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56화 (856/1,303)

856화 응급 질환 (2)

“아, 안녕하세요.”

그 사이, 수혁은 아주 자연스럽게 진료하는 데 끼어들었다.

앞에 있던 응급실 레지던트, 그리고 노티받고 내려온 신경과 레지던트는 성을 내려다 수혁의 얼굴을 확인하곤 뒤로 물러섰다.

‘휴.’

‘시발…… 존나 다행이다.’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딱 들려는 찰나에 나타난 수혁은 방해꾼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자였다.

아니, 딱히 그런 상황이 아니라 해도 구원자는 맞을 터였다.

적어도 레지던트들 사이에서 수혁은 그렇게 통용되고 있었다.

“교수님!”

“환자 보시려고요?”

“어, 괜찮아요?”

“그럼요, 그럼요!”

해서, 레지던트 둘은 아예 자리를 확 비켜 주었다.

수혁은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가 환자를 마주했다.

‘쇠약해 보이네. 나이는…….’

[만 54세. 이 나이보다 수년은 더 들어 보이는데…… 아마도 최근에 살이 빠진 거 같습니다.]

‘오케이. 그리고?’

[사지에 힘이 좀 빠져 보입니다.]

‘쇠약해져서 그런 건 아닐까?

단지 마주하기만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즉시 관찰에 들어갔다.

[아뇨. 근육량에 비해서도 약합니다. 보시죠. 자세 유지가 안 되지 않습니까? 이건 신경병증의 증상입니다.]

‘오케이. 그렇다면…… 제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길랑-바레(운동·감각신경을 마비시키는 말초성 신경병)일 텐데.’

[네, 아마도?]

수혁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옆에 놓인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신경과야 그냥 수혁을 대단하다고 여기고 있을 뿐 딱히 함께 진료한 경험이 없어 허둥대고 있었지만, 응급의학과는 수혁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이지 않았나.

환자 진료 기록은 수혁이 관심을 가졌을 때부터 딱 띄워 놓은 참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환자의 병력을 슥 훑어 볼 수 있었다.

‘역시 길랑-바레로 진단을 받았었네. 하지만 치료에 반응은 전혀 없었고…….’

[네, 그게 3주 전이니…… 오진이었다면 뭐라도 진행을 했을 겁니다.]

‘음.’

수혁은 그렇게 대강 병력을 확인한 후 환자를 돌아보았다.

“환자분.”

“네, 네.”

“음.”

아까랑 달랐다.

불과 몇 분도 채 흐르지 않았는데…….

말이 흐릿해진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었다.

“저기, 원래 이러셨나?”

눈빛이 흐리멍텅해져 있었다.

“아, 아뇨. 아까는…….”

“어……?”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것도 꽤 빠르게.

“원래도 좀…… 어눌하시긴 했는데…….”

“어눌했다고?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대화를 하던 와중에도, 환자는 점점 이완되어 가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숫제 이완성 마비에 가까웠다.

“호흡…… 호흡이.”

“어…… 산소 포화도 떨어집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비명을 질렀다.

신경과도 마찬가지였다.

‘시발…… 이거 설마 뇌출혈이나 경색인가?’

후달렸다.

실수해서 환자 놓치게 된 걸까 봐.

“인투베이션!”

그 와중에 수혁은 딱딱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순서대로 진행해 나갔다.

다행인 것은, 태화 의료원의 응급실도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란 점이었다.

훈련받은 인원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빈틈없이 움직였다.

사실상 병원이라는 곳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을 매일 겪는 집단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일단 한숨 돌렸고.”

수혁은 귀신 같은 솜씨로 플라스틱 관을 목 안에 밀어 넣고는 산소 포화도를 확인했다.

산소를 같이 넣고 있다 보니 쭈우욱 하고 포화도가 회복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한숨 돌린 셈.

“혈압…… 쭉 떨어지는데.”

한숨만 돌렸다고 해야 할 상황이었다.

망할.

“C-라인.”

“네.”

