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2화 대훈아 오늘은 너 원하는 거 다 해 줄게 (3)
"네?"
뭐가 3분이 돼요?
대훈은 수혁을 돌아보았다.
불쾌하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얼굴이 붉다 못해 거무죽죽해지고 있었다.
이러다 죽지 않을까. 우리 교수님……
'아니, 안 되지.'
죽다니.
무슨 이런 불충한 생각이 다 있단 말인가.
"딸꾹."
하여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딸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환자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딸꾹."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엄청 고통스러워 보였다.
"으, 꾹. 아...... 꾹."
말을 잇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꽤 심한 편이지 않나.
“딸꾹,딸꾹질 계속하고 있다니까, 대훈아.”
"교수님은 괜찮으세요? 방금 딸꾹질 하신거 같은데."
“난, 꾹, 술 마셔서 그렇고, 이쪽은 계속하셔. 꾹.”
"아......."
수혁도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혀뿌리 쪽을 숟갈 뒤편으로 꾹 누르는 것을 보니, 완전히 인사불성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수혁은 대훈이 환자를 보는 걸 원하는 상황이지 않다.
해서 환자를 향해 돌아섰다.
그때까지도 환자는 딸꾹질 중이었다.
"괜찮으세요?"
"그......윽."
"얼마나 된 거죠? 아까 이물이 나오고부터 계속 이런 건가요?"
대훈의 말에 보호자, 그러니까 연인은 고개를 황급히 가로저었다.
"아뇨. 아까부터 계속..….”
“아까요? 아까가 언제죠?"
“사레들리기 전부터요."
"아."
딸꾹질이 원인이었군.
대훈은 그런 생각과 함께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설압자로 하는 게 제일 좋기는 할 텐데, 지금은 그게 안 되지 않나.
해서 숟가락으로 혀뿌리를 눌렀다.
"구역질이 날 수도 있어요.”
"웩."
있는 힘껏 눌렀다.
10번 뇌 신경의 리셋을 만들기 위함이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딸꾹."
"아.…… 안 멈추네……”
그래도 괜찮았다.
방법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해서 대훈은 쇄골 아래를 꾹 누르고, 경동맥도 누르고 했는데 이것도 소용이 없었다.
이게 다 횡격막으로 향하는 신경을 리셋하기 위함인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니.
안대훈은 점차 초조해져 가고 있었다.
'교수님이 보고 계신다……'
솔직히 지금도 보고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눈을 뜨고는 있는데 망막에 비치는 걸 보고 있을지, 아니면 꿈을 꾸고 있을지 알 게 뭐란 말인가.
'교수님이 술은 못하시는구나.'
게슴츠레하게 풀린 눈이라니.
이건 이현종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못 봤을 것 같았다.
개이득이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렇다고 앞에서 추태를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는 건 또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대훈은 최후의 수단을 떠올리며 환자를 일으켜 세웠다.
의사의 말이었기에, 환자는 아주 힘든 와중에도 일어났다.
뭐가 되었건 목숨의 은인이지 않나.
게다가 병원에서뿐만 아니라, 원래 의사의 말은 언제고 잘 먹히는 법이었다.
“바지를 잠시 내릴까요?"
“네?”
허나 바지를 내리게 하는 건 좀 선을 세게 넘는 느낌이었다.
해서 마주 보았으나, 대훈은 강경한 얼굴이었다.
“대훈아……”
"네?"
그걸 말린 건 수혁이었다.
아무리 눈이 풀렸다 해도 수혁의 말은 지엄했다.
"지랄 말고…… 병원 가자."
“아, 네."
해서 환자는 식당에서 바지를 내리는 대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바지를 왜 내리라고 했을까. 병원 가서 내리게 되는걸까? 아프지는 않을까?'
다만, 환자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다 안대훈 때문이었다.
“도착했어요?”
“네.”
"그럼 가죠."
수혁은 앰뷸런스가 왔다는 말에 부지런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물론 남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어, 교수님."
종업원 중 하나가 그를 부축했다.
다른 한쪽에 안대훈이 있었다.
