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60화 (860/1,303)

860화 김승규 (2)

백 교수.

장준혁에게도 그렇지만, 김승규에게도 평생 잡힐 생각 없이 앞으로만 달려나가는 오토바이 후미등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대체 그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아…… 그 정도인가요?”

장준혁은 김승규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영상은 멈춰 있었다.

무심결에 말한 거였고, 딱히 장준혁하고 대화할 생각은 없던 김승규는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수술을 좀 더 보고 싶었다.

못해서가 아니라, 잘해서.

“어어, 그러니까 틀어 봐. 뒤에 한숨 쉬는 사람 누구야.”

장준혁은 그런 김승규를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동심이 동했다.

저 망할 노 교수를 놀려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말을 안 하고 그냥 영상만 보여 주었다.

별 상관은 없었다.

김승규는 수술과 뒤로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 이거 편집본이네. 자꾸 잘라?”

“죄송합니다.”

펠로우가 사과를 하고, 김승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인 후 영상을 좀 더 보았다.

남은 시간은 무려 15분.

할애하려면 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대학 병원이지 않나.

그것도 심지어 외과였다.

태화의료원에서도 빡센 곳으로 분류되는 과.

그중에서도 김승규는 제일 바쁜 사람이었다.

“으음…… 일단 멈추고, 영상 나 줘.”

“아, 네.”

“그리고 장준혁.”

“네, 네.”

그리고 무서운 인간이었다.

아까 자신이 묻는 말에 답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하고는, 인상을 구기며 장준혁을 돌아보았다.

동심에 젖어 있던 장준혁이 현실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였다.

초 단위로 계산하기에도 너무 짧았다.

“이거 누구냐고 아까 물었지.”

“아, 네. 그…… 이수혁 교수입니다.”

“이수혁?”

마치 훈련소 신병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서 묻는 말에 즉각 답했다.

그런 장준혁의 답에 김승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수혁……?’

그가 아는 이수혁은 딱 하나인데, 그는 내과 의사라서 그랬다.

“내과?”

“네.”

“내과 교수가 왜 위플 수술에 들어왔어. 지인이야?”

“아, 아뇨. 제가 부탁드렸습니다.”

“뭐래.”

원래 대화라는 건 하면 할수록 뭔가 실마리가 풀려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특히 김승규의 대화는 그러했다.

어쩐지 상대가 초조한 얼굴로 아는 얘기를 다 털어 놔서 그랬다.

지금도 그러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허나 들을수록 뭔 소리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뭐라는 거야?”

“그…… 제가 지난주 토요일에 이수혁 교수님 지인분 수술을 했습니다.”

“아, 그건 들었어. 잘됐나? 잘돼야 하는데? 거기는 도움 많이 받았다고.”

“네네. 잘돼도 너무 잘됐습니다.”

“원래도 그런 편인데 오늘 유독 잘난 척이 좀 그렇네.”

기분도 슬슬 나빠져만 가고 있었다.

그래, 장준혁이 50대 교수 중에 제일 잘하는 건 맞았다.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40대 중에서 저만한 애 하나만 건져도 괜찮은 수준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잘하는 건 맞았다.

하지만 감히 자기 앞에서 잘난 척할 수준이던가?

김승규는 레전드인데?

“아…… 근데 이게 잘난 척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정말 잘됐어요. 그렇지?”

장준혁은 쫄지 않고, 옆에 있던 펠로우의 어깨를 툭 쳤다.

토요일에 들어왔던 이였다.

그는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잘됐습니다.”

“흐음…….”

펠로우까지 가세한 이상,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의미가 없을 터였다.

원래 펠로우란 존재는 더 위에 있는 교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게다가 김승규지 않나.

그런 이를 마주하고도 저러고 있다면, 사실일 터였다.

“근데?”

“그때 이수혁 교수님이 호오, 음으로 제 수술을 도왔거든요.”

“아까 추임새…… 그게 정말 이수혁이라고?”

