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9화 김승규 (1)
베네수엘라라는 이름을 듣고도, 다른 이들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카리브해 얘기가 나오고 나서야 ‘오?’ 하고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그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좋군요.]
바루다도 그랬다.
딱 예상대로 움직여 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것만 해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인데, 지금은 하나 더 좋은 일이 있었다.
‘이제 이 환자는 별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어.’
[별문제 없이 살아간다기보단…… 불편하긴 하겠지만 오래 살 수 있겠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거야 그렇긴 한데…… 아까 봐라. 그거 치료 안 하고 그냥 두었으면 이 환자 뇌 병변 후유증 생겼을 거야.’
[그건 그렇죠.]
골든아워.
이건 비단 중증외상센터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었다.
모든 질환에는 골든아워가 있었다.
단지 그것이 치명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이 환자의 경우엔 더없이 치명적일 수 있는 질환이었고, 수혁의 재빠른 진단에 의해 구원받았다고 볼 수 있었다.
구원이라는 말이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군요. 혹시 설사 빈도가 늘거나 하진 않았나요? 살이 빠진다든지?”
“아…… 네. 살이 자꾸 빠지더라고요. 처음엔 암인가 했는데…… 아니지. 저 암이에요? 설마?”
50대 여성.
아무리 노화가 늦춰지고 있다고 하지만 50대라는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방금 환자가 언급한 ‘암’이라는 무서운 병의 유병률이 치고 올라와 다른 모든 사망 원인을 압살하는 나이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 심각한 변화만 유발하는 건 아니었다.
기초 대사량이 줄어듦에 따라 살이 찌는 등의 변화도 수반하기 마련이었다.
일부 연예인처럼 타고난 몸에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면 또 모를까, 대부분은 그럴 수 없는 게 의학적인 현실이었다.
허나 이 환자는 마른 몸매였다.
“원래는 통통하셨어요?”
“네? 아, 네.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다 살이 쭉쭉 빠지더라고요. 아니, 근데 저 암이에요? 아니라고 들었었는데.”
“아, 아닙니다. 암은 아니에요.”
“휴.”
근육이 탄탄한 몸매는 아니었다.
흡수가 안 돼서 빠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도리어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질환 상태와 헷갈릴 정도로 깡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쪽으로 오인되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지.’
[네. 알코올 의존증이 있다면, 환자 진술에 대한 신뢰도도 낮게 평가할 테니까요.]
환자가 하는 말을, 적어도 의사는 다 믿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허나 슬프게도 그 대원칙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다.
알코올 의존증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안 마셨다고 하고 마시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특히 대한민국처럼 음주에 있어 관대한 문화를 지닌 곳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얼마 전까지 맥주가 음료로 분류되었던 러시아만큼은 아니겠지만, 한두 잔쯤은 음주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문제도 있었고, 의도적으로 폭음을 감추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환자는 그럼 꽤 억울하게…… 오진이 됐을 거야.’
[애초에 글로불린만 썼다면 회복되지 않았을 테니……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었을 수 있습니다.]
‘아, 그것도 그렇긴 하네.’
여러모로 환자는 구사일생한 셈이었다.
그나마 스프루 질환을 많이 보는 지역의 병원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오진도 못 하고 이런저런 검사만 하다가 골든아워를 놓쳤을 터였다.
“열대성 스프루라는 질환에 의한 흡수장애가 생긴 겁니다. 쉽게 말해, 먹어도 우리 몸이 흡수를 못 하게 된 거예요.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영양소가 부족해져서…… 신경병증이 생긴 거죠.”
“아…… 그럼 저…… 전 어찌 되는 건가요?”
신경병증.
환자의 귓전을 때린 건 스프루보다도 이 단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뭔가 심각해 보이니까.
실제로 신경 어쩌구가 들어간 병은 대부분 심각하기도 했고.
이 환자에 있어서도 예외가 있던 것은 아니었던지라, 수혁은 빠르게 답을 해 주었다.
“괜찮습니다. 신경병증은 지금도 빠르게 호전 중이고…… 시간 지나면 완전히 좋아지실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다만…….”
“다만……?”
물론 좋은 얘기만 해 주진 않았다.
환자로 하여금 쓸데없이 걱정하게 만드는 것도 당연히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또 말도 안 되는 희망에 부풀게 만드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어서 그랬다.
특히나 지금 이 질환처럼 증상 컨트롤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필요가 없었다.
‘환자는…… 이성적이야.’
[네. 강한 사람입니다.]
‘그 먼 외국에서 일했는데 강한 사람이겠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수혁 더 이상 휴먼이 아니게 된 겁니까?]
‘아니, 맞는데?’
[뭐가 맞다는 건지…….]
바루다와 살짝 의견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 환자는 이야기를 아주 차분히 잘 듣고 있었다.
덕분에 수혁은 앞으로 주의해야 할 점을 비롯해 예후에 관한 얘기 및 치료의 방향 등을 찬찬히 들려줄 수 있었다.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장준혁이나 신경과 레지던트 등이 뻑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장준혁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얼마나 깊은 감명을 받았던지, 다음날 열린 외과 회의에서도 내내 이수혁 생각만 하고 있었을 지경이었다.
“일단…… 간 이식은 우리가 1등이긴 해. 근데…… 다른 파트. 특히 간담췌. 이쪽은 좀 밀리고 있다고.”
심지어 김승규가 주관하는 회의인데도 그랬다.
장준혁에게는 불행하게도, 김승규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성질이 사나운 편에 속했다.
