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76화 (876/1,303)

876화 전문의 기념 학회 (2)

"그랬다니까 진짜."

“아...... 몇 번을 말해요."

일행은 공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서 일행이라 함은 통합진료센터 거의 전 직원이라 해도 좋았다.

센터장 이현종, 부센터장 이수혁, 임상조교수 김성진, 군펠로우 안대훈, 펠로우 장종우, 그리고 김인수까지 모두 여섯 명은 수혁이 대여한 번에서 내렸다.

이현종은 그렇게 내린 후, 병원 쪽을 돌아보았다.

다 같이 가는 건 좋은데, 뭔가 마음이 허했다.

아니, 불안하다고 보는게 맞을 터였다.

- 내가…… 내가 자리 지키라고? 나 원장인데?

-어차피 각 병원에 하달됐어. 1주일 동안 통합진료센터 잠정 휴업이라고.

-아니, 그럼 본원은? 본원 환자는!

-원래 협진 시스템 있잖아.

-그걸로 안 되는 거 보라고 만든 센터인데!

-그러니까, 안 될 것 같으면 전화하라고 우리 둘이 돌아가면서 받을 거니까.

-하......

원래 의사들은 그랬다.

특히 대학병원 의사들은 각기 맡은 환자가 있는 동안에는 휴가도 길게 가기 어려웠다.

그나마 통합진료센터는 환자 해결을 자체적으로 워낙에 빨리해 내는 과다 보니 입원 환자가 적체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 다른 과에서 보내는 환자를 죄다 봐야 하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이 남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뭐…… 연동되는 노트북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어디 오지로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뉴욕이었다. 뉴욕.

거기서 뭐 연락 안 되고 할 일이 있을 턱이 없을 터였다.

전화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차트를 볼 수 있는 노트북도 있으니 괜찮을 거라 결심했다.

"아빠, 뭐해요?"

철없는 수혁은 그저 설레고 있었다.

[뉴욕에 미슐랭 스타 받은 맛집이 그렇게 많다던데요!]

'그러니까! 이번엔 미식여행이다!'

학회에 간다는 자각 자체가 없었다.

나름 여섯 명 모두 발표가 있고, 그래서 학회와 병원에서 일정 기금을 지원받아서 가는 길이긴 했지만, 하여간에 그랬다.

그러기엔 바루다도 수혁도 식충이 기질이 너무 강했다.

"어어, 그래, 가자."

인솔자인 이현종은 그런 수혁을 보며 병원을 잊었다.

문제라면 문제였다.

누구보다 컨트롤을 해 줘야 할 사람이 수혁만 보면 들떠서 그랬다.

“와...… 저 해외 학회 따라가는 거 처음입니다."

"응? 처음이라고?"

“네.”

"아니...... 자네 감염내과에 그래도 3년도 넘게 있었잖아? 논문을 그렇게 못 쓰나...... ? 하긴 자네가 의외로 논문 실적이 별로던데."

김성진도 들뜬 얼굴이었다.

그러다 이현종의 말을 듣자마자 부쩍 어두워졌다.

칠성 병원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칠성 병원의 악, 안국태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시잖습니까…… 안국태 교수님…… 제가 쓴 초록이랑 발표 자료로 학회하고 다녀오시면 또 그걸로 논문 쓰게 하시고…... 1저자는 윗분들이 꽃은 사람한테 주고…...”

“아, 맞아. 자네 안국태 밑에 있었지…… 그래, 그래. 어두운 과거는 뒤로하라고. 우리 의국은 그런 일이 없어요. 이번에도 봤지?"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근데 정말...... 이렇게 땡전 한 푼 없이 가도 되는 건지..….”

그에 비해, 태화의 이현종과 이수혁은 거의 무슨 천사 같은 인간들이었다.

물론 발표 자료를 만들 땐 뒤질 것 같았지만.

아이디어를 준 것부터 초록까지 거의 다 둘이 써 줬으니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디어는 대개 이수혁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걸 그럴싸하게 디자인하는 건 이현종의 몫이었다.

