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71화 (871/1,303)

871화 대훈아 오늘은 너 원하는 거 다 해 줄게 (2)

대훈은 말마따나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진짜로 반짝반짝.

앞에 놓인 접시에 나온 음식이 백옥 캐비어 활바닷가재라는 이름만 들어도 사치스러운

음식이었지만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신 수혁을 부축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음."

"괜찮으시겠습니까?"

수혁은 비틀거리고 있었다.

오늘 퍽 기분이 좋았던 탓이었다.

아니,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수혁은 자기 동년배랑 이런 곳에 오는 게 거의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긴장감 없이 마셨더니 훅 하고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알쓰……]

'못된 말 배워서 바로 활용하지 말고.'

[그래도 머리를 꽤 돌아가는군요?]

'어째 머리가 점점 더 좋아지는 느낌이야.'

[뭐…… 기분탓만은 아닐 겁니다.]

'하여간...... 음.'

안대훈이 아니었다면 발을 헛디딜 뻔했더랬다.

아니, 수술을 받지 않았다면 넘어졌을 정도로 감각이 영 이상했다.

"교수님, 이쪽입니다."

하여간, 대훈은 멀쩡한 데다가 나름 체격도 평균 체격은 되는 편이었기에 수혁을 부축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수혁은 방금 소란이 일었던 방 앞에 설 수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끅...... 끅......"

그 안에는 웬 젊은 청년 하나가 누워 있었다.

숨이 막히는지 목을 부여잡은 채였다.

전혀 효과적이진 못한 행동이었다.

그저 본능에 따른 행위일 뿐, 목을 잡는 게 숨을 쉬도록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대훈아. 난 괜찮으니까, 우선 하임리히."

"아, 네!"

수혁은 애초에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라 해도 하임리히처럼 전신을 활용해야 하는 술기는불가능하지 않던가.

기껏해야 다리 하나 다쳤을 뿐이지만, 생각보다 행동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지간하면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자, 저 좀 도와서 일으켜 세워 주세요!"

대훈은 우수한 의사였다.

단지 공부를 잘한다. 열심히 한다를 떠나서 기질 자체도 그랬다.

그는 침착하게 환자에게 다가가 외쳤다.

일단 환자를 살피면서였다.

'환자가 급해 보였으면…… 교수님이 빨리하라고 하셨을 거야. 하지만 그건 아니었지…… 확실히 청색증이 발생하거나 하진 않았어. 그럼 차근차근해 볼 시간은 있다. 다만 뭘 먹다 막힌 건지가 중요할 텐데……’

대훈이 침착할 수 있는 이유 중 태반은 곁에 선 수혁이었다.

그가 있는 한, 적어도 의학적인 판단은 들릴 일이 없을 터였다.

'역시 식탁을 보고 계셔. 먹고 있었던 건...... 만두? 아니, 딤섬이라고 하나?'

만두라면 대강 만두피랑 안에 든 소 등을 유추해 볼 수 있을 텐데, 딤섬은 각 딤섬마다 너무 달라서 예측이 되질 않았다.

“끙!”

"끅......"

하여간 대훈은 뒤따라온 종업원, 같은 방에 있던 일행과 함께 환자를 일으켰다.

그러곤 환자의 뒤로 돌아가 두 주먹을 쥐고 교차해서 환자의 명치께를 꾹 눌렀다.

여기에 음식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압력을 주어서 그 위쪽에 걸린 음식을 내보내기 위함이었다.

"합!"

안대훈은 마침 병동에서 하임리히를 직접 해 본 적이 있었다.

의사가 그거 해 본 게 무슨 대단한 경험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수혁도 직접 해 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이현종도, 신현태도 그랬다.

이론적으로 알긴 알지만 해 본 적은 없다. 이 말이었다.

그나마 대훈이 해 본 것도 내과 병동이 아니라 재활의학과 병동에서였다.

협진을 갔다가 끅끅 대는 환자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해 본 게 다였지만.

"가져왔어요?"

“아, 네. 근데 이건 왜……”

그 사이, 수혁은 다른 종업원에게 청소기를 가져와 달라고 일러둔 참이었다.

'저 딤섬...... 라이스 롤이야.'

