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61화 (861/1,303)

861화 김승규 (3)

“흠.”

아무리 김승규라 해도 전문의 시험을 봐야 하는 안대훈을 무한정 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선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빙그르르르.

게다가 그럴 이유도 없었다.

일단 돌림판을 받았으니까.

“이쪽으로 돌아서 갈까?”

“어우…… 저게 뭐야.”

미친놈이,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려고 도서관 자리 맡을 때 돌림판을 올려놓는 모양이었다.

-아무도 안 건드리던데요.

해맑게 웃던 안대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 대 때릴 뻔했다.

이런 걸 올려놓으면 당연히 안 건드리지.

아마 올려 둔 흔적만 있어도 못 오지 않았겠나.

‘아니…… 근데 그런 것치고는…….’

주변에도 아무도 없어야 할 것 같은데, 또 그렇지는 않았다.

아까 안대훈에게 갔을 때 봤다.

주변에는 분명 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빙그르르.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걸까.

돈이 많나?

아니, 그랬을 거 같진 않았다.

외모만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승규지만, 동시에 아닌 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였다.

‘돈 많아 보이는 인상은 아니지.’

관상만 보면 오히려 이수혁이 돈 많을 관상이지 않나?

얼굴에 별로 구김살도 없고…….

빙그르르르.

김승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돌림판을 돌리고 있었다.

특대형은 아니고, 휴대용이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세 번 모두 다른 곳에 멈추었다.

응급실, 소아과, 외과.

이런 걸 좋아한다 이거지.

‘근데 그렇다고 내가 이걸 돌려?’

안대훈 대타가 된다는 건데…….

그래서야 어디 은혜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복도가 한산해진 것 같은 게 아무래도 자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도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인상이 나아지려는 찰나에 이상한 걸 돌리고 있어서 상쇄된 모양이었다.

망할.

이건 아니었다.

‘일단 넣자.’

해서 김승규는 우선 가방에 돌림판을 넣었다.

그러곤 스스로 어려운 환자 케이스를 찾기로 결심했다.

‘이수혁 교수를 흉내 내보자.’

그렇게 외과 회진이 시작되었다.

“좀 어떠세요?”

“힉.”

“아니…… 저 환자분 수술한 사람입니다.”

“아, 네. 알죠. 아는데…… 그, 제가 이쪽 보고 답하면 안 되겠습니까?”

원래 혼자서는 안 돌았다.

김승규가 딱히 권위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직접 환자를 대면하면 대화하는 게 어려워서 그랬다.

“그, 그러시죠. 대신 검진을 좀…….”

“네네. 으…….”

“너무 그렇게 질색하지 마시고요.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김승규 교수는 간 이식 후 잘 회복되어 가고 있는 환자의 배를 살폈다.

별다를 건 없었다.

수술이 일단 잘되었다.

간부전이 왔던 이유도 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약에 대한 부작용이었으니, 예후도 괜찮을 터였다.

하나 안 좋은 것이 있다면 환자의 얼굴이었다.

‘아니…… 아냐.’

아니, 하나 더 있었다.

‘이대로는 절대 케이스를 찾을 수가 없어.’

이 환자가 오늘 본 첫 환자라면 희망을 가져 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김승규는 벌써 열 개의 병실을 돌아 버린 참이었다.

그동안 쓸 만한 케이스를 하나라도 찾았나?

없었다.

-세 개를 찾아 주시면…… 교수님이 한 번은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실 겁니다.

안대훈의 말을 떠올렸다.

들을 땐 쉽지는 않아도 가능한 일일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수혁 교수가 흥미 있어 할 만한 케이스 3개…….

“네,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수술할 뻔했는데…… 뎅기열이 맞습니다. 그냥 약물치료 하면서 지켜보면 됩니다.”

김승규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그 자리엔 원장 신현태가 있었다.

그 옆에는 장덕수 교수와 펠로우 그리고 레지던트 등이 있었고.

