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74화 (874/1,303)

874화 대훈아 오늘은 너 원하는 거 다 해 줄게 (5)

"우선 안정제라도 주지."

이현종은 애써 비틀거리는 아들에게서 눈을 떼어낸 후, 안대훈을 돌아왔다.

안대훈도 수혁을 보고 있다가 이현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수혁이 했던 말은 발음도 불분명한 데다가 누가 봐도 주정임이 틀림없어 보였기 때문에 철저히 무시되었다.

“봉다리!”

“우웁."

지금도 토하고 있지 않나.

어지러운 환자 용도로 시커먼 비닐을 다량 준비해 놓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진귀하면서도 딱히 눈이 즐겁지만은 못한 광경을 잔뜩 볼 뻔했다.

“아, 네. 다이아제팜(신경 안정제)이라도 드릴까요?"

"어. 일단 소량. 너무 힘들어하시잖아. 이유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환자가 살고 봐야지."

“네네."

안대훈은 환자에게 안정제를 처방했다.

먹는 약으로 하려다가 주사로 처방했다.

'사레가 들렸었지. 아까랑 비교해보면

......지금이 딱히 더 나아지진 않았어.'

물과 함께 약을 삼키다가 어디로 잘못 넘어가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물론 여기는 병원이니 바로 이비인후과 컨택해서 제거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주 훌륭한 의료사고라 할 수 있었다.

'고소할 만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지만…. 다른 보호자가 와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

해서 환자는 주사를 맞았다.

말이 안정제지, 용량에 따라 수면제가 되기도 하는 약이었다.

가뜩이나 밥 먹고 술 마시다가 죽을 뻔했는데, 아마도 난생처음 응급실로 끌려 와선 이런저런 검사도 받지 않았나.

엄청나게 지쳐 있던 환자는 금세 눈이 흐리멍텅해지더니 잠에 빠졌다.

"끅......"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한 딸꾹질은 지속되고 있었다.

근육을 이완시킨 건 아니니, 선잠에 빠지게 하는 것만으로는 이걸 완전히 사그라지게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끅......"

그래도 아까보다는 확실히 편안해 보였다.

이현종은 다행이라는 얼굴로 잠든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으로는 정신과를 떠올리고 있었다.

‘조울증...... 어떤 약을 먹지?'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통합진료센터라 해도 정신건강의학과를 건드릴 수는 없기에 그랬다.

그쪽은 정말이지 너무 다른 방면으로 이미 너무 깊이 파고들어 간 진료 과목이었다.

"야, 대훈아. 그 애 좀 불러 봐라.”

해서, 이현종은 대학병원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다른 과를 부르기로 했다, 이 말이었다.

그중에서도 태화는 워낙에 큰 병원이다 보니 모든 과가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모든 시간에 그 많은 과를 다 써먹을 수 있었다.

"아, 네."

대훈은 역시나 눈치가 빨라서, 보호사 앞에서 해당 과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환자의 반응을 봐도 연인은 모르는 거 같아서 그랬다.

'숨길 만한 일...... 이긴 하지.'

스티그마.

낙인 효과가 있는 과가 얼마나 있을까.

괜히 정신과가 대로변이 아니라 한 블록 안쪽에 위치하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메디컬 빌딩들도 잘 보면 정신과는 들어가 있지 않거나, 따로 구석에 있는 경우가 있었다.

환자들이 자신이 진료 보러 간다는 사실을 숨겨서 그랬다.

환자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내과 3년 차 안대훈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대훈은 뒤로 슬금슬금 빠져서 전화를 걸었다.

정신과 당직의를 부르기 위함이었다.

"아, 네, 안대훈 선생님. 저 정신과 당직 이승훈입니다."

“아……승훈아. 네가 당직이구나."

“네네.”

원래 타과 노티는 그 누구에라도 쉬울 수 없는 법이었다.

그나마 정신과는 대개 사람들이 좀 부드러운 사람들이 가기도 하고, 노티한다고 화를 내면 '저 새끼는 왜 정신과에 들어간 놈이 환자 보란다고 지랄을 하나'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좀 괜찮긴 했지만.

