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4화 외과 장준혁 (4)
목뒤가 탔다.
지금 한국엔 저만한 햇볕을 쬘 수 있을 만한 곳이 없다.
아니, 사실 한국 사람들은 여름에도 휴가라도 떠나지 않으면 직사광선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었다.
전 국민의 만성적인 비타민 D 부족이 우연은 아니란 얘기.
물론 어부라든지, 군인이라든지 하는 특수 직종은 사계절 내내 타겠지만 지금은 어린아이지 않나.
‘거기서…… 해외여행을 유추하고…….’
장준혁은 수혁의 추론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되짚어 보면 되짚어 볼수록 어이가 없었다.
‘점상 발진에서 열성 질환임을 유추하고…….’
점상 발진.
지금 다시 보면 좀 특이하긴 했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종류의 발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복통을 호소하는, 그것도 우측 하복부에 압통과 반발 압통을 호소하는 환자라면 대충 넘겨 볼 수도 있을 정도의 증상이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우하복부 통증을…… 뎅기열로. 이게…… 가능한 건가?’
알고 봐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탔어.
해외여행 다녀온 거 같아.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열성 질환을 의심해?
‘뻑 갔구만.’
[네, 완전 갔어요. 원래도 갔었는데…….]
‘이 친구도 갔어.’
[네, 완전 갔네요. 안대훈이 봤으면 열심히 포교했을 거 같은데, 다행입니다.]
장준혁뿐만 아니라 레지던트, 펠로우도 넋이 나가고 있었다.
물론 펠로우는 아직 좀 추한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거…….”
“CT 찍어 보시죠. 초음파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현재 보이는 증상이 충수돌기염만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면…… CT를 찍어 볼 수 있습니다.”
“그…….”
“제 말대로 하시죠. 절대 손해는 안 봅니다.”
“그…… 네.”
손을 달달 떠는 것이, 지금 당장이라도 메스로 배를 째고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듯 보였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한낱 레지던트의 의견이라 해도 이만한 근거를 제시했다면 들어줄 만한데.
지금 이 의견을 낸 사람은 이수혁이었다.
천재, 괴물 등의 수식어로 장식되는 사람.
“그럼, 우리도 들어갈까요?”
“아, 네.”
수혁은 뜻하지 않은 수확에 기분이 퍽 좋아진 상황이었다.
아니, 최근 들어 이만큼 좋은 적이 있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이제 막 칼을 대려는 순간에 구원한 상황 아닌가.
물론 복강경으로 했을 것이고, 크게 아프진 않았겠지만.
최근 마취 기술의 발달로 인해 합병증이 거의 없어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런 말로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안 될 말이었다.
‘좋아.’
[좋군요.]
여기서 뎅기열로 인한 충수돌기염을 보게 될 줄이야.
그리고 그걸 그냥 한눈에 알아보고 진단을 내릴 수 있을 줄이야.
이 정도 쾌거는 제아무리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이라 해도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
게다가 잘난 척도 충분히 한 느낌이었다.
하여간 내과적 지식을 뽐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이 훅 달라질 때, 이때가 제일 기분 좋은 지점이었다.
장준혁은 그러한 연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간 수혁의 표정이 밝아진 것에 만족하며 안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수술이 지연되어 가지고.”
“아, 아닙니다. 저 교수님도 가시는 겁니까?”
“네. 도움 주시기로 했습니다.”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환자 쪽이었는데.
환자는 오히려 엄청 좋아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방금 수혁의 위엄을 목도했으니.
내과와 외과는 엄청 다른 영역에 있긴 하지만.
알게 뭐란 말인가.
어려 보이는 의사 하나가 다른 의사들 여럿을 완전히 감복시켰는데.
드르륵.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불만 어린 표정의 마취과 의사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외과 펠로우 그리고 레지던트, 인턴이 보였다.
“밖에서 다른 환자 하나 살리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여기, 우리 이수혁 교수님께서 또…… 한 건 하셨어요.”
장준혁은 별로 미안한 기색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의사가 사람 살렸으면 됐지 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마취과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 말하진 못했다.
장준혁도 높은 사람인데 이수혁은 높다는 말을 쓰기도 뭐한 사람이어서 그랬다.
‘교주…….’
최근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는 교수가 아니라 교주로 불리고 있지 않나.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그만큼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위에서도 이뻐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위아래의 지지를 다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개기지 말자. 왜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지인이겠지? 존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자.’
해서 마취과 의사는 얼굴에서 불만을 지우고 환자에게 친절히 인사를 한 후, 마취를 시작했다.
“네, 환자 복부 검진 상 우연히 발견된 췌장 두부 종양을 주소로 본원 외래 내원하였고…… 입원해서 시행한 검사에서 췌장암이 확인되어 위플 수술 예정입니다. 맞습니까?”
장준혁은 수술 전 환자 확인을 일부러 좀 장황하게 했다.
수혁도 대충 보고 오기는 했을 테지만, 혹시 몰라서 그랬다.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사전 정보를 최대한 많이 줘야 더 잘하지 않겠나.
이는 만고 불변의 진리였다.
“자…… 그럼…….”
장준혁은 그답지 않게 긴장했다.
그런 장준혁을 보면서 제1보조의로 들어온 펠로우도 덩달아 한숨을 쉬었다.
‘아니…… 위플 많이 해 본 양반이 왜…… 갑자기 수선을 떠냐고…….’
필시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때 내가 들어갈걸…….’
간담췌는 한 묶음으로 잡히다 보니, 펠로우들도 담당 교수가 있는 게 아니고 해당 파트 안을 돌면서 다 배우고 있었다.
