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75화 (875/1,303)

875화 전문의 기념 학회 (1)

"자네가 그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자기 흠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 이헌종이지만, 남의 흠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사람이 또 이현종이지 않나.

당연하게도 이승훈의 말실수를 짚어 냈다.

허나 이승훈은 굳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아니, 그 어떤 정정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아리피프라졸이란 약 이름을 되뇌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딸꾹질을 일으킨다는 걸 어떻게 아셨지?"

최신순으로 정리하니 나온 지 그렇게 오래된 논문도 아니었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아리피프라졸은 다른 과에서 쓸 만한 약제가 아니었다.

항정신병 약물이니까.

애초에 조현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양극성 정동장애의 급성 조증삽화에서도 효과가 좋다는 것이 밝혀져 적응 범위가 확장된 케이스이긴 하지만, 양극성 정동장애라고 해서 내과 의사가 볼 만한 질환은 아니지 않나.

“이런 미친……”

"또 저러네. 다른 사람은 다 쓸 수 있는 말이어도 넌 안 된다니까?"

이현종이 끊임없이 시비를 걸었지만 딱히 소용은 없었다.

이승훈은 이미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니, 자신만의 세상이 반쯤 박살 나는 순간에 놓여 있었다.

"진짜 미친..….”

교수님께 노티를 해야겠지?

노티를 하면 놀라겠지?

칭찬도 할 게 뻔했다.

이런 걸 어떻게 알았냐고 하면서.

그러다 실은 이수혁 교수님이 알아낸 거라고, 심지어 술 취해서 꽐라된 상태에서 말한 거라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돌아 버리겠네."

"이새끼 진짜 미친놈인가? 정신과가 뭐 이래."

이승훈은 이현종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랬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마음이 좀 안정됐는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아, 아무튼…… 그 약이 원인일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그걸 끊으면 됩니다. 대체약제는 제가 처방해 놓을게요.”

어찌 되었건 환자를 치료해야 하지 않겠나.

그 와중에 약 때문에 발생한 딸꾹질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원인에 비하면 제일 경미하다 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기저에 깔린 질환이 양극성정동장애라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요새는 옛날처럼 그렇게까지 관리가 안 되진 않으니…...'

환자와 의사가 협조하면서 치료를 이어 나가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병이었다.

증상이 다시 심해질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그런 병이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어찌 보면 고혈압이나 당뇨 또는 고지혈증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 환자는 의지가 충만하고...... 나름 사회적 기능도 양호해 보여.'

물론 호텔 식당에 간 게 충분히 능력이 있어서 간 건지 아니면 조증삽화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의 여부는 반드시 확인을 해 봐야 했다.

충분히 감당 가능한 사치를 기분 낼 만한 날에 부린 것이라면 괜찮았다.

애초에 조증이 있는 사람 중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던가.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아, 네. 그...... 그냥 환자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환자? 아, 앞으로?”

“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 저희가 받아서 봐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게 아니더라도, 담당 선생님과 상의는 해 봐야 할 것이고요."

“그래, 정신과는 좀 특별하지.”

다른 질환들도 의사와 환자 관계가 중요하긴 하지만, 정신과만큼은 아니지 않다.

정신과는 유명한 의사보다도 자기랑 잘 맞는 의사, 무엇보다 가까운 의사와 보조를 맞추어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자, 그럼 설명을 좀 해야겠네."

이현종은 한차례 흠…… 하곤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해결은 술 취한 수혁이 한 셈이지만, 수혁은 이제 침대에 앉아 졸고 있었다.

저 상태로 환자에게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도 있지.'

괴물 같은 놈이니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안 된다고 생각을 해야 할 터였다.

해서 이현종은 하임리히를 통해 한번 환자를 살린 바 있는 안대훈에게 공을 넘겼다.

"네, 교수님."

안대훈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환자에게 다가갔다.

누누이 말하지만, 3년 차쯤 되면 이런 정도의 일은 익숙해져서 그랬다.

게다가 안대훈은 외모 버프까지 받는 몸이다 보니 대단히 유리했다.

우선 환자 측에서 존중해 줬다.

“아, 네. 감사합니다."

"네네. 그리고 저기 저 선생님하고 이따가 한번 면담해 보시죠. 딸꾹질은 시간 지나면 좋아질 텐데 ...… 우선 희석을 위해 수액을 좀 더 드리도 하겠습니다. 기저에 다른 질환이 없어 가능한 일이니까 너무 불안해하진 마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수월하게 환자와의 면담을 마치고, 추후 계획은 정신과 이승훈에게 던지고 돌아온 안대훈은 수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도로롱.”

그 잠깐 사이에 수혁은 누웠다.

코도 살짝 골았다.

'이게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얘 아빠라서 그렇겠지?"

이현종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신도라서 그렇겠지?'

안대훈도 그랬다.

전혀 자정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수혁이 눈을 떴다.

"후......"

아까보단 확실히 알코올 냄새가 옅어진 숨을 내뱉으면서였다.

그러나 눈은 흐리멍덩했다.

살짝 충혈도 되어 있었고.

수액을 맞고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시간이 더 걸렸을 터였다.

"으음......"

하여간 수혁은 몸을 일으키더니, 말을 잇기 시작했다.

“대훈아, 너 만점이지."

주정에 가까운 말이었다.

허나 이현종, 안대훈은 늘 수혁에게 취해 있는 사람 아닌가.

다들 만취 상태다 이 얘기였다.

해서 대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네, 아마도요.”

“그래, 그럼 뭐 합격인 거고, 다른 사람들이야…… 전역하고 오는 사람들이니…… 다들 확정이네."

