차?”
“아, 네.”
밑에서 보고 급하다 싶었으면 어제 수술했을 터였다.
다시 말해 초음파상 부은 게 심해 보이거나 터지기 직전으로 보였다면 어제 했을 거란 얘기였다.
허나 이 환자는 하루를 버티고 오늘 내려왔다.
항생제와 수액을 맞으면서.
해서 초음파 소견을 물었더니, 돌아오는 건 1년 차라는 답이었다.
“음.”
이 새끼.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장준혁도 그랬다.
‘이 새끼 이거…… 감히 이수혁 교수님 앞에서 이런 개망신을…….’
그렇지 않아도 배워야 할 입장인데 이런 꼴을 보여?
돌아가면 뒤졌다 하고 있는데, 수술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곤 쿵쿵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덩치가 산만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야! 환자 들어왔다며! 왜 안…… 안…… 응?”
보아하니 어제 진단을 내렸다는 펠로우인 모양이었다.
‘펠로우가 단독 진단을 한다고?’ 하고 놀랄 이유는 없었다.
맹장염 같은 수술이야 펠로우 아니라 레지던트가 하기도 하니까.
하여간 그는 환자가 안 들어와서 화를 내려다가 주춤주춤하고 있었다.
“너, 일로 와 봐.”
장준혁은 그런 펠로우를 불렀다.
엄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네, 네.”
교수가 부르는데 와야지, 어쩌겠나.
펠로우는 곰 같은 덩치를 하고서도 겁먹은 기색으로 다가왔다.
“교수님, 여쭤보시죠.”
장준혁은 그가 충분히 가까이 오자 수혁에게 말했다.
수혁은 딱히 기다릴 생각도 없었던 참이라, 바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네, 교수님.”
펠로우는 다른 병원 출신이었다.
그렇다 해서 수혁을 모르진 않았다.
외과에도 수혁의 추종자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었으니.
아니, 그전에도 안티팬들은 많았다.
질투, 질시하는 이들.
‘이 천재가 왜…….’
왜 여길 와서 나한테 이럴까.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환자 어제 초음파 소견이 어땠죠?”
그리고 질문을 듣자, 살짝 혼절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음파…… 별 게 없었어.’
초음파를 생략했던 건 아니었다.
봤다.
그것도 꽤 열심히.
하지만 이상 소견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근데…… 그럴 수 있지 않나?’
초음파는 꽤 어려운 진단 수단이었다.
맨날 굴리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라면 모를까, 단지 보조 수단으로밖에 쓸 수 없는 임상 의사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오죽하면 누가 보느냐에 따라 종양이 있다 없다 하기도 할까.
특히 부위가 복부, 그중에서도 속이 빈 기관인 장이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어려웠다.
“초음파상에서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수혁도 그러한 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피지컬 검사에서 충수돌기염이 강력하게 의심되면…… 초음파 검사 정도는 생략해도 되지.’
[네, 하지만…… 이 환자는 다른 소견이 같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헷갈릴 수 있는 질환이 있기도 하고?’
[그렇죠. 국내에서는 드물지만…… 아예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충수돌기염은 흔하기도 하거니와 골든아워를 놓치면 예후가 확 나빠지는 질환이기에 지침 자체가 그랬다.
허나 이건 충수돌기염임을 확신할 수 있을 때 한정된 얘기였다.
아니, 확신이라는 걸 쉽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누누이 말해 왔지만, 의사가 얼마나 많은 질환을 의심했느냐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달라지기에 그랬다.
“그럼 신체검진만으로 진단을 내리신 거군요?”
“아, 네.”
펠로우는 긴장이 살짝……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 인간이 천재라지 않았나.
충수돌기염 진료 지침도 모를 리는 없었다.
‘근데…… 왜 우릴 붙잡고 이러는 거야. 장준혁 교수님은 여길 왜 와 있고?’
옆을 보니 장준혁 교수 또한 슬슬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허나 뭐라 말을 하고 있진 않았다.
‘음, 호오만 기대한다.’
이 생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어서 그랬다.
“지금 다시 해 보실래요?”
수혁은 그런 답답함을 모르지 않았다.
눈치가 백 단인데 모르겠나.
그가 이러는 건 다 연출을 위함이었다.
[속이 진짜 시커멓군요.]
‘응. 내가 제일 잘하는 게 이런 거야.’
[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여간 그의 말에 펠로우는 불만이 훅 끓어 올랐다.
‘나도 전문의인데…… 지가 천재면 천재지, 시발.’
욕설이라도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수혁.
천재.
아니, 그 전에 전임 원장의 아들.
그리고 현직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까라면 까야지, 시발.’
그렇지 않아도 다른 병원에서 온 사람이라 눈치 보이는데 여기서 개겨?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환자분?”
“네, 네.”
해서 펠로우는 환자의 다리를 굽히고, 말을 이었다.
