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885화 (885/1,303)

885화 미팅하다가? (5)

알아?

너는 알겠어?

모두가 수혁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거기엔 바루다도 있었다.

[너…… 모르겠잖아?]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물론 수혁은 바루다와 모든 생각을 공유하는 건 아니었다.

바루다의 칩이 뇌의 전반에 걸쳐 박혀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랬다.

허나 적어도 의학적인 사고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공유되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바루다가 하필 거기에 박힌 것도 있고, 또 그쪽으로 계속 돌리게 되어서 그랬다.

‘응, 아직 모르겠어.’

[미친놈이……? 근데 알겠다고 해? 다들 보고 있는데? 어쩔 거야, 이 분위기.]

이 와중에 안다고 했기에, 모두는 정말이지 숨죽인 채로 수혁을 보고 있었다.

수혁은 멀뚱히 그런 이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니, 뻔뻔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한 채로 보고 있었다.

니들은 몰라? 이걸?

뭐 이런 얼굴이었다.

‘근데 넌 알잖아?’

당연히 비빌 언덕은 있었다.

수혁은 미쳐 보일 뿐 진짜 미친 사람은 아니어서 그랬다.

물론 간혹 주변을 돌아보지 못해서 이상한 짓을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잘난 척할 때의 수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인지능력을 발휘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인지능력은 바루다의 표정과 말투를 읽어낼 정도였다.

[아니, 이 미친놈이. 인공지능을 읽어?]

바루다는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바로 이렇게 놀랄 수 있다는 점이 단순한 인공지능들과 구분할 수 있는 증거였지만, 아쉽게도 수혁과 바루다 모두 딱히 그런 쪽으로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무지하기까지 해서 별다른 지적을 하진 못했다.

‘너랑 나랑 하루 이틀 함께했냐. 이 정도는 척 보면 척이지.’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야, 방금은. 보람이 있어 기쁘네. 하여간 털어 봐.’

[제가 왜요?]

‘내가 여기서 망신당하면 미국에 있는 케이스를 놓치게 되겠지? 그럼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는 길이 엄청 멀어지겠지? 확 돌아가게 되겠지? 그게 너한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응?’

[후아아.]

그저 대화의 끝에 아까 수혁이 쉬었던 한숨을 바루다가 쉬게 되었을 뿐이었다.

왜 한숨을 쉬었을까.

이게 틀린 말이 아니라서 그랬다.

그래, 확실히 수혁을 최고의 자리로 올리기 위해선 지금 이 자리가 중요했다.

비록 아무것도 아닌 미팅룸에 앉아 있는 참이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가 리처드라는 게 중요했다.

그는 내과 학회의 마당발이었고,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그것이 특히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일 때 입을 꾹 다물 만한 위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리처드는 아마 꼭 우리를 부를 거야.

이현종이 그렇게 말했다는 걸 바루다는 똑바로 기억하고 있었다.

[후.]

‘후 신드롬이야?’

[슈 슈슉 슉슈 시, 시, 시발놈아.]

‘지랄 말고 말해. 어차피 말할 거잖아. 이제 더 시간 끌면 나 좀 병신 될걸.’

해서 바루다는 마지막 발악을 한 후, 마지못해 병명을 풀었다.

[클리펠-트라우네이(Klippel-Trenaunay) 증후군.]

‘아. 그렇군. 그거면 다 설명이 되네.’

솔직히 좀 골탕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병명만 딱 말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수혁은 병명만 들어도 될 정도의 실력이 있었으니까.

일부러 얄밉게 웃은 후, 주변을 돌아보았다.

바루다가 성의 없이 띡 던지던 때와는 전혀 다른 말투로 병명을 말하면서였다.

“클리펠-트라우네이(Klippel-Trenaunay) 증후군이죠.”

“네?”

“응?”

“그게 뭔…….”

아쉽게도 수혁의 말에 주변 이들의 반응은 수혁과는 좀 달랐다.

리처드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들어는 봤다.

하지만 뭔가 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게 대장 증상을 일으킬 수가 있나?’