대훈과는 달리 수혁은 이현종을 따라 미식기행을 꽤 즐긴 참이지 않나.

게다가 그 취향을 배워서 따로 다니기도 하는 마당이었다.

해서, 딱 보기만 해도 그게 어떤 음식인지 알 수 있었다.

[물렁하죠?]

'응. 저런 게 걸리면…… 하임리히를 해도 별 소용이 없지'

거의 물렁한 떡 같은 식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하임리히는 딱딱한 음식에는 직빵인데 반해, 물렁한 떡과 같은 음식에는 100% 효과를 본다고 보기 어려웠다.

괜히 일본에서 노인들이 모찌떡 먹고 사망하는 사건이 매년 발생하는 게 아니었다.

후생성에서 대대적으로 하임리히를 가르친다지만, 상식적으로 그게 되겠나.

독거 노인인 경우엔 아무 소용이 없고, 부부라 해도 하임리히 술기 자체가 힘이 없으면 마사지와 차이가 없었다.

갈비뼈 골절을 감수하고서라도 해야 하는, 완력이 꽤 필요한 술기였다.

"합!"

그 사이, 대훈은 한 번 더 하임리히를 시행했고, 환자는 이제 꼭 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완연한 질식이었다.

청색증도 발생했다.

그에 따라 대훈의 얼굴도 파리하게 질려 가고 있었다.

질식이라는 기전도 간단하고 치료도 간단한 질환에 의해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훈아, 잠시."

그때, 수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업원이 가져다준 청소기를 들고 있었는데, 앞에 붙어 있던 넓적한 흡입구는 제거한 채였다. 덕분에 둥근 일자형 파이프만 보였다.

“네?”

“입만 벌리게 해 봐.”

"아…… 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대훈은 누누이 말했듯 훌륭한 의사 아니던가.

딱 보자마자 수혁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환자의 입을 빌려 파이프가 들어가게 했다.

“119 불렀죠?"

"아, 네!"

“그럼 켭니다.”

뒤에 종업원에게 119를 확인했다.

청소기를 쓰면 음압 때문에 이런저런 손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 그랬다.

아니 그전에, 이게 안 통하면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칼...... 이것까지는 안 썼으면 좋겠네.'

[일단 술에 취해서 책임 소지가 남습니다.]

'기도해.'

[대상은?]

'몰라.'

그럼 기관절개술을 해야 할 터였다.

내과 의사가 술 먹고 하는 기관 절개술이라니.

제아무리 이수혁이 하는 거라곤 해도 좀 꺼려지지 않겠나?

그렇다고 대훈이 할 수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머릿속에 술기가 있지도 않을 터였다.

위이잉.

이런저런 고민 속에, 그러나 얼굴만은 침착한 수혁이 스위치를 켰다.

업소용이라 그런가, 청소기 압력이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팍.

거의 켜자마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

수혁은 즉시 장치를 끄고, 입에서 파이프를 뺐다.

"어때요?"

질문은 하지만, 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환자의 가슴을 살폈다.

폐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기 위함이었고,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한숨 돌렸네.”

수혁은 벌건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댔다.

후 하고 숨을 내쉬는데 알코올 냄새가 훅 하고 올라왔다.

[작작 먹지. 그걸 그렇게 다 먹나?]

'언제는 맛 좋다고 지랄하더니?'

[술이 그렇게 센지 몰랐죠.]

'나라고 알았겠냐? 처음 마셔 본 건데.'

방금 어찌어찌 살리긴 했지만.

다시 느껴졌다.

‘와…… 개취했네.'

[응. 당신 만취]

바루다도 살짝 말투가 늘어지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되면, 역시 믿을 수 있는 건 안대훈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대훈은 추앙하는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교수님......!”

“아니, 일단 환자부터."

"아, 네!"

환자는 계속 기침을 해 대고 있었다.

청소기의 압력 때문에 살짝 점막이 상했는지, 기침하는데 핏방울이 조금씩 튀었다.

그나마 선혈이 마구 샘솟는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만약 지금보다 더 손상이 심했다면, 저 피 때문에라도 기도가 다시 막힐 터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기관절개술이 필수였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몽골이 송연해졌다.

[괜히 이현종이 병원 밖에서는 주의하라고 한 게 아니로군요.]