앞에 있는 환자는 10대 소년이었다.

‘아…… 그 케이스구나.’

아까 회의에서 지나가듯 들었더랬다.

이수혁이 수술장 입구에서 진단했다고.

생각해 보면 기가 차는 일이었다.

그냥 서 있다가 뻔히 수술이 예정되어 있는 환자의 진짜 진단명을 잡아내다니.

원래 잡아 둔 진단명이 개판인 것도 아니었다.

아마 열이면 열 그렇게 진단하고 수술에 들어갔을 터였다.

‘그런 놈이 흥미 있어 할 만한 케이스…….’

저런 케이스는 별로 흥미 있었다고 평하진 않을 거 같았다.

그렇지 않나?

진단하는 데 몇 분 걸리지도 않았는데, 뭔 흥미야.

-열대성 스프루에 의한 소장 흡수장애에서 티아민 결핍증세를 진단해 냈습니다. 몇 시간 걸리지도 않아서요……. 고기 먹다가 가 보니까 환자가 좋아졌더라고요. 진짜…….

나오기 전에 장준혁이 해 준 말이었다.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거짓말일 리가 없었다.

감히 자기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수혁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그의 말이 참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히익. 죄송합니다.”

“왜, 왜요.”

“갑자기 인상을 쓰셔서. 제가 무슨 실례라도.”

“아니, 아닙니다. 그…… 술이나 드시지 마세요.”

“네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이게 뭔가.

회진이 아니라 자릿세라도 받으러 온 모양새 아닌가.

죽을죄라니?

물론 이게 좋은 점도 있기는 했다.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알코올성 간 경화에 대한 간 이식 후 재발률이 가장 적은 의사가 바로 김승규가 아닌가.

해외에서는 이 비밀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하지만, 국내에서는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얼굴을 아니까.

“저기, 교수님.”

“응? 왜 불러놓고 고개를 숙이나.”

“저도 모르게. 하여간…….”

그렇게 억지로 케이스를 찾기 위해 회진을 돌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그를 불렀다.

뒤로는 병동 간호사가 서 있었다.

눈치를 보는 게,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모양이었다.

“회진 그만 도시면 안 될까요?”

“응? 여기 외과야. 내 환자만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웃어른으로서…….”

“환자들이 불편해한다는…… 그런 소리가 있습니다.”

“불편해한다고?”

내가 잘못했네.

환자가 불편해하면 안 되지.

환자가 불편해하면 안 되니까 지금부터 회진 돌지 마!

하고 말하고 싶었다.

농담이었다.

허나 김승규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하면 농담으로 아무도 받아들이질 못하지.’

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왜 이렇게 생기셔 가지고.’

신현태는 이현종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김승규가 생긴 건 그래 놓고 의외로 잘 삐진다고.

지금도 보니 입술 비죽거리는 것이 좀…….

‘그래도 나는 원장이지.’

하지만 뒤에 있는 간호사의 얼굴도 간절했다.

김승규야 이렇게 얼굴로 폭탄 터뜨려 놓고 가면 그만인데, 간호사들은 그 후에 수습해야 하지 않나.

실제로 들어온 마편 중에 병원에 왜 조폭이 있냐는 말도 있었다.

해명을 위해 섭외한 병원 최고의 히트작 ‘명의’에서는 김승규 얼굴을 카메라에 담고는 방영을 포기했다.

도저히 애들도 보는, 교육방송을 표방하는 공영방송에서 모자이크 없이 내보낼 수 없는 얼굴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시잖습니까…… EBS도…… 포기한 얼굴인데……”

“아니, 말을 그렇게 해?”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하.”

“그리고 왜 갑자기 전체 회진을 도세요. 그냥 간 이식 환자들만 보시지.”

간 이식을 김승규가 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환자들이 수술 후 중환자실에 가지 않나.

때문에, 얼굴을 보지 못해서 놀랄 일도 없었다.

수술하기 전에는 충분히 오래 봐서 적응할 수 있었고.

