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3화 Case 1 (2)
왜애앵.
수혁은 자꾸 병신같은 소리를 하는 이현종을 데리고 응급실을 거닐었다. 습관적으로 케이스를 찾으려다가 말았다.
[지금은 집중하십쇼.]
'응. 그래. 어떤 질환인지 알 수가 없으니......'
[어차피 응급실에서 보는 환자들이니, 모르겠으면 연락이 올 테니까요.]
'아, 그런 뜻이야?'
[그런 뜻만은 아니고…… 오랜만에 승부욕이 불타는 느낌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
바루다 덕분이었다. 바루다는 진료 시간 외에 대부분의 상황에서 도움이 안 되는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럴 때 중심을 잡아 주기도 했다.
"어우."
이현종도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당장은 그런 롤을 기대하기는 좀 어려워 보였다. 김승규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수혁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다른 레지던트들도 죄다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고, 간호사 중에는 과호흡이 온 사람도 있었으니 뭐...... 넘어갈 만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왜애애앵.
하여간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 차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상 맞을 거란 강한 확신이 일었다.
해서 수혁은 이현종을 데리고 입구로 향했다.
벌컥 문이 열리고 환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배에 복수가 찬 젊은 남성이었다. 휠체어가 아닌 침대에 누워 있었다.
'맞는 거 같지?'
[네, 미약한 황달 소견도 보입니다.]
‘좋아.'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병원에서 같이 딸려 온 의료진이 다가왔다.
"이수혁 교수님?"
"아, 네. 안녕하세요."
보아하니 인턴이 아니라 레지던트였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대단한 차이였다.
인턴은 대개 잡일을 하고, 레지던트는 1년 차라 해도 어엿한 주치의로서의 일을 하니까.
잠깐이라도 레지던트가 일에서 빠지면 병원 입장에선 곤욕스러울 수도 있다. 이 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김승규가 보내라는데 인턴 하나만 달랑 보낼 수는 없었을 터였다.
“현재 환자에게서 알려진 기저질환은 없었고…… 내원 열흘 전부터 복통 및 복수, 발열 소견을 보여 응급실을 통해 내원했습니다. 당시 문진상 환자가 민물고기 회를 먹었다는 진술이 있었고,
WBC와 CRP 모두 증가해 있어…… 감염성 위장염 및 복합 대장 장폐색증으로 생각해 항생제 치료 중이나 반응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주치의는 쭉쭉 노티를 이어 나갔다. 보아하니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건 아닌 듯했다. 여러 수치를 깨알같이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변화 추세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피가 끓었다. 단지 성의가 없어서 답을 유추하지 못하고 있던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담당 교수가 꽤 유명한 교수인 걸로 알고 있는데……'
[네, 감염내과 쪽에서는 신현태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름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전혀 감을 잡지 못했군.'
[네.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그냥 아예 모르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럼에도 주치의는 물론이거니와 지정의인 교수조차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아빠는 어때요?"
"응? 나? 나도 일단은 감염성 장 질환으로 판단한 게 합리적이었던 걸로 보이는데……
결과적으론 그게 아니었단 거니까. 물론 드물게 항생제 선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네, 경험적 항생제를 적절한 타이밍에 잘 썼어요. 근데 효과가 없었죠. 흐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같이 가자고 일단 센터로.”
“아, 네.”
이현종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고만 있었다. 김승규의 얼굴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이현종이 비록 겁이 좀 많은 사람이지만,
경찰서에 가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불어 버릴 위인이긴 하지만, 적어도 환자가 눈앞에 있는 이상, 그런 볼썽사나운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 만한 사람이라서 그랬다.
'좋아. 가자.'
[네.]
여러 차례 검증이 끝난 셈이었다.
동시에 응급실에서 볼 것도 아닌데, 환자를 여기 두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해서 수혁은 이송 요원 하나와 함께, 이현종이 뒤를 밀게 해 놓고 같이 센터로 향했다.
주치의인 레지던트는 하도 눈치를 보길래 가라고 했다. 어차피 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쉴 시간도 없을 거 아닌가. 도리어 여기 오래 있어 봐야 일이 밀릴 뿐일 터였다.
대학 병원의 주치의는 하는 일의 특성상 누군가 자기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어서 그랬다.
“환자분.”
“아, 네."
수혁이 환자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복도에서부터였다. 그때까지 환자는 천장만 보고 있었다.
‘그래. 이수혁 교수…… 통합진료센터…… 다 유명한 곳이잖아?'
의식 없이 그냥 실려 온 게 아니어서, 검색도 해 봤더랬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그를 향한 칭찬이었다. 아니, 싹 다 칭찬이었다.
태화에서 바이럴 광고라도 돌리나, 뭐 이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다 유튜브도 보게 되었고, 다 보고 난 후엔 바이럴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천재……’
환자는 이미 매료된 채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민물고기 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나요?"
“아…… 아뇨. 아닙니다. 전에도 몇 번…...”
이미 기대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뭔가 첫 질문부터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민물고기 회가 원인이 아닌 것 같지 않나. 답을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어쩐지 그랬다. 수혁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처음은 아니다…...'
[근거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민물고기라면 손질 상태나 보관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각기 독립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근데 느낌이 그래.'
[합리적이지 않은 의사 결정입니다.]
‘그래서 감염 같다고?'
[그건 아니죠.]
바루다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추론 과정이 같은 건 아니었지만, 하여간 그랬다.
"그렇군요. 기저질환은 없으시다고 했죠?"
“아, 네. 저 뭐 진단되거나 한 건 없습니다."