'천재들……'

그렇게 총 여섯 개의 발표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시간.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3시간에 발표 6개라니.

30분에 하나라는 건데……

원래 그렇게 만들면 절반은 떨어져야 정상이었다.

국내 학회처럼 제발 초록 좀 내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입장도 아니었다.

미국.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빛이 바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체 다 통과하다니…… 아니지. 보면 진짜 딱 그럴 만한 발표들이긴 했어.'

태화라서 가능한 일이긴 했다.

여긴 논문으로 쓰이지 못한 데이터가 쌓이고 쌓여 있으니까.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이미 여기서 펠로우를 마치고 다른 병원 교수로 간 사람들도 신청만 하면 와서 자료를 열람하게 해 줄 지경이었다.

어차피 원내 인원으로 소화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많이, 그리고 빨리 쌓이고 있어서 그랬다.

하지만 데이터만 있다고 다 논문이 되면 세상에 왜 논문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겠나.

"돈? 돈은 걱정 마. 여기 이수혁 교수가 다 가자고 한 건데 당연히 책임져야지. 우리는 이상한 갑질 같은 거 안 해요.”

“아니…… 나는 기억이 안 난다니까요?"

“너는 안 나는데, 우리는 다 기억나. 게다가 CCTV도 있다고. 전에 봤잖아."

“하아…… 이제 진짜 술 그렇게 안 마셔야지......"

“대체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그걸 다 마셨어. 거참……"

"그게. 하.”

김성진의 회상과는 별개로 대화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현종이 수혁을 놀려먹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취해서 6명의 미국행을 쏘다니.

- 논문도 써 주고...... 비행기 표도 쏜다. 에이…… 호텔도 쏴.

-수혁 미쳤습니까?이 새꺄. 그 돈이면……

- 가서 식당도 산다. 미슐랭으로!

- 어어. 이 새끼 이거.

바루다가 말렸음에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하......"

“잘됐지, 뭐. 너 돈 쓸데도 없잖아.”

"그건......"

“쌓아 둬서 뭐해. 기왕 말 나온 김에 너 이번에 기부도 했지?”

“아, 네. 말 듣다 보니까 저는 진짜 딱히 뭐 쓸 데가 없긴 하더라고요."

이현종의 말대로, 기저에 깔린 생각이 이미 그렇기도 했다.

결혼?

하고 싶지만 언제, 누구와 하게 될지 전혀 갈피가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하게 된다고 해도 동료 같은 사람과 하게 될 것이 뻔했다.

심지어 집도 있지 않나?

말이 오피스텔이지, 거의 아파트 수준으로 넓은 집이.

"천 했어? 난 그 정도 했는데, 입양하려고 보니까……돈을 좀 모으긴 해야겠더라고."

“아...... 네. 저도 그 정도."

게다가 최근에 사건도 겪지 않았나.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이를 통해 수혁은 세상엔 차라리 없는 게 나은 부모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고, 학대 아동 지원 기금에 일정 금액을 기부했다.

이현종도 그랬다.

소희를 입양하느라 거액을 하진 못했지만.

“아무튼…… 가자. 이수혁 교수가 쏘는 일등석이다."

"아...... 내가 왜 일등석을 쐈을까...... 이코노미도 비싼데."

“잘됐지 뭐. 이때 아니면 언제 타 보겠어. 나도 처음이야, 일등석은."

"하아…….”

수혁도 원래는 더 큰 금액을 쏘고 싶었지만, 미국행에 너무 많은 돈을 쓰는 바람에 이번엔 천에 그쳤다.

세상에 뭐 좋은 거 산 것도 아니고 학회 지원을 하느라 이렇게 되다니.

그나마 발표자들이라 지원금이 나오니 망정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진짜 수천은 깨질 뻔했다.

"그래도 너 디씨 받았잖아, 인마. 전에 닥터 콜 받은 게 이렇게 돌아오네."

"아...... 그러게요. 그건 다행이에요. 휴.”

수혁만 표정이 어두운 채로 다들 일등석 라운지로 들어섰다.

안대훈은 수혁의 눈치를 보느라 그나마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들어서는 순간 다 소용없었다.

