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62화 (862/1,303)

862화 Case 1 (1)

'어렵다'

김승규는 제자 하나가 희희낙락한 얼굴로 들고 온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넌 미친놈이 어려운 케이스라면서, 그럼 환자가 죽어 가는 건데 그걸 그렇게 좋아해?

일단 얼굴을 보니까 좀 화가 나서 한 대 후렸다.

그러다 케이스를 보면서 살짝 후회가 되었다. 이 정도 케이스라면 좋아할 만하단 생각도 들어서 그랬나.

아무리 외과 의사로 살아온 그였지만, 여하간에 대학 병원에 뿌리를 박아 온 몸 아닌가.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

그 말은 곧, 머리 회전이 쭉 이런 쪽으로만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물론 김승규는 본인의 특기, 그러니까 다른 사람 불러와서 일 시키기도 시전하고 있었다.

같은 병원 내과는 아무래도 이수혁이나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안대훈 등 그쪽 계열로 분류되는 사람에게 얘기가 들어갈까 싶어서 찾지 않았다.

보통은 과도 다르고, 병원도 다르면 아무래도 힘이 닿지 못하는 법인데, 김승규에게는 예외였다.

“네가 볼 때는 어때. 내가 볼 때는 진짜 기상천외한데."

“아…… 저도……이거…… 답이 있어요?"

"있겠지. 병인데.”

"그…… 내과 쪽에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해 괴질로 분류되는 병들도 있어서…...”

그냥 가서 잡아오면 됐다. 어차피 내과와 외과가 함께하는 학회는 꽤 많으니까.

사람들이 보통 학회라고 하면 '과'에 집중되는 학회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현대 의학은 워낙에 빠른 발전을 하고 있다 보니 과에 국한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하나의 질환군 또는 질환 하나에 집중하기 위한 학회도 많이 생겨나고 있었고, 개중에는 분과 학회 정도는 찜쪄먹는 경우도 많았다.

“괴질? 19세기야?"

“아니…… 19세기라뇨."

"그럼 알아야지. 이걸 왜 몰라.”

"모르겠어요. 진짜…… 전 전혀 모르겠다고요."

아무리 그렇다곤 해도, 이건 확실히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금 김승규와 함께 태화 의료원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있는 이 사람은, 소화기 내과 간 파트의 왕이라 해도 좋을 사람이니까.

나이도 적지 않았다. 올해 60이었다. 그 말은 곧, 누구 앞에서도 고개 숙일 일이 없다는 얘기였다.

생각해 보라.

그냥 교수만 돼도 남한테 정수리 보일 일이 확 줄어드는데, 시니어 교수쯤 되면......

"고민한 거 맞아? 이거 어려운 케이스여야 한다고."

"아유......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진짜 너무 어렵다니까요."

“그래? 네가 능력 없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니, 이 양반이. 제가 쓴 논문 보고도...... 어어, 왜 주먹을 쥐어요! 경찰! 경찰!"

"휴지 주운 거야."

"아…… 왜 안 어울리게 착한 일을 해요?"

“나 의사야……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흐음."

허나 아까 어렵다고 할 때는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그렇게 사과하다 보니까 슬금슬금 화가 났는데, 능력 얘기를 해서 발끈했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주먹을 보니까 화가 절로 가라앉았다. 그를 두고 겁쟁이라고 욕할 일은 아니었다. 김승규의 주먹은 교도소에 있는 전국구 주먹들도 두려워할 정도의 사이즈였으니까.

그런 인간이 얼굴엔 흉터까지 있으면서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아는가?

'착한 일 하자, 같은 문신 새긴 느낌이라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닐 같다. 이 느낌이란 얘기였다.

"하여간 너도 어렵다 이거지?"

“네. 나중에 답 나오면 저도 알려줘요."

"그래, 좋아. 그럼 틀림없겠지."

"어디 가요?"

