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70화 (870/1,303)

870화 대훈아 오늘은 너 원하는 거 다 해 줄게 (1)

2교시가 끝나고 강의실을 나서는 안대훈의 얼굴은 심상치 않았다.

화가 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수란 놈들이…… 문제를 이렇게 성의 없게 낼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1교시도 사실 수혁의 문제 말고는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구석이 있지 않았나.

작년에 나왔던 문제처럼 나와도 문제긴 했지만, 이런 문제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는데.

2교시는…….

‘그냥 참고서만 보면 풀 수 있게 만들어 놓다니…….’

그 참고서라는 게 책으로 8권이고, 범위로 따지면 수능의 몇 배는 된다는 것 정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일단 참고서로 정제된 내용이 나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이 작년 교주님의 마음이었을까.’

그때는 사실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더랬다.

어차피 만점이고, 1등이면 좋은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다.

‘미욱한 놈. 불충한 놈!’

허나 막상 겪어 보니 화가 났다.

이렇게 내면 공부 열심히 하고, 환자 열심히 진료한 사람에 대한 역차별이지 않나?

“아, 저기 오네요.”

그 사이 수혁을 비롯한 태화 의료원 사람들은 일단 병원에 다녀온 참이었다.

딱히 뭐 할 일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원래 대학 병원 의사라는 사람들은 병원하고 떨어진 거리와 시간만큼 불안감을 느끼는 존재들이라 그랬다.

뭐라고 할까.

어쩐지 딱 나 없을 때 사고가 날 거 같은 예감?

하여간 그렇게 가서 회진도 싹 다시 돌고 와서 그런지,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꽤나 남아 있었다.

“표정이 어째…… 안 좋은데?”

신현태가 불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신현태조차 안대훈과 꽤 오랜 시간 함께하지 않았나.

해서 녀석의 기분을 얼굴만 봐도 딱 느낌이 왔다.

“그러네. 화났는데?”

이현종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한 덕에 구체적인 감정을 알아맞출 수 있었다.

사실 안대훈의 얼굴이라고 해 봐야 대머리 말고는 그리 특이한 면이 없어서, 변화를 알기 어려운 종류의 얼굴임에도 그랬다.

“시험이 쉬웠나 보네요.”

그리고 수혁.

수혁은 그야말로 지난 3년을 안대훈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교수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안대훈만큼 들러붙은 이도 없었기 때문에, 수혁은 정말이지 정확한 지적을 해낼 수 있었다.

“온다.”

오래 지나지 않아, 안대훈은 수혁 일행을 발견하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교수님!”

“어어. 그래. 잘 봤어?”

“잘 보기는 했는데…….”

그러곤, 일행이 묻는 말에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 없어 보이진 않았다.

이번엔 신현태, 이현종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동시에 작년에 수혁이 지었던 얼굴이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수혁이를 따라 하다니…… 무서운 새끼.’

닮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수혁이 되기라도 한 걸까.

신현태는 안 그래도 추운 날씨다 보니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뒤로하고 물었다.

“만점 되겠어?”

“만점이요? 이런 시험에서 못 맞으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역시 조커로군!”

돌아오는 답은 기분 좋은 답이었다.

해서 신현태는 뿌듯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 보았다.

아쉽게도 시험 끝나고도 나와 있는 교수들은 거의 없었다.

있다면 학회 관계자들 정도?

다행인 것은 그중에 우창윤이 있다는 점이었고, 이현종은 벌써 그를 향해 혓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하아…… 다 맞았나.’

우창윤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이마를 짚었다.

개새끼라는 욕이 절로 나왔다.

“아, 근데 부모님은?”

수혁은 작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어지간한 사람들은 각기 가족들 또는 애인들을 향해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가지 않았나.

수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애인도 없고, 친부모는 없지만, 이현종과 신현태 그리고 조태진을 비롯한 가족들이 있었으니.

“아…… 오시지 말라 했어요. 와 봐야…… 뭐. 어차피 시험공부 하는 동안 계속 같이 있었는데요.”

