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67화 (867/1,303)

867화 시험 (1)

"네? 뭐요?"

환자는 38세. 젊은 사람이었다.

단순히 나이 때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 때문에라도 이 나이대 사람들은 꽤 명석한 편이었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나라 아닌가.

“다시 한번… 제가 못 알아들었습니다.”

덕분에 이런 반응은 드물었다.

질환 이름조차 못 알아듣는 경우라니.

허나 수혁을 포함한 나머지 모두는 그럴 수 있다는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레지던트 중에서는 아직도 병 이름을 헷갈리는 애도 있었다.

‘뭐라고…… 했더라?'

마치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이라도 빙의한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수혁은 후후 웃으며 입을 열었다.

“TAFRO 증후군입니다. 어떤 원인에 의해, 우리 몸에 있는 면역 체계가 이상 반응을 보이면서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사실...… 이 개념을 잡은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곤 뒤를 돌아보았다.

나머지 모두가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다들 여기 오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는 듯했다.

'특발성 다심성 캐슬만병(iMCD)......

그것의 새로운 발현 형태라고 했지?'

idiopathic Multicentric Castleman Disease(갑자기 여러 곳에서 발현한 거대 림프절 증식증).

이것만 해도 드문 병이었다.

근데 그것의 새로운 형태라니.

괜히 수혁의 뒤로 서류 뭉치가 잔뜩 쌓인 게 아니었다.

'거참. 양아들이지만…이럴 때는 정말…'

이현종은 그 뭉치들 그리고 수혁의 흔들림 없는 눈을 떠올렸다.

뭉치가 증명하는 것은 수혁의 집념이었다.

의사라면 누구나 해야 하지 않나? 싶겠지만, 저만한 커리어의 소유자가 밤새도록 공부한다는 건 쉬이 생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책임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 그러니까 집착에 가까운 집념이 필요했다.

'내 아들 같다니까?'

거기에 더해 저 뛰어난 머리라니.

같은 소견을 보더라도, 그 소견을 종합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어떤 한 질환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보이는 거라곤 사이토카인 폭풍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럴 수 있는 건 아마 수혁뿐일 터였다.

하나 더한다면, 역시나 이현종 정도?

“원래 보시던 병원에서 진단이 안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워낙에 어려운 병이다 보니…...아무튼, 확진을 위해서는 검사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아...... 네. 그...... 네.”

환자는 여전히 질환명이 귀에 익지 않는 듯했지만, 지금 새기는 건 포기한 듯했다.

나중에 담당 간호사한테 물어봐도 될 일이지 않겠나.

그보다 중요한 건, 그 검사가 대체 뭐냐는 것이었다.

'너무 힘들던데……'

영상 검사만 받아도 힘들지 않던가.

헌데 어제는 내시경까지 위아래를 뚫은 참이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그 검사 때문에 뭘 못 먹어서 노곤했다.

게다가 밤에는 여전히 뭐만 들어가면 설사가 흘러나왔다.

죽을 것 같았다. 정말로.

"여기..….”

수혁은 그런 환자의 목을 짚었다.

기껏해야 직경이 1cm는 될까 말까 한 경부 임파절을 짚었다.

도돌도돌한 느낌은 환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걸 떼서 검사해 볼 거예요."

경부 임파선에 대한 검사는 여러 개가 있지만, 역시나 제일 정확한 것은 절제 생검이었다.

덩어리 하나 혹은 두 개 이상을 떼서 전체를 들여다보는 검사란 얘기였다.

바늘로 뽑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엔 결과 신뢰도가 뚝 떨어졌다.

"어. 그럼..….”

“칼을 대는 검사입니다. 사실상 수술이죠."

“아……”

칼.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환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서 그랬다.

'별거 아니지 않나?'

이따위 생각도 하고 있었다.

[수혁…… 수혁은 왜 그럽니까.]