질문은 이어졌다. 기저질환을 물었다. 진단된 것은 없다 했다. 아마 진단받을 생각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30대니까.
하지만 30대에서 대사질환 유병률이 얼마나 되는지 안다면, 더 이상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지는 못할 터였다.
'근데 날씬하긴 한데……'
[네, 체형 상 일반적인 기저질환은 없어 보입니다.]
검사를 해 봐야 하긴 하겠지만, 이 환자에게 당뇨나 고혈압은 없을 것 같았다. 해서 수혁은 우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주로 증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시작은 어떻게 되었는지, 심해지거나 나아지거나 했는지. 약은 어떤 걸 먹었는지. 그래서, 병원은 왜 갔는지. 질문은 꽤 세심하게 이어 나가 보았지만, 답은 그냥 그럭저럭이었다.
'건질 건 없군'
[사실 당연한 겁니다.]
'의외의 답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렇긴 한데…… 만약 그랬다면 어려운 케이스로 분류되지 않았겠죠.]
답이 개판이었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환자는 성심성의껏 답했다. 허나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다. 증상은 복통부터 시작해 발열, 설사, 그리고 복수로 이어졌고, 약을 먹어도 호전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기만 했다.
보통 대학 병원에 오는 환자는 다 이랬다.
'일단 좀 볼까'
[네.]
여기까지는 수혁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의료진도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때그때 질문을 슬쩍 바꿔서 묻는 건 수혁만의 주특기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여하간에 문진 자체에 뭐 그리 차이가 있겠나.
허나 시진, 그러니까 관찰은 좀 달랐다.
수혁은 바루다의 존재로 인해 남들은 절대로, 말 그대로 절대로 보지 못할 만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황달…… 이건 수치로도 증명된 거고'
[복수까지 찼고, 빌리루빈이 올라갔으니까요.]
'빈혈은 없어. 단기적인 증상이라고 봐야겠지.'
[네, 오래되었다면 약간이라도 빈혈이 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때문에 감염성 장염, 즉 패혈증으로 생각을 했을 터였다. 급하게 항생제를 때려 부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테고.
이상하다 싶었던 건 증상이 호전되지 않을 때부터였을 거고, 나중에 혈액 배양 검사에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는 패닉이었으리라.
“제가 좀 옷을 올려 볼게요.”
“아, 네, 얼마든지요."
수혁의 시진은 커뮤니티에서도 화제였다. 환자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시진이 아니라 거의 꿰뚫어 보는 기적에 가까웠는데, 그래서인지 환자들도 적극적이었다.
옷을 벗긴다는데 '얼마든지요'라는 말을 한 건 좀 부적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수혁은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옷을 얼마든지 벗기고 있었다.
경부, 흉부, 어깨, 팔, 복부 등을 차례로 살폈다.
"어, 저기."
"왜요. 불편한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문제가 있다면 여전히 그들은 복도에 있다는 점이었다.
바지를 내리진 않았지만, 또 모든 부위를 한꺼번에 벗기진 않았지만. 사실 사람이 살면서, 침대에 실려 가는 동안 몸 이곳저곳을 드러낼 경험을 해 볼 일이 있겠나.
처음은 누구에게나 좀 부끄러운 법이었다. 허나 수혁의 올곧은 눈을 마주하고 있다 보니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이 사람이라면...... 날 고칠 수 있어……'
너무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대학 병원에 오면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입원했는데, 나아지긴커녕 여기저기 검사한답시고 쑤시기만 해서 더 힘들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증상 자체도 더 심해지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이쯤 되다 보니 덜컥 겁도 났다. 나 혹시 암은 아닌가.
항생제 따위로는 치료가 안 되는...... 그런 병은 아닌가.
3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젊어 보여도, 주변에서 차츰 죽음이 드리워지는 친지 또한 보게 되는 나이라 더더욱 그랬다.
“아니, 아닙니다.”
“네.”
해서 환자는 그대로 두었고, 수혁은 슥슥 살피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깨..….”
정확히는 좌측 어깨였다.
어깨에 작은 흉터가 나 있었다.
너무 작아서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바루다를 동반한 수혁은 분석 가능했다.
[한 달 전쯤 생성된 상처입니다. 상처 자체는 다 좋아졌어요.]
'그렇군 위치나 크기로 미루어 보면 백신이겠지?'
[네. 계절과 나이를 고려하면 독감 백신이겠죠.]
'그렇지.'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정보 자체는 그럭저럭이었다.
독감 백신.
이걸 맞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될 것 같나.
대한민국은 백신 잘 맞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그래도 일단 물어보긴 해야지.'
[네.]
수혁은 실망을 감추고 백신에 대해 물었고, 환자는 놀랐다.
'역시 명의...… 어떻게 알았지?'
어깨를 보고 알았으리란 생각 따위는 할 수 없었다. 자기 눈으로 봐도 모르겠는데 남이 어찌 안단 말인가. 때문에, 다 명의만의 방법이 있으리란 생각만 들었다.
센터에 도착하고 나서도 몇 개의 질문과 시진은 계속되었다. 허나 알고 있던 정보 외에 획득할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독감 백신...... 이거 하나 말고는 뭐가 없네?'
[음…… 어렵네요.]
'이러다 진단 못 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까지 들다니. 너무 좋죠?]
'이상한데, 좋아.'
수혁은 자리에 앉은 채 부르르 떨었다.
이현종은 그런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미쳐도 적당히만 미치렴. 어느 정도 선까지는 이 애비가 지켜 줄 테니.'
경찰서에서 나오던 이현종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수혁이 지었던 표정과 정확히 같은 표정을 지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