안대훈처럼 일이 막 술술 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 여기 환자 한 분 계시는데.....

양극성 기분 장애가 있다고 하거든?"

"아...….액팅 아웃(환자가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방어기제)하고 계세요? 일단 가고 있습니다. 가면서 들을게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승훈은 안대훈이 주최하는 모임의 회원이었다.

안대훈이야 신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승훈은 그저 팬클럽 회원이라 여기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둘의 사이는 돈독했다.

"지금은 주무셔.”

"아니, 그러니까...재우신 거 아니에요?"

답답한 소리를 해도 차분히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돈독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일단 이승훈은 수혁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양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없지.'

그에 더해, 꽤 의외의 사실이겠지만, 이승훈은 안대훈을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정신과는 물론이거니와 그냥 그가 아는 모든 레지던트 중에서 안대훈이 제일 열심히 하고 있기에 그랬는데, 사실 이런 이들이 꽤 여럿 있었다.

“아니, 아니. 주소는 딸꾹질이야."

"딸꾹질……?"

“응.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안대훈은 식당에서 있었던 일을 수 었다.

그 말을 듣는 중에도, 이승훈의 존경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팍팍 올라갔다.

호텔에서 밥 먹다가 병원으로 오다니.

'안대훈 선배한테......

이수혁 교수님은 제니, 승희, 츄보다 더한 존재일텐데……?'

이런 미친 사람 같으니.

환자에게 완전히 돌아 버린 존재였다.

"정리하면.…… 딸꾹질이 있는 환자인데 기저 질환으로 확인된 건 양극성 정동장애밖에 없다는 거죠?"

"어, 그렇지."

“먹는 약 중에 딸꾹질을 유발할 만한 약이 있는지 궁금하신 거고요."

"어."

“일단 저 도착했으니까 직접 보면서 말씀드릴게요."

"어어."

안대훈은 손을 번쩍 들어 위치를 표현했다.

두두두.

그걸 보고 정신과 레지던트가 달려왔다.

'응?'

중간에 널브러져 있는 수혁을 보고 좀 놀란 얼굴이 되긴 했지만, 하여간 안대훈에게 달려왔다.

“병원을 어디 다녔는지는 알고 계셔요?"

"응? 아, 응. 여기."

"흐음...…”

“뭐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어?"

안대훈뿐만 아니라, 이현종도 가까이 와 있었다.

지금의 유력한 단서는 이것뿐이라서 그랬다.

여기서 꽝이 뜨면 이제 환자는 이런저런 검사를 하러 엄청나게 돌려야 할 터였다.

지금 당장 다 할 필요 없겠지만, 만성 딸꾹질의 정의가 48시간 이상이라고 해서 그걸 무식하게 다 기다리는 건 미련한 짓이지 않겠나.

일반적인 병원도 아니고 태화까지 왔다면 그 전에 해결책이니 답을 내주긴 해야 했다.

멈추려는 노력을 죄다 시행했기에 그러했다.

“아뇨. 사실 ...… 저희가 쓰는 약이 딸꾹질을 유발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습니다.”

"몇 년 차인데?"

이제 이현종이 끼어들었다.

이승훈은 노교수의 말에 아까보다 더 공손해진 태도로 답했다.

“2년 차입니다. 교수님.”

“2년 차가 아는게 있나."

그에 반해 이현종은 심드렁했다.

2년 차.

물론 수혁은 2년 차 때도 어마어마하긴 했더랬다.

하지만, 다른 놈들은 어떤가?

현대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동시에 어린 천재 의사가 등장할 가능성은 나날이 줄어들어 가고만 있었다.

“아, 교수님. 이 친구 저랑 같이 공부하는 친구입니다."

“내과를 공부해?"

“아, 아뇨. 각기 자기 과를 공부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다 교수님들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

안대훈이 변호하려 나서기도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이현종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뭐가 되었건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거 아닌가?

"하여간 약이나 한번 확인해 봐. 이상한 약을 쓰고 있을 수도 있잖아. 일단 우리 병원에 원래 다니던 사람은 아니라고 하니까.”

