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64화 (864/1,303)

864화 Case 1 (3)

적당히 미친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거나 서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여기서 더 미치면 보듬어 줘야지'라고 결심하면서.

"으음......"

“일단 방금 환자 말인데.”

"네."

그리 오래 끌진 않았다.

둘 다 환자를 앞에 두고 딴생각을 이어 나갈 수는 없는 사람들이라 그랬다.

이수혁과 이현종이지 않나.

둘이 모여 있다 보니, 센터 내 다른 레지던트들도 몰려 왔다.

부자가 같은 센터의 센터장, 부센터장이면 맨날 이렇게 같이 있을 것 같지만, 둘 다 공사가 다망한 인간들이다 보니 의외로 이럴 시간이 적어서 그랬다.

"쉽진 않겠어. 다시 리뷰를 해 봐도...... 역시나 감염성 장염이 제일 그럴싸한 추론이었어."

“네. 음…...”

“근데 넌 같이 봐도 알 수 있는 정보가 더 많지 않아? 좀 풀어 봐."

이현종은 환자가 아니 주치의가 들고 온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미 스캔해서 전자 의무 차트에 다 떠 있는 내용이라 딱히 소중히 여길 필요는 없었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이게 보기가 편하다 보니, 이현종은 습관적으로 보관하는 편이었다.

적어도 환자에 대한 가닥이 어느 정도 잡힐 때까지는 그랬다.

하여간 이현종은 수혁을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넌 추론도 잘하지만…… 일단 환자를 잘 보지.'

두 개가 같은 말이지 않나 싶을 텐데, 엄밀히 말하면 달랐다.

이현종도 경험과 지식 그리고 타고난 성품으로 인해 환자를 볼 때 신중하고도 유기적인 관찰을 하는 편이지만, 수혁은 뭔가 달랐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느낌인데, 어디로 갔는지까진 알 수가 없었다.

조태진과 안대훈이 괜히 종교적인 관점에서 수혁을 보게 된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독감 백신 말고는…… 딱히 더 얻어 낸 건 없어요. 지금 이 환자는...... 정말 오리무중입니다.”

“흐음…… 그래? 독감 백신…… 선후 관계가 어떻게 되지?"

이현종은 애써 종교적인 관점을 지우고, 과학자다운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수혁이야말로 종교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보니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현종의 질문에 의미가 진해서 더더욱 그랬다.

"아…… 환자 진술로 보면 독감 백신이 더 전입니다. 이건 로컬 의원에 문의를 해 봐야겠지만…… 딱히 기억에 오류가 있을 것 같진 않아요. 하지만 이게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 이런 얘기죠?"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단서가 그거 하나뿐이잖아.”

"음. 그건 그래요."

선후 관계는 의학적 추론에 있어 무척 중요한 개념이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들어맞는 원인이라 해도, 증상이 생긴 후에 발생한 이벤트라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나.

'하지만…… 독감 백신이 이런 증상을 일으킨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독감 백신은 사백신이라 거의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그렇게 많이 맞추는 건데……”

백신의 부작용.

이에 대한 왈가왈부는 거의 백신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특히 영국에서 백신에 대한 부정적인 논문이 나온 후로는 각종 음모론이 난무했다.

이미 해당 논문을 낸 사람이 제약회사의 로비를 받아 작성한 것임을 재판을 통해 밝혀 냈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전문가의 책임론이 강조되기 시작하게 된 사건이기도 했다.

그가 한번 싸질러 놓은 음모론은 아무 데서나 마구마구 자라 백신만 맞았으면 살았을 아이와 노인, 그리고 일부 성인을 죽게 만들고 있었다.

'계란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우리나라에선 엄청 드문 편인 데다가 이런 양상은 아니야.'

[그렇습니다. 흐음...... 백신…… 그렇다고 무관하다고 하기에도 좀 그렇군요. 확실히 이현종 말대로 이거 말고는 달리 단서가 없어요.]