'그렇네...... 병원은 온실이었어.'

병원 안에서도 CPR 하다가 갈비뼈 골절이 생기면 고소당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밖이라면 잘못될 가능성이 더 높고, 당연히 고소당할 확률도 높았다.

물론 이현종이 그런 일을 두려워할 위인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아들은 또 다를 수밖에 없기에, 이 말을 심심하면 해 댔다.

'죄송합니다. 아빠.'

허나 그 아빠에 그 아들 아니겠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일을 저지른 참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알코올 냄새나는 숨을 내쉬면서도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하여간 기도 손상은 감수할 만한 수준이야. 저 정도는 괜찮아.'

[네. 나이가 많다면 흡인성 폐렴이 우려되겠지만…… 이 환자는 아무리 봐도 20대입니다. 이상한 게 있다면……]

'20대가 기껏해야 저만한 크기의 딤섬을 먹다가 목에 걸렸다는 건. 확실히 이상하지.'

[술에 취했을까요?]

'냄새로는 판단이 안 돼. 이거 내 냄새지?'

[네.]

오감을 활용해서 보고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리 완벽하지 못했다.

[알코올 중독이란 건 참 무섭군요.]

'중독이라고 하지 마……'

[그런 뜻 아닌 거 아시잖아요.]

'급성 중독이라고 해…… 아니, 나 또 딴생각하네. 이런 시발. 술 먹지 말아야지.'

오감은 물론이고, 인지 능력도 꽤나 손상되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 자리에 안대훈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벌써 환자를 자리에 앉히고, 침을 뱉게 하고 있었다.

"피가 많이 나오진 않아요. 막힌 걸 빼고 싶어서 힘을 너무 주다 보니 생겨난 상처로 보이고……이 정도는 따로 치료하지 않아도 좋아질 겁니다."

침이 아니라 피를 보기 위함이었다.

하여간 안대훈은 그리 문제 될 건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이었다.

아니, 오히려 출발점은 더 정확했다.

'이상하네…… 술이라고 해 봐야 와인 한 잔이 다인 것 같은데……'

병은 보이지 않았다.

연인과 와서 하우스 와인을 각 한 잔씩 마신 것 같았다.

그나마도 한 잔을 다 마셨냐?

그것도 아니었다.

거의 절반도 비어 있지 않았다.

'기저질환이 있어 보이는 얼굴도 아닌데……'

안대훈의 관찰력이 무슨 바루다를 탑재한 수혁만큼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의 판단에 근거가 되는 건 안색과 근육량 등이었다.

하여간 일반적인 체격은 되었다.

아니, 날씬한 편이었다.

'근데 왜...... 이게 목에 걸렸지?'

안대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직 접시에 남아 있던 딤섬을 살폈다.

그 사이에 종업원과 환자의 연인은 환자를 살피고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상황은 끝났지만, 뭐가 되었건 괜찮은지는 물어야 하지 않겠나.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얼굴 벌건 의사는 청소기를 들고 움직이느라 지쳤는지 벽에 기대서 졸고 있었다.

안대훈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혼자 원인을 살피며 위로까지 하는 건 무리였고.

지이익.

안대훈이 젓가락을 들고 딤섬을 눌러 보니, 예상보다 잘 찢어졌다.

물렁한 떡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부드럽다는 얘기였다.

헌데 걸렸다.

이건 이상한 일이었다.

'너무 긴장했나……?'

대훈은 연인 쪽을 돌아보았다.

뭐 소개팅 같은 건데 너무 마음에 들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괜찮아? 아니, 갑자기 왜...... 아휴. 이게……'

아무리 봐도 소개팅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헷갈리긴 했다.

연애를 안 해 봐서.

'교수님께 여쭤보는 건 실례가 되겠지?'

수혁도 연애를 안 해 봤으니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해서 속만 썩이고 있으려니, 잠든 줄 알았던 수혁이 다가왔다.

'어우.'

검남춘이 센 술이고 몇 잔 드시긴 했지만, 그래도 냄새가 심했다.

거의 몰골만 보면 가게에 있는 술을 혼자 다 드신 거 같았다.

“대훈아.”

토하시려나.

그런 생각이 들려는 찰나, 수혁이 말했다.

“환자분, 3분째 딸꾹질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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