수혁은 쉴 새 없이 움직여 환자의 쇄골 아래 정맥에 중심정맥관을 박아 넣었다.

그러곤 일단 수액부터 때려 넣기 시작했다.

혈압이 70대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피를 뽑아 검사를 냈는데, 결과가 나오려면 한참 걸릴 터였다.

그 사이에라도 환자를 살리려면 이게 대체 뭔 일인지 파악해야만 했다.

“우선은…… CT 찍어서 뇌 병변을 확실히 배제해야 해.”

“네, 교수님.”

제일 급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뇌출혈이나 뇌경색.

가능성이 낮다곤 해도 배제는 해야만 했다.

놓쳤을 때의 파급이 너무 크니까.

그리고 동시에 진단해 내면, 지금 타이밍이라면 별다른 합병증 없이 살릴 수 있을 테니까.

위이잉.

애초에 뇌 병변을 배제하기 위한 영상 검사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든 간에 상관없이 밀고 들어갈 수 있는 검사였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도 응급실 환자들이니만큼 급하겠지만, 이것보다 우선 순위에 둘 만한 질환은 없어서 그랬다.

“빨리!”

근데 거기에 수혁이 끼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 장준혁을 위시한 외과 일행까지 붙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네네.”

일사천리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이 되었고, 수혁은 머지않아 영상을 받아 볼 수 있었다.

‘아니군.’

[네. 아닙니다.]

결과, 뇌출혈이나 뇌경색은 아니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MRI를 찍어 보면 또 다른 양상의 뇌 병변을 확인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길랑-바레라…….’

[갑작스럽긴 한데……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큽니다.]

해서 수혁은 환자를 처치실로 데려간 후, 뇌척수액을 뽑았다.

정말 길랑-바레라면 뇌척수액에서 특이한 양상을 보일 것이기에 그랬다.

“중환자실 준비되어 있나요?”

“아, 네. 되어 있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어레인지해 주시고. 이거 결과 빨리 봅시다.”

“네, 교수님.”

“진단검사의학과에 급한 거라고 콜 넣어요.”

“네, 교수님!”

수혁은 점심을 먹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배고픔도 잊은 상황이었다.

‘길랑-바레가 맞을까?’

[찜찜하긴 하지만…… 그 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검사 결과가 필요합니다. 우선 지금 확인해 볼 수 있는 건 이거죠.]

나머지는 아니었다.

‘배고파 뒤지겠는데?’

특히 집도했던 장준혁은 꼬르륵 소리를 참아 가고 있었다.

수술이라는 것이 그냥 보기엔 움직임이 적어 보일지 몰라도, 생각보다 칼로리 소모가 꽤 있는 작업이지 않나.

게다가 오늘은 고난도의 수술을 미칠듯한 속도로 마친 상황이었다.

어마어마한 집중력도 동원되었다.

평소라면 점심, 저녁을 다 챙겨 먹었을 텐데 오늘은 끼니도 거를 정도였으니.

‘교수님…….’

‘제발…….’

‘안 돼, 일단 눈치 좀 챙겨라.’

보조했던 사람들이라고 배가 고프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젊어서 더 배가 고팠다.

꾸르륵.

하지만 연달하 합창하기 시작한 배들을 뒤로하고, 수혁은 환자 주변을 서성였다.

‘배가…… 흐음.’

계속 관찰을 하다 보니, 특히 아까보다는 여유를 갖고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배가 나왔군요?]

‘말랐는데…… 올챙이 배 형상은 아니지?’

[네. 이건…… 안에 뭔가가 차 있는 형상입니다.]

배를 두드려 보니 둥- 하는 소리가 났다.

물이 차 있다는 소리였다.

복수가 찼다는 뜻이다.

의외로 일반인들도 이런 상황을 많이 보았을 텐데, 주로 NGO 단체의 홍보 영상에서 접했을 터였다.

사람이 영양결핍 상태에 빠지게 되면 혈중 알부민을 비롯한 단백질이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되면, 삼투압 현상에 의해 액체가 자꾸 배로 빠져나가게 되었다.

