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84화 (884/1,303)

884화 미팅하다가? (4)

‘이제 알려줘.’

[응, 모르겠쥬? 킹 받았쥬?]

‘지랄 말고…….’

[어쩔어쩔 저쩔저쩔 안물티비 안궁티비 뇌절티비 우짤래미 저쩔래미 지금 화났쥬 개킹받쥬 또빡치쥬 근데 아무것도 모르쥬 그냥 화났쥬.]

‘후우우우우.’

수혁은 심호흡을 내쉬었다.

어디서 본 건지 알 것도 같았다.

볼 때는 같이 웃었다.

좋아하는 배우였으니까.

근데 진짜 모르겠는데 앞에서 이러고 있으니까, 지금 느끼는 이게 살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수혁아?”

이현종은 얘가 이 타이밍에 왜 이러나 싶어서 어깨를 건드렸다.

다 모여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영상 통화로 환자 보겠다고 요청한 상황에서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후련하구만. 휴.]

다행히 바루다는 말만 뇌절티비라고 할 뿐 진짜로 뇌절 치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시간이 짧았던 건 아니었지만, 하여간 바루다는 너무 늦지 않았을 때쯤 자신이 분석한 바를 수혁의 시야에 띄워 주었다.

마치 SF 영화에 사이보그가 무언가를 분석할 때 쓸 법한, 그런 방식의 구현이었다.

‘어…… 이거…… 좌우 불균형이 있네.’

[심하지는 않습니다만…… 확실히 있죠.]

‘하지만 이건 워낙에 흔한데. 흔하면 안 되는데…… 일단 나도 그렇잖아?’

[그렇긴 하죠.]

정확히 말하면 수혁은 지금 환자의 하지를 보고 있었다.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 둘 사이에는 불균형이 있었다.

길이도 굵기도 조금 차이가 났다.

우측이 대략 1cm가량 길었고, 굵기도 가장 굵은 지점을 서로 비교했을 시 2cm가량 굵었다.

꽤 특이한 소견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골반의 틀어짐으로 인한 불균형은 워낙에 흔한 소견이었다.

딱히 현대인들이라서 흔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더 많았다.

균형 따위를 신경 쓰고 일하지 않았던 때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골격 상으로는 딱히 이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골반은…… 만져 보면 더 정확하겠지만, 일단 보이죠?]

‘어…… 그렇네? 그럼…… 잠깐. 발이 좀 부었어.’

허나 이 환자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골반의 높이가 양측이 완전히 일정했다.

하긴 그럴 터였다.

바루다가 그런 거 하나 보정하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놓고 보면, 좌우의 다리가 그냥 차이가 난다는 얘기가 되었다.

해서 보다 면밀히 살펴보니 우측 발이 부어 있었다.

[그런데 꽉 끼인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병원에 온 지 시간이 꽤 지났다면 신발을 벗은 것도 시간이 지나 흔적이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이를 토대로 생각해 보시죠.]

‘만성적으로 부어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군. 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겠어. 딱 좋은 타이밍이기도 하지.’

수혁은 흐음 하며 작은 소리를 내곤, 폰을 앞에 두고 말했다.

“근데 선생님?”

“아, 네.”

레지던트는 슬슬 팔이 아파 오던 참이라 급히 답했다.

속으론 좀 이상하단 생각도 하고 있었다.

환자를 보여 달라 해 놓고 얼마 안 있다가 깊고 깊은 한숨만 내쉬지 않았나.

비록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분명 분함을 참는 얼굴이었다.

세상에 환자 보면서 분함이 차오르는 경우가 있을까?

“환자 신발 어딨죠.”

“네?”

게다가 그 와중에 신발을 찾았다.

이번에는 리처드 교수도 수혁을 돌아보았다.

뭔 소린가 싶어서였다.

사실 대번에 말을 못 알아들은 건 이현종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연고로 아까 왜 화가 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허튼소리가 아닐 거라는 것 또한 알기에, 수혁의 얼굴이 아니라 환자의 발을 바라보았다.