바루다가 말려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입으로 그런 밀을 할 뻔했다.

다행히 수혁은 바루다가 있었고, 덕분에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었다.

이상한 말을 씨불이는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는 말이었다.

거기엔 이비인후과 레지던트 4년 차가 서 있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이비인후과 4년 차 이종익입니다."

그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곤, 수혁이 일러준 대로 경부 임파선 중 하나를 살폈다.

‘와…… 이비인후과 전문의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짚어 주지?'

사실 비전문의 아닌가.

경부에 관한 한 이비인후과보다 더 우수한 사람은 있을 수가 없는데.

이 인간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내심 CT를 보고 골라 왔던 것보다 수혁이 골라 준 임파절이 더 나았다.

"이거 떼면 되겠습니다. 국소마취로 하면 돼서… 그냥 바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하면서 단련된 침착함을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레지던트는 속으로 약간의 비애감을 느끼며 말했다.

환자는 수혁을 돌아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가라는 말만 들어서 그랬다.

어찌나 얼굴이 냉막한지 안 내려가면 죽을 거 같았다.

"결과는...... 역시 그렇군."

수혁은 그렇게 얻어 낸 림파절을 곧장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어떤데?"

이 분야만큼은 이현종조차 전혀 알지 못하기에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수혁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답했다.

[저 없이는 수혁도 못 합니다. 알죠?]

‘알지. 그래서 잘난 척 안 하잖아.'

[지금 입꼬리 하나만 슬쩍 올라가는데요?]

'이 정도는 그냥 내 트레이드 마크인 걸로 하자.'

속으론 몇 가지 대화를 나눈 후였다.

“림프절에서 림프여포가 증가했고, 원형질세포와 소혈관이 증식 및 침윤되는 소견이에요. 합당한 소견이지만......더 정확한 것은 염색을 해 봐야 알겠습니다. 다만 이 정도만 있어도 선제적으로

저용량의 스테로이드 치료는 가능할 것으로 보여요."

"그럼 해야지."

“네.”

그 후론 바로 스테로이드 치료가 시작되었다.

"어......?"

그러자, 설사는 바로 그날부터 호전되었다.

“병리 검사 결과 떴는데...... 역시 TAFRO 증후군이 맞네요. 고용량으로 때리도록 하겠습니다.”

결과는 금세 나왔다.

전임 원장이 심심하면 와서 '나왔어?' 이러는데 어쩌겠나.

가용한 인력이 있으면 갈아 넣어야만 했다.

해서, 수혁은 결과를 받자마자 환자에게 70mg도 넘게 스테로이드를 때려 붓기 시작했고, 호전은 더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좀 어때요?"

“저는 이제...... 아픈 건 모르겠습니다.”

"수치도 다 좋아졌습니다. 이제부터는 외래에서 경과를 관찰해 보도록 하죠.”

덕분에 환자는 적당한 날짜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아직 특별한 환자가 들어오지 않았더랬다.

어려운 환자가 없었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수혁이 온 힘을 다해 볼 만할 환자는 없었다. 이 말이었다.

해서 회진도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음. 갈까?"

"가야죠. 수석 못 하면 안 되니까요.”

"어...... 그, 그래. 시험 보기 전에 그런 말 할 건 아니지?"

이현종은 벌써 가운 대신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수혁의 말에 약간 당황한 얼굴이 되기도 했다.

왜냐. 정말로 할 새끼라서 그랬다.

‘나 젊을 때랑 어쩜 이리 닮았지.'

이걸 뭐라고 하나.

“해야죠. 수석 하라고. 사실 만점 받으라고 할 생각이었는데요?"

“아니…… 수혁아."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나섰다.

원장답게, 정장에 조끼까지 다 챙겨 입은 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전문의 시험에 응원하러 가는 게 무슨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그런 건 아니었다.

- 전문의? 그거 못 붙는 놈도 있나?

대개 교수들의 반응이 이렇지 않던가.