그에 반해, 이현종은 수혁이 말한 질환에 대해서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맥, 림프, 모세혈관 기형과 일반적으로 한쪽 팔다리의 연조직 및 뼈 비대…… 이게 다 아닌가?’

수혁은 그런 이현종을 보며 역시 아버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곤 폰을 돌아보았다.

영상 너머에 서 있는 레지던트와 소화기 내과 교수였다.

이 둘은 아쉽게도 이 질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아니, 사실 아쉽지는 않았다.

‘잘됐구만.’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더 오래, 그리고 진하게 잘난 척을 할 수 있으니까.

‘치료는 어차피…… 수술실에서 지침을 정해 주는 것으로 하면 돼.’

[와…… 지금 얼굴 진짜 가관인데 이거.]

바루다가 잠시 태클을 걸었지만 괜찮았다.

무시하면 되니까.

인지 치료 완료된 이명 취급 정도로 하면 될 터였다.

들리긴 하는데 불편하진 않은 소리로 취급하겠다, 이 말이었다.

“이름이 낯설 겁니다. 클리펠-트라우네이 신드롬. 그렇다 해도 한 번쯤 들어 보셨을 만도 한데…… 못 들어 봤나요?”

“난 들어 봤어요.”

“나야 뭐, 대충 알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수혁은 주변을 돌아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학회장에서 해야 했는데.

거기서 입 털었으면 수십, 수백 명이 이걸 들었을 텐데.

“일단 녹화부터 하시죠.”

“네?”

“이 질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아닙니까? 나중에 보여 주세요. 교육 자료로 쓰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어…… 네.”

해서 수혁은 남들이 보면 좀 이상해할 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댔다.

바루다도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다 보니 별말이 없었다.

자정작용이 안 이루어진다는 얘긴데, 이럴 땐 또 괜찮았다.

정보의 독점은 곧 권력이니까.

그것이 환자 앞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거의 폭거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누르셨으면 시작합니다?”

“아, 네. 눌렀습니다.”

“자. 일단 이 질환은…… 이름 들으시면 딱 아시겠지만 1900년경 프랑스 의사 클리펠(Klippel)과 트라우네이(Trenaunay)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습니다. 나름 유서가 깊죠? 이 질환은 정맥, 림프, 모세혈관의 기형과 일반적으로 한쪽 팔다리의 연조직 및 뼈 비대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선천성 질환인데, 그 정도가 개인마다 다 다르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 진단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또 죽을 때까지 아예 모르는 경우도 굉장히 많습니다.”

“아…….”

질환의 특성만 들어선 이 환자와 연결 짓기가 어려웠다.

림프는 알겠는데, 대장의 출혈은 좀 다른 얘기 아닌가.

물론 모세혈관의 기형이 장 전반에 걸쳐 발생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들으시면서 느낌이 오셨겠지만…… 사실 이 질환에서 소화 기관 침범은 무척 드문 일입니다. 한 보고에 따르면 클리펠-트라우네이 신드롬 환자 600여 명을 관찰했는데, 그중에서 소화 기관 침범이 있던 환자는 고작 6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질환 자체도 희소한 질환이지만, 그 안에서도 1%밖에 침범하지 않죠.”

“아…….”

“하지만 의사라면 아예 몰라서는 안 되겠죠. 의심 자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와 그래도 의심을 할 수 있는 경우에서는 환자의 예후가 아예 달라지게 됩니다.”

“그, 그렇죠.”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종을 포함해서 그랬다.

수혁은 덕분에 꽤 만족스러워졌다.

‘후후.’

그렇다고 대놓고 웃지는 않았다.

[아후. 이걸 봤어야 하는데.]

바루다만 봤다.

이건 괜찮았다.

바루다는 밖에서는 절대 모르는 존재니까.

게다가 이놈에게 욕먹는 건 이미 일상이라 별반 타격도 없었다.

