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66화 (866/1,303)

866화 Case 1 (5)

머리가 팽팽 돌기 시작한 수혁은 그 상태로 잠에 들지 못했다.

[여기에 카페인을 첨가하면 어떨까요?]

'카!'

[페!]

'인!'

솔직히 밤이 깊어 가고 있던 무렵이다 보니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측면도 있었다.

아무리 빨리 돌면 뭐하나. 지쳤는데.

하여간 그래서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

카페인 도핑을 밤 11시가 넘어서 시도한 것인데, 그 덕에 수혁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흐으으음.'

[이게 힘들다라는 거군요.]

의미가 있었냐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말이 나올 상황이었다.그래서 그런지 더더욱 힘들었다.

환자 보느라 밤새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아니, 이제는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원래 나이가 들수록 자기 몸에 병이 들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마음 병 중 하나인 명의병도 호전되어서 그랬다.

"흐아아아아!"

오전 7시.

태화 의료원의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

수혁은 병동에 앉은 채 늘어지게 하품을 내질렀다.

살짝 모양 빠지는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탓하지 못했다.

교수가 환자 때문에 밤을 새우다니.

이건 칭찬할 만한 일이지, 탓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나?

'흐어어어어.'

다만 한 명, 김승규에게 협박을 아니, 언질을 받았던 레지던트만은 원망하는 눈으로 수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환자를 진단할지 몰라서 보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수혁처럼 날밤을 새운 것까지는 아니었다. 수혁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강압적인 사람은 또 아니지 않나.

적어도 할 일도 없는데, 또 잘난 척할 일도 없는데 레지던트를 불러다 깨울 사람은 아니란 얘기였다.

해서, 환자가 올 때마다 와서 관찰만 했다.

중간에 알람 때문에도 한두 번 왔고,

하여간 올 때마다 수혁은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 고뇌하다가 무언가를 프린트하고, 읽고, 성질내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 날 밤 새운 거 같습니다.

- 그래? 잘됐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 보고했더니, 김승규는 오히려 뛸 듯이 기뻐했다.

'속셈이 뭐지?'

속내는커녕 그냥 케이스 어떻게 보냐는 말만 들었으니 이런 생각이 들 법도 한 상황이었다.

'설마 내과가 고생하게 해서…... 다음 주도권을 외과에서……?'

병원 안에서만 사는 레지던트다 보니 제멋대로 음모론을 떠올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그 사이, 수혁은 한 번 더 하품을 내질렀다.

하품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얼굴을 보니 썩 괜찮은 느낌이었다.

"아들. 왜 그래? 눈 밑이 시커메."

"아…… 아빠. 커피는요?"

“사오라길래 사 왔지. 웬일이냐, 네가."

“어제 밤새 보고 있었어서요."

"어어. 빈속에 먹지는 말고. 이거랑 같이 먹어. 안 그럼 이제 속 버릴 나이야."

"아, 네, 안 그래도 요새 속이 좀.”

그런 수혁에 이현종이 커피와 마들렌 같은 것을 건넸다. 수혁은 그것을 우적우적 씹곤 커피를 들이부었다.

[좋아. 한 두어 시간은 제대로 기능할 겁니다.]

'너는…… 그런 말이 나오냐? 커피 먹여서 잠도 못 자게 만들어 놓고?'

[덕분에 공부 실컷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그렇지.'

[무엇보다, 막판에 이르러서는 성과도 있었죠.]

'자고 일어나서 봤어도 되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

[말 길어지는 거 보니까 확실히 카페인 효과가 있네요. 하여간 이제 슬슬 다 모였습니다.]

부자간의 대화였지만.

둘 사이에서는 분명 그랬지만 남들에게는 센터장, 부센터장의 출근이지 않은가.

게다가 보아하니 부센터장은 여기서 밤새 있던 듯했다. 아랫사람들로서는 최대한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꽤 많은 사람들이 돌고 있는 마당이다 보니, 우글우글하다는 느낌도 주었다.