‘어……?’

한참을 보다 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확실히 발이 부어 있는데, 우측만 그랬다.

이런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부기란 삼투압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고, 그 삼투압의 변화란 전신에 걸쳐 발생하는 것이니까.

헌데 한쪽에만 생겼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는 게 옳았다.

“가져왔습니다.”

하여간 레지던트는 다른 이에게 폰을 맡기고 후다닥 달려가선 신발을 들고 왔다.

신기에 편해 보이는 스니커즈였다.

“양쪽 사이즈가 어떻죠?”

“네에……?”

레지던트는 대번에 신발을 들여다보진 않았다.

‘이 인간이 지금…… 라스베이거스 호텔 초청권 줬다고 갑질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렇지 않나?

한참 환자 수술방 어레인지해야 하고 또 마취과 컨펌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 신발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도 선 넘는 요청일진데, 이제 사이즈를 확인해 달라고?

“한번 봐 봐요. 다를 수도 있어.”

“네?”

거기에 이현종이 끼어들었다.

한국이었다면 일단 대가리부터 박았을 텐데.

아니, 외국인이라 해도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수라면 들었을 텐데.

아쉽게도 레지던트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라 리처드를 돌아보았다.

뭐라고 한마디 하라는 표정을 짓고서였다.

그에게는 안 됐지만, 리처드는 하여간에 이현종을 존중하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아까 내과 과장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에 살짝 감동도 받았다.

“봐 봐.”

“아, 네.”

까라면 까야 하는 문화는 비단 한국 의료 뿐만의 것이 아니었다.

중세 이전부터도 도제 교육이 당연시되었던 분야가 의료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해서 레지던트는 불만 어린 표정은 지었을지언정, 일단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물음표를 띄웠다.

‘이게…… 왜 달라?’

다음엔 환자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상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왜 좌우 신발을…… 다르게 신어?’

양쪽의 신발 사이즈가 미국 사이즈 상으로 2나 차이가 났다.

이건 취향이라고 보기엔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로 불편할 테니까.

“어어…… 다릅니다. 한쪽은 11, 다른 하나는 9입니다.”

“우측이 더 크죠?”

“아…… 네. 우측이 11입니다. 이게 왜…… 왜 이렇지?”

그때 수혁이 확신에 찬 얼굴로 우측이 더 크냐고 물었고, 그제야 레지던트는 이 인간은 대체 그걸 어찌 알았나 싶어졌다.

허나 수혁은 이미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림프가 막혔구나.’

[네. 그렇게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현종의 추론대로 한쪽만 다리가 굵어지는 경우라면 구조적인 이유를 떠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적 이유 중 가장 합리적인 것은 역시 림프의 배액이었다.

“혹시 환자 다리 수술력이 있습니까?”

하여간 이제 레지던트는 감히 수혁의 말에 토 달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그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개 발에 땀나도록 뛰었다.

“아, 아뇨. 없습니다.”

“수술력이 없다……?”

“네.”

“흐음.”

수술 없이 림프액 배액에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면 질환에 의한 것일 텐데…….

사람의 몸은 하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이 질환과 오늘의 증상이 별개는 아닐 터였다.

물론 드물게 전혀 다른 질환이 동시에 터졌을 수도 있지만, 정맥류의 형태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확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한 질환으로 딱 묶이기는 어려울 터였다.

‘신드롬류겠군.’

[그렇죠. 유전자 질환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신발을 보면 만성적인 상황인 거겠죠. 본인이 그 와중에 불편감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불편했을 거야. 다만 의사에게 말해야 할 정도의 증상인 줄은 몰랐겠지.’

[그것도 이상한 일이긴 마찬가지입니다만…… 뭐, 지금껏 데이터화해 둔 자료를 토대로 보면 인간은 확실히 비합리적인 동물입니다.]

‘부정할 수 없네.’