“하여간 직장 소화 기관을 침범하는 경우는 대개 소화 기관의 혈관 기형을 말하는 것이고, 이 경우 대개 장의 원위부(더 멀리 떨어진 부분)…… 그러니까 아까 우리가 관찰했던 직장이 그 대상이 됩니다. 이 때문에 치질로 오인되는 경우가 아주 많죠.”

“아…… 치질…… 그러고 보니 이 환자, 치질로 진료를 본 적도 있습니다. 그땐 별거 없었다고 들었는데…….”

“원래 신드롬류의 질환이 각기 하나의 증상에만 집중할 경우, 그리고 그 증상이 아주 경미할 경우엔 별거 아닌 것으로 넘어가죠. 그러나 그것이 중첩되는 경우…… 이렇게 되는 겁니다.”

수혁은 ‘니들만 있었으면 놓칠 수도 있었다’라는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나오면 기분이 되게 나빠야 하는데 그럴 여력도 없었다.

그냥 수혁이 하는 말을 필터링도 없이 듣고 있었다.

아예 모르는 소리를 하는데 뭐 어쩌겠나.

닥치고 있어야지.

“자, 그러면…… 아까 했던 혈관 조영술로 돌아가죠.”

게다가 수혁은 일부러라도 정신없이 드라이브하고 있었다.

“앗, 네.”

아까 봤던 영상이 틀어졌다.

“자…… 여기서 상부 장간막 동맥 분지는 틀어막았죠. 확실히 거기가 메인이었던 것은 맞습니다만…… 보시면…… 우측 결장으로 가는 부위도 그리 안전해 보이진 않아요.”

“아…… 하지만 진짜 그렇게까지 심해 보이진…….”

“이 환자에게 혈관 기형이 발생했다는 걸 염두에 두세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아…….”

“게다가 이미 발생한 출혈도 적지 않아요. 이런 환자에서 출혈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환자는 죽습니다.”

수혁은 어느새 냉막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연기는 아니었다.

환자의 죽음을 논할 때 그렇게까지 까불 수 있는 의사는 없었으니.

듣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

“그렇군요.”

“하긴 혈관 기형이 있다면…….”

심각해졌다.

조용해졌고.

“아까 내시경실에서도 정맥류를 확인했죠. 그 조그만 알갱이로 보이는 정맥류들이 터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환자가 살겠습니까?”

“아니…… 어렵죠.”

어느새 리처드가 답하고 있었다.

담당할 만한 환자는 아니었다.

허나 내과 과장은, 그러니까 한 과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할 순 없는 법이었다.

“대장 전 절제술이 필요합니다.”

“아, 그건…… 그건 외과랑 상의가…….”

“상의가 아니라 조언을 드려야 하는 입장입니다. 내과란 병원에서 그런 존재가 아닙니까?”

“그…….”

그런 과장을 향해 수혁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시건방진 느낌이라기보다는 그저 충언에 가까운 말이란 느낌이 일었다.

게다가 일부 자부심이 차오르는 발언이기도 했다.

‘하긴…… 내과가 그래야지.’

특히 내과 과장 리처드로서는 내과란 병원에서 그런 존재여야 한다는 말에 잠시 넋을 잃고 말았다.

이런 말을 과장 회의 때 턱턱 떠들어 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어?

니들이 칼잡이지 의사냐! 이렇게 외칠 수 있다면…….

그날이 온다면…….

“안 그럼 이 환자는…… 아마 남아 있는 잔여 결장에서의 출혈로 인해 혈복막, 응고병증 악화, 복막염, 패혈증, 오른쪽 다리 심부정맥혈전증(DVT)와 같은 심대한 합병증이 발생할 겁니다. 오래 버텨야 두 달?”

그 와중에 수혁은 마치 어디서 미래를 보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이런 말을 떠들었다.

허나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근거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두 달이라는 시간조차, 환자의 나이와 병력을 고려해 보면 묘하게 그럴싸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네. 그렇게 하시면…… 결장 전체에 병변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거란 얘기죠.”

수혁은 수술 결과를 말할 때조차 자신만만해했다.

[이게 다 내 덕분인데!]

바루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억울해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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