이 환자도 그걸 겪고 있는 듯했다.

‘길랑-바레……와 영양결핍에 연관이 있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 진행한 영양결핍이라면 또 다른 증상을 일으킬 수 있죠.]

‘음?’

[냄새…… 아, 환자가 실금을 했나 봅니다.]

영양결핍.

그것도 꽤 심각한 수준의 영양결핍이었다.

거기에 더해 실금을 했다.

의식 수준이 낮아졌으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보다 중요한 건 어떤 양상의 변을 보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출혈이 있다면…… 이것도 급하게 다루어야 해.’

[네, 그렇습니다.]

수혁은 말없이 커튼을 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아직 냄새를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허나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고 있기는 해서, 다들 앞다투어 커튼 치는 걸 도왔다.

하여간 뭔가 검진을 할 거란 것은 확실하지 않나.

‘음.’

커튼을 친 이상, 모두가 침대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외과 일행 중엔 장준혁만이 안에 남았다.

짬으로 밀어 낸 것도 있지만, 사실 나머지는 그리 관심이 없기도 했다.

한창 수련 중인 외과의가 칼에 관심을 둬야지, 이런 데 관심을 둬서야 되겠나.

‘뭐지?’

사실 장준혁도 딱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얼떨결에 안에 들어와 있게 된 것이었다.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의 바지를 내리고, 흘러나온 변의 양상을 확인했다.

더럽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장갑을 끼고 있었고, 이걸 봐서 진단할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일 테니.

“흠.”

변은 흐물흐물했다.

그리고 냄새가 아주 지독했다.

“기름처럼 보이는 변…… 이 환자 혹시 수술력이 있나요?”

수혁의 말에 장준혁은 습관처럼 환자의 배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최근에 복강경을 비롯한 최소 침습 수술이 발달하고 있다지만, 이 환자는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아뇨, 없어 보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소화가 안 된다기보다는 흡수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방치되었다면, 제아무리 잘 먹었다 한들 영양결핍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방금 전까지는 알코올 중독을 의심하고 있었는데…….’

[타당한 추론이었습니다. 하지만…… 흠.]

‘이렇게 되면 안 먹은 게 아니라 그냥 흡수를 못 한 거야.’

알코올 중독이 되면, 대부분의 음식을 술로 때우게 되기 마련이었다.

당분간은 괜찮을 수 있었다.

술도 열량이 대단하니까.

하지만 대다수의 미량 원소가 부족한 데다, 단백질 같은 것도 없지 않나.

지속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 환자는 그런 게 아니었다.

‘흡수장애라…….’

[우리나라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문제는 소장흡수장애라는 게 진짜로 드문 질환이라는 점이었다.

그 자체로도 드문데, 이렇게 길랑-바레랑 비슷한 증상까지 생긴다?

‘말이 되나?’

[언제는 말 되는 환자만 봤나요?]

‘하긴…….’

괴질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지경이었다.

부우웅.

그때, 전화가 울렸다.

진단검사의학과였다.

아까 검체를 보냈으니 그 관련 전화이지 않겠나.

수혁은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알부민세포학적 해리 소견(길랑-바레의 전형적인 소견)입니다. 다른 세포는 하나도 늘어나 있지 않은데…… 단백질만 늘어나 있어요.”

“아하.”

“길랑-바레…… 증후군에 합당한 소견입니다.”

이미 다른 걸 의심하기 시작했는데, 걸려 온 전화는 영 딴판이었다.

물론 다른 이들은 수혁의 의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단지 전화에만 반응했다.

“길랑-바레면 경험적 정맥 면역글로불린(IVIG) 주사하겠습니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정말…… 교수님 감사합니다.”

“와, 그럼 이제 밥 먹으러 가실까요?”

다들 와다다 하는데, 수혁만은 그대로 서 있었다.

‘있을 수 있지.’

[네,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길랑-바레에서 이런 식의 흡수장애는 동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건 헛다리야.’

[맞습니다.]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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