수혁은 감사를 표하곤, 그들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아, 가방 있으세요?"
“아, 아뇨."
"그럼 외투?"
“아뇨. 외투는 따로 맡겼습니다."
"그럼......?"
종업원은 으레 묻는 말을 다 물었으나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보니 의자 쪽이 아니라 식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하는데, 수혁이 말을 이었다.
"저거 병원으로 가져가면 안 됩니까?"
아, 주정이구나.
이 미친 인간이 코스 요리를 병원에 들고 가려는구나.
일단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그때, 안대훈이 나섰다.
환자는 이미 119 요원이 챙기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고, 종업원은 대훈이 이제 교수 잘 챙겨서 가겠거니 하고 있었다.
“제것도 부탁드립니다."
허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제 이걸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하고 있으려는데, 지배인이 나섰다.
“물론입니다. 오늘 일은 저희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언제든…… 찾아 주시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남은 음식은 저희가 따로 병원으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쪽도 예상에서 벗어난 반응임은 마찬가지였다.
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식당에서 사람이 죽을 뻔하지 않았나.
그걸 살려 준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이런 곳에 올 만큼 기분 좋은 날에, 남의 일에 나서 준 사람들이었다.
뭘 요구해도 들어주는 게 옳다는 얘기였다.
물론 먹다 남은 음식을 요구할 줄은 몰랐지만, 하여간.
부우웅.
덕분이라고 하면 좀 모양이 빠지지만, 수혁은 홀가분한 얼굴로 앰뷸런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마냥 부드럽지만은 못했다.
"저…… 주취자는 좀."
"주취자라니! 감히 우리 이수혁 교수님께! 이분을 살려 주신 분입니다!"
"네? 이수혁……? 태화요?”
"그렇습니다!"
“아……몰라뵀습니다. 그럼 앉으시죠.”
얼굴이 여전히 붉어서 그랬다.
다행이라면 정신은 점차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원체 술이 받지 않는 몸이다 보니 몸에는 심지어 두드러기까지 돋고 있었다.
'돌겠네.'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죠.]
‘어. 그래.’
[근데……우리 이건 왜 따라가는 거죠?]
'어……'
정신이 돌아오는 것도 조금씩 돌아오는 거다 보니 제대로 된 판단도 불가했다.
그러게 이걸 왜 따라가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안대훈이 말했다.
“아니, 이게 왜 안 멈추지?"
환자를 내려다보면서였다.
솔직히 이제 누워서 가야 할 정도로 위독해 보이진 않았다.
허나 그렇다고 멀쩡해 보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딸꾹.딸꾹."
쉴새 없이 딸꾹질을 해 대고 있었다.
"환자분."
“네. 꾹."
호전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더 심해지고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말을 잇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이거 얼마나 됐어요?”
“어……꾹. 오늘 아침부터…… 꾹.”
아침이라.
대훈은 시계를 돌아보았다.
시험 보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참 아니었던가.
이미 오후 세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최고 6시간은 되었다는 얘기인데……
'48시간이 되지는 않았으니…… 만성으로 분류될 정도는 아니긴 한데……'
의학적인 기준에 따르면 그렇긴 한데, 원래 의학적인 기준이라는 게 비인간적이지 않나.
대훈도 만성 분류 기준을 보곤 한참 짜증을 냈던 적이 있었다.
몇십 분만 해도 뒤질 것 같은 게 딸꾹질인데 48시간?
이걸 정한 위원회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들을 다 불러다가 한번 유발시켜 보고 싶었다.
“환자분, 계속 이랬나요?"
"어...... 네. 꾹. 사실 좀 심해졌어욕."
“안 힘드셨어요?"
“힘들끅. 긴한데, 기념끅. 이라."
“아.”
사랑은 위대하구나.
이 지경이 되어 가지고도 식당을 와야 한다니.
'역시 난 이수혁 교수님이나 평생 모셔야지.'
대훈은 어휴 하고는, 여우와 신포도 느낌이 물씬 나는 생각을 하다가 수혁을 돌아보았다.