딱 수혁이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하여간...… 어제 본 케이스 말인데요."

"어. 그거 뭐 거기서 더 나온 게 있어? CT가 좀 이상하던데. 흉수랑 복수가 차 있었잖아. 뭔가…... 역시 감염은 아닌 거 같은데."

"네, 아니에요."

"단언하는 걸 보니…… 너 뭔가 알아냈구나."

이현종도 그랬다. 그가 수혁에게 반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이런 면모 덕이었다.

이제 와서는 한순간에 미쳐 버린다 해도 쌓인 정이 깊어 태도가 변하지 않겠지만.

하여간 수혁이 눈을 빛내며 사방을 돌아보는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이현종이 가장 애정하는 시간이었다.

“네. 일단 다 앉아 봐요.”

"네. 교수님.”

수혁은 그렇게 여러 명의 레지던트와 실습 나온 학생들, 그리고 병동 간호사들을 앉혀 놓은 채 말을 이었다.

“이 환자의 문제 목록은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장염이라고 생각해서 항생제를 쓰다가 호전이 되지 않았죠. 오히려 증상이 더 심해졌어요. 그것을 감안해서 검사를 진행했고, 여러 이상 소견을 관찰할 수 있었어요. 그중 어제 나온 검사들을 통해 정리한 문제 목록이 바로 이것들입니다."

심지어 PPT도 만들어 놓았다.

화려한 이팩트가 들어가 있진 않았지만, 원래 학회 발표 국룰이 흰 바탕에 검은 글씨 아니던가.

게다가 수혁은 언제나 그러하듯 영상 자료 첨부시 기가막힌 컷을 골라놓기 때문에 모두는 문제 목록을 한순간에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사실 레지던트들은 그들이 모르는 새에 실력이 더 늘어가고 있기도 했다.

완전한 경지를 넘어선 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지식이 쌓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추론 방식을 익혀 나가기도 하기에 그러했다.

“그 외 오늘 아침에 뜬 검사들을 보면…… 항혈소판 IgG가 양성이고, 항핵 항체 및 항갑상샘 항체도 양성을 보였어요. 또 복수에서 나간 검사에서 IL-6. VEGF 인자가 증가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류마티스 질환군에 해당하는 것들이죠.”

"음......"

수혁의 말을 듣다 말고 이현종이 끼어들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고, 또 이건 토의지 발표가 아니었기에 수혁도 자연스레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그것만으론 류마티스 질환군에 속한다는 것밖에 밝혀낼 수 없을 것같은데……아닌가? 물론 내가 류마티스 질환에 대해 전문은 아니지만."

“네, 대개의 류마티스 질환에서 이러한 양상을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 종합해 보세요.그럼 좀 달라집니다."

“다 종합한다라…… 문제 목록이 여러 개 있긴 해. 흐음...... 증후군 형태의 질환이려나?"

“네.”

“근데 그런 이걸 촉발한 원인은 뭐지? 민물고기 회......? 이것도 면역 상태 교란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환자는 분명 여러 차레 먹었다고 했고, 물고기 종류도 비슷하던데."

"맞습니다. 그렇죠."

이현종답게 질문은 퍽 날카로웠고, 동시에 의미도 있었다.

일단 여기까지의 추론에 따라붙지 못했던 이들도 두 사람의 질문과 답변을 들으면서 나름 이해할 수 있었다.

수혁은 그러한 분위기를 읽어 내면서 말을 이었다.

“독감 백신. 이걸 유의해서 봐야 합니다."

“아니…… 환자는 38살인데? 보통 38살에 처음 맞지는 않을 텐데?"

맞는 말이었다. 과연 이현종.

허나 수혁은 밤에 설사 때문에 깬 환자를 목도하였고, 그때 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결과 얻어 낼 수 있던 정보가 꽤 많았다.

“소아 때는 당연히 맞았고요. 이번엔……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거기 병문안을 가기 위해 독감 백신을 맞았다고 합니다. 뭐, 의무는 아니지만 나쁠 것은 없겠죠."