“네네.”

태화 의료원의 시스템은 워낙에 알아주는 것 아니던가.

그러던 것이, 신현태가 원장이 되면서 점점 더 세밀해져만 가고 있었다.

이현종이 커다란 목적을 제시한 뒤에 제멋대로 달려가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면, 신현태는 그런 과정에서 발생한 구멍을 잔뜩 메워 주는 느낌이라고 보면 되었다.

김다현이 의도치 않게 순서를 기가 막히게 맞추었단 얘기였다.

하여간 덕분에, 응급실에서는 이미 환자가 다니던 병원에 전화해서 먹는 약을 싹 조사해 놓은 참이었다.

“흠…… 최근에 입원한 적이 있네요. 전능감(비합리적인 자신감, 조증 증상)을 주소로……”

그뿐만 아니라 간략한 기록도 받아 놓았다.

아무래도 태화 응급실에 그 유명한 이수혁 교수와 함께 왔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원래 다니던 병원도 꽤나 협조적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정신과 레지던트는 원래는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받을 수는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거기서… 흠. 델로라제팜(항불안제)을 1.5mg으로 맞았어요. 반응은 좋았네요. 입원 하루 만에 전능감이 해소되고…… 근데 퇴원한 지 오늘로 이틀밖에 안 되긴 했군요."

"으음. 이틀?"

“네. 아무래도……”

이승훈은 저 멀리 환자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뭐.…… 이해는 가는데.'

기념일이라도 있었을 터였다.

그럼 서둘러서라도 퇴원을 하지 않았을까?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건 일종의 장거리 달리기와도 같아서, 의사도 환자도 의지가 강해야 했다.

또 서로 협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을 땐 과감히 양보하는 경우도 있단 얘기였다.

“퇴원할 때…… 경구약으로는 여러 개를 받았는데, 이게 뭐 특별할 게 있나 모르...... 어우, 깜짝이야."

하여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기록을 읽고 있으려니. 수혁이 다가왔다.

여전히 술 냄새는 났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훨씬 나아 보였다.

일단 엉망진창은 아닌 느낌이었다.

“아리피프라졸.”

그래 봐야 할 수 있는 말이 길지는 않았다.

더 길게 하면 딸꾹질도 나오고, 토할 것 같았다.

"네?"

"신경 쓰지 마. 주정이야."

“네, 주정을 부리고 계십니다."

“아니, 잠깐만.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실래요?”

그러자 수혁은 아까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여전히 발음이 정확지는 않아서, 이현종과 안대훈은 서둘러 수혁을 눕히려 했다.

안 그래도 다리 하나가 불편한 놈이 술까지 취했으니, 계속 서 있으려 하다간 넘어지지 않겠나.

헌데 이승훈이 그걸 만류했다.

"한 번만 더요."

진중한 얼굴로 불콰한 얼굴의 수혁에게 다가가 물었다.

“후."

"어우."

일단 수혁은 술 냄새 가득한 숨을 불어주는 결례부터 범했다.

이승훈은 이 양반이 대낮부터 병나발이라도 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참았다.

'분명...... 그거 약 이름인데?'

단서가 있어서 그랬다.

“아리피프라졸, 딸꾹질."

그때, 수혁이 다시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러곤 멍한 얼굴이 되어 침대에 털썩 앉더니 눈을 감았다.

뭔가 추론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저러다 또 다른 단서를 내뱉었겠지만.

"드르릉."

지금은 코만 골았다.

이현종과 안대훈이 '역시나 꼴았군' 하는 사이, 이승훈은 벼락이라라도 맞은 사람처럼 부르르 떨더니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아리피프라졸…… 설마."

그리곤 이상한 말을 내뱉더니 초록창에 아리피프라졸과 딸꾹질을 검색했다.

그러자 몇 개의 문헌이 떴다.

매우 드문 부작용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아니…… 이거……”

"뭐야."

"응?"

밑으로 더 내려보니, 아리피프라졸이 딸꾹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제 셋의 고개가 주정뱅이에게로 돌아갔다.

"미친."

정신과 의사가 미친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