물론 석차에선 좀 관심을 두는 교수들이야 있겠지만.

그냥저냥 지켜보기나 하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2년 연속 수석만 해 보자."

"그건 당연한거 아닐까요? 우리한테 배우면 앞으로 쭉쭉 수석 해야죠."

"그......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 뭐랄까?"

허나 올해는 달랐다.

태화에서 스타트를 끊어 버렸다.

아니, 김다현이 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상 최초로 전문의 시험 결과를 신문 광고에 내버리겠다고 공언을 한 것.

사실 수혁이 만점으로 수석을 했다는 사실을 최근에 유튜브 광고를 통해 돌리고 있으니, 이미 광고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니, 원장님. 이렇게 되면 우리도 달려야 되잖아요!

- 상도덕도 모릅니까……? 까놓고 말해서 전문의 시험 석차가 진료랑 뭐 그렇게 상관이 있다고..….

- 정말 너무하시네?

덕분에 신현태는 꽤 시달렸다.

다른 원장들에게. 진짜 지랄을 해 댔다.

허나 어쩌겠나.

일단 포문을 열었는데.

일이 이쯤 되면 2년 연속 수석을 해야만 했다.

“현태야, 너까지 이러면 안 되는데.”

"회장님의 진언이야."

“회장은 지랄 애한테 부담을 회장까지 동원해서 주면 인마. 당연히 체하지."

권력에 약한 신현태는 이미 정신이 나갔다.

수혁은 원래 좀 이런 쪽으로는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었고.

해서 이현종이 말렸다.

"형."

"왜.”

그런 이현종을 신현태가 하찮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인마."

“안대훈이…… 쫄거 같아?"

"아."

안대훈이지 않나.

상대는......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천하의 이현종조차 이해하길 포기해 버린.

부우웅.

그렇게 의견을 일치한 인원들은 차를 타고 한 대학교 앞에 당도했다.

아직 오가는 이가 많지는 않았다.

시험은 9시에 시작이고, 지금은 8시도 안 되었으니까.

일행은 정문 앞쪽에 세워 둔 버스로 향했다. 태화 의료원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얘들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시험이잖아, 형. 긴장은 되겠지."

“전문의 시험은...… 그냥 뭐 순위가 중요한 거 아닌가?"

“그…… 뭐, 그렇다고 하고. 하여간 기다리자고."

이현종은 벌써부터 오는 애들을 보고 뭐라 하다가, 신현태의 말을 듣곤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그냥 마이웨이로 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수혁은 논문을 읽었고.

신현태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원장까지 온 곳도 있네. 이번에 열기가 아주 후끈하네.'

의사 국시도 아닌데 교수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원장단도 있고. 원장도 있고.

그렇다 보니 기자들도 와 있었다.

심지어 기자 중에서는 유튜브겠지만, 생방송 중인 이도 있었다.

“자, 이곳은 ○○대학교 정문인데요. 국내 유수의 대학 병원 버스들이 몰려 있습니다. 바로 오늘 열릴 전문의 시험 때문인데…… 평년과는 달리 기이한 열기가 느껴집니다. 몇 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려 하는데…."

기자가 말하고 있던 도중, 카메라 감독이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오는 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기자는 물었다. 입 모양으로만.

'교수님 아니야?'

'아니지. 누가 츄리닝을 입고 와 시험 치는 사람이겠지.'

'와...... 얼마나 장수를 했으면…….'

대화를 나누던 기자는 부리나케 방금 모습을 드러낸 이에게 다가갔다.

"뭐야. 안대훈 검문 걸렸는데?"

“검문이 아니라, 인터뷰.”

"하여간."

이제 막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커피와 먹을거리를 가져다주려 했던 원장단은 멈추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인터뷰를 요청해도 될까요?"

그 사이 기자가 물었고,

“네, 얼마든지요."

자애로운 미소의 안대훈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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