딱 필요한 일만 하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나.

제아무리 스스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실제로 그러한 특성을 이용해 성공해 온 사람마저도 생의 어떤 한 부분에 있어서는 더없이 불합리한 면을 지니고 있기 마련이었다.

이제 와서 환자의 그러한 면을 탐구하는 건, 재미있을지언정 쓸모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추론을 더 해 나가기 시작했다.

“환자 혹시…… 지금 말고도 병원에 온 적이 있나요?”

“아, 네. 있습니다. 나름 기부도 하시고…… VIP입니다.”

“그때는 어떤 증상을 주소로 왔죠?”

“리처드 교수님께 간혹 발생하는 빈맥으로 왔습니다. 근데…… 딱히 이상은 없었습니다.”

“오늘 일을 미루어 볼 때, 당시 빈맥이 급성 출혈과 연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수혁은 리처드를 돌아보았다.

리처드는 할 말이 뚝 떨어져 버렸다.

‘말을 해도 꼭 이렇게 해야 되나. 이거 꼭…….’

아니, 말을 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말이 더 어울릴 터였다.

진짜 이현종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한 느낌이 일었다.

‘어……?’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좀 이상했다.

왜 이 정도로 성공한 인간이 난데없이 생뚱맞은 센터에 들어가 있단 말인가.

누군가 진짜 소중한 사람을 키워 주기 위함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인데, 그가 아는 이현종은 아니, 모두가 아는 이현종은 그럴 만한 위인이 결코 아니었다.

가족이 아니고서야…….

‘아들……? 그러고 보니까 같은 이 씨잖아.’

미국은 성이 다양하다 보니 같은 이 씨라는 게 크게 다가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게다가 이 날카로우면서도 못돼쳐먹은 질문은 확실히 이현종스럽다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주소는 없어요?”

리처드는 한 방 먹고 쩔쩔매고 있었지만, 수혁은 이미 레지던트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어…… 네, 아. 혈뇨가 있습니다. 근데 신장에선 별 이상이 없었고,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일단 경과를 관찰 중입니다.”

“얼마나 됐는데요?”

“한…… 2년 전에 한 번? 아, 그전에도 두 번인가…… 있었습니다.”

“주소가 혈뇨예요?”

“아, 네. 무슨 문제라도…….”

“흠.”

혈뇨가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별거 아니라더라 하는 얘기는 많이들 들어 봤을 터였다.

허나 그때의 혈뇨는 소변 검사에서 검출된 혈뇨를 말하는 것이었다.

주소라면 완전히 얘기가 달랐다.

환자가 육안으로 확인했다는 것이니까.

그런 게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환자 엑스레이 하나만 찍어 보죠. 어차피 수술 들어가기 전에 CT도 찍어야 할 텐데…… 그 전에 엑스레이 하나만.”

“아…… 네.”

이제 레지던트는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에 불안감을 느낄 만큼 몰입한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툭툭 던지는 말이 죄다 의미심장한 데다가, 여하간에 수혁만이 이 환자에 대한 실마리를 잡아 가는 듯하지 않나.

안타깝게도 레지던트는 아예 환자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같이 있던 내과 교수도 그랬다.

심지어 옆에 있는 리처드도 그랬다.

그렇다 보니 그 누구도 수혁을 제지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방금 수혁이 요청한 엑스레이 한 장은 의료진에게도 어려울 것 없었고, 환자에게도 부담될 것이 없었다.

“찍었…… 아…… 이거.”

게다가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바로 찍을 수 있었고, 결과 또한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엑스레이 소견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상할 지경이었다.

“요관, 방광 내에 석회화된 돌들이 있군요. 아마 육안으로 보인 혈뇨의 원인은 이거 같은데…… 흐음. 저는 이 환자가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알겠군요.”

그렇다고 해서 그 이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수혁 말고는.

‘어려워.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케이스야.’

그리고 수혁은 이 케이스가 그럴 만하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잘난 척을 시동하면서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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