이현종과 더불어 석좌 교수를 받은 사람이니만큼 70까지 해 먹을 사람이다 보니 여전히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었고.
“저기.”
그런 김승규의 눈에 장준혁의 흐리멍덩한 눈알이 들어왔다.
‘뭐지?’
김승규로서는 진짜 처음 보는 종류의 눈이었다.
감히 그 앞에서 멍 때리는 인간이 여태 없어서 그랬다.
설마 그렇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김승규를 마주한다면 아마 입도 열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맹수에 가까운.
‘뭐 하는 거지?’
해서, 오히려 처음엔 장준혁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저 뭐 하는 건가 싶어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변을 눈치챈 것은 주변에 있던 이들이었다.
다른 교수들과 펠로우, 그리고 4년 차 레지던트들.
나름 이 회의에 들어오도록 허락받은 이들이었고, 달리 말하면 김승규의 무서움을 충분히 겪어 본 이들이었다.
‘미쳤나…… 전국구 깡패가 말하는데…….’
‘교수님 어제 과음하셨나?’
‘아니, 그냥 여기서 밥 먹고 진료 따라 다니다 가셨는데.’
‘진료를 따라다녀……?’
‘쉿. 여기로 눈알 돌아오면 너 감당할 수 있어?’
‘노.’
해서 잠시 수군거렸다.
물론 그것조차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왜냐?
무서웠으니까.
‘저게 딴짓이라는 건가.’
드디어 김승규도 장준혁의 머릿속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곰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장준혁은 어제 일에 빠져 있었다.
진단 과정에 빠져 있던 건 아니었다.
그것도 물론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래, 거기서 그렇게 움직이는 게 역시 최선의 수였어.’
그는 어제 했던 수술을 복기하고 있었다.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 수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게 된다면, 그는 정말로 한 껍데기 깨고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거기는…….’
허나 먼저 깨진 건 그를 둘러싸고 있던 한계라는 이름의 껍질이 아니라 머리통이었다.
“억?”
김승규가 후려쳤기 때문이다.
세게 친 것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때렸다간 죽을 수도 있어서 그랬다.
대신 손가락으로 딱밤을 날렸다.
맞은 사람 입장에서는 딱밤이 아니라 무슨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지만, 하여간 배려라는 걸 했다.
“뭐 해? 지금 너네 파트 후달린다고 말하고 있는데 뭐 하고 있냐고.”
한 차례 얻어맞은 장준혁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선 귀신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히익.”
“교, 교수님. 마스크라도 끼시지.”
심리적 무방비 상태에서 김승규의 성난 얼굴을 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던 장준혁이라도 그랬다.
“어어…….”
넋이 나가기 시작한 그를 보고 나서야 김승규도 정신을 차렸다.
“에이, 시발.”
“어어. 욕까지 하시면…… 저도 너무 무섭습니다, 교수님.”
“에이.”
해서 마스크를 끼고 차분히 기다렸다.
한 1분쯤 지나서야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해졌다.
“그래. 무슨 생각 했어.”
“수술 생각을 했습니다.”
“수술 생각?”
잠깐 딴생각 했다고 하면 화를 내려고 했는데, 수술이라고 하니 이게 또 마음이 약해졌다.
다른 외과계 의사들이면 또 모르겠지만 태화의 외과 의사들이라면 일생을 장인의 길에 바치는 이들이지 않나.
눈치를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도 않았다.
“네. 제가 어제 수술을 진짜 잘했거든요. 한 꺼풀 벗고 나왔습니다.”
“으음…….”
근데 듣다 보니까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았다.
‘너 나이가 이제 50인데…… 거기서 실력이 늘겠냐?’
미친 소리지 않은가.
물론 나이가 지긋이 들고 나서도 실력이 늘었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백강혁이라는 괴물이 한유림을 갈아 넣어서 실력이 늘었다고는 했다.
근데 그건 백강혁이잖아.
실력도 실력인데,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그토록 망설임 없이 갈아 넣을 수 있는 것 또한 비범한 일이었다.
‘괜찮은 거야? 술 냄새는 안 나는데?’
해서 옆에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단 말만 돌아왔다.
그동안에도 장준혁은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 밀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원래도 좀 자뻑이 있는 친구긴 했다.
그럴 만한 인간이기는 했다.
꽤 잘하는 편이었으니까.
다른 데서도 아니고, 태화에서 잘하는 편이라면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다른 메이저 병원들도 잘하고 있으니 비슷한 수준이긴 했지만.
“정말입니다. 영상 받아 왔니?”
“아, 네.”
“줘 봐.”
“여기서요? 회의 시간에……”
“간담췌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다며. 그것에 대한 해명이 되겠지.”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고라니.
미쳤나.
나도 있는데.
새끼가.
하도 벙쪄서 보고 있으려니, 장준혁이 멋대로 엑셀 파일이 나오고 있던 컴퓨터에 USB를 꽂곤 수술 영상을 틀었다.
“편집됐나?”
“아, 네. 살짝만요. 사실 편집할 게 별로 없습니다.”
펠로우를 갈아 넣은 영상이었다.
평소였다면 진짜 빡쳤을 텐데, 어제는 그냥 할 만했다.
보면서 감탄 나오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었어서 그랬다.
정말로 잘했다.
김승규가 보기에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좋아. 한번 보시죠.”
장준혁은 보장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틀었다.
김승규는 픽 웃으며 보았지만, 이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잘하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에 거슬리는 소리도 들렸다.
“근데 누구야? 추임새 넣는 거. 백 교수님이야?”
너무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