신현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었고, 김승규는 고뇌했다.

‘이수혁 교수한테 환자 보내려고, 라는 말은……’

이런 말을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냥…… 그 환자 보고 싶어서.”

“충분히 보셨잖아요. 더 보고 싶으시면 전화를 해요.”

“전화?”

“제자들이 온 병원에 가 있는데 거기로 돌려서 환자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해서 대강 둘러댔더니 의외로 훌륭한 답이 돌아왔다.

그렇네.

남 갈아 먹으면 되는데 왜 내가 이러고 있었지.

제자들 갈아 먹는 건 너무 쉬운 일이잖아?

그렇잖아?

후후.

“왜…… 왜 웃어요. 무섭게.”

웃는 거 무섭다고 하지 마라.

진짜 무서운 거 보여 주고 싶어지니까…….

‘아니, 아니야. 여기서 더 나가면 장르가 바뀐다…….’

병원에서 느와르를 찍을 순 없는 노릇이지 않나.

해서 김승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냐. 좋은 생각이야. 천재네, 신현태 원장.”

“아니…… 천재는 아니고…… 그냥 형이 그래서.”

“이현종?”

“네. 맨날 전화 돌려서 푸시해요. 우리나라 희귀 케이스가 씨가 마르는 느낌이라니까요.”

“그놈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하지.”

이현종.

김승규가 인정하는 천재이자 또라이, 그리고 의학사의 동반자.

혼자 이 좋은 방법을 써먹고 있었다니.

안타까운 일이고 또 괘씸한 일이었지만.

하여간 지금은 기분이 좋았다.

전화로 애들 굴려다가 케이스를 뽑으면 되잖아.

“야야, 나가자.”

“응? 왜. 아, 응. 어어. 같이 가.”

“나, 나도.”

그렇게 껄껄 웃으며 교수 연구실이 모여 있는 병동 한 켠에 들어왔더니 삼삼오오 짝을 지어 커피 타임을 갖고 있던 다른 과 교수 새끼들이 후다닥 흩어졌다.

꼭 불을 켜자마자 사라지는 바퀴벌레들 같았다.

‘나도 얘기 좀 들려줘…….’

아쉬운 건 인간 아니, 김승규였다.

얼마나 애새끼들이 잽싸게 튀는지, 같은 병원 소문을 다른 병원 사람들보다도 늦게 알았다.

심지어 얼마 전에 온 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역시 뉴스로 보고 알았다.

‘개새끼들아.’

김승규는 홀로 남아 허공을 향해 으르렁거리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어, 나 김승규.”

그날 제자들은 떠올렸다.

“어어, 네, 교수님.”

김승규에게 지배당하던 공포를…….

“어려운 케이스 있으면 내놔.”

수술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

“네?”

“내놔.”

“어…… 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김승규는 무서운 얼굴에 비례하는 수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하필 그가 잘하는 수술이 간 이식이었다 보니, 세계 최고였다.

그 말이 무엇이냐.

“Give me case.”

“What?”

외국인 제자들도 있다, 이 말이었다.

괴로운 통화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얼굴도 괴물, 실력도 괴물인 김승규가 일으킨 쓰나미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너도 전화 왔어?”

“응. 내과 케이스를 들고 오라는 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겠어. 근데 모르겠다고 안 할 거야?”

“그건 아니지……. 근데 난 차 타고 20분 거리에 있어.”

“와…… 넌 뒤질 수도 있겠네.”

“남 일처럼 얘기하지 마라……. 나 혼자선 안 죽어.”

“개새꺄.”

그래도 나름 각 대학 병원의 중진급 교수들이었다.

허나 그들이 오늘 통화하던 내용은 그냥 고등학생들의 그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못했다.

두려움이 그들을 퇴행시켰다.

“난 하나 찾은 거 같다…….”

“통합진료센터 보내려다가 말았다는데…… 나도 하나 찾은 듯?”

동시에 진보시켰다.

어느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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