“네. 그래서 월요일에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도 역시나 도움이 됐습니다.”

“허…….”

김승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몽골에서 있던 일도 떠올라서 그랬다.

‘그래……. 분명…… 백강혁 교수님이 이수혁 교수를…… 묘한 눈으로 봤었지.’

묘한 눈?

아니, 그건 두려움이었다.

분명히 그런 기색이 느껴졌다.

착각은 아닐 터였다.

김승규처럼 상대가 두려워하는 얼굴을 많이 보아온 사람이 흔하겠나?

수십 년을 보아온 마당에, 그걸 몰라볼 수는 없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거야……. 하긴 이수혁 교수가…… 이현종 그놈보다도 똑똑하다고 했어.’

다른 누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현종이 하는 말이었다.

자존심 강한 천재가 그런 말을 했다.

아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는 아니었다.

김승규가 아는 이현종은, 적어도 똑똑함에 있어서는 그 어떤 종류의 타협도 하지 않을 놈이었다.

‘내과에 독보적인 천재가…… 외과라고 해서 예외일까? 아닐 거 같은데…… 실제로 수행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음.’

김승규는 그럴싸하단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과에서 천재인데 외과도 잘한다면, 그건 좀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김승규만 한 나이가 되면 절로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하늘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것.

어떤 놈은 잘생기고 키도 크고 머리고 좋고 그래서 성격도 좋은 데 반해 어떤 놈은…….

김승규는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래, 이수혁 교수라면 충분히…… 흠. 그래. 음.”

“왜 그러세요?”

“나도 한번 부르려고.”

“네? 아니, 교수님은 이미 완성…….”

“자네 백강혁 교수님이 간 이식하는 거 본 적 있나?”

“네? 그 교수님이 이식도 해요?”

“어.”

“잘하세요?”

“대답하기 싫어질 정도로.”

“아.”

백강혁은 성격이 더러워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인간이 성격까지 좋았다면 진짜…….

‘아들놈이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던가?’

와…….

근데 그 성격에 애까지 낳았네.

난…….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김승규는 자신이 지금 회의실에 있다는 걸 깨닫곤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자네가 도움을 받았다면,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어…… 근데 올까요?”

“왜.”

“아니, 그. 와도 이게 협력이 아니라 협박…… 읍.”

그러곤 장준혁의 뒤통수를 살짝 만져준 후, 밖으로 나왔다.

물론 생긴 거에 비하면 속은 또 여린 사람이다 보니 머리는 굴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장준혁하고는 입장이 좀 다르지 않나.

저쪽은 은인이라는 사람 수술을 해 줬고, 이쪽은 얼굴만 무서웠다.

‘에이…… 씨…….’

늙으면 보통 좀 부드러워진다고 해서 화장실 거울을 봤는데, 어째 백전노장의 얼굴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어우.”

들어오려던 환자인지 보호자인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뒷걸음질로 나간 적도 있었다.

하긴.

엘리베이터도 맨날 혼자 타지 않나.

되게 다급해 보이는 사람도 김승규가 타 있으면 들어오질 않았다.

‘이수혁 교수…… 취미가 돌림판이라고 했지.’

하여간 얼굴로 협박하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나?

나이가 이제 내년이면 65세.

원래 같으면 정년인데 언제까지 얼굴로…….

해서 상대에게 맞춰서 대응하고 싶었다.

‘근데 돌림판이 뭐지?’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해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당최 해 봤어야 말이지.

게다가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 관심이 많지 않은 법이었다.

특히 김승규처럼 자기 커리어를 팍팍 쌓아 나가고 그걸 넘어 후학 양성에 힘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대훈…… 그 새끼를 찾아가자.’

허나 김승규 또한 천재 아니던가.

금세 묘안을 떠올렸다.

이수혁에게 맞추기 위해 안대훈을 협박하자는 발상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기 생김새에 불평불만을 해 오긴 했지만, 평생 생김새를 이용해 오지 않았나.