"와아……”

"와……”

“진짜 좋다……”

"신발은 왜 벗니, 인수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군인이라.”

이현종을 제외하면 다들 그냥 촌놈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수혁도 교수긴 했지만, 또 여러나라를 오갈 때 나름 해 봤지만.

기본적으로 흙수저 출신인 데다가 병원에서만 지내는 인간 아니던가.

이러한 호강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커, 컵라면도 있는데요?”

“그건 병원 편의점에도 있단다……”

"수,술이에요. 양주 같은데?"

"어...... 그건 편의점에는 없지. 그래, 맘껏 기뻐해라.”

수혁도 그 지경인데 나머지는 어떨까.

병원 노예 셋에 군인 하나.

다들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에 낀 이현종은 살짝 부끄러워졌다.

‘아…… 애들 다 어렵게 살았나…...'

그랬을 거 같지도 않은데 왜 이럴까.

다들 서른은 훌쩍 넘었잖아.

아니, 안대훈은 아니긴 한데, 액면가는 최고령이잖아.

“아빠, 왜 거기 혼자 가요!"

"어? 아니, 나 안마의자 좀."

“안마의자가 있어요? 와아아아.”

“아니, 그. 난 면세점 좀.”

"와아아아."

“시부럴……”

이현종은 사방을 훑어보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싶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해서 난감한 얼굴로, 혹시 아는 사람 보면 어쩌나 하면서 대강 대응을 해 나갔다.

"흐음...... 여긴 뭐야?"

그 시각, 학회 측에서는 막바지 점검을 위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이미 장소나 절차 등은 다 끝난 상황이었다.

어차피 국제 학회는 그 위상에 걸맞게 대행사를 사용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해서 학회 회원들이 하는 일은 대개 발표 점검이었다.

주로는 해외 회원들이 낸 발표들이 대상이 되었다.

“응? 아…… 태화잖아? 많이 오는 곳이지, 뭐.”

"아니, 센터가 나 처음 보는 센터인데……?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네.”

“이사회 승인도 받은 거 아닌가."

“그렇겠지.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아무래도 펑크 비율이 더 높았다..

해외여행이 어려운 나라에서 온 초록인 경우는 더 그랬다.

한 번은 중국에서 온 이들이 아예 발표장에 나타나지도 않아서 진땀을 흘린 적도 있었더랬다.

아예 불법체류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은 예외였다.

정말 궁금해서 보는 것뿐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6개가 동시에 접수됐네."

“그래? 그럼 그 주제들 보면 뭐 하는 곳인지도 알 수 있겠네."

“감염, 소화기, 암, 호흡기, 심장, 노인…… 주제가 다 다른데.”

“음. 뭐 하는 데야?"

궁금증은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더욱 커져만 갔다.

이상한 이름에 이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지 않나.

“아니, 잠깐만...... 이 사람. 현종 리.

이 사람...... 심장학회장 하셨던 분 아닌가.…...?"

"응? 심장학회장까지 했던 사람이 왜 다른 센터에 가 있어?"

"봐봐. 심장 낸 거 보면...... 깊이가 있어. 대가야. 이름도 같고 태화잖아. 게다가 센터장급이면 그 사람밖에 없는데.”

"이잉...... 뭐지.……?”

거기에 더해, 이미 국제 학회에서 대가급 인사로 대우받는 이현종도 끼어 있다 보니 회원들의 궁금증은 이제 의구심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그때, 학회 이사가 다가와서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번 후원사 중에 태화 바이오 있는 건 알지?"

"아, 알죠. 거기가 CMO(마케팅) 잘하는 곳이잖아요.”

“응. 거기서 이 센터 얘기를 했어. 태화에서 오는 팀이 여기 하나만 있는 게 아닌데…… 딱 여기만 짚더라고. 주력 센터라고."

"으음...... 그래요? 뭔가 있기는 한 거 같은데……”

“그래서 나도 좀 더 보려고, 너무 처음 보는 센터라 주제는 좋아도 작은 강의실을 배정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게 좀 특이하니까 궁금하긴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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