"병원"

“사람 불러다 놓고, 이렇게 갑자기?"

“아...… 이거 하나 줄게.”

"이게 뭔데요."

“내 수술 케이스 엑셀에 정리한 거 한 300개 돼. 작년에 그렇게 했더라.”

"미친......”

김승규는 그렇게 USB 하나만 달랑 주곤 휙 나가 버렸다.

모두 익명으로 처리된 후였기에 분실해도 괜찮겠지만, 홀로 남겨진 교수는 그게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케이스 300개…… 미쳤네 진짜.'

김승규 교수 성격상 대강 정리했을 리는 없었다.

성별, 나이, 흡연, 알코올 등의 기본 정도 외에 수술 전후 수치 변화 및 초음파 소견 등, 거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가 있을 터였다.

그말인즉슨, 이걸 어떻게 잘 돌리면 SCI급 논문이 몇 개는 나올 거란 얘기였다. 덕분에 교수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논문거리를 생각하느라 그랬다.

김승규를 향한 불만은 어느새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머, 병원 접수하러 왔나……'

‘보지 마, 보지 마. 시비 털린다.'

'아이구...... 너무 무섭네…...'

그 사이, 김승규는 횡단보도를 신호등에 맞추어 삭실하게 건넌 후,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케이스가 좋다는 걸 확인했기에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섰다.

다만, 아직 가운은 안 입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김승규가 흰 가운을 입고 병원 밖에 있으면 자꾸 누가 신고를 해서 그랬다.

미친놈이 흰옷 입고 배회한다고.

원래 큰 병원 앞에는 잠깐 마실 나온 의료진들이 가운 입고 돌아다니는 법인데, 그래서 다들 이해해 주는 편인데, 그 이해 범위에서 김승규에게는 예외인 모양이었다.

'어어…… 고개 돌려!'

‘죽는다……’

'여기 조폭도 입원했나 보네.'

하여간에 정장을 입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까만 정장도 아니고 그냥 쥐색 정장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오히려 더 조폭처럼 보였다.

'에이…… 시발.'

안타까운 점은, 김승규가 나이에 비해 귀가 밝다는 것이었다.

이비인후과 친구의 조언에 따라 이어폰을 듣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김승규는 수혁이 위치한 센터에 다다를 때까지 지나온 모든 복도에서 수군거림을 들어야만 했다. 하필 마스크도 어딘가에 두고 온 마당이라 평소보다 훨씬 더 했다.

심지어 뻔히 아는 놈이 뒷걸음질 치다가 겨우 알아보곤 인사를 건네오기도 했다.

개새끼들.

"어, 김승규 교수님."

그에 비해 수혁은 어떤가.

언제고 김승규를 그냥 교수로만 봐주었다.

'하긴...... 저 인간은 무려 백강혁 교수마저도……'

김승규도 눈 피하는 존재인 백강혁조차 의사로 보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 이수혁 교수."

"웬일이세요? 여기 입원한 사람 중에…… 간 이식 관련한 환자는 없는데.”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케이스를 하나 부탁하려고."

"케이스요?"

심지어 눈을 피하긴커녕, 케이스 얘기를 하자마자 눈을 빛내 왔다. 다른 놈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더 대비되었다.

'안대훈...... 그 녀석은 기개 있는 놈이지.'

요즘 젊은것들은......

레지던트가 말이야.

얼굴 아는 교수가 왔으면 아무리 다른 과 교수라고 해도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근데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모른 척을 해? 심지어 한 새끼는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김승규가 팔꿈치를 기대고 선 책상에 앉아 있다. 이 말이었다.

"어떤 케이스죠? 여기 앉으시죠."

심지어 이수혁이 그 옆에 앉으면서 자리를 권했는데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아니, 숫제 바닥을 발로 툭 밀어 차고는 뒤로 도망갔다.