“아니,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교수님과 밥 먹으면 그것을 제 평생의 광영으로 여기겠습니다.”

“그…….”

광영.

영광이라는 말도 있는데 왜 꼭 이런 말을 쓸까.

수혁은 훅 하고 짜증이 솟구쳤지만 간신히 참았다.

‘얘가 날 진짜 특별하게 생각하기는 해?’

[특별이요? 이런 사람이 또 있을 거 같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이현종도 신현태도 조태진도 수혁을 아끼긴 했다.

하지만…….

안대훈과는 그 결이 좀 달랐다.

‘하긴…… 보육원도 갔지.’

[네. 밥 먹죠. 맛있는 거 사 줍시다. 돈 아껴서 뭐 해.]

그래, 이런 놈에게는 뭐라도 갚아 줘야만 했다.

헌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럴 줄은 몰라서, 식당 예약을 안 했다.

물론 어디 데려갈 만한 곳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갑자기 갔다가 실망하면 어쩌겠나.

[실망을…… 할 거 같습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사람 마음이 그렇지가 않지.’

해서 어쩌지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가만히 뒤로 불렀다.

“여기로 가라.”

“네?”

“내가 이럴 거 같아서 하나 예약해 뒀어.”

“허…… 아빠. 감사합…….”

“우리 사이에 감사는 무슨. 다녀와. 저런 놈은 진짜 없어.”

“네네.”

그러곤 예약권을 주었다.

보니까 아주 유명한 식당이었다.

비싼 것보다도 그냥 예약이 잘 안 되는 식당.

“그래, 대훈아, 그럼 가자.”

“두, 둘이 갑니까?”

“응. 둘이 가자.”

“허어어…… 이게 이래도 되는…….”

그래서 데려가려고 하니까 애가 자꾸 눈물을 훔쳤다.

멀리서 본 사람들이 시험 떨어졌나 보다, 어쩌냐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교수들이 착하네 등등을 중얼거렸다.

별 상관없었다.

어차피 수혁도 대훈도 주변을 살피는 성격은 아니었으니.

“여기 타라.”

“앗…… 제가 조수석이라니…… 운전을 해야 할 판에…….”

“보험 안 되어 있으니까 걍 타…….”

“네, 네. 하…… 이거…….”

“뭐 해?”

“엉덩이 털고 있습니다. 먼지 한 톨이라도 묻혀서야 되겠습니까.”

“그……그래.”

우여곡절 끝에 대훈을 옆에 태운 수혁은 차를 타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대부분은 아직 뚜벅이들이다 보니 역으로 향하는 이들이 제일 많았다.

그들 중에는 태화 사람들도 많았다.

‘자랑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대훈은 그 모습을 보곤, 애써 주먹을 꽉 쥐고 참다가 이내 창문을 내렸다.

“덥니?”

“야, 이것들아! 나 이수혁 교수님이랑 밥 먹으러 간다!”

“아니…….”

“오늘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놈이다!”

그러곤 지랄을 했다.

부우웅.

당황한 수혁은 속도를 높였고, 그 덕에 걷던 태화 레지던트들은 그 후미등만 보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꽤 불합리한 일이긴 했다.

세상에, 다 같이 시험 봤는데 어느 한 놈만 꼭 집어서 밥 사 주러 가는 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대훈이 소원 성취했네.”

“쟤는 저럴 만하지.”

“응, 쟤가 아니면…… 그리고 솔직히 이수혁 교수님 너무 무서워…….”

“응…… 뒈질 것 같아. 밥 먹다가 갑자기 뭐 물어보면 난 그때부터 식은땀만 날듯.”

허나 대상이 수혁이고 또 대훈이다 보니,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그런갑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훈아, 그렇게 좋냐.”

수혁은 그렇게 아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야 대훈을 돌아보았다.

[예상했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대훈이를 옆에 태웠는데.’

이해해서 그랬다.

이놈을 태웠는데 아무 일도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 아닌가.