이제 와서 돌이키려고 해 봐야 소용없었다.

쾅쾅.

해서, 김승규는 전문의 시험을 볼 이들이 모여 있는 의과대학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 뭐…… 읍.”

대체 누가 도서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단 말인가.

어이없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이들은 다시 급하게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승규.

얼굴을 아는 이들은 교수라서 그랬고.

얼굴을 모르는 이들은 얼굴을 몰라서 그랬다.

‘누가 사채 빚이라도 썼나?’

‘그 정도 사이즈로 올 거물이 아닌 거 같은데.’

‘영화 찍나……? 분장 아닌가?’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승규는 구둣발로 도서관을 거닐기 시작했다.

‘여기 있다고 했지.’

아마 틀림없을 터였다.

아까 내과 애가 그랬다.

왜인지 모르게 벌벌 떨면서.

‘물으면 친절히 답해 주겠지?’

후후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궁금증을 못 이기고 기웃거리던 이들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웃는 얼굴이 더 무서운 사나이, 그것이 김승규였으니까.

‘대머리…… 옳지. 저기 있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승규가 이곳에 그리 오래 머무를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안대훈의 외모 덕이었다.

얼굴을 몰라도, 상당히 특색 있는 느낌이다 보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안대훈 선생?”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허나 김승규가 모르고 있던 점도 하나 있었다.

안대훈을 진짜 특이하게 만드는 건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것.

그는 실로 놀랍게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김승규를 보면서도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이수혁 교주님의 얼굴이다…….’

이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남들이야 그런 생각을 어찌 알겠나.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과연 이수혁의 심복이구나.’

특히 김승규는 이런 게 좀 빠른 사람이었다.

남들이 다 숙이고 들어와 줘서 그랬다.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할까? 이수혁 교수님 얘기인데.”

“시간을 내지요.”

안대훈은 안대훈대로 놀라고 있었다.

‘김승규…… 외과의 전설. 간 이식의 대가. 이런 사람이 왜 교주님을 찾는 거지?’

그저 이수혁 때문에 놀라고 있었다.

그의 이수혁에 대한 충성심은 진짜를 넘어 광기의 수준에 있었으니까.

하여간 안대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김승규를 따라 나갔다.

그런 그의 얼굴엔 두려움 대신 호기심만 자리하고 있었다.

‘와…… 진짜 비범하긴 비범하다.’

‘과연…… 통합진료센터의 미래…….’

그러한 모습이 안대훈에 대한 소문을 더더욱 무성케 하고 있었다.

달칵.

둘은 도서관에서 나와 복도에 섰다.

병원에 있는 도서관 복도니 만큼 으슥한 느낌은 원래 없었다.

허나 김승규와 안대훈이 서 있자 으슥한 느낌이 일었다.

아니, 삼엄한 느낌마저 일었다.

“이수혁 교수님 관련……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죠?”

“돌림판을 돌린다고 들었는데.”

“네. 제가 만들었습니다.”

“그거 왜 돌리는 거지?”

대화 자체는 어이없을 정도로 수상쩍지 못했다.

“이수혁 교수님은 어려운 케이스를 좋아하시거든요.”

“그건 알아. 그래서 통합진료센터를 만든 거 아닌가?”

“근데 그 케이스가 갑자기 뚝 떨어지면 진짜로 좋아 죽으십니다.”

“아…… 보통은 싫어하지 않나?”

“천재를 범재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새끼.’

김승규는 욱하는 마음을 참고 물었다.

“그럼…… 내가 갑자기 어려운 케이스를 들고 가면 좋아하려나?”

“무조건이죠.”

“그러고 나서 수술방에 들어와 달라고 하면?”

“한 3개 케이스는 필요하겠는데요?”

“어려운 케이스 수준이 어떤데?”

“적어도 리포트를 쓸 정도는 되어야죠.”

“이런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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