'너무 비참한 이유 아니냐.'

물론 백신 중에서도 부작용이 있는 백신들이 있기는 했다.

특히 최근 시도되고 있는 mRNA 방식의 백신은 예상되는 부작용 중 심근염, 신경염증, 출혈 등의 심각한 것들이 있어 개발만 해 놓고 실제 임상 사용은 못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어지간한 위기가 오지 않는 이상에는 시도되지 못할 터였다.

바이러스의 전체 정보를 전사하는 방식은 지나친 면역 반응을 야기할 수 있고, 소인이 있는 사람에게 자가면역질환의 활성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면역 반응...… 음.'

사고를 이어 나가던 중, 수혁은 최근에 읽었던 논문을 떠올렸다.

mRNA 방식의 백신이었다.

제목이야 차세대 백신이라는 둥 거창한 이름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지만, 아직 독감이나 기타 바이러스에 사용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컸다.

[그 논문에서 명확히 밝혔던 일 중 하나가...... 다른 백신들도 면역 관련해서 일부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는 있다는 거였죠.]

'확률은 지극히 낮지.'

[낮지만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긴 해. 흐음......'

수혁의 고개가 병실로 돌아갔다.

이현종의 고개 또한 그랬다. 말없이 눈을 감고 있던 수혁이 새롭게 보인 모습 아닌가.

무조건 뭔가 변화가 생긴 거라 생각하는 게 좋았다.

“독감이 원인일 수도 있을까?"

이현종은 자기 생각을 늘어놓았고,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말대로…… 그거 말고는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긴 해요. 하지만 섣불리 약을 쓸 수는 없죠.”

"그렇지. 그랬다가 우리가 틀리면, 환자가 죽어."

의사가 틀린다고 환자가 바로 죽기도 하나 싶겠지만.

이상 면역반응에서 고려할 만한 약이 스테로이드다 보니 과장된 건 아니었다.

만약 감염이라면, 그런데 스테로이드를 썼다면, 환자는 감염원에 의해 잡아 먹힐 터였다.

"그렇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요. 흐음...... 우선 우리 병원에서 다시 할 만한 검사부터 해 봐야겠어요."

"그래. 어차피 검사라면 뭐...... 금방 할 수 있으니까."

스테로이드.

가장 강력한 약 중 하나.

두 의사는 양날의 검을 잠시 뒤로 미뤄 두곤, 그 전에 검사부터 하기로 합의했다.

일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센터장과 부센터장이 움직이는데, 검사하는 데 어려운 것이 있을 수가 있겠나.

게다가 이 둘은 수많은 파트의 의료진들에게 각종 은혜를 입혀 놓지 않았나.

“네…… 제가 해야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은혜 갚는 방식으로만 일이 처리되는 건 아니었다.

결국 불려 나온 이는 장강명이었다. 그는 떨떠름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다가, 이내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다가갈 때는 무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도 된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검진 파트 센터장이다 보니 자연스레 장착하게 된 무기 중 하나였다. 환자에게는 당연하게도 잘 먹혔다.

“아...... 네. 내시경이요. 거기서 해 봤는데…… 별거 없기는 하다고 했는데.”

“상황이 바뀌었을 수도 있어서요. 물론 뭐가 없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의미가 없는 거 아닐까요?”

장강명은 잠시 이현종과 수혁을 돌아보았다. 빈말이 아니라 저 둘은 진짜 천재들이었다. 태화가 아닌, 대한민국이 자랑해도 좋을 만한 수준의 천재.

“아…… 아뇨.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아무 소견도 없는 것이 근거가 될 때도 있습니다.”

“아…...”

그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추론 능력이나 어떤 개념 등이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장강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드시 케이스를 통해 공부한 게 아니었어도 그랬다.

“그러니…… 믿고 따라 주시죠. 그리고 제 내시경 실력은 국내 최고라 자부하는 만큼, 걱정할 만한 일은 없으실 겁니다."