해서 물었고, 대훈은 그야말로 껄껄 웃었다.

“좋죠! 이제 드디어…… 교수님 밑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게 되었는걸요!”

“어…… 그렇구나. 뭐 다른 분과로 가 보고 싶었던 건 없고?”

“네? 그런 불충한 생각일랑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교주님, 부디 저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옵고…….”

“아니, 지랄 말고. 진짜로 물어보는 거야.”

“없습니다. 통합진료센터야말로…… 제 꿈이고 제 인생입니다.”

“어, 그렇구나.”

그래, 그렇구나.

잘된 거지.

수혁은 후후 웃으며 차를 몰았고, 곧 이현종이 예약해 둔 식당 앞에 들어섰다.

말이 식당이지, 호텔이었다.

“발렛해 주세요.”

“아, 네.”

“대훈아, 내려.”

“어…… 네네.”

수혁은 능숙한 몸짓으로 내렸다.

호텔 로비라고 주눅 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허어.”

그에 반해 대훈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의사면 뭐하나, 레지던트인데.

수혁이나 교수들의 성화에 이런저런 호강을 해 보긴 했지만, 레지던트는 이럴 돈도 없고, 무엇보다 시간도 없었다.

“가자. 여기 꼭대기에 있어.”

“어…… 제가 이런 곳에…….”

“너 정도면 충분히 와도 돼. 전국 일등인데 왜 안 되겠어.”

“허어…….”

황송한 얼굴을 한 채 수혁의 뒤를 따랐다.

[수혁도 여긴 처음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턱을 치켜들고…….]

‘원래 있어 보이는 척은 내가 전문이지.’

[그건 그렇네요. 확실히 그럴싸해.]

바루다가 보기에만 그럴싸한 게 아니라, 대훈이 보기에도 그랬다.

아니, 대훈은 애초부터 수혁을 위대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긍정력이 강화되고만 있을 뿐이었다.

‘역시 교주님…….’

사실 교수가 이런 데 익숙하게 드나드는 게 딱히 좋은 일은 아니지 않나.

교수면 학문과 진료에 애를 써야지, 먹는 데 진심이면 어쩌나.

이런 비난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으나, 대훈은 그런 생각일랑 터럭만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레이트 홍연이요.”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예약하신 거죠?”

“네. 이현종 이름으로 둘이요.”

“아!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하여간 수혁은 대훈을 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곤 정해진 대로 코스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게 검남춘인데, 한번 들어 봐.”

“아, 네. 그…… 근데 교수님만 드시죠. 저는 이따 운전을.”

“대리 부를 거야. 나 자작하게 만들지 말고.”

“앗, 네.”

술도 시켰다.

막상 대훈이랑 오니까 기분이 좋아서 그랬다.

해서 그 독한 술을 몇 잔을 마셨다.

정작 대훈은 안 먹고 있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녀석의 충심은 그야말로 종교적인 부분이 있다 보니, 스스로 정해 놓은 선이 지나치게 엄격해서 그랬다.

[수혁.]

하여간 그렇게 기분 좋게 먹고 있는데, 식충이 바루다가 뜬금없이 목소리를 깔았다.

‘뭐야?’

이상한 일이었다.

먹는 데 있어서는 진심인 놈 아닌가.

기껏해야 맛있다 정도만 해야 할 텐데.

갑자기 이렇게 불러?

‘환자야?’

[응급입니다.]

‘응급……?’

여기 호텔 식당 아닌가?

거기서 무슨 응급이…….

하고 있으려니, 과연 소란이 일었다.

“여기, 여기 좀 도와주세요! 갑자기 숨을!”

수혁은 부리나케 몸을 일으키려다 대훈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얘를 위한 날인데?’

눈치가 보였다.

허나 대훈이지 않나.

녀석 또한 바로 몸을 일으켰다.

수혁이 제일 듣고 싶었을 말을 하면서였다.

“제게 교수님과 함께하는 진료는 언제나 꿈같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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