의자에 달린 바퀴에서 끼릭거리는 소리가 났음에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러다 뒤로 발랑 나자빠졌으면……'

김승규는 그런 이름 모를 레지던트를 보며 소원을 빌었지만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신이 그렇게 소원을 잘 들어 주는 존재였으면 김승규도 장가를 갔겠지.

'아니, 이현종도 갔는데!'

왜 나는 못 가지. 심지어 이현종은 과 내 퀸카였던 이기자랑 결혼하지 않았나.

인물만 놓고 보면...... 그쪽은 그냥 못생겼고, 이쪽은 무섭게 생겼다는 것 정도의 차이밖에 없지 않나.

눈을 안 마주치고 싶은 것과 못 마주치는...... 뭐 그런 차이이지 않나?

"교수님? 그게 어떤 케이스예요?"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어 넋을 놓고 있으려니 수혁이 물어왔다.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었다. 외로워서 그런가.

'난 진짜 퇴임하면 봉사라도 다녀야지.'

일 없이 있으면 죽을 거 같았다.

고독사……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꿈에서 죽은 후 이현종이 찾아와 최초 발견자가 되는 장면을 보았더랬다. 왜 하필 이현종이었을까. 아마 최근에 결혼한 놈이라 그랬을 터였다.

'젠장…… 이현종…… 너마저……'

배를 찌른 브루투스를 보던 시저의 느낌이 이랬을까?

"교수님?"

수혁이 한번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김승규는 이현종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다 수혁이 두 번째로 부르면서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누군가 허락 없이 몸에 손댄 적이 없어서 더 효과적이었다.

'이수혁 같은 멘탈의 여자가 있을까. 그럼 진짜 영혼을...... '

물론 여전히 딴생각이 들었다.

"아, 케이스, 그래. 이건데...... 지금 중앙의료원에 있고...... 부르면 올 거야."

결국, 제대로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수혁이 미친 척하고 허벅지를 찰싹 때린 후였다. 하여간 그때부터 케이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수혁의 고개가 모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듣다 보니 잘 모르겠어서 그랬다.

[어…… 뭐지?]

‘전혀 모르겠는데.’

[음……]

'너도 모르겠어?'

[감조차 안 옵니다.]

'오랜만이네. 이런 케이스……”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의사가 맨날 보는 환자 보면서 피가 끓는다고 하면 진짜 좀 이상한 일이겠지만.

원래 이상한 놈들의 집합이 대학 병원이지 않나. 의외로 세상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바꿔 나가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주도하는 법이었다.

“어렵네요."

“그래?"

“네. 당장 답이 아니, 아예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 케이스는 오랜만이에요."

"오......”

“감사합니다. 이 환자분 바로 좀 오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지. 잘됐네. 하하. 어렵다니 잘됐어.."

김승규는 남들 눈치를 살피는 데 딱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허나 수혁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을 읽어 내는 건 쉬웠다. 대놓고 웃어서 그랬다.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 김승규는 전화를 걸었다.

"아, 네. 교수님.”

"그 케이스...... 보내.”

"아, 네. 안 그래도 내과 쪽에서도 이수혁 교수님이 보실 거라고 하니까 안심하더라고요. 잘됐지 뭡니까."

“그래, 여러 소리 하지 말고 보내.”

“네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환자 보내는 건 당연히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지금 명령을 내린 게 누군데, 그 말에 따르지 않는단 말인가. 혹시라도 그랬다가는 뒈질 텐데.

비단 김승규 교수 제자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모를 내과 교수에게도 통용되는 일이었다.

김승규는 몰라도 김승규를 아는 사람은, 이쪽 의료계에 수두룩 빽빽하게 많았다.

왜애애앵.

김승규는 그렇게 환자만 주고 떠나고, 수혁은 오랜만에 이헌종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아까 왜 숨어 있었어요?"

"응? 아, 김승규 교수 얼굴 무서워서."

“아직도 무서워요? 맞은 적은 없지 않으세요?"

"어.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이 어딨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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