“아…… 네.”

그렇다고 환자가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임팩트가 있던 건 국내 최고라는 단어였다.

해서, 환자는 덜컹거리는 침대에 실려 내시경실로 향했다.

센터에서 센터로의 이동이지만,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번거로웠던 건 따라붙은 인원이었다.

수혁과 이현종뿐만 아니라 레지던트들까지 따라붙어, 왈랑왈랑 물경 수십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게 피리 부는 사내의 심정일까.'

선두에 선 장강명은 구경거리의 선두가 된 기분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에 비해 관심을 즐기는 수혁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이현종은 그냥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내시경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면역 질환을 의심해야 해"

“네, 그렇죠, 증상이야 설사와 복통이지만…… 그건 사실 감염성 장염만의 고유한 증상은 아니니까요."

"그렇지. 염증성 장질환도 있고, 뭐 그건 아니었으면 한다만......"

"발병했다기에는 나이가 잘 맞지는 않는 듯해요. 뭐…… 언제나 예외는 있지만......"

해서 둘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의 부자가 나눌 만한 대화는 아니었으나, 분위기는 훈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 그럼 들어갑니다……”

환자는 수면 마취를 통해 잠에 들었고, 장강명은 뒤에 선 이들을 향해 말하며 내시경을 집어넣었다.

위내시경을 마치는 데까진 놀랍게도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뭐, 별건 없군요. 애초에 의심하는 건 장염 쪽인 거죠?"

“어…… 네.”

“그럼…… 대장으로 갑니다.”

다음은 대장. 쑥 들어간 내시경이 환자의 대장을 훑었다. 그와 동시에 뜬 화면에 모든 사람들이 집중했다.

"여기도……… 뭔가 이상 소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네요. 설사를 해서 표면이 살짝…… 좀 벗겨져 있긴 한데, 이건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의한 변화라고 보는 것이 합당해요."

장강명은 내시경의 달인답게 소견을 쏟아 냈다. 아니, 보는 것과 동시에 말했다.

수혁이나 이현종이 보기에도 다른 생각이 들진 않았다.

“특이점이 있다면…… 이전 병원에서 시행했던 내시경 소견보다 설사가 오히려 더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약을 썼을 텐데…… 이건 좀 특이한 소견이네요."

"아......"

장강명의 말에 수혁과 이현종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진행했다. 항생제를 쓰면서...... 설사가 진행됐다.

물론 항생제로 인한 설사도 있기는 했다. 오구멘틴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설사지 않나?

"오구멘틴의 'o'도 쓰지 않았죠."

"응. 그렇다고 항생제 장기 사용으로 인한 슈도멤브라노스 대장염 소견도 아니야."

허나 환자가 보이는 소견은 항생제로 인한 것과는 아주 달랐다.

"이거 어쩌죠. 별 도움이 안 된 거 같은데."

장강명은 그사이 상행결장까지 싹 본 뒤에 내시경을 빼냈다.

그러곤 죄송스럽다는 얼굴로 둘을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수혁과 이현종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아까 네가 그랬잖아. 아무 소견이 없는 것도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도움 됐어."

"아. 그러십니까? 다행이네요"

“별 도움이 안 되긴 했지만."

"아......”

"그래도 자네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한 거잖아."

"그......"

탓하는 대신 더 기분 나쁘게 만들어 준 이현종은 수혁과 함께 센터로 터덜터덜 걸었다. 수혁과 얘기를 하면서였다.

“어떤 검사를 추가해야 할까?"

"일단 CT요. 그리고 혈액 검사를 나가 봐야겠죠. 면역 질환을 의심하고 있으니……”

"항체 검사를 긁어야 되나?"

딱히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세상에 긁다니.

딱딱 필요한 검사만 골라서 나가는 것이 이 둘의 시그니처 아니었던가.

허나 지금은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긁어......야죠. 하아."

아직은 뭔가 보이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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