“제가 배를 좀 눌러 볼 텐데…… 아프면 말씀하세요.”
“네네.”
“여기 아파요?”
“음, 조금?”
“음. 여기는요?”
“조금요.”
“여긴?”
“악!”
그러곤 어제처럼 배를 꾹꾹 눌렀다.
원래 무릎을 굽히면 복근에 힘이 풀리기 마련이라 배는 부드러워야 했다.
억지로 힘을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이는 이제 갓 12살이 된 마당이라 딱딱하면 안 되었다.
‘어제보다…… 살짝 딱딱……한데?’
허나 어제랑 살짝 양상이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우측 하복부를 눌렀을 때 제일 아파하기는 했다.
“뗄 때는?”
“약간 아파요.”
리바운드도 있었고.
약간이라는 말이 살짝 걸리긴 했지만.
하여간 신체검진은 꽤 전형적이었다.
펠로우는 됐죠, 하는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고.
수혁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시진은 안 해요?”
“네? 시진이요?”
이미 충수돌기염이라 확신하고 있던 펠로우 입장에서는 시비라는 생각만 들었다.
수혁이 환자의 몸에 돋아난 점상 발진을 가리키기 전까지는, 사실 장준혁도 그랬다.
외과에 가르침 내려달라고 해서 괜히 이러나 싶었다.
이현종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흉부외과한테도 맨날 시비 걸었다며.’
헌데 수혁의 손가락 끝에 발진이 있었다.
이런 망할.
저게 뭐지?
“꽤 전형적인 모양인데…… 본 적이 없나요?”
어떻게 봐도 이건 이상했다.
여드름 따위는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병이었다.
본 적?
아쉽게도 그런 적은 없었다.
“문진을 다시 해 보죠.”
수혁은 그런 둘을 돌아보다가, 말했다.
문진.
기본을 말했다.
펠로우는 좀 부끄러워졌는데, 다행히 득실거리던 환자들은 다 들어간 후였다.
“환자분.”
“네? 네.”
“배가 아파서 오신 거죠?”
“네.”
“열은 안 났어요?”
“열은 조금 있었어요.”
“부모님은 어디 계시죠?”
“아, 대기실에…….”
“그래요.”
수혁은 대기실 쪽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환자를 돌아보았다.
어리다곤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지 않겠나.
이 정도의 의사소통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혹시 최근에 해외여행 다녀온 적은 없어요?”
“있어요.”
“어디?”
“스리랑카요.”
“스리랑카? 여행지로는 잘 안 가는 곳인데?”
“아, 아버지가 사업을 하셔서…….”
“아하.”
스리랑카.
인도 동쪽에 있는 섬나라.
일부 고산 지대를 제외하면 더운 나라였고, 당연하다고 하면 이상하지만 모기로 인한 질환이 창궐하는 곳이었다.
“아.”
“이런.”
스리랑카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는 펠로우와 장준혁도 느낌이 왔다.
해외여행이 급격하게 늘어남과 동시에 늘어나는 질환이 동남아에서 주로 유행하던 열성 질환이라서 그랬다.
“느낌이 오나요?”
“네.”
“진단명은?”
“네? 벌써요?”
“아.”
물론 느낌만 왔다.
정확한 진단명은 딱 짚어 내기가 어려웠다.
당연했다.
자신은 이쪽의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었으니까.
하여간 지연된 시간이 10분이 넘어가자 마취과 의사도 나왔다.
몸집이 작아서 그렇지, 성은 비슷하게 냈다.
물론 모여 있는 인원을 보고는 뚝 멈추었다.
“그…… 어떻게 되시는…….”
“아, 수술 취소입니다.”
그런 마취과 의사를 보고 수혁이 말했다.
“네?”
“네에?”
“어?”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중에서 제일 격렬한 반응을 보인 건 역시 환자였다.
“저 안 해도 돼요?”
“네. 뎅기열이라고 들어 봤어요?”
“어…… 아뇨.”
환자는 안 들어 봤어도, 나머지 의사는 들어 봤다.
“우리나라에서는 뎅기열이 드물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죠. 근데 그런 나라에서조차 뎅기열로 인한 복통을 충수돌기염과 오인하는 케이스가 왕왕 있어요. 우리나라야 뭐. 말 다한 셈이죠.”
“아니…… 근데 대체 이걸 어떻게.”
질문을 던진 건 장준혁이었다.
눈에는 이미 가득 차 있던 존경심이 더더욱 팍 올라가 있었다.
이제는 동경이랄까, 아니면 경외랄까 하는 수준이었다.
수혁은 그런 장준혁을 보며 웃으며 답했다.
“여기.”
“여기……?”
“목뒤가 새카맣잖아요. 살이 벗겨지는 흔적도 있고. 최근에 탔다는 건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햇볕을 쬘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