“아…… 그렇군. 그럼 성인이 되어서는 독감 백신을 처음 맞은 건가?”

“네. 사실 중요한 것은 독감이 아니라 그냥 백신입니다. 백신은 뭐가 되었건 면역을 활성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극히 일부에선 그로 인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죠."

면역 계통의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는 백신이 아니라 감염을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수혁은 그 점을 인지한 채 말했다.

이제는 이현종이 아니라 나머지 모두를 돌아보고 있었다.

"선제된 백신, 그리고 이후 발생한 다발성 장막염...... 흉수, 복수, 거기서 검출된 IL-6과 VEGF.

경미한 혈소판 이상과 진행성 빈혈, 신기능 장애, 골수 섬유증, 각종 류마티스 인자, 거기에 더한 림프절병증까지......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면 흔하디흔한 류마티스 질환의 특성일 수 있지만,

이것들을 모아 놓으면 이렇게까지 다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하나뿐입니다."

수혁은 손으로 뒤에 쌓인 서류 뭉치를 가리켰다.

대강 봐도 논문 더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했던 적이 있었나?

'교수 되고 나서는...... 아니지. 수혁이 3년 차 때도 저런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이현종은 꽤 놀란 얼굴이었다.

'밤을 새웠다고 했지. 대체 뭐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밤을 새웠다지 않나.

환자 처치하느라 그런 것도 아니고, 무슨 문제인지 진단하려고.

“저도 처음 보는 진단명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모르면 안 되는 진단명 같았습니다. 뭐 몰라도 되는 진단명은 없겠지만 말이죠.”

수혁은 뒤에 쌓아 두었던 서류 뭉치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딱 하루 만에 이리저리 접힌 흔적이 가득 남은 뭉치였다.

대체 얼마나 저걸 보면서 고민을 했길래 저렇게 되었을까.

그래 본 경험이 많은 이현종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들 놀란 눈이 되었다.

“일단 이런 증상을 나타낼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난제였어요. 열거한 증상을 다 나타낼 수 있는 것…… 아마도 사이토카인 폭풍(바이러스에 대항하던 면역 체계가 과잉 반응하는

것)에 의한 것일 텐데,

어떤 사이토카인인지가 중요하겠죠.”

"아, 그렇겠네. 아! 아까 복수에서......"

“네. IL-6(면역 반응을 촉진하는 단백질), VEGF(세포 증식 및 혈관 생성을 조절하는 단백질). 이 두 개의 폭풍이라면…… 이론적으로 가능하죠. 그래서 이러한 질환이 있나 봤더니 있더라고요."

"있어? 와‥…. 정말 우리 몸은......"

이현종도 이제는 놀란 눈이 되었다.

이런 식의 추론을 대체 누가 할 수 있겠나.

사이토카인의 종류를 그저 추론만으로 맞추다니.

'대체 저 머리통 안에 얼마나 많은 양의 지식이 들어 있는 걸까.'

이현종뿐 아니라 나머지 모두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히 숨길 생각이 없기도 했거니와 노골적이기도 해서, 수혁은 잠을 더 몰아낼 수 있었다. 흡족하지 않나.

'그래, 놀라라. 나를 찬양해!'

속으로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딱히 존경심이 들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수혁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것도 같은데……"

거짓말이었다.

들어 본 적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수혁조차, 정말 쏟아지는 논문을 제목이라도 다 확인하는 수혁조차 처음 보지 않았나.

“TAFRO 증후군(TAFRO syndrome). IL-6, VEGF. 이 두 사이토카인의 폭풍으로 일어나는 증상의 합을 특징으로 하는 증후군입니다. 유발인자로는 뭐…… 당연히 항체 반응이죠. 그 안에는

독감 백신을 비롯한 여러 백신도 포함될 거고요.”

“허…… 처음 들어 보는데. 니들은 들어 본 적 있냐?"

"아뇨, 없습니다."

수혁은 후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치료는 간단합니다. 스테로이드로 치료하면 됩니다. 좋은 소식 전하러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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