“그렇지. 얘가 설마 떨어지겠나? 그러니 확정이지."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먼 것으로 미루어볼 때, 어딘가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어딜까.

대훈과 이현종은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뉴욕……?'

학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뉴욕 학회 초록 내자."

“네. 네?”

거기까지는 둘 다 예상 가능했던 부분이었다.

뉴욕에서 열리는 학회는 분과 학회가 아니라 내과 학회였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통합진료센터가 지향하는 바에 그나마 잘 맞는 학회란 얘기였다.

분과 학회들은 어느 한 지점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그 수준 자체는 높지만, 여러 개를 종합해서 보진 않지 않나.

"초록."

“아니……그거…… 다음 달 말에 있는 학회인데요?”

“어…… 내가 기억해.”

수혁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감정이 섞인 한숨은 아니었다.

그냥 말을 잇다 보니 취기가 올라와서 그러는 느낌이었다.

"그거 내일모레까지야, 접수."

"어......"

“너랑 김인수, 이태원, 장종우, 김성진...... 다 내. 아, 어지럽네."

그래서 그런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만 남기곤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툭 하고 쓰러지듯 누워 잠들어 버렸다.

“아니, 이놈이 대체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이러지?"

"그…… 그게.”

안대훈은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런 진귀한 광경을 마주하고 있는 건 분명 영광이었다.

허나 한편으론 살짝 수혁도 사람이란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반병도 안 마시셨는데……? 게다가...... 여기 온 지 한 시간 째인데……'

소주 나발을 불어도 적당히 깰 만한 시간 아닌가. 술이 약해도 너무 약하시단 생각이 들었다.

안대훈은 자랑은 아니지만 거의 옛날 무장급으로 마실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대훈아.”

“네?”

"뭔 생각하냐.”

"아, 아니, 별생각 안 하고 있습니다."

"안 해? 그러고 있을 때니?"

안대훈을 그런 생각에서 빼낸 건 역시나 이현종이었다.

그냥 그 정도가 아니라, 그는 무방비 상태로 있던 안대훈의 뼈를 무지막지한 속도와 강도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내일모레까지 초록 내라잖아."

“아...... 근데 교수님들도 내셨어요?"

"아니, 내야지."

"그런 말씀까지는 없으시지 않았어요? 게다가 지금 이수혁 교수님은....."

암만 봐도 이수혁은 오늘 하루는 휘릭 날려 먹을 것 같지 않나?

이 상태에서 눈을 떠서 활동하는 그림도 잘 그려지지 않는데, 논문까지 쓴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불충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뒤통수를 딱 소리가 나게 때렸다.

짝.

실제로 난 소리는 짝이었고, 이현종은 덜컥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하고자 했던 말은 하기로 했다.

미안해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정했다.

“수혁이 걱정이 되냐? 잰 논문도 1시간이면 뚝딱 쓰는 놈인데……"

“아,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하아…… 아니, 근데 논문을…… 이걸 어쩌죠.”

혹자는 말했다.

안대훈이야말로 수혁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다소 충격적인 외양을 제외하면, 확실히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지 않다.

임상적인 능력만큼은 발군을 자랑하고 있어서 그랬다.

수혁이 갖추지 못한 능력, 즉 대중 조작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허나 연구 쪽으로 가면 꽤 처지는 편이었다.

"뭐…… 나랑 써야지. 어쩌겠냐."

이현종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해서 돕기로 했다.

'지금은 네가 문제가 아니야……'

나머지.

그러니까 3월에 들어오기로 한 놈들이 진짜 문제였다.

걔들은 쌩으로 단 이틀 만에 초록을 써서 내야 했으니까.

"일단 단톡방 파자. 이거 진작 파야 했는데."

“아, 네. 초대하겠습니다."

"번호를 네가 다 알아?"

"기본이죠. 아무래도 제가 내년 막내 아니겠습니까? 잡다한 일은 맡겨 주시면 됩니다."

"확실히 이런 건 네가 수혁이보다 훨씬 낫구나."

수혁이는 내가 오히려 챙겨야 했었는데, 하고 이현종은 중얼거리며 완성된 단톡방에 입성했다.

그러곤 가타부타 인사말도 없이 똥을 던졌다.

- 내일모레까지 뉴욕에서 열릴 미국 내과학회에 초록 내십시오. 모두 2월에 뉴욕에서 먼저 봅시다.

동시에 모두의 휴대폰이 각자 있던 자리에서 웅웅 울렸다.

'?'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아니,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뭔...... 미친 소리지….…?'

각오를 다지고 있긴 했다.

소문도 무성한 통합진료센터에 들어갈 몸이지 않나.

가서 겪어 보니, 소문은 소문이고 현실은 더하단 것을 몸서리치게 체험한 마당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였다는 점이었다.

설마 들어오기도 전에 연구 업적을 요구할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즉흥적으로?

'즉흥…… 즉흥적인 곳이긴 하지.'

생각해 보면 놀랄 일이 아니기도 했다.

미친놈들이, 환자를 볼 때도 돌림판 돌려서 봤잖아?

그 자리에서 어디 갈지 정하고, 가서는 무작정 환자 보다가 해결 안 될 것 같은 환자만 골라서 고치고.

그런 놈들이 학회라고 정상적으로 고를까?

그딴 생각을 했다면 오산이었다.

"어…… 어려운 사람 있으면...... 내일 나한테 오라고……”

그때, 마침 수혁이 잠꼬대처럼 이런 소리를 했고, 이현종은 살짝 간지 나는 방향으로 번역했다.

- 못 쓰겠다면 내일 센터로 와라. 그 초록, 내가 써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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