해서 이렇게 돌아가면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오늘이 하필 그랬다.
‘원래도 잘하던 양반이…… 그날 더 잘했다고 했지?’
VIP의 수술이 어려워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정말 완벽하게 됐다고 들었다.
아직 수술 영상을 받아 보진 못했지만 호들갑 떠는 놈은 아니니, 잘하긴 잘했을 터였다.
장준혁은 그 변수를 이수혁 교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고.
‘이게 무슨 미친 논리의 비약이냐고…….’
내과 교수가 왜 수술에 도움이 된단 말인가.
만약 환자의 전신 상태의 관리에 도움을 줬다고 했으면 그래도 뭐 수긍할 만할 텐데.
그냥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 도움이 된다니 말이 되나?
토템이야?
‘호오, 음은 뭐냐고.’
그러다 대화 도중 호오, 음 이론이 나왔을 때, 펠로우는 이해를 포기했다.
어쩌면 그날 마취 가스가 샜을 수도 있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장준혁은 교수인데.
까라면 까야 했다.
“잘해라.”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니들도.”
“네, 교수님.”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하기까지 했다.
레지던트에 인턴들까지 푸시하고 있었다.
레지던트는 몰라도, 인턴은 이름도 모를 것 같은데.
‘아니, 내 이름은 아나? 알겠지?’
완전 능력주의의 화신인 장준혁은 그렇게 보조의들의 고삐를 죈 후, 뒤를 돌아보았다.
“교수님, 그럼 부탁드립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명확한 변화였다.
“네.”
수혁은 영문을 몰라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수술은 시작되었다.
지이익.
메스.
날카로운 블레이드가 끼워진 칼.
장준혁은 그 메스로 배를 그었다.
“오.”
수혁은 그 순간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상한데?’
[저번보다 잘하는 것 같아요.]
단지 절개일 뿐이지만.
이상했다.
‘역시…… 그날 나는 성장했어.’
수혁의 착각은 아니었다.
장준혁도 느끼고 있었다.
내과인 수혁은 몰라도, 외과 의사들의 감각은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클래식 연주자들처럼, 자신의 실력을 매일 점검하는 이들이어서 그랬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소위 명의라 자처하는 이들은 그랬다.
지이익.
배가 갈라지고, 췌장의 두부를 포함한 소장의 일부, 그리고 담도가 잘려 나가고 재건되는 과정.
말로만 들어도 더럽게 어려워 보이는 수술, 위플.
“호오…….”
“음.”
“호오…….”
“호오?”
“오.”
“음.”
그 수술을 직접 이렇게 보는 것은 수혁에게도 처음이었다.
그냥 은혜 갚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보다 보니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장준혁의 수술은 어느 정도 영감을 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위플이라는 수술이 그런 것일는지도 몰랐다.
‘물리적으로…… 이렇게 수정하는 방법도 있구나. 아니, 있다는 건 알았는데.’
[눈으로 보니 훨씬 와닿는군요.]
‘대단해. 그래, 저렇게 하면…… 췌장 두부를 제거하면서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겠어.’
[처음에 이걸 고안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요?]
‘알 수 없지. 알 수 없지만 대단한 사람일 거야.’
[그렇겠어요. 이걸 고안했다는 거 자체가…… 단번에 실현해 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대단한 것이고요.]
보통 우리가 이해하는 수술은 절제술이지 않나.
병변을 제거하는 수술.
그것도 대단하지만.
내과 의사가 생각하기엔…… 그저 거기에 그치는 느낌이었다.
약으로 제거할 것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일종의 대체재 느낌.
‘재건을 한 번에 하는…… 흠. 대단해.’
[네. 확실히 저걸 고려하긴 해야겠죠. 쓸데없이 있는 장기는 없으니까.]
‘그래, 그렇지. 음…….’
[그렇다고 외과에 너무 흥미를 느끼진 말고요. 수혁의 목표는 내과에 있습니다.]
‘아, 당연하지. 하지만…… 이걸 고려한다면 치료에 뭔가 더…… 한 발자국 더 내디딜 수 있는 느낌이야.’
[음? 무슨 소리죠?]
‘아직은 안개같이 뿌얘.’
[보통 그렇지 않았습니까? 언제는 아니었던 것처럼……?]
바루다가 시비를 걸어 왔지만.
하여간에 수혁은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진단?
진단 쪽은 아니었다.
이쪽에 영감을 주기에, 장준혁은 택도 없었다.
허나 치료 쪽은 좀 달랐다.
진단해 놓고 현대의학의 한계란 이름으로 포기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나.
‘재건을 고려할 수 있다면…… 치료법이 훨씬 다양해질 거야.’
[으음…….]
‘해 보지 않은 과정이긴 하지만, 충분히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있으니까요?]
‘어. 너 갈아 넣으면 대충 다 되던데?’
[미친……]
‘이따 갈비.’
[오케이.]
그걸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친…… 나 왜 이렇게 잘해.’
수혁도 영감을 얻어 나가곤 있었지만 장준혁만큼은 아니었다.
“호오…….”
‘이게 맞아? 아, 그렇네. 이게 맞아. 미친……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수혁이 신기라도 있는 사람처럼 감탄사를 통해 장준혁의 수술을 교정해 나가고 있어서 그랬다.
그 덕분에 수술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도 완벽한 방향으로.
‘아니…… 오늘 교수님 약이라도 빠셨나.’
펠로우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화를 안 내잖아.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지랄을 하더니, 오늘은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진짜로 잘되고 있었다.
위플이고 나발이고 췌장암이다 보니 예후가 좋을까 싶었는데, 좋을 거 같았다.
‘이건 진짜 살릴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