아까는 또 멀쩡해 보이시더니 지금은 차에 타서 그런가 차 벽에 기대서 눈을 감고 있었다.
솔직히 이수혁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보면 주정뱅이가 따로 없었다.
옷도 좀 흐트러지고, 냄새도 나고.
'아니 근데…… 간이 안 좋으신가……?'
검남춘이 독한 술이긴 했지만, 고작 그거 서너 잔 마시고 이렇게 된단 말인가.
역시나 평생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맥락 없이 들면서 동시에 딸꾹질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가게 되었다.
'딸꾹질의 원인은…… 100여 가지가 훌쩍 넘어가. 흠.'
비의료인에게 딸꾹질은 그야말로 별거 아닌 것이겠지만 의료인에게, 그중에서도 안대훈처럼 뛰어난 이에게는 꽤 성가신 단서였다.
방금 논한 것처럼 원인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그랬다.
일단 심인성만 해도 여러 개였다.
스트레스나 과도한 흥분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었는데, 연인과의 관계로 미루어 짐작할 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딸꾹질을 했으면 가능성이 있겠지.'
수혁과 단둘이 호텔 식당에 오다니.
안대훈은 뒤늦게 딸꾹질이 나올 것 같은 걸 애써 참으며 추론을 이어 나갔다.
그 사이에도 손은 쉬지 않고 있었다.
"으억."
아까 했던 술기를 다시 한번 되풀이하고 있었다.
경동맥을 누르고, 쇄골 밑을 누르고, 또 혀뿌리를 누르고.
"으엑..끅."
별 소용은 없었다.
'보통 딸꾹질은 아니야…...'
그걸 보면서 안대훈의 얼굴은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가고 있었다.
기질적 원인으로 가면 심각한 질환이 태반이라 그랬다.
'다발성경화, 뇌경색, 뇌출혈, 동정맥기형, 경막혈종/경막하혈종, 뇌외상/뇌진탕, 말초신경성. 심낭염, 갑상선종, 목의 종양/낭종, 중격동림프질환, 고막의 자극, 흉부외상, 폐종양/폐부종, 심근경색, 심낭염, 폐렴, 기관지염, 폐농양, 천식, 식도폐색, 식도염, 위염, 위궤양, 위암, 췌장염, 췌장암, 장폐색, 염증성 장 질환, 담석, 담낭염, 신질환, 간질환......'
시부럴.
물론 이 중에서 당장 감벌 가능한 것들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다.
일단 뇌경색이나 출혈, 혈종, 두부 외상이나 심근경색 또는 흉부외상 등은 아니지 않겠나?
다른 동반될 수 있는 질환들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건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낙관론을 펼칠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췌장암...... 뇌종양이나 림프종도 가능해. 나이를 생각하면 뇌종양이나 림프종...... 하아.'
20대 남자.
그런 이에게 뇌종양이나 림프종은 좀 가혹하지 않나?
걸리면 태반이 죽을 텐데.
안 될 일이었다.
'교수님……'
아니라고 해 달란 바람과 함께 수혁을 돌아보았지만, 수혁은 이미 먼 곳으로 가 있었다.
언젠가는 언제나처럼 결정적인 도움이 되어 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심지어 119 요원 중 하나가 어깨로 수혁의 머리를 받쳐 주고 있었다.
[야, 이수혀어어어억!]
바루다도 별 소용은 없었다.
머리가 알코올에 의해 침공당한 탓이었다.
“자, 이제 도착입니다!"
“아, 네."
"인계하겠습니다만…… 선생님이 계시니까 괜찮겠죠?"
“네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네. 다행이네요.”
그 사이, 차량은 태화 의료원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대훈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환자를 데리고 안으로 향했다.
태화답게 바로 담당 간호사도 배정되고, 환자도 등록됐다.
막막해진 것은 대훈이었다.
'딸꾹질 때문에 이런저런 검사를 해..…? 그건 좀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건 또 아닌 것 같고……’
전문의 시험을 쳤을 뿐인데, 전문의가 되어 내팽개쳐진 듯한 기분이었다.
"어우, 대훈아아아아……"
취한 수학은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